2012. 12. 10. 14:08ㆍ특별전/2012 베니스 인 서울
21세기에 들어 영화는 보존할 가치가 있는 공통된 국제적 유산중의 하나가 됐지만 여전히 대중상영과 연구를 위한 공공적 접근은 쉽지 않은 편이다. 필름이 소실되어 접근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보존된 프린트를 상영하기에 필요한 경비의 부족, 기대할 수 없는 상업적 수익 때문에 여전히 아카이브와 박물관이 보관하는 영화들 대부분은 접근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 때문에 영화문화의 상당부분은 한계적인 상황에 처해있다. 그런 점에서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가장 주목받은 프로그램 중의 하나는 단연 ‘80!’ 섹션이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80주년을 기념해 그간 베니스 영화제에서 소개되긴 했지만 이후 제대로 상영될 기회가 없었던 ‘희귀한’ 영화들을 선별해 상영한 프로그램이다. 주로 베니스 현대예술 역사아카이브(ASAC: 베니스 비엔날레가 운영하는 아카이브로 문서자료는 물론이고 필름 라이브러리, 사진 라이브러리, 미디어 라이브러리, 포스터 라이브러리, 다큐멘터리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가 소장하던 영화들로, 프린트들은 보관되어 있었지만 상태가 좋지 않아 공개상영이 불가능했던 작품들이다. 올해 선보인 영화들은 장편 7편에, 중단편 3편을 포함한 총 10편의 영화들로, 이번 ‘베니스 인 서울’에서 상영되는 작품은 아쉽게도 카를로스 사우라의 <스트레스는 셋>(1968)라는 작품이 빠져, 총 9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재발견의 기회
먼저, 두 편의 이탈리아 영화들에 주목해보자. 국내에는 <로미오와 줄리엣>(1954)의 감독으로 알려진 레나토 카스텔라니의 <산적 Il brigante>(1961)은 자연주의 작가인 주세페 베르토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빈곤·전쟁·박해가 평범한 농민을 산적으로 몰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이탈리아 남서부의 지중해에 면한 칼라브리아에서 실제로 발생한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카스텔라니는 11개월 동안 칼라브리아에 머물면서 현지의 농민들을 동원해 전체를 로케이션 촬영했다. 니노라는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살인죄로 몰린 청년 미카엘 렌드가 산적이 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비극적인 사건은 니노의 누이인 밀리엘라가 반항적이고 무모한 이 청년의 곤경을 따라나서면서 벌어진다. 영화 중후반에 등장하는 토지를 획득하기 위한 농민들이 경찰에 맞서 투쟁에 나서는 장면이 압권인데(총탄이 빗발치는 투쟁의 전선에서 아이를 업고 나선 여성들이 대지를 질주하는 장면은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600여명의 현지 농민들이 엑스트라로 동원되었다고 한다.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러 두 가지 비극적 순간을 맞는다. 사랑은 비극적으로 좌절되고 미카엘은 ‘나는 성자가 아니야. 이 폭력의 땅에서 우리는 노새처럼 고통을 참고 견뎌야만 했어. 두드려 맞고 짓눌려 살아야만 했어. 권력을 지닌 자들은 우리를 무너뜨릴 거야’라며 울분을 토한다. 영화의 주제를 압축해 보여주는 순간이다.
지아니 다 캄포의 <닫힌 페이지Pagine chiuse>(1968)는 결코 놓칠 수 없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만약 이 섹션에서 불가피한 사정으로 단지 한 편의 영화만을 봐야 한다면 이 작품을 추천하고 싶다. 부모의 별거로 카톨릭 기숙학교에 보내진 어린 루치아노는 보수적인 교육과 폐쇄적인 친구들, 사제들의 훈육과 처벌 때문에 부적응을 보인다. 감독 다 캄포의 말을 빌자면 이 영화는 두 번째 바티칸협의회 이전의 완고한 교육체제가 사람들에게 남긴 트라우마를 그린 영화로, 상당 부분은 감독 자신의 유년기 경험을 회고한 자전적 이야기다. 하지만 영화가 만들어진 1968년의 상황을 고려할 때(마르코 벨로키오, 파솔리니,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등의 정치적 영화가 나오던 시기이다) 루치아노의 눈에 그려진 현실의 모습은 정치적 함의를 지닌다. 루치아노가 처한 상황 대부분은 그의 발걸음과 시선을 따라 펼쳐진다. 가령 이런 식이다. 루치아노는 헤어지기 싫은 엄마와의 짧은 면회를 끝내고 기숙사로 되돌아오는 밤길에서 젊은 연인들이 사랑스런 몸짓으로 입맞춤을 하는 순간을 지켜본다. 이어, 아이들이 아무런 상관없이 떠들어대고 있는 교실을 지나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선다. 이런 길고도 느릿한 리듬은 아이가 느끼는 점점 소원해지고 멀어지는 현실에의 시리고 아픈 경험을 제대로 반영한다. 영화의 마지막, 영성체를 하는 날의 장면은 잊기 힘들 만큼 아름답다. 시간의 안개 속에서 길을 잃었던 아름다운 걸작과 마주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소비에트 시절의 작가인 율리 라이즈만과 프랑스의 고전기 감독 장 들라누아의 영화는 말 그대로 희귀한 작품들로 이들의 작가성을 재발견할 기회를 제공한다. 율리 라이즈만은 소비에트 시절에 영화를 시작해 가장 오랫동안 작업을 했던 작가다(그는 1924년에 영화경력을 시작해 1980년대 후반까지 모스필름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마지막 밤 Poslednjaja noc'>(1936)은 러시아 혁명 20주년을 기념해 만든 일종의 ‘선전영화’이지만 1917년 10월 혁명의 밤을 낭만적인 분위기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시절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영화와 다소 차이를 보인다. 실제로 이 영화는 10월 혁명을 영웅적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탈린의 환심을 사지 못했고, 그 때문에 미하일 롬의 <10월에서의 레닌>(1937)이 3개월 만에 만들어져 그 해 11월에 개봉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율리 라이즈만은 이 영화에서 당의 전지전능함, 레닌의 신격화된 초상을 그려내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혁명의 투쟁과 살인, 폭력의 과정보다는 평범한 인물들과 그들의 인간적 감정을 부드럽고 세련된 화법의 카메라에 담아내는 것에 몰두했다. 몽타주를 대신하는 잘 구성된 미장센, 이데올로기를 대신하는 사랑, 그리고 그가 영향을 받았던 체호프적인 삶의 유쾌함과 유머, 삶의 복잡성이 잘 반영된 작품이다.
장 들라누아는 프랑수아 트뤼포가 ‘양질의 영화’로 격렬하게 비판했던 작가인데(비판이 논거중의 하나는 유명한 원작을 영화화하는 일종의 문예영화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가 1950년에 만든 <신은 인간을 필요로 한다 Dieu a besoin des homes>(1950)는 그의 경력에서 지극히 예외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장 들라누아는 프랑스 고전기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국내에는 <비련>이나 <전원교향곡>(46), <노틀담의 꼽추>(56), 혹은 후기의 장 가뱅과의 협연으로 유명한 <함정>(57)과 같은 프렌치 누아르 영화들로 올드팬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작가다. <신은 인간을 필요로 한다>는 1944년에 출판된 퀘플렉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세상의 끝처럼 묘사되는 브르타뉴의 작은 쌩 섬을 배경으로 한다. 이 외로운 섬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고, 여인들은 마치 죽음을 기다리듯이 검은 옷을 입고 있으며, 종교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이 벌어진다. 들라누아는 섬, 하늘, 대륙, 바다 등의 자연세계에 육화되는 것으로서의 신에 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담아낸다.
보석 같은 단편들
필리핀 감독 마누엘 콘데의 <징기스 칸Genghis Khan>(1950)은 몇 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소개됐던 작품이지만, 이번에는 복원된 버전의 새로운 영화로 만날 수 있다. 필리핀 영화의 1950년대는 흔히 재건과 성장의 시대로 이른바 전후의 ‘황금시대’라 불린다. 마노엘 콘데는 처음으로 베니스영화제에 필리핀 영화를 알린 작가로 이 시절의 가장 대표적인 감독이다. 그가 직접 테무진 역을 맡아 작가, 감독, 배우의 삼위일체를 이뤘는데, 스스로는 웰스처럼 천재라서가 아니라 단지 돈이 없었기 때문이라 고백한 바 있다. 정부의 보조도 없이, 예산이 부족한 영화 산업에서 저예산으로 유머와 스펙터클이 가미된 거대한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레고리 슈커의 <마침내 자유Free at Last>(1968)는 미국의 공영텔레비전 방송국(PBS)이 시네마 베리테 형식으로 담아낸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로 1968년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워싱턴에서의 행진을 담고 있다. ‘민중의 캠페인’이라 불린 행진으로, 킹 목사는 이 다큐멘터리의 촬영 며칠 후에 암살당했다. 그의 생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제 단편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남은 것이 아니라 숨겨 놓았던 보석 같은 작품들이다. 먼저 60년대에 만들어진 두 편의 체코 영화. 지난 달 ‘체코 시네마 쇼케이스’에서 소개한 바 있는 여성감독 베라 치틸로바의 <벼룩 한 보따리>(1963)는 여학생 기숙사의 생활을 그린 시적인 작품이다. 한 명의 여학생이 기숙사에 새로 들어오게 되는데, 카메라는 이 학생의 시선을 대신해 기숙사의 이곳저곳과 여학생들의 생활상을 드러낸다. 바클라프 타보르스키의 <진흙으로 덮인 도시 Zablacene mesto>(1963)는 재개발이 한창인 프라하의 주택 지구를 단지 8분 동안 담아낸 영화다. 이야기도 없고 주인공도 없다. 단지 공사 때문에 진흙탕이 되어버린 질퍽한 땅을 사람들이 어떻게 걸어 다니고 있는지(아이를 업은 아주머니, 출근길에 나서는 직장인들, 하교길의 아이들의 모습 등)를 유머러스하게 그려내고 있다. 아름답고 재치 있는 작품이다. 인디오들에게 시민권을 돌려주기 위한 시위의 과정을 담고 있는 라울 루이즈의 <이제 우리는 당신을 형제라 부를 것이다 Ahora te vamos a llamar hermano>(1971)는 보기 드문 영화다.
아카이브와 박물관이 보관하는 상당수의 영화들이 한계적인 상황에 처할 때, 그래서 대중들에게 제대로 보일 기회가 찾지 못할 때, 크게 두 가지 큰 문제가 발생한다. 대중들은 영화적 경험의 본질적인 가치에 접근하기 어렵다. 동시에, 역사적 현상으로서의 영화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아차리기 어렵다. 희귀한 영화들과 만나는 일은 그러므로 별난 일이 아니라 영화 체험의 소실된 역사를 복원하는 자연스런 과정이기도 하다. 주저 없이 이 영화들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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