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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2012 베니스 인 서울

[Feature] 이탈리아 진보적 영화의 어떤 경향

베니스 영화제의 공식 섹션 가운데 하나인 ‘베니스 클래식’은 복원된 필름을 상영하는 프로그램이다. 매년 베니스는 고전들을 새로 복원하여 영화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곤 했는데 올해도 마이클 치미노의 <천국의 문>(1980), 오손 웰스의 <팔스타프 심야의 종소리>(1982), 빌리 와일더의 <선셋 대로>(1950) 등의 클래식들을 복원해 공개했다. 특히 그동안 말도 많았던 <천국의 문>이 219분짜리 감독판으로 소개되며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천국의 문>은 1980년 개봉 당시 흥행참패로 제작사인 UA(United Artists)를 파산케 했던, 말 그대로 ‘저주 받은 작품’이었는데 1981년 칸영화제에 초대되며 조금씩 명예를 회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통제력을 잃어버린 감독에게 제작 전권을 넘겼을 때 어떤 불행이 일어나는지를 말할 때면 어김없이 <천국의 문>이 거론될 정도로 최근까지 악명을 날리던 작품이었다. 그런데 베니스를 통해 감독이 원했던 판본에 가장 가까운 작품이 소개되며 과거에 그렇게 오명을 뒤집어쓰던 <천국의 문>이 이제 미국이라는 국가의 탄생에 대한 대서사시라는 호평을 받았고, 올해 내내 비평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마이클 치미노는 베니스의 시사에 직접 참여하여 “아직 최종적인 편집은 끝난 게 아니”라며 새로운 판본의 제작 가능성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천국의 문>이 새로 탄생하던 순간이었다.

 

 

베니스영화제와 볼로냐시네마테크의 협업

칸영화제 같은 다른 영화제도 최근 들어 복원된 필름을 소개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테면 올해 칸을 통해서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옛날 옛적 미국에서>(1984)가 복원판으로 상영되기도 했다. 디지털 복원작업의 발전 이후 이런 변화는 더욱 확산되고 있는데, 베니스영화제가 복원 사업에서 남다른 성과를 내는 가장 큰 이유는 ‘볼로냐시네마테크’의 꾸준한 복원사업 덕분이다. 이곳은 1980년대부터 초기 영화 복원사업을 꾸준히 벌여 왔고, 특히 1986년부터 복원된 필름을 상영하는 영화제인 ‘치네마 리트로바토’(Cinema Ritrovato, 되찾은 시네마라는 뜻)를 매년 6월마다 열고 있다. 초기영화 전문가인 비평가 비토리오 마르티넬리 등이 주도한 이 영화제는 이제 26년째를 맞았고, 지금은 복원 필름 영화제에 관련해선 최고의 국제영화제로 평가 받고 있다. 볼로냐 영화제의 성공은 다른 나라의 시네마테크에도 영향을 미쳤다. 다시 말해 각국의 주요 시네마테크는 그동안 해오던 3대 주요 사업, 곧 ‘상영, 보관, 연구’ 이외에 ‘복원’이라는 또 다른 사업도 병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 베니스의 복원 작업도 볼로냐시네마테크가 주도했다. 이번에 서울에서 소개되는 네 작품은 물론, 칸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소개했던 <옛날 옛적 미국에서>도 볼로냐시네마테크가 복원한 필름들이다. ‘베니스 클래식’은 이탈리아 영화들, 특히 초기의 무성영화들을 복원하며 명성을 얻었는데, 이제는 볼로냐시네마테크의 특별한 기술력 때문인지 전 세계의 영화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이번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소개되는 영화들은 모두 이탈리아 작품들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은 프란체스코 로지의 <마테이 사건>(1972)이다. 소위 말하는 ‘납의 시대’인 197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유럽은 1968년 이후 극단적인 정치적 충돌의 시대로 돌입했고, 저널리즘은 이 시대를 ‘무거운’ 납으로 비유했다. 프란체스코 로지는 루키노 비스콘티의 조감독 출신인데, 자신의 스승처럼 좌파였고, 70년대는 엘리오 페트리와 더불어 이탈리아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감독이었다. <마테이 사건>은 엔리코 마테이라는 이탈리아 국영에너지회사의 리더에 관한 영화다. 무솔리니는 파시즘 시절 국민들을 선동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석유를 개발한다며 국영석유회사(Agip)를 설립했다. 전후의 이탈리아 공화국은 파시즘의 망령이 떠오르는 이 회사를 폐쇄하려고 했는데, 엔리코 마테이는 회사를 맡은 뒤 더욱 사업을 확장하여 다른 선진국과 경쟁하는 국영에너지회사(Eni)로 발전시켰다.

그런데 그의 사업 방식이 문제였다. 천연가스를 발견하고, 또 소량이지만 석유도 발굴한 엔리코 마테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경쟁하고자 했다. 이탈리아가 에너지 선진국의 장벽을 뚫기란 대단히 힘들었지만 마테이는 저돌적으로 도전했다. 그래서 마테이는 미국의 눈 밖에 나는 행동을 자주 했다. 그는 옛 소련과 적극적으로 손을 잡았고, 또 50대 50이 관습이던 이익분배를 산유국에 75를 주는 식으로 바꾸어 미국 주도의 시장 관습을 깨뜨렸다. 자신감에 넘치던 마테이는 급기야 “미국의 독점시대는 끝났다”는 등 당시의 에너지 시장질서, 곧 권력 질서에 도전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마테이는 1962년 10월 27일 갑자기 전용 비행기의 사고로 죽는다. ‘추락’인지, ‘공중폭발’인지, 따라서 사고인지 살해인지 의혹이 끊이지 않았고 무엇이 진실인지는 지금도 오리무중으로 남아 있다.

마테이 역에 장 마리아 볼론테가 주연으로 나오는데 그는 당대의 배우 가운데 가장 유명한 좌파였다. 곧 좌파 감독과 좌파 배우의 협업이 탄생시킨 문제작이 <마테이 사건>인데, 이 작품은 엘리오 페트리의 <노동자 계급 천국에 가다>와 더불어 그해 칸에서 최고상을 공동수상함으로써 70년대 정치영화의 포문을 연 작품으로 기록된다. 특히 올해 베니스는 프란체스코 로지에게 평생공로상을 수여했고, 그래서 이 영화의 복원은 더욱 뜻 깊은 사업으로 평가된다.

 

 

이탈리아, 폐쇄적인 섬, 돼지우리, 그리고 혁명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돼지우리>(1969)는 감독 특유의 알레고리 극이다. 두 개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먼저 대략 15세기를 배경으로 황야에서 살아가는 한 젊은이를 다룬다. 허름한 복장에 르네상스 시대의 철모 하나만 달랑 쓰고 황무지를 돌아다니는 그는 처음엔 곤충, 뱀 등을 먹고 살았는데, 어느 날 사람을 죽인 뒤 그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써 식인을 배운다. 더 나아가 다른 부랑자를 만난 뒤 식인과 여인 겁탈 등 더욱 못된 짓을 서슴지 않는 악당으로 변한다. 결국 어느 문명 지역의 사람들에게 붙들린 두 남자는 모두 사형에 처해진다. 다른 남자는 마지막에 죄를 뉘우치고 참회하지만 청년은 처형을 앞두고 영화사에 길이 남을 유명한 대사를 반복한다. “나는 아버지를 죽였고, 사람을 먹었으며, 기쁨에 몸이 떨린다.”

또 다른 이야기는 현대의 독일에서 진행된다. 나치 경력이 있는 어느 갑부의 아들이 있는데 그 청년에겐 정말 말 못할 비밀이 하나 있다. 민망하게도 그는 돼지우리에 들어가서 돼지들과 관계를 맺는 수간(獸姦)에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일종의 변태다. 그에겐 아름다운 애인도 있지만 그의 이런 성적 취향 때문인지 두 사람의 관계는 더 이상 진척되지 않는다. 역시 나치 전력이 있는 또 다른 기업인이 아들의 이런 비밀을 이용하여 기업합병을 기획하고, 그와 청년의 부친이 회사의 번영을 자축하는 사이 아들은 돼지우리에서 또 수간을 시도하다 이번에는 그만 돼지들에게 먹혀서(식인) 죽고 만다.

<돼지우리>는 발표 당시에도 센세이셔널을 불러일으킨 파솔리니의 정치드라마로 파시즘의 잔재(특히 경제계), 식인으로 치닫는 문화, 죽음을 불사하는 부자간 혹은 세대간의 갈등 등이 적나라하게 표현돼 있다. 사실 어떤 해설을 내놓는 게 무의미해보일 정도로 사건은 직접적이고 노골적이다. 한편 독일 에피소드에서 기업가의 비서로 나오는 수염 난 남자는 파솔리니만큼이나 진보적인 태도와 활동으로 유명했던 마르코 페레리 감독이다.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스트롬볼리>(1950)는 당시 감독의 사실상 아내였던 잉그리드 버그먼이 출연하여 더 유명한 작품이다. 지중해의 화산섬인 스트롬볼리로 오게 된 리투아니아 출신의 금발 여성(버그먼)이 이곳의 척박한 자연환경, 그리고 그만큼 척박한 문명에 부딪혀 고통을 겪는 내용이다. 외부인의 눈에 비친 이탈리아의 폐쇄적인 문명에 대한 표현도 돋보이지만, 로셀리니 특유의 리얼리즘이 발휘되는 점은 역시 그의 천재성을 재확인하게 한다. 그의 영화는 늘 현실 같은 허구, 허구 같은 현실을 뒤섞어 놓는다. 말하자면 로셀리니의 리얼리즘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흐릿한 데서 그 독특함이 돋보이는데, 이런 점에서 이 영화의 고기잡이 시퀀스는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평가된다.

 

마지막으로 <붉은 셔츠>(1952)는 일반 관객에겐 비교적 생소한 고프레도 알레산드리니 감독의 작품이다. 그는 파시즘 시절 전설적인 감독이던 알레산드로 블라제티의 조감독 출신인데, 전쟁 전의 파시즘 경력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테크니션으로서의 장점 덕분에 블라제티와 더불어 전후에도 살아남은 감독이다(그러나 두 감독 모두 결국에는 과거의 경력 때문인지 오랫동안 활동하지는 못했다).

<붉은 셔츠>는 이탈리아 통일의 영웅인 주세페 가리발디의 이야기다. 남미에서 혁명가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1848년 유럽의 곳곳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조국인 이탈리아로 들어와 통일운동을 모색했다. 그러나 외세의 개입에 의해 가리발디의 첫 도전은 가혹한 패배를 맛보는데, 알레산드리니는 가리발디의 ‘붉은 셔츠’(가리발디 군대의 색깔)가 외세에 밀려 로마부터 베네치아까지 도주하는 과정을 마치 중국의 장정(長征)처럼 묘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영웅으로서의 가리발디가 아니라 패배를 맛보며 와신상담하는 상처 받은 남자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끝없이 도주 중인 가리발디의 고생은 테크니션 알레산드리니에 의해 한때는 존 포드의 서부극을 보듯, 또 한때는 도브첸코의 광활한 러시아의 대지를 보듯 시각적 현란함으로 장식돼 있다. 한편 이 영화에서 가리발디의 아내인 아니타 가리발디 역을 맡은 안나 마냐니는 당시 감독의 아내였는데, 촬영 중에 자기 분량을 너무 요구한 나머지 감독과 큰 알력을 빚었고, 마지막에 알레산드리니는 이 영화를 끝내지 않고 촬영장을 떠나버렸다. 결국 영화는 올해 평생공로상을 받은 프란체스코 로지에 의해 겨우 완성된다. <붉은 셔츠>가 간혹 ‘아니타 가리발디’로 소개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네오리얼리즘의 선구자인 로셀리니의 작품부터, 알레산드리니의 중국의 혁명을 의식한 작품을 거쳐, 70년대 정치 드라마의 맹장인 파졸리니와 로지의 작품까지, 이번의 ‘베니스 클래식’은 이탈리아의 진보적 영화인들의 고민을 일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글/ 한창호(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