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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 지키기 42회] 아버지의 시린 표정, 기억으로 남지 않길

나는 시테마테크가 좋다. 장 르누아르니 장 뤽 고다르니 좀처럼 친해지지 않는 거장들의 영화를 볼 수 있어서가 아니다. 시네마테크가 가진 특유의 냄새와 그만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솥에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넣고 팔팔 끓이고 있는 듯한 가게를 지나는 것, 달팽이보다 느린 엘리베이터에 타는 것, 너른 마당이 있는 옥상 위 영화 매표소에서 티켓을 끊는 것, 외국인과 노인 그리고 젊은이들이 한데 섞여 테이블을 하나씩 꿰차고 있는 것, 종로 바닥이 훤히 보이는 난간 근처에 서서 비둘기처럼 모여 실실 웃으며 담배를 태우는 것은 오직 시네마테크에서만 가능하다(거대한 Mall에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 이곳에선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나와 다른 세상에서 사는 줄로 알았던 영화인들을 부담 없이 마주하는 것도 이곳이며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음에도(발가락이 시릴 때도 있음) 흑백영화(그것도 무성)에 집중하게 된다. 이곳은 시네마테크이기 때문이다. 시네마테크엔 정말이지 묘한 힘이 있다. 존재만으로도 힘이 된다. 시네마테크를 찾고 나면 영화에 대해 품었던 막연하고 무거운 꿈이 한결 가벼워진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본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이상하게도 마음이 절로 뿌듯해진다. 시네마테크의 존폐 위기 소식을 듣고 ‘나이가 들수록, 욕심을 차릴수록 사라지고 놓치는 것들이 자꾸만 는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나긴 하지만 그것의 빈자리는 좀처럼 메울 순 없다고. 아버지의 시리고 씁쓸한 표정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다. 나또한 그 표정을 시테마테크 때문에 짓지 않길, 시테마테크가 기억으로 남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지다나, 29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