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영화가 있기 때문에, 전진

 

1962년 5월 12일 밤, 니시노미야 항구에서 한 사내가 몰래 배에 오른다. 분명한 목적 없이는 출국이 금지되었던 시기다. 그렇다면 남자는 몰래 어딘가로 도피하려는 중일까. 아니면 비밀리에 어떤 임무를 수행 중일까. 어느 쪽도 아니다. 남자는 혼자 힘으로 태평양을 건너고 싶었다. 단지 그뿐이다. 하지만 그 단순한 목표가 아주 절대적이어서, 이 영화에 충분한 동력을 제공한다. 짐작하겠지만 거기에 대단한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남자가 배에 오르기까지 거쳐 온 시간을 되새김질한 것들일 따름이다. 심지어 이야기는 때때로 한 자리를 맴맴 돌고 있는 듯하다. 바람 한 점 없는 날 망망대해에 떠 있는 남자의 배처럼 말이다. 모터가 달려있지 않은 배의 운명은 오직 바람의 주관이다. 바람이 그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줄까. 예측할 수 없는 날씨,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 속에서 남자는 샌프란시스코 해안을 향해 계속 나아간다.

2008년에 타계한 이치가와 곤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일관성과 거리가 멀다. 오즈 야스지로나 구로사와 아키라 같은 앞 세대 거장들과 비교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사회적 논평이 짙은 드라마, 밝고 경쾌한 장르물, 인간의 욕망에 천착한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게 공존한다. 그들을 관통하는 공약수를 찾기란 쉽지 않다. <나홀로 태평양>도 그의 다른 영화들과 어떤 방식으로 묶인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보트 안에서 홀로 세 달을 버텨내는 남자의 고독을 이미지와 사운드의 배치를 통해 설득시키고 남자의 눈앞에 놓인 자연을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내는 능력을 보면, 그가 스스로를 화가로 생각했던 완벽주의자였음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는 있다.

남자의 항해에 대한 몰두는 감독의 영화에 대한 몰두를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남자는 감독이 영화를 준비하듯 출항을 준비한다. 배의 설계도를 찾고, 그 배를 완벽하게 지어줄 기술자를 섭외하고, 관계된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고, 항해에 필요한 물건들을 빠짐없이 챙긴다. 실제로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조금이라도 숙지하고 있는 이라면 그것이 집단적 노동의 산물임을 알 것이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이 영화에서 그 과정은 개인적 고독의 산물로 이해된다. 감독이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얻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 설득해야 하는 사람들, 지출해야 하는 비용은 적지 않다. 그 때 감독은 매번 자신과의 싸움을 벌여야할 것이다. 하지만 남자에게 태평양이 거기에 있듯, 감독에게도 영화라는 ‘목적지’가 거기에 있기에 그는 계속 전진한다. 그 불안하지만 우직한 운동성이 이 영화에도 있다. 그리고 그 점이 이 영화를 극히 단순하지만 힘 있게 한다.

가장 놀라운 것은 마지막 장면이다. 남자는 드디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다. 그는 태평양을 횡단한 첫 일본인이었기에 엄청난 환호를 받는다. 하지만 그에게 주변의 관심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는 목적지를 통과했고, 그 사실이 제일 중요하다. 그제야 그는 피곤을 느낄 수 있다.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도 받지 못할 만큼 잠에 빠진 그가 침대에 코를 파묻으면서 영화는 끝난다. 극심한 노동 끝에 허락된 평온의 시간. 그 간명한 결말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체험케 하는 작품이다.

 

글/ 이후경(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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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족 전통의 계승과 극복

 

 

 

<치사한 놈>의 감독인 구라하라 고레요시는 한국에는 비교적 많이 알려지지 않은 감독이지만 1957년에 감독으로 데뷔한 후 90년대까지 3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며 오랜 기간에 걸쳐 일본 대중의 사랑을 받은 대표적인 감독 중 한 명이다. 그는 1927년생으로 같은 세대의 감독 중에서는 드물게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으며 쇼치쿠에 입사했으나 1954년에 닛카츠로 소속을 옮겨 1967년까지 닛카츠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태양족 영화’의 시작을 본격적으로 알린 나카히라 코우 감독의 <미친 과실>(1956)에서 조감독을 맡기도 했으며 그 후로는 젊은 감수성의 톡톡 튀는 영화에서 블록버스터까지 연출하며 폭넓은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특히 1983년에 만든 <남극 이야기>는 다음 해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기도 했으며, 이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가 개봉하기 전까지 일본최고흥행 기록을 갖고 있을 정도로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치사한 놈>은 구라하라 고레요시가 닛카츠에서 한창 활발하게 활동을 펼친 시기에 만든 그의 초기 대표작으로 그가 영화를 통해 추구한 것이 무엇인지 잘 나타난 영화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한눈에 봐도 젊어 보이는 세련된 스타일이다. 주인공인 다이사쿠와 노리코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연예인과 그 매니저답게 세련된 최신 의상을 입고 다니며, 다이사쿠가 자주 찾는 클럽이나 그의 일터인 방송국 무대 역시 화려함을 자랑한다. 여기에 경쾌한 재즈음악과 광각렌즈까지 동원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카메라 워킹, 예고 없이 휙휙 넘어가는 편집까지 더하면 이 감독의 장기가 무엇이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약간의 과장을 동반한 배우들의 열정적인 연기 스타일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영화를 단순히 당시 젊은 세대를 위해 만든 오락 영화로만 보기에는 아까운 면이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태양족’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번에 상영하는 스즈키 세이준의 청춘 영화에도 잘 드러나지만 당시 일본의 전전 세대와 전후 세대의 갈등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파시즘과 전쟁을 통과한 기성세대들의 눈에 전후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이루어 놓은 부를 바탕으로 놀기만 하는 못마땅한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젊은이들은 그런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미국에서 수혈 받은 신식문화를 바탕으로 <이유 없는 반항> 속 제임스 딘처럼 스피드를 즐겼으며 전자 음악과 록에 맞춰 춤을 췄다. 그리고 이때 때맞춰 나와 젊은이들의 큰 지지를 받은 이시하라 신타로의 소설 『태양의 계절』의 제목을 따서 당시의 젊은이들은 ‘태양족’이란 이름을 얻었다. 또한 이시하라 신타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미친 과실>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닛카츠를 필두로 ‘태양족 영화’들이 속속 만들어졌다.

당시에 만들어진 태양족 영화들은 저마다 다양한 특징이 있었지만 그 핵심에 자리 잡은 것은 젊은이들의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이었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못마땅하게 여긴 것과 마찬가지로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를 자신들을 속박하는 장애물로 여겼다. 이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반항이었지만 그 반항은 기성질서를 전복하는 것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태양족 영화 속 젊은이들은 순간의 젊음을 만끽했으며, 기성세대에 무조건적인 증오를 보였으며,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확실한 전망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젊은 육체를 스크린 가득 뽐내면서도 자주 비극적인 결말을 맞곤 했다.

 

그런 맥락에서 <치사한 놈>의 주인공들은 50년대의 태양족 젊은이들이 몸만 성장한 채 사회에 정착한 인물들처럼 보인다. 다이사쿠는 화려한 생활을 즐기면서도 빡빡한 일상에 지쳐 피곤해하고 어떤 일에도 쉽게 흥미를 갖지 못한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다이사쿠와 노리코 커플은 737일이나 만났지만 섹스도 하지 않고 키스도 하지 않는다. 그 둘 중 하나라도 선을 넘을 경우 자신들의 ‘순수한 사랑’이 변질되고 말 것이란 걱정 때문이다. 명분은 거창하지만 이는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스스로의 젊음에 족쇄를 채우고 거세를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대신 강박적으로 자신들이 함께 한 날짜를 기록하고 미친 듯이 춤을 추며 반복적인 하루를 보낼 뿐이다. 60년대의 태양족 청년들은 이렇게 최소한의 저항마저 잊은 채 외양의 화려함만을 소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명백히 당시 세대에 대한 감독의 논평으로 읽힌다. <미친 과실>의 조감독으로 참여하며 젊은 세대의 억눌린 욕망을 파괴적으로 분출시켰던 장본인 중 한 명이 다시 영화를 통해 어떤 목표도 없이 그저 주어진 현실을 살아가는 태양족 세대를 비판적으로 그리는 것이다. 그리고 감독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다이사쿠는 순간의 충동을 좇아 낡은 지프를 타고 여행을 떠나고, 노리코 역시 그를 붙잡기 위해 최신식 재규어를 타고 그의 뒤를 좇는다. 그리고 이 사고 많은 긴 여행 끝에 놓인 것은 묻어뒀던 자신들의 욕망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스스로 채운 족쇄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그들이 이 뒤에 유의미한 삶의 목표를 찾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처음으로 생기를 찾은 눈동자를 보여주며 방송국의 카메라를 뒤로한 채 하늘의 태양을 바라본다. 이 결말은 너무나 직접적인 감독의 메시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메시지가 가진 무게는 어느 영화보다 묵직하게 다가온다. 젊음은 그대로 간직한 채, 이번에는 제대로 박차고 일어서라는 것이다.

 

글/ 김보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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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욕망> 상영 후 유양근 박사와의 시네토크 지상중계

 

지난 10일, 이마무라 쇼헤이의 <끝없는 욕망> 상영이 끝난 후 유양근 박사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스즈키 세이준을 중심으로 진행된 이번 닛카츠 100주년 특별전 가운데에서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특별한 자리였다. 50년대 전후 신세대 일본 감독들의 특징과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 세계의 디테일을 짚어보던 현장을 전한다.

 

 

유양근(니혼대학 예술학 박사): 이번에 함께 상영한 <인류학 입문>을 보신 분들은 이마무라 쇼헤이가 대략 어떤 유형의 영화를 찍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첫 작품부터 마지막 작품에 이르기까지 사실 이마무라는 어느 정도 일관된 작품을 찍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 보신 <끝없는 욕망> 안에 그런 공통점들이 상당부분 드러나 있다.

 

50년대 중후반은 일본에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다.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지났고, ‘전후는 끝났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전쟁의 아픔이나 현실적인 문제에서 회복되었다는 일종의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와 더불어 전장을 경험하지 않은 신세대들이 전면에 나서게 된다. 이들은 전쟁을 일으키고 나라를 망가뜨린 기성세대가 아무런 반성도 없이 이전에 하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분노한 상태였다. 그 분노에는 이때까지 일본이 가지고 있었던 가치에 대한 부정과 미국식 민주주의를 따라가자는 여론이 동시에 포함되어 있었고, 이는 이 시기에 등장한 신세대 감독들의 영화에서도 나타났다. 닛카츠는 전쟁 전에도 이미 있었지만 전쟁이 활발해지면서 국책으로 다른 회사와 합병되어 없어졌었다. 그런데 50년대 후반에 제작 부분이 회생되어 일종의 신생회사가 되었다. 당시 일본영화는 도제 시스템으로 감독이 되기까지는 조감독 5, 6년, 그 전 견습생을 포함해서 총 15년, 길게는 20년이 걸렸다. 그러나 새로 생긴 닛카츠는 신인 감독들을 등용할 수밖에 없었고, 이마무라도 여기에 속한다. 예전의 룰에 따르면 감독이 되기 힘들었던 젊은 세대가 감독이 될 수 있는 세태가 생긴 것이다. 이 세대는 또한 고등교육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전 세대인 오즈 야스지로나 미조구치 겐지, 나루세 미키오 등의 거장들이 가지고 있는 학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 세대의 감독들은 영화사에 들어가서 감독이 하는 일들을 보고 그걸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서양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폭이 굉장히 넓은, 대학교육을 받은 감독들이 영화를 만들다 보니 나타나는 캐릭터들에 차이가 생기게 된다. 또한 일본영화에서 중요한 지점 중 하나인 ‘템포’도 달라졌다. 커트 수를 떠나서 스토리의 전개 방법이나 캐릭터의 태도에서 나타나는 템포다. 이전까지는 상당히 느리고 정보를 많이 주는 방식이었다면 이들은 스토리텔링을 빠르게 하는 성향이 있었다. 그런 영화가 결국 젊은 세대에게 호응을 받았던 것이다.

 

 

<끝없는 욕망>은 오프닝부터 굉장히 이색적이다. 이마무라는 평이한 앵글을 써오던 이전세대의 감독들과 달리 특이한 앵글을 잡으려고 노력한다. 일종의 분할화면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에 있는 부분과 아래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는 합성과 세트를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그는 지속적으로 부감에 가까운 각도를 사용한다. 사람들 머리 위에서 상황을 한 번에 잡는 앵글이다. <붉은 살의>나 <돼지와 군함>에서도 이런 샷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일종의 모험심에서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인간세상 사는 것들이 다 똑같은 것 아니냐’ 라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조명 역시 독특하다. <도둑맞은 욕정>이나 <끝없는 욕망>은 사실 일종의 코미디이다. 이런 영향을 준 사람은 그와 함께 많은 작업을 했던 가와시마 유조라는 감독인데, 그 감독의 작품들이 소시민들의 삶을 다룬 가벼운 희극이었다. 거기에 비해 이마무라는 자신의 작품을 ‘중희극’, 무거운 희극이라고 일컫는다. 그래서 희극임에도 불구하고 히치콕의 <싸이코>에서 보일법한 흔들리는 조명들을 쓰고 있다. 이는 장르를 떠나 상황에 맞게 모든 것을 컨트롤하는 그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캐릭터다. 이전의 영화들은 악역과 선한 역이 분명한 차이를 보였고 끝내는 선이 악을 이기는 이분법적 스토리였다. 그러나 이마무라의 영화에서는 그다지 착한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악인이냐 하면 그것은 아니고 그 둘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마무라는 사람 사는 것은 다 양면성을 지니고 있고, 그런 인간을 사랑하며, 그 캐릭터를 영화 속에서 그리고 있다고 말한다. 반복되는 중심적 모티프 중 또 하나가 ‘구멍 파기’다. <신들의 깊은 욕망>에서는 남근 모양의 바위를 파서 무너뜨리는 형벌을 받는 남자가 나온다. 50년대 중후반에 나온 영화 제목들 중에 욕망이나 욕정이라는 단어로 원초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경우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이전까지의 영화의 가치관들이 계속 억압해 왔던 것들이 바로 그 ‘욕’이다. 이마무라는 특히 <돼지와 군함>에서부터 그 억압에 반발하며 성과 욕망에 대해 적나라하게 표현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평론가 사토 다다오는 『이마무라 쇼헤이의 세계』라는 책에서 이마무라 쇼헤이의 특징 6가지를 꼽았는데, 그 중 세 가지가 하층계급에 대한 것이다. 그는 자신보다 1년 늦게 데뷔한 동시대 감독 오시마 나기사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는 말에 “그가 사무라이라면 나는 농민이다”라고 대답했다. 그 둘은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으나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다. 오시마가 사회의 부조리를 정치적으로, 저널적으로 이야기했다면 이마무라는 기표에 나타나는 움직임에 주목하기 보다는 정말 ‘구멍을 파서’ 그 아래를 본 사람이다. 오시마와 이마무라 둘 다 나름의 일관적인 길을 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서구에 오시마가 먼저 눈에 띈 것은 천황이나 전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가지는 선정성, 선명성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밑으로 파고들어간다’는 면에서, 일본 영화를 지속적으로 연구한 학자들은 이마무라와 이치가와 곤에게 주목하고 인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보신 <끝없는 욕망>이라는 작품 전체를, 이 우에노의 작은 마을을 일본이라고 생각해보자는 것이 제 아이디어다. 이것을 일본이라고 상정했을 때, 이마무라는 변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변하지 않는 것이 뭘까. 전쟁 전에는 천황에 따르고 군국주의를 숭배하다가 전쟁이 끝나자마자 미국식 자본주의에 달려드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이마무라가 생각하는 일본적인 것이 아닌 것 같다.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를 생각했을 때 그 답은 인간이다. 욕망을 가진 인간. 즉 욕망이라는 것이 이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기제임은 분명한데, 욕망의 분출을 억압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그것을 억압하는 것은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오시마 나기사가 그것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했다면 이마무라쇼헤이는 드러내지 않고 하층민의 삶을 통해 이야기 한 것 같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일본영화사에서도 전무후무한 감독이며, 전무후무한 작품들을 남겼다. 그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 하는데, 이런 지점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와도 통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다시 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역시 이런 보편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관객1: 영화를 보면서 김기영의 <하녀>나 봉준호의 <괴물>이 떠올랐는데 특히 괴물은 플롯과 스타일이 거의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오늘 본 영화를 포함해서, 이 영화들이 하층계급들의 욕망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긍정한다기보다는 약간 두려워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층계급을 바라보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무조건 긍정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어떤 냉소인 것 같기도 하고. 봉준호의 경우 하층계급을 정말 긍정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유양근: 김기영의 경우 물론 하층민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당시 주류로 형성되어가고 있었던 중산계급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파헤치기 위해 하층민들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하층민들을 그리려고 했던 것들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다. 봉준호의 경우 <괴물> 속에서 송강호 일가족이 겪고 있는 아픔이나 삶의 대척점에는 정권이 있고, 가진 자들이 있고, 언론이 있다. 일종의 대비효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하층민들의 아픔을 그렸다고 극단적으로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마무라는 반대항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마무라는 하층민들 그 자체를 다룸으로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오시마는 오히려 반대편에 있는 것들에 대해 많이 이야기 한 사람이다. 사실 이마무라는 의사의 아들로 나름대로 유복하게 자랐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초반부터 하층민들의 삶을 발굴하고 이야기했다. 그들이 우리와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전제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그가 자신의 영화 속에 나오는 어떤 캐릭터든 모두 사랑한다는 점이다. 인간이라는 속성을 가진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 같다. 언급하신 감독들과는 결론적으로 대척점을 가지고 있느냐, 반대편의 것들을 염두에 두고 있느냐 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정리: 박예하(관객 에디터) | 사진: 황초희(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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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무라 쇼헤이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영화는 광기의 여행’이라 말한 적이 있다. 그런 광기에 가장 어울리는 작품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신들의 깊은 욕망>(1968)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그의 혼신이 담긴 괴작이자 최고의 작품이며 전환점에 놓인 작품이기도 하다. 무대는 일본 열도 남단의 오키나와 근처의 가공의 섬. 일본이 가진 낡은 습속이 이곳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무엇보다 낡은 샤머니즘이 여전히 있어서 무녀가 몰아지경의 상태에서 신의 소리를 들어 그것을 사람들에게 고지하면 주민들은 그 말에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이런 외딴 곳에도 산업화의 바람이 불어온다. 섬에는 비행장을 만들고 관광객을 들이는 계획이 진행된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위대함은 본토에서 떨어진 작은 섬마을 공동체의 성스러운 의식들을 지극히 느리게, 하지만 숨 막힐 정도로 공포스럽게 그려낸다는 점에 있다. 특히나 영화 말미에 나오는 장엄한 제의적 죽음의 장면이 압도적이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오키나와에 대한 관심이 이곳 주민들이 ‘호모 루덴스’에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비롯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들은 모던한 일본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이다. 하지만 당시 이마무라 쇼헤이가 이상적인 일본 민주주의를 하나의 환영에 불과한 것으로 바라봤던 것을 떠올려보면 이들이야말로 더 현실적인 사람들이었고 모던한 일본을 비판할 수 있는 원형의 사람들이었다. 그는 마을의 정신적인 연대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유지되는지, 그러기 위해서 낡은 신앙이 어떻게 이용되는지, 그리고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가 그것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배제하고 말살하는지 보여준다. 이런 몰살의 의식을 고려하면 영화에 나오는 상어와 돼지의 조우는 꽤 우화적인 설정이라 할 수 있다. 배에 실린 돼지들의 농담처럼 평안한 모습과 이어지는 상어의 습격은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지극히 무감한 카메라의 응시로 표현된다. 아주 취약한 죽음이 벌어지는 것과 이에 대한 카메라의 무감한 응시는 희생자를 구제할 길은 없다는 것과 그들의 운명을 상기시킨다. 돼지가 가라앉고 푸른 배경 위에 붉은 오점이 남는다. 앙트안 드 베크가 지적하듯이 이 시퀀스에는 인간의 감정도, 상황의 스펙터클도 없다. 카메라는 이 고요한 응시를 영화 내내 유지하는데, 그것이야말로 이마무라 쇼헤이의 위대함이다. 인간은 여기서 피를 흘리는 작은 돼지이다.

<신들의 깊은 욕망>은 일본영화가 이제 막 변혁의 시기로 치닫던 때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1968년은 여전히 영화의 혁명을 믿을 수 있었던 시기였다. 오시마 나기사는 쇼치쿠를 뛰쳐나가 독립제작사인 ‘창조사’에서 <일본 춘가고>, <교사형>, <돌아온 주정뱅이>등을 만들었고, 이마무라 쇼헤이는 <돼지와 군함>, <일본 곤충기>, <붉은 살의>, <인류학 입문>을 거쳐 <신들의 깊은 욕망>에 이르러서는 닛카츠를 떠나야만 했다. 영화가 사회와 대치하고 국가라는 환상과 대항하던 때였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이 영화 이후에 근 십년간 영화작업을 제대로 못했지만 촬영소의 붕괴와 영화사의 몰락 이후 갈 곳 없어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영화학교를 개설하기도 했다. 1975년에 개관한 ‘요코하마 방송영화 전문학원’(이 학교는 1986년에 요코하마에서 가와사키로 이전해 일본영화학교로 개칭했고 2011년 4월, 일본영화대학의 모체가 되었다)은 현역 감독, 극작가, 카메라맨, 녹음기사 등이 실제로 영화를 만들며 일의 방식을 배우는 학교였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광기의 여행’은 일본영화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글/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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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와치 카르멘> 상영 후 황미요조 프로그래머와의 시네토크 지상중계

 

닛카츠 창립 100주년 기념 스즈키 세이준 회고전이 한창이던 지난 9월 23일, <카와치 카르멘> 상영 후 황미요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이 날의 강연은 세이준 영화 중 상대적으로 많이 이야기되지 못했던 <카와치 카르멘>을 일본의 역사와 문화사적인 맥락에서 접근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그 현장의 일부를 옮긴다.

 

 

황미요조(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본격적으로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오늘 말씀드릴 많은 부분은 일본 메이지가쿠인대학의 사이토 아야코 선생님과의 토론과 <점령과 기억(Occupation and Memory)>이란 글에서 많이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 <카와치 카르멘>은 스즈키 세이준의 육체 3부작 중 한 편이다. 일본에서는 스즈키 세이준의 전후 여성 3부작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 3부작 중 두 편, <육체의 문>(1964)과 <카와치 카르멘>(1966)이 이번 회고전에서 상영이 되고 나머지 한 작품은 예전에 <위안부 이야기>(1965, 일본어 원제는 <춘부전(春婦傳)>)라는 제목으로 시네마테크에서 상영된 적이 있다. 이 세 작품을 가리켜서 스즈키 세이준의 전후 여성 3부작이라고 하고, 여성의 신체를 전면적으로 내세운다는 의미에서 육체 3부작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육체 3부작이라고 하면 전후 일본 문화사에서 같이 이해하면 좀 더 좋을 문화적 사조가 있다. 스즈키 세이준의 육체 3부작 중 <카와치 카르멘>을 제외한 나머지 두 작품의 원작자는 다무라 다이지로라는 굉장히 유명한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다무라 다이지로의 소설 『육체의 문』과 『춘부전』는 이미 40년대, 50년대에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고 스즈키 세이준이 리메이크를 한 것이다. 다무라 다이지로의 소설은 일본의 전후 점령기, 즉 일본이 패전 이후 미군의 지배 아래 있었던 시기에 나온 소설들이다. 우리가 2012년에 육체 3부작을 본다는 것은 이 영화들이 만들어진 시기와 지금 현재가 매개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일본의 전후 점령기라 말하는 시기까지 연결되어 총 세 개의 시대가 매개된다고 할 수 있다.

스즈키 세이준은 쇼치쿠에서 자신의 감독 경력을 제일 먼저 시작했다. 하지만 쇼치쿠에서 감독 데뷔를 하지는 못했고 닛카츠에서 감독으로 데뷔한다. 스즈키 세이준이 항상 강조를 하는 것이, 세이준은 자신을 진지한 감독 내지는 비평의 대상이 되는 감독으로 얘기되는 걸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비평가들의 입장에선 작가를 사회적 텍스트에 맥락화시키는 걸 어렵게 만들고 있기는 하다. 어쨌든 세이준은 닛카츠의 철저한 고용 감독이었고 그 중에서도 기획은 거의 관여할 수 없었던 2군 감독이었다. 따라서 다무라 다이지로의 소설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를 60년대 중반에 스즈키 세이준이 다시 리메이크한 것에 대해서 제가 의미를 부여하는 건 지나칠 수도 있는 것을 알려드리고자 한다.

 

전후 점령기 일본에서는 이른바 육체 문학 담론이라는 게 있었다. 그 안에서 다무라 다이지로가 가장 유명한 소설가였고 그 당시에 그의 소설들은 히트를 했다. 한편으론 1945년부터 1952년까지 일본의 점령기 영화를 보면 젠더적으로 매우 재미있고 이후에 흥미로운 변화들이 나타난다. 그 시기의 많은 영화들이 민간과 군으로부터 동시에 검열을 받았다. 당시 일본의 영화 산업이라고 하는 것은 군국주의와 철저히 결별하고 새로운 민주화 프로파간다의 매개체가 됐어야 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우리 청춘 후회 없다>(1946)는 사회주의 사상 비슷한 것 같지만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 중 대표적인 프로파간다 영화로, 미군 전개 하에서 군국주의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민주주의, 자유주의라는 통제 하에 만들어진 영화다. 그 당시 기노시타 게이스케의 <오소네가의 아침>(1946) 등 굉장히 유명했던 영화들이 많다. 어떻게 보면 이건 철저한 모순인데, 전쟁 전과 후 영화사, 작가, 배우가 다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전쟁 시기에는 굳건하게 군국주의를 옹호하다가 전쟁이 끝나고 미군정 검열 하에서는 자유주의를 전파하는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재밌는 현상이 많겠지만 그중에서 젠더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난다. 특히 전쟁 시기 여성의 신체는 국가의 신체이고 굉장히 경건하고 금욕적이고 통제되는 신체로 보여졌다면, 전후 점령기의 자유로움을 대변하는 신체가 여성들에게 부여된다. 그건 마치 페미니즘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 청춘 후회 없다>에서 하라 세츠코는 활발하고 남자들이랑 같이 담배도 피우고, 남자친구가 반정부 운동하는 걸 이어 받아서 같이 운동도 한다. 그런 활발한 역할들을 여성이 부여받게 된다. 그리고 남성들은 그 안에서 이전의 군국주의에 대한 반성 혹은 지위 하락을 겪으면서 남성성이 거세되고 반대로 여성들이 굉장히 발랄하게 묘사된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미조구치 겐지와 다나카 기누요의 <여성의 승리>(1946)라는 여성의 참정권과 관련된 영화가 있다. 여성의 참정권이라는 것도 군국주의와 결별하고 새로운 민주주의, 자유주의로 나가면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주체로 여성이 등장하는 게 미군 점령기에 대거 등장하게 된다. 잡지도 영화도 이런 여성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후 이러한 ‘해방’이 정치와 관련해서 사상적 자유주의, 민주주의 보다 점차적으로 섹슈얼리티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이른바 에로그로(에로틱+그로테스크) 영화들이 대거 제작되는 것이다. 이 영화들에서 여성의 신체들은 전시가 되고, <육체의 문>처럼 성매매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성매매를 하고 있지만 거세되고 주눅들어있는 남성들보다 훨씬 생명력 있고 당당한 여성들이 점차 섹슈얼리티와 결합되는 방식으로 특히나 영화에서 나타나게 된다.

 

이런 배경에서 다무라 다이지로가 주축이 된 ‘육체의 문학’이라는 사조가 나오게 된다. <육체의 문>은 성매매 공동체의 주요 고객인 미군들, 패전병이 된 일본 남성이라는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위안부 이야기>에서 노가와 유미코는 군 위안부로 나오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군인이 부대 안에서 군위안부와 사랑을 하고 도망가는 걸 망설이자 전쟁이 뭐고 나라가 뭐냐며 굉장히 비웃는다. 이렇게 남자가 국가에 얽매여 있는 존재로 나온다면 여성들은 강한 생명력이 있으며 특히 그 생명력이 현시되는 방식은 그녀들의 육체를 전면적으로 전시하는 것이다. 다무라 다이지로가 말하길, 이전에 군국주의 시대의 육체가 경건하고 통제받는 육체였다면 자신의 소설에서는 육체 자체가 시대이며 거기서 찢겨지고 더럽혀지고 타락하는 몸을 보여주는 것이 육체 문학이라고 한다. 거기서 다무라 다이지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대표적인 영화가 <육체의 문>과 <새벽의 탈주>(1950년에 『춘부전』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였다. 스즈키 세이준의 <육체의 문>과 <위안부 이야기>는 그 작품들의 리메이크다. 그리고 <카와치 카르멘>은 다무라 다이지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건 아니지만 그 시기의 육체문학이나 점령기 여성의 신체 재현을 보여주는 많은 부분에서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또 다른 ‘카르멘’이 나오는 영화가 기노시타 게이스케의 카르멘 시리즈이다. 기노시타 게이스케도 스즈키 세이준처럼 작가성이 매우 뚜렷한 감독이다. 그과 공통점이 있다면 기노시타의 <카르멘 고향에 돌아오다>(1951)와 <카르멘의 순정>(1952)도 기노시타의 작가성과는 조금 떨어져서 보게 된다. 개인적으로 카르멘 시리즈가 육체문학, 점령기 이후 여성 재현에서 굉장히 중요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카르멘 시리즈에서 여성들이 희화화되는 측면에서 여성 혐오적인 기운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점령기 이후에 여성의 신체가 새로운 자유주의(미국화)를 대표하는 주요한 장소가 되는 것을 보여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주제로 삼은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즉 전후 점령기에 일본에서 여성의 재현이 어떻게 되고 있냐고 할 때 중요한 작품이다. 그렇게 스즈키 세이준의 여성 3부작을 볼 때 점령기의 육체문학이라는 담론과 기노시타의 카르멘 시리즈를 이어붙이는 게 정당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세이준의 후기작 중에 <피스톨 오페라>(2001)라는 작품에서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국기를 너무 좋아하는 패션모델이 <카르멘 고향에 돌아오다>라는 영화를 본 뒤에는 국기가 악몽이 되어 꿈에 나타난다고 얘기를 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이 커트되면 다른 사람이 자기 꿈에 대해서 얘기를 한다. 꿈에서 미시마 유키오 머리가 잘라져 있는데 아무리 목을 실로 기우려고 해도 기울 수가 없다고 말한다.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 역사에서 군국주의를 철저하게 반성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군국주의적이다.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이 패전 후 어떻게 근대국가가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가 죽었다. 그랬을 때 <카와치 카르멘>은 점령기의 남성 주체성과 여성 주체성에 대한 영화이면서 기노시타의 카르멘 시리즈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볼 때 작가가 그걸 의도했는지 확답을 얻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세이준이 <피스톨 오페라>를 통해 군국주의에 대해 얘기를 하면서 기노시타의 <카르멘 고향에 돌아오다>를 얘기하는 건 흥미로운 비평적 지점이 되는 것이다.

 

 

<카와치 카르멘>에서 쓰유코의 공포, 트라우마적인 원형은 힘이 없는 아버지라는 게 굉장히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엄마와 동네 스님과의 관계를 아버지도 알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돈 많은 사장이 영화를 찍고 있을 때 옆에서 춘화를 넘겨주던 사람의 얼굴은 쓰유코의 엄마 얼굴이었다. 그런 것들을 사용하는 스타일적인 측면에서는 세이준적인, 연극적이고 인공적인 세트도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스즈키 세이준의 스타일을 분석할만한 대표작은 아니다. 오히려 산등성이를 보여주면서 시작하는 것이 세이준치고는 좀 튀는 것처럼 느껴진다. 산등성이를 보여주고 활발하게 자전거를 타는 주인공은 곧 카바레에 가 있을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 첫 장면은 기노시타의 <카르멘 고향에 돌아오다>와도 비슷하고 40, 50년대의 사상영화, 미군정 아래 만들어졌던 발랄한 여성들 나오는 영화들과 유사하게 연출이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문학에서의 여성성의 전형과는 좀 다른 측면이 있다. <카와치 카르멘>에서도 여성 주체의 트라우마적인 원흉은 힘없는 아버지라고 설정이 되어 있지만, 육체문학이나 에로그로 영화들에서 보여주던, 무기력하고 패배하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남성들의 상처를 받아주면서 생명력도 있는 여성 주체하고는 딱 떨어져 맞지가 않는다. 권력들 자체가 훨씬 더 정교하고 복잡하게 구성이 되어 있는 편이다. 세이지라는 아방가르드 화가와의 우정, 권력 있는 레즈비언 디자이너가 그렇다. <카와치 카르멘>의 소설 원작에서 세이지라는 사람은 전위 미술화가가 아니라 디자이너로 설정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영화 전체로 보면 디자이너로 보는 게 훨씬 설득력 있다. 영화에서 세이지와의 우정은 세이지가 게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카와치 카르멘>은 육체문학이나 점령기에 나타났던 양공주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군국주의를 비판하고 반성하는 것 같지만, 이런 면들을 고려하면 여성의 신체를 내세워서 남성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지위 하락을 한탄하고 있는 여성 재현과는 좀 다르게 가고 있다.

 

그리고 <카와치 카르멘>에 또 다른 면이 있다고 하면 아버지를 무력화시키는 주체가 외세로 나와 있지 않다는 점이 흥미롭다. 좀 더 향토적, 근본적, 전통적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을의 종교 주지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세이준은 지식인적인 논평을 싫어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이준은 에세이를 꽤 많이 썼다. 세이준은 비평 자체를 쓸데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엘리트주의적인 비평을 비판하는 측면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자신의 영화중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영화가 <위안부 이야기>나 <카와치 카르멘>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고, 간접적인 방식이나마 50년대에 비판받았던 에로그로 시네마, 육체문학에서 나타나는 과잉을 옹호한 적이 있다. 전후 일본 지식인들은 말 그대로 미시마 유키오의 관점에서 군국주의를 비판하는데 그 근저에는 패배감이 깔려 있었다. 그 시기 일본에서 전통 철학과 근대화를 연결시키는 논의도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그것이 전통을 소중하게 생각하기보단 전쟁과 함께 세계를 만나게 되면서 어떻게 하면 서구 국가를 극복하고 1등 근대국가가 될지 고민하다가 나온 생각들이다. 결국 패전을 하고 나서는 그것에 대한 정념과 패배감과 반성, 이런 여러 가지 모순된 감정들이 터져 나온다. 그러면서 미군 점령기가 시작되고 일본 대 서구/미국, 패전국 대 서구 근대국가 구도로 설정했던 틀이 지식인의 프레임이라면, <카와치 카르멘>에서는 그 프레임이 살짝 변했다. 트라우마의 원형이 무기력하고 힘이 없는 아버지로 등장하고 있지만 그것이 외세로 가지 않는다. 미국화는 적대와 매혹을 동시에 수반하고 매혹으로 여성 주체를 내세우면서 그 뒤에 지식인은 숨어버린다. 그런 큰 프레임에서 보면 <카와치 카르멘>은 일본 역사 안에서 조금 더 근본적인 고찰로 가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는 측면이 있다. 이 영화 안에서 권력관계는 훨씬 더 복잡하고 일원화될 수 없다. 거기서 여성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방식도 마찬가지다. 세이준은 지식인적인 논평을 하고 싶지 않아했는데 <피스톨 오페라>를 보면 스타일 면에서 과격한 방식을 도입하면서 동시에 전후부터 60, 70년대까지 사상을 끊임없이 가져 온다. <피스톨 오페라>는 스스로 전후 일본영화에서의 남성성을 다시 논평하고 재구성하는 영화이고 <카와치 카르멘>에서도 그런 과정을 좀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단순히 작가로서가 아니라 전후 일본영화 안에서의 남성주체, 혹은 영화작가로서의 젠더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카와치 카르멘>은 매우 흥미로운 영화다.

 

정리: 송은경(관객 에디터) | 사진: 황초희(자원 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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