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전문가, 찰리 채플린

- 채플린의 초기작을 중심으로




찰리 채플린의 영화는 관객에게 웃음을 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웃음보다 슬픔이 더 강하게 남는다. 찰리 채플린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건 이런 특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줄 수 있는 감독이자 배우였다. 그리고 둘은 신기하게도 서로의 영역을 크게 넘어서지 않는다. 원숭이에게 코를 물어뜯기는 채플린의 모습에 웃었다고 해서 <서커스>의 마지막 장면이 덜 슬퍼지는 것이 아니며, 아이를 뺏기고 홀로 남은 채플린의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고 해서 <키드>의 권투 장면이 덜 재미있는 것도 아니다. 채플린은 웃음과 눈물이 서로 섞이지 않게끔 각 장면들을 세심하게 조율했고, 그렇기 때문에 관객은 하나의 장면에서 마음껏 슬퍼하거나 마음껏 웃을 수 있다(이 글의 주제는 아니지만, 이것이 버스터 키튼과 채플린의 차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키튼이 만들어내는 장면에는 종종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경찰>의 마지막 장면이나 <카메라맨>에서 키튼이 혼자 야구를 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그리고 이 글에서는 채플린 영화의 눈물에 집중해보려 한다. 이 ‘눈물’이란 말은 단순한 상투적 표현이 아니다. 채플린은 자신의 연출과 연기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슬픈 순간을 만들어낸다. 이를테면 <시티 라이트>에서 채플린의 마지막 표정, 또는 <모던 타임즈>에서 채플린의 마지막 뒷모습을 생각해보자. 이런 장면들은 진지하게 영화의 근본적인 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거나 사람의 뒷모습을 롱숏으로 보여주는 것만으로 관객을 슬프게 할 수 있는 것일까(그리고 이걸 해내는 영화와 여기에 실패하는 영화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물론 이 질문에 대해서는 지금도 계속해서 고민 중이다. 그리고 그 답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이럴 때 가장 쉬운 방법은 ‘채플린의 비밀’, ‘채플린의 신비’ 운운하며 내가 보고 느낀 것을 어떤 미지의 영역에 가둬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그런 방식을 택하기보다는 내가 채플린의 영화에서 슬픔을 느낀 장면들을 하나씩 이야기해보려 한다. ‘채플린의 비밀’에 닿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느낀 감정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둘 수는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이 글이 생산적인 논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단순한 나열로 흐르더라도 양해해주길 바란다. 또한 많이 논의된 <시티 라이트>, <모던 타임즈>, <라임 라이트>와 같은 대표작보다는 초기 장편인 <키드>, <파리의 여인>, <서커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키드>(1921)

<키드>(1921)

<키드>는 채플린이 처음으로 만든 장편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한 가난한 여인이 아이를 버린다. 아이는 이런저런 일들을 겪다가 결국 채플린의 품에 안기고, 채플린은 이 아이를 제 자식처럼 정성껏 키운다. 그러나 경찰이 이 사실을 알자 아이를 고아원에 보내려 한다. 아이가 ‘좋은 환경’에서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채플린은 소동 끝에 아이를 뺏기고 실의에 빠진다. 그런데 마침 비슷한 시기에 지금은 부자가 된 아이의 어머니가 극적으로 자식과 재회한다. 이야기는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채플린은 경찰의 안내를 따라 깔끔한 집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아이와 만난다. 채플린과 아이, 그리고 아이의 어머니가 집으로 들어가면 “THE END” 자막이 뜬다.

이 이야기에서 도드라지는 건 단연 외로움의 감정이다. 국어사전은 외로움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홀로 되거나 의지할 곳이 없어 쓸쓸하다.” 동어반복을 하자면 <키드>에서 도드라지는 건 홀로 되어 의지할 곳이 없어 쓸쓸해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이다. 특히 이 영화에서 슬픔의 감정이 만들어지는 건 주인공들이 외로워할 때이다. 단적으로 말해 채플린에게는 돈이 없어서 맛없는 음식을 먹거나, 힘센 사람에게 억울하게 맞거나, 먹고 살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건 그리 슬픈 일이 아니다. 심지어 아이가 아픈 것도 슬프게 그려지지 않는다. 가난이나 약함은 슬픔의 재료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다소 무리하게 도식화하자면, 채플린에게 가난은 웃음의 소재이지 슬픔의 소재가 아니다.


<키드>의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를 보자. 침대에 누운 채플린이 다리를 펴면 찢어진 이불 사이로 발이 튀어 나온다. 제대로 된 이불도 없는 채플린의 형편을 보며 관객은 슬퍼해야 할까. 그러나 곧 채플린은 그 찢어진 틈 사이로 머리를 밀어 넣어 이불을 망토로 만들어버린다. 이 장면은 가난 속에서 웃음을 만들어내는 채플린의 방법을 잘 보여준다. 아이가 아파서 누워있는데도 멍청한 의사를 등장시켜 웃음의 순간을 만드는 것도 비슷한 경우이며, 극단적인 빈곤의 상황을 묘사하며 웃음을 준 <황금광 시대>라든지 부자와의 빈부 격차를 유머 요소로 사용한 <시티 라이트>도 같은 예이다.

그런데 외로움의 문제로 넘어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채플린이 연기한 트램프, 또는 채플린이 만들어낸 인물들은 좀처럼 슬퍼하는 일이 없다가도 외로움 앞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속수무책이다. 채플린도 그렇고 아이를 버린 여자도 그렇다. 따라서 혼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독립적인 주인공 같은 건 <키드>뿐 아니라 채플린의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채플린은 영화 안에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너무나 행복해하고, 그 사람이 떠날 때마다 이런 외로움은 처음이라는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때 스크린 안에는 슬픔의 감정이 가득 차오른다.

꼭 이야기하고 싶은 장면이 있다. 바로 <키드>에서 아이가 채플린과 헤어지는 첫 번째 장면이다. 이 이별 시퀀스에서 채플린은 아이를 뺏기기 싫어 주먹을 날리고 물건을 집어 던지고 지붕을 오르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경찰에 저항한다. 채플린의 필모그래피에서 찾기 힘든, 거의 액션 활극이라 불러도 좋을 이 거친 저항의 몸짓은 혼자 남겨지기 싫어하는 채플린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 소란스러운 장면이 결국 관객을 슬프게 만든다. 채플린에게 혼자 남겨진다는 외로움은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고 어떻게 해서든 피하고 싶은 감정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채플린이 아이와 다시 만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 단순하고 소박한 연출에도 불구하고 큰 안도감과 감동을 준다.



<파리의 연인>(1923)

<파리의 여인>(1923)

<키드>의 제작으로부터 2년이 지나 개봉한 <파리의 여인>은 채플린이 출연하지 않았으며, 유머가 없는 심각한 분위기의 멜로드라마다. 이야기는 서로 깊이 사랑하는 어떤 연인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들은 작은 사건으로 인해 멀어졌다가 계속되는 오해 때문에 갈수록 더 멀어진다. 결국 사랑에 실패했다고 생각한 남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권총 자살을 하고, 이에 충격을 받은 여자는 고아들을 보살피며 조용히 살아가는 인생을 택한다.

이 작품은 언뜻 가슴 아픈 사랑을 그린 영화 같지만 영화의 에필로그와 마지막에 등장하는 자막 때문에 인생의 보편적인 외로움을 다룬 이야기로 읽을 가능성이 열린다. 만약 채플린이 사랑에 방점을 찍고 싶었다면 남자가 죽은 뒤 곧 영화를 마무리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야기는 비극성이 정점에 달한 순간 끝났을 것이며, 남녀 주인공의 안타까운 운명은 더욱 강조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가 죽고 난 이후에도 영화는 8분 동안(<파리의 여인>의 1/10의 분량에 해당한다) 혼자 남겨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남자의 어머니와 여자가 어떻게 교감을 나누고, 여자가 어떻게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지 말이다. 즉 채플린에게는 남자가 죽었다는 사실만큼이나 이후 계속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이야기하는 게 중요했다.

이 점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무도회장에서 남자는 총으로 자신을 쏘고 바닥에 쓰러진다. 그러자 곧 사람들이 가득 모여들어 남자의 시신을 둘러싼다. 그런데 영화는 이때 갑자기 숏을 바꿔 집에서 혼자 지내는 남자의 어머니를 보여준다. 이 편집은 매우 갑작스러우며,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의미심장하다. 아마 채플린에게는 여러 선택이 있었을 것이다. 남자의 시신을 보여주어 슬픔을 더 강조할 수도 있었고 충격을 받은 여자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더 이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채플린은 숏을 바꾸어 혼자 조용히 지내는 노모의 모습을 보여준 뒤 다시 무도회장으로 돌아온다.


이 편집은 ‘논리적’이지 않다. 공간의 연속성은 물론 사건의 논리적 연속성과 정서적 연속성을 모두 깨트리기 때문이다. 비극이 절정에 달한 순간 갑자기 그 흐름을 끊고 전혀 다른 장면을 삽입하는 건 다른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편집이 아니다. 그러나 채플린의 머릿속에서는 남자가 죽는 숏과 홀로 남겨진 노모의 일상을 보여주는 숏이 붙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적어도 채플린에게는 한 사람의 죽음과 남은 사람의 외로움을 연결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편집이었던 것이다. 한 사람의 비극에 슬퍼함과 동시에 남겨진 사람의 외로움을 떠올리는 것. 그만큼 채플린은 외로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독이었다.

그리고 곧 등장하는 자막은 이러한 생각에 또 하나의 근거를 제시한다. “시간은 상처를 치료하고, 그 경험은 옆 사람을 향한 헌신이 행복의 비밀이라는 걸 가르쳐 준다.” 채플린은 행복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직접 힘주어 말한다. 이 말에 따르면 외로운 사람은 행복해질 수 없으며 ‘고독’과 같은 낭만적 개념과도 거리가 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다소 갑자기 등장하는, 여자가 고아들을 돌보며 살아간다는 설정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채플린은 비록 슬픈 일을 겪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삶의 옳은 방식이라고 말한다. <파리의 여인>의 에필로그가 감동을 주는 이유이다.



<서커스>(1928)

<서커스>(1928)

그런데 <서커스>에서 채플린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선택을 내린다. <키드>에서는 유사 가족을 이루었고 <파리의 여인>에서는 고아들과 공동체를 만들었으며, <황금광 시대>(1925)에서는 커플까지 맺었지만 이 작품에서 채플린은 그냥 외롭게 남는 쪽을 택한다. 이 자체로도 슬픈 결말이지만 전작들의 따뜻한 결말을 떠올려보면 이 변화는 더욱 슬프게 다가온다.

영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커스단에 들어간 채플린은 단원인 메르나와 가까워지고 그녀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메르나는 채플린을 연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단원을 좋아한다. 이 사실을 안 채플린은 자신이 프로포즈하려고 샀던 반지까지 남자에게 주면서 두 사람을 이어주려 한다. 결국 메르나와 남자는 행복하게 결혼을 하고, 채플린에게 계속 함께 서커스를 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채플린은 이들을 따라가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곳을 향해 걸어간다. 영화는 여기에서 끝난다.

이때 채플린이 타의에 의해 혼자 남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외로움을 떠안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메르나와 그녀의 남편은 분명 채플린에게 같이 떠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채플린은 뒤에서 따라가겠다고 거짓말까지 한 뒤 혼자 남는다. 이 행동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그토록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하던 채플린이 자발적으로 외로움을 택했다는 사실이 영화 내-외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슬픔의 감정을 만든다. 이 장면은 부인할 수 없이 쓸쓸하고 서글프고 막막하다.


이런 <서커스>은 결말은 <키드>의 행복한 결말까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 정도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키드>의 채플린은 사람들과 함께 집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채플린은 과연 그곳에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을까? 혹시 모자의 행복을 지켜보다 <서커스>처럼 어느 날 다시 어디론가 떠난 건 아닐까. 괜한 걱정을 사서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서커스>의 마지막 장면은 그 정도로 어둡고 우울한 인상을 준다. 참고로 이 작품 이후 채플린이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결말을 다시 보여준 건 8년이 지난 뒤였다(1936년 작인 <모던 타임즈>). 그리고 1925년 작품인 <황금광 시대>를 1942년에 재편집해 개봉할 때는 이상하게 원래 엔딩이었던 두 사람의 키스 장면을 잘라 내버리기도 했다. 채플린과 연인이 계단을 올라 프레임 밖으로 나가버리는 장면에서 영화를 끝낸 것이다. 즉 절로 미소를 짓게 하는 행복한 마무리가 아니라 사람들이 모두 떠난 텅 빈 공간을 보여주며 영화를 끝낸다(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채플린의 개인사를 들춰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자녀의 사망, 그의 곁을 떠나갔던 여인들, 불명예스러운 스캔들, 그리고 유성 영화의 등장과 같은 요인들을 끌어들여 그의 작품과 개인사를 겹쳐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다른 차원의 해석이며, 그렇게 한다고 해서 <서커스>의 외로운 정서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서커스>의 결말을 보며 마음이 아파 슬퍼지다가도 그 감정에 완전히 몰입하기는 망설여진다. 이전의 작품들에서 보여준 외로움을 거부하는 따뜻한 정서, 또는 <모던 타임즈>의 결말에 드러나는 작은 희망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포자기의 정서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정서가 <서커스>를 채플린의 작품 중에서 이질적인 것으로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서커스>는 외로움을 다루는 채플린이라는 작가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눈앞에 있는 ‘안전한’ 결말(서커스단에 합류하는 것) 대신 떠돌이로 남는 것을 택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그 결단의 무게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결말에서 채플린이 내린 선택에는 완전히 동의할 수 없어도 그 장면에서 배어나는 외로움의 감정 자체는 절대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채플린은 그렇게 관객과 자신의 외로움을 공유하고야 만다. 다시 말해 그에게는 영화를 통해 외로움을 전염시키는 힘이 있었고 <서커스> 이후로도 계속해서 외로움을 자기 작품의 주요 테마로 삼았다. 그야말로 외로움을 다루는 데 있어 가장 뛰어난 전문가였던 것이다.

김보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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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영 2015.10.21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봤습니다. 수고하세요.

“오슨 웰스의 모순”

- 김영진, 김성욱 시네토크

“탄생 100주년 오슨 웰스 회고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5월 17일(일), 김영진 평론가와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가 <위대한 앰버슨가>를 함께 본 뒤 오슨 웰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슨 웰스의 다양한 일화들과 함께 짚어 본 그의 모순적이고 흥미로운 작품 세계를 살펴보자.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위대한 앰버슨가>를 보고 김영진 평론가와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다. 오슨 웰스는 평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야기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은 감독 중 한 명이다. 그만큼 이야기하기 어려운 감독이기도 하다. 그는 일단 ‘천재’로 평가받는 동시에 미국 영화 내에서 ‘위대한 매버릭’의 전통을 처음으로 만든 감독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작품은 오슨 웰스가 <시민 케인> 이후 만든 두 번째 작품이다. 물론 <시민 케인>도 우여곡절이 많은 작품이지만 <위대한 앰버슨가>는 오슨 웰스로 하여금 더 큰 비운의 운명을 겪게 만들었다.

김영진(영화평론가)│오슨 웰스는 영화를 보기 전부터 전설로 먼저 접하는 감독이다. 그런데 사실 나도 오슨 웰스의 작품과 처음부터 마음으로 공명하지 못했다. 의무적으로 영화를 보던 80년대였는데, 서강대에서 <시민 케인>을 필름으로는 처음 상영한다고 하더라. 그렇게 말로만 듣던 <시민 케인>을 보러 갔는데, 졸았다. ‘전설의 걸작’을 보면서 졸다니 내가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그 다음에는 <위대한 앰버슨가>의 비디오테이프를 구했다. 그런데 또 보다가 졸았다(웃음). 이후 상투적으로 <시민 케인>과 ‘딥 포커스’ 등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나중에야 DVD로 그의 작품들을 다시 보면서 진정한 매력을 느꼈고, 당시의 나에 대해 자책을 했다.

<위대한 앰버슨가>는 오슨 웰스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은 영화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50분 가량 잘렸고, 엔딩은 제작사에서 자기 마음대로 해피엔딩으로 바꿨다. 당시만 해도 오슨 웰스가 순진한 구석이 있었는지 제작사인 RKO가 자신을 속일 것이라 생각을 못 했었다. 하지만 RKO는 오슨 웰스가 미국에 없는 사이 편집을 새로 하고 재촬영까지 했다. 그래서 오슨 웰스는 오랫동안 이 영화를 보는 것도 싫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오슨 웰스적인 것이 있다. <악의 손길>도 그렇고 <심야의 종소리>도 그런데, 굉장히 모던한 형식 속에 쓰러져가는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녹여 놓았다. 그리고 그 소멸을 안타까워하기보다는 담담히 받아들이는 어떤 영웅적 태도가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조지는 이를테면 ‘내츄럴 본 데블’ 같은 인물이다. 좋아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가 겪는 상실감과 아픔은 거의 완벽하게 관객에게 전해진다. 당시 갓 등장한 발명품인 자동차에 보내는 적대감과 마차를 선호하는 그의 태도만 보아도 그렇다. 변하고 있는 현실에 가진 양가적 감정이 너무나 공감이 간다. 이렇게 스산하면서 부드러운 영화가 있을까.

그런 맥락에서 오슨 웰스는 혁신가인 동시에 몰락하는 것에 대해 향수를 가진 모순적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영화적 어법을 통해 드러날 때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희한한 것은 이십 대의 젊은 감독이 사십 대의 캐릭터(유진)를 통해 자기 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 모순, 그리고 그 차가운 모순 속에 숨어 있는 부드러움 때문에 <위대한 앰버슨가>를 <시민 케인> 보다 더 좋아한다. 개인적으로는 ‘촉촉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김성욱│나도 오슨 웰스의 영화 중 먼저 재미있게 본 건 <상하이에서 온 여인>, <악의 손길>, <이방인> 같은 ‘오락적 경향’의 영화들이었다. 다루는 소재는 무겁지만 그걸 다루는 방식은 그 자체로 재밌다.

반면 <위대한 앰버슨가>는 상대적으로 그 재미를 늦게 알게 된 영화다. 특히 이 영화는 극장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이상할 정도로 감정 이입이 잘 되는 영화다. 몰락하는 이야기라서 그런가(웃음). 고다르의 <영화사>에도 <위대한 앰버슨가>의 한 장면이 나오는데 역시 몰락의 맥락에서 인용을 하였다.

김영진 평론가도 방금 이야기했지만 20대의 조지는 옛 기술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고, 40대의 유진이 오히려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다룬다. 그리고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함께 앰버슨가는 몰락한다. 또한 <시민 케인>은 거대 언론을 다루고 <위대한 앰버슨가>는 자동차를 다루는데, 둘 다 ‘소통’의 매개체를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 소통의 기술이 발전하며 주인공들은 몰락의 과정을 경험한다. 그런 면에서 두 영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김영진│오슨 웰스는 굉장한 재능의 소유자였는데 이를 펼치지 못했으니 보통 사람 같으면 화병이 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써놓은 시나리오만 백 편이 넘는데 그걸 다 못 찍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런데 그는 성격상 스튜디오의 통제 아래서 순응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니 성공의 정점에서 자신의 몰락을 이미 예견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런 태도가 영화 안에 알게 모르게 녹아든 것 같다.

실제로도 오슨 웰스는 <위대한 앰버슨가>에서부터 본격적으로 힘든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당시 메이저 제작사가 아닌 RKO에서 큰 기대를 걸고 백만 달러를 투자해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시민 케인>의 여진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런 과감한 투자가 가능했었다. 초반의 화려한 파티 장면 같은 것만 봐도 돈이 많이 들어갔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위대한 앰버슨가>는 완전히 망했고, 오슨 웰스는 결국 할리우드가 기피하는 감독이 됐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더 이상한 느낌을 준다. 50분이 잘려나갔다고는 하지만 신기하게도 오슨 웰스의 영화적 느낌은 충실히 살아 있다. 인물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타이밍이나, 서로 다른 인물들의 시선이 편집을 통해 조응하는 것 등. 이런 ‘화음’이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오슨 웰스는 영화 감독이란 사람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게 해주는 감독이다.



김성욱│오슨 웰스는 감독이 되기 위한 수련을 따로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확실히 천재인 것 같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하면 처음부터 영화를 만든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연출이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연극과 라디오에서 경력을 시작한 사람이다. 그래서 연극을 통해 무대 연출을 배웠고, 라디오를 통해 소리만으로 상황을 연출하는 걸 배웠다. 그 두 가지가 만나 오슨 웰스의 영화를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오슨 웰스는 라디오에서 출발한 사람이라 화면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는 걸 사로고 여겼다고 하는 표현을 본 적이 있다. 특히 오슨 웰스의 롱테이크는 다른 감독들과 달리 항상 변화하는 소리와 맞물려 있다.

또한 그의 영화를 보면 항상 ‘목소리’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위대한 앰버슨가>에는 오슨 웰스가 출연하지 않는다(원래는 조지를 연기하려 했었다고 한다). 대신 나레이션을 하는데 그것만으로도 오슨 웰스의 존재감이 도드라진다. 그는 영화 안에 자신의 강력한 존재감을 불어넣은 감독이었다.

김영진│이 영화는 크레딧 시퀀스를 나레이션으로 처리한 첫 번째 할리우드 영화다. 당시 관객에게는 신선했겠지만 라디오 드라마를 연출했던 오슨 웰스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을까. 또한 그는 연극계에서도 파격적인 연출가였다. 당시 셰익스피어 연극을 무대에 올리면서 흑인을 주연으로 기용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다.

당시 주위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슨 웰스는 나이 많은 배우들도 꼼짝 못하게 만들 정도로 카리스마가 엄청났다고 한다. 고독한 전제군주였던 셈인데 내적 모순이 있었을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그리고 작품에서는 ‘휴머니즘’을 추구하지만 현장에서 영화를 만드는 자신의 모습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제 3의 사나이>(캐롤 리드)에서 오슨 웰스는 “형제애를 가진 스위스에선 500년간 민주주의와 평화를 가졌지. 그런데 그들은 뭘 만들었나? 고작해야 뻐꾸기 시계라네” 같은 궤변을 늘어놓는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그 대사는 자신이 직접 쓴 것이다. 이는 자신의 모순을 정면으로 마주했기에 나올 수 있는 태도다. 또한 <악의 손길>을 보면 그렇게 비대한 모습으로, 그렇게 비참히 죽어가는 모습을 스스로 연기한다. 이 정도의 솔직함은 아무나 갖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모순을 대하는 태도의 전조를 <위대한 앰버슨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성욱│장 콕토가 오슨 웰스를 “아이의 모습을 한 거인”이라 묘사했는데 거꾸로 “거인의 모습을 한 아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시민 케인>에서도 이십 대의 오슨 웰스는 팔순의 노인을 연기했다. 연극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이런 설정이 가능하기도 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에게는 모순적인 것들을 양립시키는 특성이 있었다. <위대한 앰버슨가>에서 조지와 유진이 서로 동면의 양면처럼 존재한 것처럼 그의 작품에서 아이와 노년은 분리되지 않는 것이었다. 트뤼포도 <시민 케인>과 <위대한 앰버슨가>를 두고 ‘유년기에 관한 영화’라고 말했었다.

김영진│오슨 웰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 <시민 케인> 개봉 당시 케인의 모델이 된 언론사에서 개봉을 막으려 했다고 한다. 실제로 개봉관을 많이 잡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처럼 그는 영화사의 간부들뿐 아니라 사회의 권력까지 불편하게 만드는 감독이었다. 보통 사람의 기질이 아니었던 것이다. 존 포드 같은 감독도 최종 편집권을 갖지 못한 스트레스를 계속 안고 활동했는데 오슨 웰스는 데뷔작에서부터 정면으로 대결한 뒤 패배를 맞았다. 흥미로운 인물인 건 분명하다.


김성욱│트뤼포는 오슨 웰스를 “천성적으로 미국적일 수 없는 감독”이자 “미국적인 유럽 감독” 이라고 묘사했었다. 결과적으로도 세계를 돌아다니며 영화를 찍었으니 미국 영화의 틀 안에 갇힐 수 없는 감독이었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진정한 ‘매버릭’이었다.


관객 1│영화가 마지막까지 어둡게 흘러가다가 갑자기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원래는 어떤 엔딩이었을까.

김영진│IMDB의 ‘트리비아’에 의하면 원래 엔딩은 앰버슨가의 저택이 허물어지는 것이었다고 한다. 다 믿을 수는 없겠지만 그걸 봤다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끝내준다’고 한다. 참고로 지금 엔딩은 로버트 와이즈가 만든 것이다. 오슨 웰스와 로버트 와이즈 감독이 이 일을 계기로 계속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도 유명한 일화다.

관객 2│오슨 웰스의 영화는 흑백의 대조가 특히 도드라진다. 어떻게 보면 필름 누아르, 또는 공포 영화 같기도 하다.

김영진│일단 그런 스타일이 오슨 웰스의 ‘비극적 숙명’이란 주제와 잘 어울린다. 그리고 독일 표현주의가 미국 영화에 유입된 경로는 매우 다양하다. 또한 오슨 웰스는 이미 연극에서 연출을 배웠기 때문에 조명을 쓰는 방식 등에 있어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슨 웰스의 스타일에 대해서는 또 유명한 일화가 있다. 오슨 웰스가 <시민 케인>의 연출을 시작하기 전에 <역마차>를 50번 정도 반복해서 봤다고 한다. 영화의 기본기를 그렇게 익힌 것이다. 그는 자신의 유일한 ‘마스터’로 존 포드를 꼽기도 했다.

그리고 <시민 케인>의 촬영 감독인 그렉 톨랜드는 이미 30년대부터 존 포드와 ‘딥 포커스’를 시도해 왔었다. 게다가 그는 당시 50명의 스태프와 함께 일하는 할리우드 최고의 촬영감독이었다. 즉 오슨 웰스의 머리 속에 있던 컨셉을 그렉 톨랜드가 실제로 구현해 준 것인데, 그런 맥락에서 <시민 케인>은 할리우드의 기술력과 오슨 웰스의 구상이 잘 만난 기적적인 사례라 할수 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위대한 앰버슨가>는 그렉 톨랜드와 작업한 것이 아닌데도 오슨 웰스의 세계가 그대로 살아있다는 것이다(물론 세부적인 느낌이 조금 다르기는 하다). 심지어 유럽에서 저예산 영화를 찍을 때도 그의 컨셉은 고르게 유지됐다는 것,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김성욱│오슨 웰스는 닫힌 공간을 선호했다. 그리고 인물의 주관적인 심리와 기억의 문제를 즐겨 다루었다는 것도 특유의 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시민 케인>의 저택도, <위대한 앰버슨가>의 저택도 모두 닫힌 공간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몰락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그리기에는 흑백의 콘트라스트가 강한 스타일이 적합하다. 이후 <이방인>, <상하이에서 온 여인>, <심판> 등에서는 건축적 양식까지 더해져 오슨 웰스의 일관적인 스타일이 더욱 잘 드러난다.


정리│김보년 프로그램팀

사진│장미화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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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개관 13년째를 맞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가 58()부터 24()까지 오슨 웰스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회고전을 진행합니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그의 기념비적 데뷔작 <시민 케인>을 시작으로 <악의 손길>, <심판><오델로>, 그리고 <거짓과 진실>까지 오슨 웰스의 장편영화 열두 편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영화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감독인 오슨 웰스의 작품 세계와 그 안에 숨은 다양한 매력을 이번 회고전을 통해 새롭게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오슨 웰스는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름 중 하나입니다. , 단편을 포함해 40편이 넘는 작품을 연출하고 100편이 넘는 영화에서 연기를 펼친 그는 1940년대의 할리우드 황금기를 앞장서서 이끌었으며 그 후로도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자신의 영역을 계속해서 넓혀간 감독입니다. 특히 필름 누아르 장르에서 시도했던 스타일의 실험과 고전 문학을 영화화할 때 드러난 인간성에 대한 집요한 탐구, 그리고 영화 매체 자체에 던진 급진적인 질문 등은 지금도 우리에게 신선한 놀라움과 감동을 안겨줍니다. 이번 회고전은 너무나 유명했기에 오히려 오해를 사기도 했던 오슨 웰스의 진면목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특별히 <악의 손길>, <심야의 종소리> 등은 디지털로 새롭게 복원한 상영본으로 만나볼 수 있으며 상영작에 대한 더 나은 이해를 위해 회고전 기간 동안 한창호, 김영진, 유운성 평론가, 박선주 교수의 시네토크가 있을 예정입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개관을 기념하고 재개관을 축하하는 영화제이기도 한 이번 탄생 100주년 오슨 웰스 회고전에 영화의 힘을 느끼고 싶어하는 관객 여러분의 열띤 참여를 기대합니다.

 

오슨 웰스 (George Orson Welles / 1915~1985)

 

191556일 위스콘신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어머니와 아버지를 여읜 조지 오슨 웰스 George Orson Welles 는 십대 시절 유럽으로 건너가 극단에서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곧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 그는 본격적으로 배우 활동을 이어나가는 동시에 라디오 방송국에서도 경력을 쌓아나갔다. 1939, 당시 라디오 방송국을 갖고 있던 RKO와 계약을 맺은 오슨 웰스는 본격적으로 영화 제작을 계획하기 시작했고 1941년에 자신의 기념비적 데뷔작 <시민 케인>을 발표한다. 이후 오슨 웰스는 작품을 통제하려는 제작사들과 지속적인 갈등을 빚으면서도 <상하이에서 온 여인>, <오델로>, <악의 손길> 등 미국과 유럽에서 연출과 연기를 병행하며 19851010일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앙드레 바쟁은 오슨 웰스를 일컬어 “20세기 미국에 등장한 르네상스인이자 영화 전통의 체계를 뒤흔들어 놓은감독이라 평했으며 프랑수아 트뤼포는 유성영화계에서 영화 시작 3분 이내에 자신의 스타일을 확실히 인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감독으로 그를 꼽았다. 그리고 오슨 웰스의 친한 벗이었던 장 콕토는 다음과 같이 오슨 웰스를 기억했다.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거인이자, 새가 가득 깃들인 그늘 풍성한 나무이며, 사슬을 끊고 꽃밭에 들어가 누워 있는 개. 또한 활동적인 게으름뱅이이자 지혜로운 광인이며 사람들에 둘러싸인 섬이자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학생, 그리고 한가롭게 있고 싶을 때는 취한 척할 줄도 아는 모사꾼이었다.”

 

특별행사

 

>> 개관기념 개막식

 

일시5819:30

개막작<상하이에서 온 여인>(1948)

 

>> 시네토크

 

(1) 시네토크 공포의 환영

진행한창호 영화평론가

일시510() 15:30 <오델로> 상영 후

 

(2) 시네토크 거짓의 바깥은 없다 : 오슨 웰스의 F FOR FAKE”

진행유운성 영화평론가

일시515() 19:30 <거짓과 진실> 상영 후

 

(3) 시네토크 오슨 웰스의 맥베스

진행박선주 인하대학교 교수

일시517() 15:10 <맥베스> 상영 후

 

(4) 시네토크 위대한 강박관념

참석김영진 영화평론가, 김성욱 영화평론가

일시517() 19:00 <위대한 앰버슨가> 상영 후

 

1. 시민 케인 오슨 웰스 1941 | 미국 | 119min | B&W

2. 위대한 앰버슨가 오슨 웰스 1942 | 미국 | 88min | B&W

3. 이방인 오슨 웰스 1946 | 미국 | 95min | B&W

4. 상하이에서 온 여인 오슨 웰스 1948 | 미국 | 87min | B&W

5. 맥베스 오슨 웰스 1948 | 미국 | 110min | B&W

6. 오델로 오슨 웰스 1952 | 미국, 이탈리아, 모로코 | 93min | B&W

7. 아카딘 씨 오슨 웰스 1955 | 프랑스, 스페인, 스위스 | 100min | B&W

8. 악의 손길 오슨 웰스 1958 | 미국 | 95min | B&W

9. 심판 오슨 웰스 1962 |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 118min | B&W

10. 심야의 종소리 오슨 웰스 1966 | 프랑스, 스페인, 스위스 | 115min | B&W

11. 불멸의 이야기 오슨 웰스 1968 | 프랑스 | 62min | Color

12. 거짓과 진실 오슨 웰스 1974 | 프랑스, 이란, 서독 | 89min | Co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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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 - 마누엘 올리베이라 회고전]



  친구의 손을 잡고 올리베이라를 보러 오자

이용철, 유운성, 김성욱 비평좌담 - <앙젤리카의 이상한사례>




지난 11 2일에 열린 11월의비평좌담주인공은 바로 마누엘 올리베이라 감독이었다.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 보고 바로 이어진 평론가의 대화에서 올리베이라 감독의 형식적, 내용적 특징에 대한 논의는 물론 올리베이라에 얽힌 개인적인 기억까지 들을 있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마누엘 올리베이라 회고전을 맞아 비평좌담을 마련했다. 많은 작품 가운데 비교적 최근 작품인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 선택한 것은 작품이 올리베이라 영화의 과거와 현재를 거론하기에 적합해 보였기 때문이다. 먼저 올리베이라 감독의 영화를 어떻게 접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보겠다.

 

이용철(영화평론가)│’동시대 작가라고 하면 보통 영화제라든지 개봉관을 통해 만나는데 올리베이라 감독은 워낙 옛날부터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동시대라고 해도 이상하게 느껴지는 점이 있다. 특히 처음에는 소위고전 영화 접하듯이 올리베이라 감독의 영화들을 보았다. 외국의 비디오가게에서 <아브라함 계곡> VHS 구해서 보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뒤에야 감독의 나이를 알게 됐다. 이후 90년대부터 한국에서도 올리베이라 감독을 소개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항상 나이를 먼저 이야기했다. 나이도 많고, 만든 영화도 이미 많았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보기도 전에 주눅이 들었던 같다.

후로는 주로 영화 마켓을 통해 신작들을 챙겨 보았다. 그런데 마켓이란 곳이 상당히 냉정한 곳이라서 그곳에서 올리베이라는무명 가까운 감독이었다. 물론 영화제에서는 인기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켓 시사실을 가면 관객이 이상 있지 않았다. 그래서 올리베이라의 영화를 떠올리면 우울한 기억이 먼저 찾아온다. 그리고는목적 없이단지 올리베이라의 영화를 본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열심히 챙겨 봤다. 그러다 보니 오늘 무슨 이야기를 있을지 사실 모르겠다(웃음).

 

김성욱포르투갈에서 DVD 박스세트를 내기 전까지는 올리베이라 감독의 작품을 실제 접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워낙 시간 동안 영화를 만들었다 보니 작품의 전체적인 일관성을 짚어보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통상적으로 가지 시기로 나누기는 하지만, 감독이 어떤 유형의 작가인지 정의하기 매우 어렵다. 빅토르 에리세는 그를불확실성의 작가 말했다.

 

유운성(영화평론가)나도 예전에는 올리베이라 감독의 작품을 많이 보지 못했다. 확실히 기이한 경력의 감독인 맞다. 일단 나이가 예순이 때까지 장편을 찍었다. 그런데 일흔 이후부터 매년 편씩 찍었다. 82세인 90년대부터 2007년까지 매년 편씩 영화를 만든 것이다. 이런 감독은 올리베이라가 유일하다. 건강법이 궁금할 정도이다(웃음).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80살을 넘긴 가진 인터뷰에서 올리베이라 감독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리고 올리베이라 감독을 이해할 하나 어려운 점은 활동의 황금기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보통 어떤 감독이 30 넘게 활동했으면 중요한 대표작 같은 꼽을 있다. 그런데 올리베이라는 70년대부터 지금까지 어떤 특정 시기를황금기 구분하기 어렵다.

먼저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접근하는 것이 좋을 같다. 하나는 올리베이라 감독이 과연 포르투갈적인 감독인지 묻는 것이고 하나는 올리베이라의 영화가 얼마나시네마틱 것인지 묻는 것이다. 생각에 올리베이라의 영화를 때는 영화만이 있는 어떤시네마틱 순간을 찾기보다는 영화의 원래 기능 자체, 무언가를 기록하는 영화 고유의 기능을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영화 이전의 예술 장르들, 연극이나 문학, 음악이나 회화들을 종합적으로기록한다는 의미에서의 영화 말이다.

먼저 번째 질문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페르난도 페소아의 중에포르투갈적 것에 대한 재밌는 정의가 나온다. 이를 올리베이라의 영화에도 똑같이 적용해 있을 같다.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포르투갈적이란 정의할 없다. 포르투갈적이란 빨리 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포르투갈적이란 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빨리 수용한다. 이것이 포르투갈적인 것의 장점이다. 포르투갈인은 매일 혁명을 일으킨다. 자고 일어나면 달라지기 때문에 때마다 혁명을 하기 때문이다.”   그는 포르투갈적인 것의 어떤 특징을 정의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이질적인 것을 한꺼번에 받아들여 다른 것으로 변경시키는 능력 자체에 주목한다. 올리베이라의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 다음 포르투갈의 현실적인 모습을 찾으려 노력하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대신 다양하고 이질적인 요소들이 어떻게 영화 안에서 만나는지 보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올리베이라의 영화를포르투갈적이라고 하긴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번째 질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올리베이라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시네마틱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모두 끌어들여 통합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올리베이라의 장편 데뷔작 <아니키 보보> 나오는 리얼리즘적 스타일에, <봄의 제전>적인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혼합, 그리고 70년대 영화들의 연극적, 문학적 방식. 그리고 여기에 90년대 이후의 영화까지 하나의 경향으로 일관되게 설명하기가 힘들다. 포르투갈 고유의 문화를 찾기보다는 넓은 관점에서 유럽의 교양을 살펴보는 필요할 것이고, ‘영화적인 집중하기보다는 비영화적(연극, 음악, 문학, 회화 ) 것들이 영화 안에서 어떻게 공존하는지 살펴보는 중요하다.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에서 유대교적인 것과 카톨릭적인 것이 섞여 있음을 확인할 있듯이, 이질적인 것들이 어떻게 화해하는지 질문하는 것이 올리베이라 감독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주제이다.


 

김성욱오타르 이오셀리아니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그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올리베이라 감독을 만났을 이오셀리아니를 보고여전히 걸작을 만들기에 충분한 나이 했다고 한다(웃음).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 이미 1954년에 감독이 만드려고 시도했었던 작품이다. 젊은 여인의 죽음을 카메라로 촬영하면서 겪은 경험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너무 어둡다는 등의 이유로 제작 지원을 받지 못했다가 2010년에야 만들어졌다. 그래서 그런지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이상하게 공존한다.

동시에 영화는 시간뿐만 아니라 서로 상이한 가지 것들 사이에 위치한다. 이를테면 유대인 이삭의 종교적인 맹신과 과학적인 학문 사이. 그리고 주인공은 영혼의 사진을 찍는 동시에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다큐멘터리적으로 찍는다. 그가 방에서 여인의 사진에 매혹되는 것과 열린 창문의 바깥 저편의 소작인들의 노동을 보는 것이 동시에 벌어지고, 영화는 아이디어 사이를 회전한다. 이삭이 촬영한 사진을 걸어놓고 바라볼 때의 트래킹 쇼트가 특별한데, 이는 영화의 유비로 영화에서는 죽은 앙젤리카의 사진(환영)이나 소작인의 노동(현실) 차이 없이 서로 불순하게 섞인다. 그러나 이삭이 여인과 소작인들을 촬영한 것은 그들이 공통적으로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에게 영화란 사라질, 또는 사라진 대상을 포착하는 것이다.

 

이용철개인적으로는이질적이라기보다 스펙트럼이 넓다는 의미에서다양하다고 표현하는 맞다고 본다. 올리베이라의 영화는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그렇게 난해하다고 보지 않는다. 그런데 올리베이라가 영화 안에 너무 많은 끌고 들어오다 보니 관객들에게 이해하기 힘든 인상을 주는 같다. 그런 면에서 <아브라함 계곡>이나 <불확실성의 원리> 같은 영화가 올리베이라의 특성을 보편적으로 보여주는 같다. 포르투갈의 몇몇 감독과 올리베이라의 작품에 죽음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은 흥미롭다. 특히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 감독이 죽음의 문제를 정리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올리베이라의 영화에서 죽음을 맞는 인물들은 억울함을 갖고 있었다. 상대방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지 못한 , 어떤 갖고 세상을 떠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영화에서는 오히려 죽은 사람들이 어떤 영원성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편지> <프란시스카> 다시 생각해 보면 오히려 죽은 자만이 진실과 함께 영원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유운성 영화는 올리베이라의 실제 경험에서 시작한 걸로 알려져 있는데, 인터뷰를 보면 실제로 죽은 사람이 웃는 아니라고 한다. 포커스를 맞출 이미지가 겹쳐졌다 어긋나는 것이 마치 사람의 영혼이 속에서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 질문을 있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과연 무엇에 매혹당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올리베이라의 영화에서 사람들은 무언가에 매혹당하고 사랑에 빠지지만 대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럼 영화의 주인공은 무엇에 끌린 것일까. 죽은 앙젤리카에 매혹당한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앙젤리카의 이미지에 매혹당한 것도 아니다(후자는 트뤼포적 주인공에 해당할 것이다). 둘을 함께 접할 매혹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당혹스러워 한다. 그런 점에서 주인공 이삭은 매우 올리베이라적인 인물이다. 이런 특징은 삼각관계를 그린 멜로드라마에서도 나타난다. 일단 주인공은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 그런데 엄밀히 따져 보면 특정 인물에게 끌리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사랑하는 것이다. 영화 대사에도 나오지만사람을 사랑하는 아니라 욕망을 사랑한다. 이를테면사랑을 사랑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걸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착각하고, 항상 실패한다. <과거와 현재> 같은 영화가 그런 점을 특히 보여준다.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 돌아오면, 그런 측면에서 올리베이라가 영화를 이미 1950년대에 찍으려 이유를 짐작할 있다.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 해피엔딩인지는 없다. 올리베이라의 영화에서 성공을 거두는 인물은 매혹의 대상을 갖고 있지 않거나 매혹의 정체를 일찌감치 파악한 사람이다. <불확정성의 원리> 여주인공이 드물지만 그런 인물이다.

 

김성욱회고전이 시작하는 주다. 올리베이라 영화를 보게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용철 안에 24편을 어떻게 보냐고 걱정하는 누군가의 글을 인터넷에서 봤다. 그렇게 고민하는 것이 몰락의 지름길이다(웃음). 물론 조바심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보다는 조금 여유를 갖고 특정 시기에 집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올리베이라 감독의 영화적 정점은 90년대였다고 생각한다. <지배의 공허한 영광>에서 <불안>까지 이르는 작품들이 정수라고 생각한다. 작품 작품에 집중해서 파고드는 것을 권한다.

 

유운성올리베이라는 지금 동시대 영화에서 가장 첨예한 이슈를 건드리는 감독이자 살아 있는 감독 가장 위대한 감독 명이다. 지난 15 동안 한국에서 영화제를 통해 가장 중요한 감독은 포르투갈 감독들이었다. 이번 상영작이 너무 많아서 고르겠다 싶으면 짧은 영화보다 영화를 보는 나을 있다. <불운의 사랑>, <프란시스카>, <아브라함 계곡> 같은 영화 말이다. 또는 올리베이라 감독이  문학과 맺는 관계가 특히 크기 때문에 그런 작품들을 모아서 보는 것도 다른 방법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른 감독이 아닌 올리베이라 영화를 보자고 권하는 여러분이 세상에 있는 가장 선행이라는 것이다. 친구의 손을 잡고 오길 바란다(웃음).

 

김성욱7시간짜리 <새틴 슬리퍼 The Satin Slipper>(1985) 이번에는 상영하지 못했는데, 영화는 이번 영화제의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다음에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도록 하겠다(웃음).

 

정리김지훈 인턴

사진곽혜원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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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엘 드 올리베이라: 토킹 픽쳐


포르투갈의 영화감독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는 1908년에 태어나 지금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현역 최고령 감독으로서, 포르투갈은 물론 세계 영화사에서 굵직한 위치를 차지한다. 알고도 믿기 힘든 그의 나이 때문일까, 변치 않는 왕성한 창작력 때문일까, 혹은 단순히 영화 자체가 너무 어렵기 때문일까? 어쩐지 올리베이라의 세계는 너무나 심오하고 신비한 까닭에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곤 한다. 이번 올리베이라 회고전은 그간 전혀 볼 수 없거나 이곳저곳에서 산발적으로밖에 볼 수 없었던 올리베이라의 작품들을 한 번에 모아서 봄으로써 그 신비의 베일을 벗겨 심층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올리베이라 영화의 외면적 특징 중 하나는 인물들의 대사의 양이 매우 많다는 점이다. 이 말들은 단순히 내러티브를 이루는 도구로 소용되지 않으며 그 고유의 ‘역량(puissance)’을 갖는다. 이는 다양한 장르, 주제, 소재를 아우르는 올리베이라 영화들의 형식적·방법론적 뿌리를 이룬다. 인물의 대사 형태로 발화된 말과 인물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며 형성되는 담론, 혹은 연극의 내적 독백에 가까운 내면의 발화나 문학적 텍스트 그 자체의 낭독에 이르기까지. 올리베이라 영화에는 다량의 말들이 내러티브 속에 산재하게 되는데, 이때 이러한 말들의 자율적인 역량이 돌출되는 순간은 내러티브의 진행이 어떤 이유로든 지연될 때 나타난다. 이 순간, 말과 사운드 효과를 비롯한 음향 이미지와 풍경이나 어떤 장소성과 관련된 시각 이미지 고유의 역량이 다양한 방식으로 연쇄, 충돌, 해체, 재-연쇄를 이루는 상호작용이 발생한다. 이때 각각의 이미지 간에는 힘의 위계가 없고, 설사 위계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그 효과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올리베이라 영화의 근간을 이와 같은 이미지 구성 방식을 두고 그의 영화의 제목을 빌려와 ‘토킹 픽쳐(A Talking Picture)’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이름에는 말과 시각 이미지 간의 동등한 지위와 자율적 관계가 내포되어 있다.


내용적 측면에서 볼 때, 광범위하기 그지없는 올리베이라의 영화 세계는 크게 세 가지 관점으로 맥락화가 가능하다. 첫째는 영화라는 매체 그 자체에 대한 성찰이다. 올리베이라는 문학, 연극, 회화, 음악, 조각, 건축을 아우르는 예술 전반을 영화에 전면적으로 기입하고 그것을 영화의 내러티브에 완전히 종속시키지 않음으로써 영화의 상호매체성을 강조한다. 둘째, 올리베이라는 과거의 역사를 표상하거나 그에 대한 기억의 심층을 탐구함으로써 현재적 관점에서 과거를 재구성하고자 시도한다. 셋째, 올리베이라 영화의 다수를 이루는 멜로드라마 장르에서는 문학이 영화 속에 전면적으로 기입된다. 일반적인 각색과는 달리, 문학의 주제의식이나 정신성 그 자체가 영화 구성의 근간을 이룬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러한 다채로운 요소들을 작동시키는 핵심적인 동력은 ‘토킹 픽쳐’라 명명한 이미지 구성 방식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때 말들의 역량이 모여 어떠한 담론의 장이 생성됨으로써 다양한 주제의식과 정신적 특질이 구현될 수 있게 된다.


<나의 경우>


말의 역량과 담론의 구성

올리베이라 영화에서 말의 역량이 어떻게 발현되는가를 파악하기 위해 우선 텍스트와 말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올리베이라의 다수의 영화는 직간접적으로 문학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며, 따라서 문학적 텍스트는 그의 영화의 기본을 이룬다. 문학적 텍스트는 대사화된 후 발화되거나 혹은 그 자체로 덩어리째 낭독된다. 영화 내부의 논리에서 볼 때, 발화된 말은 텍스트 그 자체와는 달리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떠한 잠재적 힘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된다. 질 들뢰즈는 시각 이미지에 종속되지 않는 음향 이미지 고유의 역량에 대해 강조한 바 있다. 이를 위해서는 “순수한 발화 행위, 영화적으로 고유한 언표 혹은 음향 이미지를 추출해내야 하며, 이 행위는 자신의 가독적 기초, 즉 텍스트, 책, 편지 혹은 자료에서 뿌리 뽑혀야” 한다. 텍스트에서 뿌리 뽑혀 발화된 말 자체가 자유롭고 도취적으로 자신의 음을 내는 것과 같은 어떤 고유한 역량을 가진다고 한다면, 이는 말 중심적인 영화들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즉 문자(텍스트)와 음성(발화, 낭독)의 관계를 통해 문학과 연극, 그리고 영화의 관계를 논해볼 수 있다. 이때 말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인 ‘토킹 픽쳐’만의 가치를 찾는다면, 그것은 오직 영화만이 세계를 기록하는 시각적 이미지의 현전과 일상적·연극적 언어의 현전 ― 배우가 문자를 소리 내어 낭독하는 것과 대사화된 발성 언어의 역량, 이때 운율과 격정이 표출되는 것 ― 을 동시에 작동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발화된 말이 가로지르는 것은 시각 이미지의 지층, 즉 어떠한 역사나 개인적 기억을 가진 장소 혹은 자연의 심원한 풍경들이다. 올리베이라의 영화적 장소에는 그곳만의 지질학적 역량이 스며 있다. 따라서 장-마리 스트라우브와 다니엘 위예에 대한 들뢰즈의 다음과 같은 분석은 올리베이라에게도 더없이 유용하다. “말은 이미지로부터 퇴각하여 토대를 정초하는 행위가 되고, 반면 이미지는 그 자신, 공간의 정초화, ‘지층들(assises)’, 즉 말 이전 혹은 이후, 인간 이전 혹은 이후의 무언의 역량들을 융기시킨다. 시각 이미지는 이제 고고학적, 지층적, 구조 지질학적인 것이 된다.” 그 고고학적 이미지에는 대지에 스며든 흔적으로서의 역사가 잠재해 있다. 이때 말의 역량과 풍경 혹은 장소의 역량이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순수한 음향적 이미지와 시각적 이미지가 온전히 동등한 관계에서 서로 충돌하고 해체되고 조화를 이루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올리베이라의 영화는 어디까지나 내러티브 영화이고 영화 내에서 어떠한 의미를 생산해내기 때문에 충돌이나 해체 자체보다는 재-연쇄의 순간에 조금 더 방점이 놓인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토킹 픽쳐>


올리베이라가 말과 풍경 혹은 장소의 관계성을 통해 이끌어내고자 하는 것은 영화 내부에 담론의 장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역사적 기억이 배어 있거나 동시대적 정치적 의미를 지니는 실제 장소를 촬영하거나, 혹은 연극적 세트를 통해 그와 유사한 지위를 지닌 공간을 구축한다. 디에게시스 세계에 속한 인물들은 이러한 공간에 위치하여 마치 연극배우처럼 연기하고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어떠한 담론을 형성한다. 이러한 담론의 성질을 파악하는 데 미셸 푸코의 논의를 참조할 수 있다. 푸코에 따르면, “어떤 사회에서든 담론의 생산을 통제하고, 선별하고, 조직화하고, 나아가 재분배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존재하는데, 이때 새로운 담론들을 (무한히) 구성하는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석이라고 부르는 것을 통해 일차적인 텍스트와 이차적인 텍스트 사이의 어긋남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올리베이라는 영화 내부에 매우 상이한 성향을 지닌 인물들을 풀어놓고 그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게끔 함으로써 이러한 어긋남을 만들어낸다. 올리베이라의 인물들이 내뱉는 말들의 역량과 그 충돌이 만들어내는 어긋남은 곧 새로운 담론의 형성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담론의 특징은 다소간 모호한데, 기본적으로 어떤 인물에게도 특권적 지위가 부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분히 비위계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디에게시스 내외부의 경계에 위치하면서 인물의 입장과 작가의 입장의 중간에 속해 있는 듯한 논평자(주로 이 역할은 루이스 미구엘 친트라가 맡는다)가 영화 속에 기입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소간 위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성격을 가진 담론의 장을 창출하는 효과는 예술, 문화, 역사, 정치 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영화 내부에 위계를 두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올리베이라 영화는 영화 자체의 매체성은 물론이고 다른 상호매체적 요소들에 대한 논평이 담긴 메타적 성격을 갖게 된다. 이를테면 <토킹 픽쳐>(2003)에서 유적지에서 벌어지는 역사교육적 담론과 선내 레스토랑에서 벌어지는 예술, 문명, 언어, 정치 등에 대한 논평들을 떠올릴 수 있다. 이러한 성격은 올리베이라 영화에서 연극을 비롯한 타 예술의 요소들이 영화 속에 전면적으로 기입됨으로써 발생하는 영화의 매체성 자체에 대한 성찰과 함께 작동하기도 한다. 가령 세 파트로 이뤄진 <불안>(1998)의 구조를 떠올려보자. 연극이 덩어리째 기입되고, 그것을 관람했던 인물들이 펼치는 영화 속 현실 차원의 내러티브가 펼쳐지며, 그리고 인물이 집필하는 소설의 내용이 그의 발화와 함께 이미지로 재현된다. 또한 <나의 경우>(1986)는 연극의 퍼포먼스적인 성질과 그것을 영화로 촬영하는 행위를 통해 연극과 영화의 매체적 관계를 드러낸다. 여기에서 카메라로 촬영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으로 여겨지는 이미지의 반복과 변용들 ― 무성영화로의 이행과 덧붙여지는 내레이션, 필름 릴을 빨리 감는 것 같은 이미지 등 ― 이 발생하며, 이를 통해 허구와 현실의 대립, 매체 내부와 외부의 경계 이행의 문제에 대한 성찰이 이뤄진다.


<토킹 픽쳐>


역사 혹은 기억으로서의 과거와 현재

올리베이라는 과거를 현재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데 관심이 많다. 그 과거가 포르투갈의 역사이든 개인의 기억과 관련된 것이든 간에, 여기에는 노스텔지어와 비판 의식이 모순적으로 공존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영화가 역사나 기억을 시각적 이미지로 재현할 때에는 분명히 여러 한계가 존재하는데, 올리베이라는 이 한계를 다른 방식으로 빗겨가기 위해 ‘토킹 픽쳐’라 명명한 이미지 구성방식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역사적 차원에서 그의 주된 관심사는 제국주의 포르투갈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7세기 ‘제5제국’의 역사를 표상하는 것이다. 특히 <말과 유토피아>(2000)와 <제5제국>(2004)에서 올리베이라는 그 시대를 직접 시각적으로 재현하는데, 여기에는 결코 일반적인 역사영화처럼 장엄한 풍경과 서사나 위대한 인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벗어나기 힘든 족쇄 같은 실내공간과 모호한 성격을 지닌 인물들의 끝없는 대화의 향연만이 있을 뿐이다. 역사란 역사적 인물들로 가정된 인물들의 대화를 통한 담론적 구성물에 다름 아니며, 이는 로베르토 로셀리니적인 이미지 교육법으로서의 역사와 유사한 것이기도 하다. 이 두 영화 외에도 다수의 영화에 제5제국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그림자처럼 스며들어 있는데, 이때 흥미로운 점은 제국주의 역사와 그것들의 상실(탈식민)에 대한 올리베이라의 관점에 모호함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담고 있다. 올리베이라가 패배한 전쟁에 주목한다는 점, 역사 속 인물을 광인에 가깝게 그리고 영화 속에 시인이나 광대 같은 논평자를 기입시켜 사태를 풍자한다는 점, 장엄한 규모를 자랑하며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진 실제 성과 궁전, 성당의 내부 공간조차도 굉장히 음침하게 촬영한다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하지만 이뿐만 아니라,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을 애도하는 듯한 멜랑콜리의 정서 또한 없지 않다. 역사를 다룬 영화들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포르투갈 민속음악 ‘파두’의 선율과 이와 함께 보이는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들이 그런 정서를 드러낸다. 더불어 <지배의 공허한 영광>(1990)에서는 아프리카 식민지를 잃지 않기 위해 전투를 벌이는 군인들이 그 전쟁의 당위성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에서 그런 모순적 의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모순적 요소들은 영광스러운 과거에 대해 예외적 사례들을 제공한다. 따라서 제국주의 포르투갈은 과연 영광의 시대였는가에 대한 질문은 계속해서 다시 던져지게 된다. 이러한 질문은 <토킹 픽쳐>의 선상 레스토랑 장면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올리베이라의 관심은 구체적 역사뿐만 아니라 보다 근원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의 심층으로 향한다. 이를 찾아가는 것은 특정한 장소로의 지리적 여정의 형태로 나타나며, 이때 영화는 외면적으로 로드무비의 형태가 된다. 인물들은 길 위에서, 혹은 어떤 유적지에 가서 대화를 나눈다. 이러한 장소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시퀀스들은 영화 전체의 내러티브와도 관련되지만, 그 자체로 독자적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이는 내러티브 진행을 느리게 만들며 또한 이 순간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인물들의 움직임도 매우 느리게 이루어진다. 이로써 장소로서의 풍경의 역량과 말의 역량이 더욱 강조될 수 있게 된다. 장소성과 말, 혹은 말과 말의 화학작용은 어떤 근원적 기억을 환기하거나 동시대와 관련된 담론을 형성한다.


이런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영화인 <세계의 시초로의 여행>(1997)은 외견상 ‘아폰수’라는 프랑스 배우가 포르투갈에 와서 아버지의 생가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 도중에 ‘마누엘’이라는 인물의 개인적 기억과 관련된 장소들을 경유하게 되고, 그럴 때마다 여정은 지연된다. 이때 각 장소에 배어 있던 기억이 말을 통해 환기된다. 가령 ‘페조 호텔’ 시퀀스에서 올리베이라는 평소에 자주 쓰지 않던 이색적인 트래블링 쇼트로 호텔 건물의 낡고 쇠락한 벽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마누엘은 그의 유년의 기억에 대해 말하면서 ‘병든 시간’이었다는 표현을 쓴다. 이 말은 또한 동시대의 신체, 사회, 시대의 부패를 반영하며, 이런 맥락에서 상대적으로 영광스러웠던 과거의 기억 ― 포르투갈의 영광 혹은 사적인 영광 ― 을 환기하는 것이다. 이는 인물들의 대화로 만들어지는 담론을 통해 동시대의 정치적 맥락을 역사화하는 차원으로까지 확장된다. ‘세계는 병들었는가? 세계의 붕괴 혹은 폐허는 무엇을 제시하는가?’와 같은 질문들. 여기에는 과거의 영광을 갈구하는 노스텔지어(혹은 포르투갈 고유의 그리움의 정서인 '사우다드')와 동시대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근심이 모순처럼 공존한다.


<불안>


이 여정의 끝에는 근원적 장소가 있다. 그곳은 어디이며 무엇에 대한 근원인가? <세계의 시초로의 여행>의 경우, 그곳은 포르투갈 북쪽 끝에 위치하며 지리적으로 고립된, 그리하여 오랜 원칙이 보존되고 마치 시간이 멈춰진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의 기원이자 태곳적 공간과 같은 곳이다. 아폰수에게 아버지가 유년시절을 보낸 집은 자신의 뿌리가 되는 장소이자 말로만 듣던 과거의 흔적과 물질적으로 접촉하는 곳이다. 마누엘에게 그곳은 자신의 상징적 죽음을 확인하는 곳이다. 이 장소는 어떠한 근원적인 장소이며, 들뢰즈적 의미에서 배아를 품고 있는 결정체로 존재한다. 이 장소가 품고 있는 지질학적, 지층적 기억은 구체적이거나 실증적인 역사를 넘어 보다 근본적인 것, 즉 잠재적인 것으로서의 기억이다. 따라서 이 여정은 기억의 심층으로 수렴하는 정신적인 여정에 다름 아니다.


마찬가지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수수께끼>(2007)는 ‘마누엘 루시아노’라는 남자가 평생에 걸쳐 콜럼버스의 생가를 찾아다니는 기나긴 여정의 기록이다. 젊은 시절의 신혼여행에서부터 올리베이라 본인이 직접 연기한 노년의 여행에 이르기까지, 마누엘은 아내와 함께 포르투갈 알렌테주 지역은 물론이고 뉴욕의 빌딩숲에 위치한 콜럼버스의 기념비와 박물관까지 찾아다닌다. 마누엘은 아내에게 끊임없이 역사적 지식들을 쏟아낸다. 그는 콜럼버스의 생가를 찾아감으로써 콜럼버스의 기원이 포르투갈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하며, 이를 통해 자기 자신의 근원(나아가 올리베이라 감독 본인의 근원까지)을 찾고 싶어 한다. 평생에 걸친 탐구 과정에서 어느덧 마누엘 본인의 기억은 콜럼버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된 것이다. 그의 여정을 쫓는 과정에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들이 카메라에 담긴다. 단순히 아름다움을 넘어 심원하고 숭고한 풍경의 역량은 그 풍경 자체가 콜럼버스라는 인물의 역사적 차원을 넘어서는, 보다 더 근원적인 것임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인류의 기억 혹은 대지의 기억과 관계된 것이다.

문학의 영화로서의 멜로드라마

올리베이라의 영화 세계는 방대하고 다양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다수를 이루는 것은 멜로드라마 계열의 영화들이다. 이 영화들은 외견상 일반적인 내러티브 영화에 더 가까워 보이지만, 실상 올리베이라의 영화 중에서도 가장 신비하고 내밀한 영역을 구축한다. 이러한 영화들은 문학의 전면적 기입을 통해 더 풍부해지는데, 이는 문학에 대한 일반적인 각색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것은 문학을 하나의 모티프로 삼아서 다른 요소(다른 문학작품을 포함)들과 자유롭게 뒤섞는다거나 혹은 문학작품의 정신성이나 주제의식을 완전히 다른 이야기나 인물에 영화적으로 변용하여 녹여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처럼 문학적 정신성을 영화에 기입하는 과정은 역시 말의 역량을 강조하는 것 ― 문학적 언어가 발화되면서 발생하는 감정, 정서, 정동 ― 으로 시작된다. 올리베이라의 멜로드라마의 내러티브적인 특징은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핵심적인 순간들이 덩어리째 병렬적으로 배치되고 이 순간 말의 역량이 강조되는 한편, 그 사건의 전후를 구성하는 인과 관계들이 삭제되거나 함축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여기에 연극, 회화, 음악을 비롯한 다른 예술적 요소들은 영화에 풍부함을 더한다. 요컨대 올리베이라에게 문학은 삶과 예술의 총체로서 어떤 초월적인 정신성을 구현하는 것이며, 나아가 신학적 정신을 포괄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령 <신곡>(1991)에서는 단테의 『신곡』을 기본 틀로 삼아 정신병자들의 카오스의 세계가 펼쳐지는데, 그 속에서 도스또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빠진 남녀가 하나의 연극처럼 소설의 남녀 주인공 역할을 연기하면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가 하면, 다른 모든 인물들도 각자의 역할놀이를 즐긴다. 또한 영화 중간에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대심문관 이야기’ 부분이 덩어리째 직접 삽입됨으로써 신학적 세계관을 더하기도 한다. 이곳은 지옥인지 연옥인지 천국인지 알 수 없는 세계이다. 한편 <수도원>(1995)에서는 괴테의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를 체현하는 듯한 악마적인 인물을 만날 수 있다. 더구나 <수도원>의 악마성은 이중의 구조를 띤다. 수도원에 연구 목적으로 찾아온 박사 부부를 악마적 세계로 유혹하려는 ‘발타(루이스 미구엘 친트라)’라는 인물은 본인이 악마적인 존재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조차도 악마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또한 영화에는 그 외에도 더 넓은 차원에서 모든 인물들을 유혹에 빠뜨리며 비웃음을 던지는 또 다른 메피스토펠레스인 ‘발타자르(주앙 베나르 다 코스타)’가 있다.

한편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을 각색한 <아브라함 계곡>(1993)이나 라파예트 부인의 『클레브 공작부인』을 각색한 <편지>(1999)처럼 보다 일반적인 각색에 가까운 영화들도 있는데, 여기에도 올리베이라만의 특징은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편지>는 17세기 궁정소설을 완전히 현대적인 배경으로 끌어와 창조적으로 변형한 작품이다. 원작의 복잡하기 그지없는 인물들의 관계망들이 극도로 미니멀하게 축소되었으며, 중심적인 사건들의 덩어리를 병렬적으로 펼쳐놓을 뿐 인과 관계를 설명하는 소설의 내용들이 완전히 삭제된 것이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정신성은 전혀 훼손되지 않은 채 영화에 녹아들어 있다. 무감각한 결혼 생활, 치명적으로 타오르는 사랑의 발견, 그리고 충절과 욕망 사이의 고통스러운 선택의 문제는 온전히 올리베이라의 비극적 멜로드라마들의 일부를 이룬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수수께끼>


이렇듯 올리베이라의 멜로드라마들은 비극에 매혹되어 있다. 그것은 밤의 영화이자, 어둠의 멜랑콜리가 깃든 영화이다. ‘좌절된 사랑 4부작’으로 불리는 <과거와 현재>(1971), <베닐드 혹은 성모>(1975), <불운의 사랑>(1978), <프란시스카>(1981)가 대표적이다. 올리베이라의 인물들은 대부분 신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신에게서 떨어져 나와 어떤 악마성에 이끌린다. 거기에는 타락 혹은 파멸에의 유혹, 혹은 죽음의 신비에 대한 매혹이 자연스레 포함되어 있다. <카니발>(1988)에서, 고급 예술이 우아하게 수놓아져 있는 귀족들의 사교계에서 꽃핀 불꽃같던 사랑은 그로테스크한 기계의 이미지로 대표되는 죽음 충동과 인육을 먹는 카니발리즘의 악마적 축제로 전락한다. 이 모든 것을 비웃으며 지켜보는 바이올리니스트와 논평자의 존재는 이 영화를 더욱 섬뜩하게 만든다. 한편 <불확실성의 원칙>(2002)에도 여러 인물들의 어긋난 사랑과 욕망의 그물망이 펼쳐진다. 도박, 그리고 돈을 바라고 한 결혼이라는 악덕은 영화를 거치며 점차 승계되고 확장되어 인물의 심적 붕괴를 일으키며, 결국에는 잔다르크의 화형과도 같은 방화와 죽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2010)에도 죽음에 이끌리는 남자가 있다. 여기에서 앙젤리카의 유령은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되며 이는 이색적인 효과를 낳는다. 죽음은 치명적 비극이라기보다는 신비로운 동화의 세계로의 여정과도 같은 매혹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문학적 정신성과 비극에 대한 매혹은 다수의 멜로드라마들의 특징을 이루며 올리베이라 영화 세계 전반을 포괄한다. 그러나 각각의 영화에 존재하는 미세한 결들의 차이를 읽어내는 것, 그 과정에서 ‘토킹 픽쳐’로서의 올리베이라의 형식적 방법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다.

박영석중앙대 영화학과 박사과정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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