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 폴란스키는 장편 데뷔작 <물속의 칼> 완성 이후 폴란드인의 삶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며 공산당에 대한 반감을 표출했다는 이유로 의회로부터 고발 조치를 당했다. 예술을 옥죄는 환경에 환멸을 느낀 로만 폴란스키는 고국을 탈출해 영국으로 향했고, <쉘부르의 우산>의 카트린 드뇌브를 캐스팅해 <혐오>를 완성했다. 연약한 감정의 틈 속에 똬리 튼 검은 사연을 탐구하길 즐겼던 폴란스키는 <혐오>를 통해 성적 폭력에 따른 강박증으로 무너진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에 주목했다.

뷰티 살롱에서 근무하는 미모의 여인 캐롤(카트린 드뇌브)은 성적으로 억압된 기억에 사로 잡혀 늘 불안에 시달린다. 직장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는 것은 물론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에게마저 혐오감을 드러내는 그녀는 언니 소유의 아파트에서 거의 칩거하다시피 생활한다. 마침 언니가 남자친구와 함께 여행을 떠나며 집에 홀로 남게 되자 캐롤은 깊은 우울 속으로 빠져들고 급기야 강간당하는 환각에 사로잡힌다.

선명한 플롯이 주가 되는 대다수 영화들과 달리 <혐오>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 위에서 광기를 드러내는 캐롤의 심리적 지옥도를 그려낸다. 인간 감정의 깊은 우물 속을 헤엄쳐 문제작을 건져내는 폴란스키의 연출의 특징은 늘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하고는 했다. 입버릇처럼 “이야기의 힘에 매혹된다"고 말하지만 이야기를 시각화하는 연출을 보노라면 그가 추구하는 영화의 개념은 회화에 가깝다. “영화는 그림이나 조각과 같다. 영화는 바라보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혐오>가 극중 아파트와 같은 좁은 공간을 배경으로 삼은 것도 폴란스키의 영화적 성향을 반영한다. 아파트처럼 일상적인 장소를 환각의 지옥도로 그려내기 위해 그가 추구한 표현주의적 면모는 화가의 손길을 연상시킬 만큼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털이 모두 벗겨진 채 말라비틀어진 토끼 고기랄지, 귀청을 찌르는 초침 소리에 맞춰 벽이 쩍쩍 갈라지는 장면은 단순한 시각적 스타일을 넘어 보는 이의 심리를 동요케 할 정도로 충격을 선사한다. 특히 강간당하는 캐롤의 환각을 표현하기 위해 좁은 복도의 벽을 뚫고 나오는 수많은 손의 이미지는 세계영화사를 바꾼 문제적 장면, 아니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인상적인 이미지뿐 아니라 그 속에는 불안에 잠식당한 개인, 무의식적 폭력에 대항하는 인간의 싸움이라는 주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후에도 <테넌트> <악마의 씨> <차이나타운> <비터문> <피아니스트> <유령작가>와 같은 걸작을 쉬지 않고 발표했지만 <혐오>가 중요한 평가를 받는 이유는 폴란스키 영화의 원형이라 할 만한 것들을 대부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악마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폴란스키의 영화를 두고 혹자는 그의 비극적인 삶을 이유로 제시하기도 한다. 실제로 로만 폴란스키에게 삶은 거대 악에 맞선 투쟁이자 싸움이었다. "친구들이 서구에서 사는 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행복해할 때 나는 가능한 빨리 폴란드를 탈출하고 싶었다."는 그의 심리적 압박감은 <혐오>로 보건데 그대로 영화 속에 적용해도 무방하다.

<혐오>와 함께 곧잘 ‘아파트 삼부작’으로 소개되는 <테넌트>와 <악마의 씨>는 극단적 감정의 세계를 넘어 거대 악의 탐구로 옮겨간 폴란스키의 영화적 진화의 형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악마의 씨>에서 악마의 자식을 낳은 로즈마리(미아 패로우)가 엄마의 본능으로 아이를 품는 장면은 폴란스키의 악에 대한 견해를 잘 보여준다. 일개 개인의 악마성이 ‘씨’가 되어 세상에 폭력과 악을 퍼뜨린다는 것. 이처럼 그의 필모그래프는 인간의 악마성, 그리고 거대 악에 맞선 개인의 비극적 싸움, 두 가지 형태로 분류된다. 모두 실체를 가늠할 수 없는 인간성의 극단으로 귀결되는데 <혐오>는 그의 영화적 주제가 가장 명징하게 드러난 경우라 할 만하다. 더군다나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심리를 구체화하기 위해 동원된 회화적 이미지는 그의 영화가 여전히 영화 팬들을 사로잡는 결정적 이유로 작용한다.

글/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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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맥퀸의 데뷔작 <헝거>(2008)는 1981년 메이즈 교도소에서 단식(hunger) 투쟁을 벌이다 66일 만에 사망한 IRA(아일랜드 공화군) 소속 보비 샌즈(마이클 패스벤더)의 실제 옥중 투쟁을 소재로 한다. 스티브 맥퀸의 표현을 빌면, “11살 때 보비 샌즈의 단식 투쟁을 TV로 접한 이후 내게는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으며 연출자로 데뷔할 기회를 얻게 됐을 때 고민 없이 선택하게 된 작품이었다”고 말한다.

<헝거>는 북아일랜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는 신교도(성공회)와 구교도(가톨릭), 즉 영국과 북아일랜드 간의 역사적 대립에서 연유한다. 17세기 이후로 줄기차게 아일랜드를 넘봤던 영국에 저항해 아일랜드는 독립하는데 성공하지만 신교도들이 월등한 북아일랜드는 영국 잔류를 주장했다. 과격단체 IRA가 등장하고 영국 정부가 폭력을 동원하면서 두 국가 간의 갈등은 극에 달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1972년 1월 31일 북아일랜드 데리시에서 영국 정부는 주민들의 비폭력 시위를 총을 난사하며 저지했다. 이 사건을 후에 폴 그린그래스가 <블러디 선데이>(2002)로 영화화했다.) 다만 보비 샌즈는 단식이라는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교도소 내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는데 그 과정이 바로 <헝거>가 보여주는 바다.


영국 런던 출신의 스티브 맥퀸은 12년형을 선고 받은 보비 샌즈의 4년차 옥중 생활에서부터 단식 투쟁에 대한 항변,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배경음 하나 없이 건조하게 바라본다. 일견 보비 샌즈에게로 기울어진 입장이지만 편파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감독 본인이 북아일랜드가 아닌 영국 태생인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영국의 잘못을 역사적 사실로 근거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죽음도 불사한 보비 샌즈의 순교자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탓이다. 단순히 영국이 폭력의 가해자고 보비 샌즈를 포함한 북아일랜드가 희생자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의견 대립 속에 굴하지 않고 지켜낸 신념 그 자체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더 큰 것이다.

극중 보비 샌즈가 단식을 앞두고 자신의 저항 방식에 대해 아일랜드 가톨릭 신부(리암 커닝햄)를 앞에 두고 펼치는 30분간의 항변은 신념의 정체를 드러내기 위한 내러티브와 형식, 연기와 촬영의 측면이 완벽하게 결합한 말 그대로의 명장면이다. 저항에 희생이 따라서는 안 된다는 신부의 의견을 보비 샌즈가 끝내 설득한다는 점에서 독립 쟁취에는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그의 입장이 내러티브적으로 명확히 드러난다. 교도소 내의 폭력적인 환경 묘사에 집중하던 영화는 이 장면을 분기점으로 죽음에까지 이르는 단식투쟁에 할애하며 자신의 신념에 엄격했던 보비 샌즈처럼 정확히 3막의 형식을 이룬다. 그리고 단 6개의 숏과 마이클 패스벤더의 스턴트에 육박하는 연기로 이뤄진 이 항변 장면, 특히 보비 샌즈와 신부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이뤄지는 대화를 고정 컷으로 16분간 잡아낸 첫 번째 숏은 (단 4번의 테이크로 OK 사인이 났다고 한다!) 관객들로 하여금 이들의 대화에 빨려들게끔 정서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보비 샌즈의 죽음이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가져온 것은 아니지만 그의 신념이 주변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보비 샌즈의 혈육은 물론이거니와 영국민이었던 스티브 맥퀸 또한 그의 신념에 경의를 표하고 탈골된 진실의 제 자리 찾기를 위해 <헝거>를 연출하기에 이르렀다. <헝거>가 다루는 소재는 우리에게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국내 관객들의 마음까지 움직이기에 충분하다.

글/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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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신수원 감독의 ‘레인보우’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전략’ 기획전이 막바지로 접어들던 지난 4월 3일 일요일 저녁. 영화 <레인보우> 상영 후 신수원 감독이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영화를 찍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부라는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만큼, 실제로 영화를 촬영하고 제작하며 겪었던 고군분투를 들어볼 수 있었던 자리였다. 재치 있고 솔직한 대화로 객석에 웃음이 터져 나왔던 그 시간의 일부를 전한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독특하게도 학교 교사로 있다가 굉장히 늦은 나이에 연출자로 데뷔 했다.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신수원(영화감독): 2009년에 찍고 작년 11월에 개봉한 영화인데, 원래 좀 오랫동안 중학교 사회 선생을 하다가, 영화 첫 장면 같은 과정들을 좀 겪었다. 처음엔 학교생활이 너무 지겨워서 도망 칠 궁리를 하던 중 영화 학교 등록금이 싸기에 ‘여기 들어가서 좀 쉬자’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시나리오를 써보니 재미있고, 16미리 영화를 찍었는데 역시 재밌었다. 그 후 먹고 살기 위해 복직은 했는데, 보니까 내가 남편 몰래 꼬박꼬박 영화를 찍으려고 적금을 붓고 있더라. 그걸로 35미리 중편을 찍었다. 그런데 이렇게 한 다리 걸치고 있는 건 아닌 듯 했다. 스스로를 강제하고 싶었다. 방학의 어느 날 교장 선생님께 사표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

허남웅: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디까지 본인의 이야기인가?
신수원: 도입부에서 선생을 하다 사표 쓰고 영화, 음악 영화를 준비한다는 것 등은 실제와 겹치는 부분인데, 프로듀서나 옆방 감독님 등 인물 설정은 영화적 장치를 위해 많이 바꿨다. 원래 제 옆방 감독님은 굉장히 진지하신 분이다. 운동도 안하시고. 실제랑 똑같이 간다면 다큐를 찍는 게 맞는 거라 생각했다. 주인공 지완도 나와 많이 다르다. 나는 그렇게 추리닝만 입고 다니지도 않고, 무엇보다 아들도 학교에서 맞고 다닌 적 없다. (웃음) 기타는 오히려 학원 조금 다니더니 흥미를 잃더라. 나 역시 뺨 맞아본 건 어릴 때 선생님한테 맞은 적 이후 없었던 것 같고.

허남웅: 특정 장르로 분류하기 힘든 영화다. 음악영화 같기도 하고 성장영화이기도 하고, 가족영화이기도 하고, 다큐적인 부분도 삽입되어 있다. 이런 모험적인 시도를 끝까지 밀어붙이신 이유가 궁금하다. 어떤 확신이 있었던 건가?
신수원: 원래 판타지를 좋아한다. 첫 시나리오도 싸이파이 장르였고 평소 공상을 많이 한다. 그래서 주인공의 심리상황을 대변하기 위해 개미에 대한 환상을, 이상으로써는 무지개를 자연스레 집어넣게 된 것 같다. 평이하게 가는 것은 스스로에게 재미가 없었다. 등장하는 ‘레인보우’란 음악 밴드는 일전에 음악영화를 준비하며 취재했던 ‘토닉’이란 실제 밴드다. 그 때 그 때 스케치해둔 장면들을 썼다. 이렇게 다큐적 측면과 리얼리티도 있고, 판타지도 있고, 또 자막을 쓰는 부분에는 타이핑 소리를 넣기도 하고. 사실 이 시나리오를 쓰고 주변 친구들에게 보여줬을 때 ‘재미는 있는데 톤이 일정치 않아 걱정 된다’ 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몇 부분을 빼려 해봤지만, 그걸 빼면 ‘이게 뭐지’란 생각이 들었다. 원래 상업 영화를 찍으려다보면 일정한 톤을 따라가야 하는데, 스스로 거기에 대한 답답함을 느껴왔던 것 같다. 이번에는 적은 예산으로 독립적으로 가는 거니까 하고 싶은 데로 자유롭게 찍고 어떤 그림이 나오는지 보겠다고 촬영 전에 마음먹었다.

허남웅: 마음대로 찍는 게 가장 좋지만, 요즘 영화판이 주류 제작사와 투자사의 관여가 많을 수밖에 없다. 제작까지의 과정도 순탄치 않았던 걸로 알고 있는데.
신수원: 애초에 상업영화 제작사나 투자사에 갈 생각이 없었다. 처음부터 적은 예산을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썼다. 그러다보니 배경도 옆방 감독님, 집으로 한정짓고, 펜타포트 페스티벌은 허락만 받으면 촬영도 가능하고 그림이 되기 때문에 넣었다. 원래 3천5백 정도의 예산이 필요했는데, 남편 몰래 숨겨놓은 퇴직금 2천5백만원이 있었다. 나머지 천만원이 필요했는데, 어려운 와중에 지인이 이 시나리오를 좋게 보고 장기대출로 돈을 빌려줬다. 사실 후반에 돈이 더 들어가서 총 4천7백만원 가량 들었다. 마지막에는 아르바이트나 일이 들어오면 고맙게 받고 다했다. 근데 저예산이니까 스태프들에게 돈을 거의 못주고 노개런티로 진행하느라 어려움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촬영 회차를 적게 가야해서, 20회차에 한번 보충해서 찍었는데, 절대 놓칠 수 없었던 부분은 어떻게든 찍었지만 대신 포기 가능한 부분은 빠르게 포기했다. 지금 영화를 봐도 그런 부분이 보이는데, 그건 영화라는 게 여건 내에서 찍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아무래도 음악 영화다 보니 돈이 후반에 더 들었다. 이번에 영화제 버전으로 틀어달라고 했는데,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나온 한국 밴드와 외국 밴드의 곡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이라 개봉 때 뺐었다. 대신 기획전에서만 틀고 있다. 힘들었지만 배운 점이 많았던 것 같다. 특히 감독이지만 연출 뿐 아니라 프로듀서 역할도 겸해야 했던 것. 또 작은 규모의 영화에 대한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허남웅:
지난 1월에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작가를 만나다 행사를 진행했는데, 한 관객분이 힘든 상황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위기가 닮아서 <레인보우>가 연상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 둘은 분위기가 굉장히 다르다. <레인보우>의 톤은 힘든 상황에도 되게 밝다. 처음부터 이런 밝은 분위기를 의도한 건가?
신수원: 원래 성격은 우울한데 시나리오는 늘 코미디다. 처음에 써서 팔았던 시나리오도 코미디었고, 밴드 이야기도 소소한 코미디였다. 레인보우는 처음에 좀 진지하게 접근했었는데, 쓰다가 던져버리게 되더라. 그래서 ‘에라 이렇게 된 거 그냥 재밌게 쓰자’고 생각했다. 물론 아주 웃기진 않지만. 중간 중간 의도적인 건 아닌데, 그냥 관객들이 재밌었으면 했다. 촬영할 때 배우분이 시나리오 찢는 부분에서 감정이입이 되어 울었다. 그 전까지는 이해를 못했는데, 감독의 마음이 어떤 건지 알 것 같다고 하더라. 근데 그 때 그 장면을 킵 하고, 배우에게 울지 말기를 부탁하고 다시 테이크를 갔다. 그 장면을 웃기게 혹은 슬프게 느끼는 건 관객의 몫이라고 봤다. 훌쩍이는 소리도 넣었다가 빼고 기계가 지잉 울리는 소리로 대신했다. 그게 제가 영화에서 원했던 톤이었던 것 같다.

허남웅: 배우들 캐스팅 과정도 흥미롭다. 아들 역의 백소명군 경우는 강호동의 ‘스타킹’에도 나온 음악 하던 친구라고 들었는데.
신수원: 사춘기 소년이 변성기의 목소리로 아주 열심히 노래하는 장면으로 끝났음 하는 바람이 있었다. 고로 일단 변성기의 중학생이 필요했고 기타를 직접 칠 줄 아는 게 연기보다 중요했다. 그런데 조건에 맞는 배우가 없었다. 결국 촬영 앞두고 인터넷을 막 뒤지다가 초등학생 밴드 ‘페네키’를 보았다. 기타 치는 백소명군을 검색하니 중학교에 반까지 나오기에 연락을 해서 만났다. 원래 초등학교 때는 장발에 간지폭풍(좌중 웃음)이었는데 딱 시나리오에서 튀어나온 듯한 보통의 중학생이 있었다. 영화 해볼 생각 없냐고 물었더니 음악만 한다고 답하더라. 바로 이게 필이라며 또 그 모습에 반했다. 다음 날 어머님께 소명이가 한다고 했다며 전화가 왔다. 어떻게 된 거냐고 했더니 소명이가 ‘엄마 워낭소리가 독립영화였지’라고 물어봤다고 하더라. (좌중 웃음) 2,3백만 들 줄 알았는지 흔쾌히 오케이 해줬다.

허남웅: '레인보우'라는 제목도 갖가지 색이 영화랑 무척 잘 어울리는 한편 평이한 감이 있어서 고민도 있으셨을 것 같다. 영어 제목인 'passerby#3'가 더 멋있는 것 같기도 하고.
신수원: 처음 시나리오 쓸 때는 레인보우라는 제목으로 시작했다. 어떤 책에서 ‘음악은 칼라다’라는 문구를 보고는 ‘그래 음악은 도레미파솔라시지만 빨주노초파남보일 수도 있겠다’는 연상이 됐다. 또 레인보우라는게 이상이란 의미도 있잖나. 근데 시나리오를 다 써놓고 나니까, 아들이 “엄마 나는 엄마 영화에 행인3으로 출연하고 싶어”라고 했던 대사가 자꾸 생각났다. 그래서 ‘행인3’으로 제목을 고쳤다. 근데 집안 촬영 할 때 정말 우연히 무지개가 떴다. 황급히 찍어놓고는 막상 편집 땐 무지개가 제목인 영화에 무지개는 좀 촌스러운 것 같아서 안 쓰려고 했다. 그런데 편집기사님이 좋은 데 왜 안쓰냐며 넣으셨다. 결국 고민하다 장면도 넣고 제목도 레인보우로 했지만 ‘행인3’도 버릴 수 없어서 야비하게 영문 제목으로 ‘passerby #3'으로 정했다. (좌중 웃음)


관객1: 저는 장편 다큐를 준비하는 영화학도다. 어머니가 제게 ‘영화를 취미로 하고 싶은거냐’고 물으셨다. 직업으로 삼고 싶다고 하니까 수입 없는 직업은 직업이 아니라고 하셨다.(좌중 웃음) 영화를 보면 돈 벌이를 하던 사람이 그걸 그만두고 영화를 하겠다고 한다. 함께 부담하던 걸 남편이 혼자 지고 가정을 먹여 살리게 된다. 작품의 밝은 톤 때문인지 이런 상황에 대해, 남편이 자는 모습이 나오긴 했지만, 갈등이 드러나지 않는데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이었는지?
신수원: 실제로 남편의 시점도 좀 보여주는 게 옳지 않겠냐는 분들도 계셨다. 주인공 시점으로 가는 영화를 찍고 싶었기 때문에 남편 입장은 잘 안 나온다. 그렇지만 잠깐 등장할 때마다 남편이 느끼는 고단함 등이 충분히 느껴질 거라고 생각했다. 술 취해 돌아와서 “나도 때려치우고 싶어”라고 한다든지. 나중엔 배터리 던지고 폭발하는 장면도 있지 않은가.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족영화가 아니라 카메라를 든 가정주부이자 영화를 하고자 하는 사람의 꿈과 욕망, 갈등을 그리려 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통제하며 가려했다.

관객2: 좀 우문일 수도 있을 텐데, 감독님은 영화를 왜 하시는지?
신수원: 계속 고민 중인 질문을 하셨다. 뭔가 새로운 걸 찾는 것 같다. 그게 꿈이 될 수도 있고, 내가 갖지 못했던 것을 시도하고 싶은 욕망이나 모험일 수도 있겠고. 요즘 다큐 하나를 진행하고 있는데 계속 되묻는 지점이 여기다. 역으로 질문하신 분은 영화를 하고 계신다면 왜 하시는지?
관객2: 저는 창작보단 비평 쪽 공부를 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극장이라는 공간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흔히 자기만 힘들고 죽고 싶단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영화를 보면서 위안 받고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다. 영화가 의식주는 아니니까 없어도 죽지는 않겠지만 삶이 퍽퍽하고 재미없을 것 같다
신수원: 저도 그냥 사는 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영화를 시작하게 된 것 같다. (웃음)
(정리: 백희원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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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장건재 감독의 ‘회오리바람’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기획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지난 4월 3일 이른 오후에 자신의 경험담이 잘 녹아 있는 청춘영화 <회오리바람>의 상영 후 이 영화를 연출한 장건재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시나리오 쓸 때의 고민부터 제작과정상의 여러 가지 체험, 감정들을 진솔하게 들려준 소중한 자리였다. 그 시네토크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허남웅(서울 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영화를 보면서 시나리오가 정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나리오는 어떻게 썼나?
장건재(영화감독): 일단 한 커플이 여행을 가고, 여행에서 돌아와 여자의 아버지에게 혼나는 이야기를 담은 시나리오를 오래도록 품고 있었다. <회오리바람> 전에 중학생이 주인공인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는데(원작소설이 있는), 그 작업이 잘 풀리지 않아서 다른 것을 찾다가 <회오리바람>의 원형 격이 되는 시나리오를 다시 꺼내 한 달 정도 재작업을 했다. 제가 일반화 할 순 없지만 팍팍한 현실에서 떠나고, 해갈의 기쁨과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이 대개 영화들의 감정선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난 오히려 그러한 해갈과 자유, 이후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시나리오엔 개인적인 경험담도 많이 넣었다. 중국집 배달일 같은 경우 내가 가장 오래 했던 일이다. 가장 애착을 가지고 했던 일이기도 하고. 18년 전 그 때 지금보다 돈도 잘 벌었다. 그래서 배달묘사 씬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십대면 피자배달이 더 자연스럽지 않겠나하고 스태프들의 질문도 받았었는데 내 생각엔 직업을 묘사할 때는 경험해보지 않으면 피상적인 묘사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여튼 시나리오 작업은 이 영화 할 때 어떻게 끝낼까에 고민을 많이 했다. 태훈이가 학교에 다시 끌려가서 맞고 수업을 다시 받은 씬도 내가 직접 경험했던 것인데 태훈이가 방에 들어오면 선생님이 방에 있는데 스태프들이 선생님이 어떻게 들어온거냐 하고 물었다. 나도 사실 그 때 선생님이 어떻게 들어 온지 모르겠다. 그냥 방에 계셨었다. (웃음) 그렇게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20분정도 맞고 교실로 가기 싫어서 학교 뒷담을 넘고 산에 올라갔을 때, 이 산을 다시 내려가면 사막 같은 허허벌판을 만나겠다는 감정을 느꼈다. 이 영화의 마지막이 그런 감정으로 끝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엔딩 씬을 썼던 기억이 난다.

허남웅:
사실은 첫 번째 장면도 그렇고 마지막 장면도 그렇고 굉장히 태훈이나 미정이 어느 한쪽으로도 쏠리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첫 장면이 목적지는 없지만 계속해서 나아가는 청춘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미정이가 태훈이 힘들게 번 월급으로 산 목걸이를 달고 잇는 장면들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이미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그려낸 것인가?
장건재: 원래 오프닝의 주유소 씬과 체육관 씬은 시나리오상 엔딩에 해당되는 에필로그 씬이였고 실제적인 완전 엔딩에 해당하는 장면이 원래는 오프닝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찍었는데 나중에는 영화의 에필로그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 올라갔을 때 이미 감정적으로 끝났는데 미정의 3개월 후, 태훈의 3개월 후의 이야기들을 추가로 담는 것이 뭔가 나를 망설이게 했다. 너무 결론 내어지는 것은 아닐까하고. 그래서 첫 오프닝의 주유소 씬은 삭제하려고 몇 번 시도를 했었다. 근데 어느 순간 태훈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미정의 이야기로 닫히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서 영화전체가 플래시백이 되는데 그것이 어른이 되서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기껏해야 고3정도가 되서 지난겨울을 회상하는 구조로 만들었다. 그리고 시나리오 상에서는 오토바이 씬에 내레이션이 있었다. 고3이 된 태훈의 입장을 설명하는 것인데 그것도 너무 규정짓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배우들이 그 장면을 찍을 당시가 실제로 그들의 마지막 촬영이였는데, 그 친구들이 영화를 찍으면서 점점 사랑하고 헤어지고 하는 느낌을 정말로 아는 듯한 눈빛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 얼굴만 잘 담아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허남웅:
사실 청춘영화라면 약간은 경쾌한 것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 작품은 굉장히 잠잠하다. 청춘영화가 가진 클리셰들을 피해보고 싶은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장건재: 청춘영화의 클리셰는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로 세상을 부수려고 하는 청춘을 담고 있는 영화와 정말 현실에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에 입장에서 본다면 이 영화도 그것들에 자유롭지 못하다. 영화의 스타일을 정해 놓고 찍지는 않았다. 배우의 감정을 담아내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촬영했다. 그리고 어떠한 영화처럼 보이고 싶다던가, 어떤 영화의 감성을 흉내 내고 싶다던가하는 의도를 내비치지 않았다. 물론 레퍼런스로 삼은 영화들이 있었지만 그것이 극적으로 표현되진 않았다. 십대들이 나온 영화들을 워낙 좋아해서 영화 곳곳에 내 스스로가 알지 못하는 카피들이 있는 것 같다. 아마 영화 좋아하시는 시네필들은 눈치 채실 수도 있다.

허남웅: 참조로 삼은 영화들은 어떤 것인가?
장건재: 이거 영업비밀인데. (웃음) 말하면 순간 자유롭지 못하긴 하지만 기타노 다케시의 <그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는 강렬한 스토리가 없어도 감성을 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준 영화였고, 차이밍량의 데뷔작인 <청소년 나타>라는 영화에서 공간성 같은 것들은 참조했다. 스타일적으로 그 영화가 준 감동을 표현하고 싶었다. 또 잘 생각나지 않지만 많은 영화들을 참조했다.

관객1: 목욕탕 갔다 와서 라면을 끓이는 장면이 인상 깊었는데 어떤 뜻으로 넣은 장면인지 듣고 싶다.
장건재: 고맙다. 목욕탕 갔다 와서 라면 끓이는 장면은 시나리오를 쓸 때 가장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현장에서 그 장면을 찍을 때 너무 기분이 좋았다. 데자뷰처럼 생각했던 이미지와 너무 똑같은 그림과 느낌이 나와서. 중학교 때 학교를 잘 다녔는데 고등학교 때는 학교를 생각나면 갔었다. 한번 빠지는 게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쉬운 일이였다. 그때부터 십대가 어지럽게 펼쳐졌다. 어쨌든, 학교에 빠졌던 오전 10시, 11시 정도에 동네를 어슬렁 배회했는데 전에 한 십년 전에는 본적 없었던 풍경을 보았다. 남편 회사 보내고 골목에 나온 아주머니들, 할머니들, 옥탑방에서 빨래를 너는 사람들, 유치원 가는 아이들, 그 시간대에 동네에 재잘거리는 소음 등 이런 것들이 너무 강렬했다. 내가 못 봤던 풍경인 이유는 전에는 그 시간대에 학교에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그 시간대의 정서와 공기가 여전히 내겐 너무 강렬하게 남아 있다. 물론 라면 끓이는 장면은 실외장면은 아니지만 그 시간대에 밖에서 들리는 소음들, 낮 시간대의 텅 빈집의 고요함, 혼자 남겨져 빈둥거리는 컷을 꼭잡아내고 싶었다. 롱테이크에 대한 욕심보다 그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다.


관객2: 감독의 청춘시절 경험이 담긴 영화이다. 본인에게 청춘이란 무엇이고, 그 때 자신에게 돌아간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지.
장건재: 청춘 시절을 낭만적인 느낌으로 접근하기 보단, 제 어린 시절을 반추하는 정도였고, 그때로 돌아가면 절대로 영화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극장에 다니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영화를 하는 게 재밌지만 지금 나는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다. 지금이라도 나에게 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영화 일을 그만둘 수 있다. 진심으로.
(정리: 배준영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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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키노망고스틴의 <이웃집 좀비>

4월 1일 만우절, 서울아트시네마의 상영관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서슴없이 스스로를 가족이라고 말하는 제작 집단 키노망고스틴의 오영두, 장윤정, 홍영근, 류훈 감독의 공동연출작 <이웃집 좀비> 상영 후에 시네토크를 가진 것. 4명의 연출자 중 3분이 참여하여 영화만큼이나 참신하고 유쾌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그 현장을 전한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먼저 키노망고스틴이라는 공동 제작 집단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린다.
오영두(영화감독): 특별한 집단은 아니고, 이름이 필요했는데 아내인 장윤정 씨가 망고스틴을 좋아해서 앞에다 키노만 붙여서 이름을 지은 것이 키노망고스틴이다. 어떤 구속력이 있어서 의무를 부여하는 집단은 아니고, 영화 찍는 친한 사람끼리 알음알음 놀자는 취지다. 다들 시간이 맞아 만나서 저희 집에서 찍으면 키노망고스틴 작품이 되는 것이다. 원래 류훈 감독님도 같이 왔어야 했는데 일이 있어 자리하지 못했다. 어쨌든 누구나 키노망고스틴이고 누구나 키노망고스틴이 아니라고도 볼 수 있다. 이건 좀 아닌가? (웃음)
장윤정(영화감독, 제작자): 친구들끼리 모여서 영화를 찍는 것이다. 남편인 오영두 씨가 예전에 단편을 만들 때 처음 키노망고스틴이라는 이름을 썼는데 이왕 이름을 만든 거 키우자해서 계속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웃음)

허남웅: <이웃집 좀비>는 제작비가 2000만원 정도로 굉장히 저예산으로 찍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좀비라는 설정보다는 공간에서 먼저 영화의 아이디어가 출발했다고 들었는데 처음 영화기획 당시의 상황을 듣고 싶다.
장윤정: 처음에는 몇 백 단위로 찍어보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나가면 다 돈이다 보니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서 저희 집 안에서만 찍자는 공간의 제약을 두게 되었고, 집 안에서만 만들 수 있는 영화를 고민하다가 좀비 영화라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오영두: 홍영근 씨가 좀비를 좋아하기도 하고, 직접 좀비 아이디어를 냈다. 그리고 제작자 장윤정 님께서 그걸로 가자고 하셔서 그에 따른 것이다. (웃음) 그 외에도 굉장히 많은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그 아이디어를 전부 좀비에 맞춰서 찍게 되었다.


허남웅: 취향을 떠나서 좀비라는 장르 자체가 한정된 공간에 적합하다고 판단하신 이유가 있었나?
홍영근(영화감독, 배우): 잘 맞아떨어지는 소재였던 것 같다. 적은 예산으로 집 안에서만 찍자는 아이디어만 있던 상태에서 좀비라는 소재가 들어오면서 한정적인 공간, 갇혀있는 공간이 적합해진 것이다. 외부적으로 커다란 설정보다는 모든 부분을 안으로 갖고 들어와서, 외부적인 긴장감 하나만 설정해주고 내부적인 긴장감을 형성해주면 마찰이 생기면서 더 많은 긴장감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영두: 아니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웃음)
홍영근: 사실 제가 좀 피곤하다. (일동 웃음) 정리하자면 많지 않은 예산으로 준비하다보니 공간 집약적으로 배경을 좁히는 것이 큰 숙제였다. 거기에 좀비라는 소재가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허남웅: 이 작품은 여섯 개의 에피소드가 묶여있는 장편이다. 각각의 작품이 전혀 다른 이야기라기보다는 일종의 연대기를 이루고 있다. 각자 연출도 따로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하나의 흐름을 잡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사용하셨나?
오영두: 옴니버스 영화가 기획되거나 만들어질 때는 보통 중앙에 프로듀서가 있다 하더라도 각자 감독들에게 주어진 테마 외의 구속력은 없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저희는 매일 붙어있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부분도 있고, 또한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기 위한 일종의 전략을 만들기도 했다. 시간 순서를 맞춘다든지, 각 에피소드마다 드러나는 좀비의 상태에 규칙을 만든다든지 하는 식으로 보통의 옴니버스 영화에는 없는 서사적인 구성을 집어넣었다.
장윤정: 시나리오 작업 할 때부터 좀비의 상태 같은 부분에 대해 조건을 두고 시작했다. 그래서 하나같이 보일 수 있게, 관객들이 뭔가를 하나씩 차례로 얻어갈 수 있게끔 했다.

허남웅:
제목은 <이웃집 좀비>지만 감독님들이 실제로 사시는 집에서 찍은 것이다. 아무리 스태프가 최소라고 해도 주변에도 동의를 구해야 했을 것 같다. 이웃집의 동의는 어떻게 구하셨으며 현장에서 문제는 없었는지도 궁금하다.
오영두: 당연히 소소한 문제들이 있었다. 아래층이 주인집인데, 될 수 있으면 밤 촬영을 피하고 낮에 촬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 에피소드 같이 막 뛰어다니는 촬영을 하면 주인집에서 올라오시곤 했다. 그런데 정말 운이 좋게도 주변에 사시는 분들을 너무 잘 만난 편이다. 옆집 분들께 시끄럽지 않으시냐고 물으면 사람 사는 것 같아서 좋다고 말씀하시고. (웃음) 주인집에서도 몇 번 올라오시긴 했지만 지금은 잘 이해해주시고 있다. 저희가 옥수동에 사는데, 저희는 결혼 후에 이사 가긴 했지만 다들 오래된 이웃분들이라 정말 ‘이웃집’ 같은 분위기가 있다. 심지어 식당에 밥 시키면 영화 찍는 집이라고 그냥 오셔서 구경 좀 해도 되냐고 물어 보시기도 한다.

관객1: 몇 회차나 찍으셨는지. 그리고 비용 조달을 어떻게 하셨는지?
오영두: 20회차 찍었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 에피소드까지는 다 찍는데 2주 걸렸다. 그 뒤로 이런저런 일 때문에 일정이 조금 밀렸다.
장윤정: 처음 세 편 시나리오를 써서 다 찍고 나서 다음 세 편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중간에 류훈 감독님이 선교활동을 2주 정도 갔다 오고, 편집도 하고 하면서 두 달 반 정도 걸리긴 했지만 실제 촬영은 20회차 정도 했다. 비용의 경우에는, 제가 1년 8개월 정도 모아둔 곗돈이 있었다. (웃음) 처음에는 3백에서 5백만원만 들이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영화가 커지더라. 후반작업에도 돈이 많이 들어가고. 결국 2000만원이 그냥 없어졌다.

관객2:
<이웃집 좀비> 찍으시면서 가장 좋았던 때, 설렜던 때가 언제였는지, 그리고 연출자로서의 영화 철학 같은 있다면 듣고 싶다.
오영두: 찍다 보면 모든 부분이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게 안 나올 때는 답답하지만, 정말 탁해서 딱 나와서 확 오는 순간이 있다. (웃음) 생각 이상의 뭔가가 나오는 순간에는 기분이 정말 좋다. 찍을 때는 그런 순간순간들이 설레는 것 같다. 그래서 찍고 우리끼리 박수치고 그런 식이다.
장윤정: 창작의 기쁨 같은 것이 있다. 새롭게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찍는 것. 또 저희는 사이가 좋다보니 합숙을 하며 놀듯이 즐겁게 촬영한다. 하지만 동시에 치열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처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이웃집 좀비>를 내고, 경쟁작에 진출했을 때. 그리고 상까지 받았을 때, 사람들이 같이 즐거워 해준다는 것이 느껴져서 정말 좋았다.
홍영근: 상 받으면 좋지 않나. (웃음) 부천에 경쟁작 진출한 것도 정말 영광이었는데 관객상을 받을 때 정말 짜릿했다.
오영두: 철학은 즐거움인 것 같다. 충무로에서 스태프로 일할 때, 솔직히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꼭 감독만 즐거워야 하는가, 혹은 감독조자도 고통스러워야 하는가. 물론 영화를 찍는 건 당연히 고통스러운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도 굉장히 즐거울 수 있다. 영화 끝나고서도 늘 보고 싶은 사이가 될 수 있는데 왜 찍고 나면 다들 원수지간이 될까, 라는 생각도 했다. (웃음) 개인적으로는 관객들이 저희가 찍은 영화를 보면서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그 과정 안에서 저희나 스태프들이 다 즐거웠으면 좋겠다. 다들 이 영화를 만들면서 행복하고, 보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게 일종의 철학인 것 같다.
홍영근: 비슷하다. 저는 배우지만 영화인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좋아한다. 스태프나 배우를 다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같이 모여야만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그 사람들이 모두 재미있고 즐거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가운데, 제가 배우이다 보니, 우리가 만든 영화가, 내가 비춰지는 모습들이 진실 되어 보였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다. 몸으로 하는 연기든, 카메라를 들고 찍은 것이든. 정말 그 사람의 즐거움과 재미가 가득 담긴 진심이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게 개인적인 철학이다.
장윤정: 좀 어려운 질문이다. 20살 때부터 영화 일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18년 정도 왔다. 생각해보면 최선을 다했을 때 스스로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그런 게 철학인가. (웃음)


허남웅: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는지 들으면서 정리해야겠다.
오영두: <이웃집 좀비>가 끝나고 <인베이전 오브 에일리언 비키니>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지난 유바리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4월에는 이 영화가 프랑스 영화제에 가게 되어서 거기 다녀와야 한다. 그리고 유바리에서 받은 상금으로 탐정 영화를 만들 계획이다. 프랑스에 다녀와서 바로 탐정 영화를 준비하면 시간이 금방일 것 같다. 또 여름에는 부천영화제에 <인베이전 오브 에일리언 비키니> 공개해야 하고, 영화제가 끝나고 탐정 영화를 마무리 하면 올해는 거의 가지 않을까 한다. 그 사이에 끊임없이 전부터 생각해왔던 상업영화들도 준비 해가야 하고. 큰 영화든 작은 영화든 열심히 찍겠다.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장윤정: 저희는 부부라 일정이 같다. (웃음) 보통 남편이 영화를 찍으면 제가 제작을 한다. 이번 부천영화제에 잘 선보여서 한국에 개봉을 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다음에는 탐정 영화 잘 찍는 게 목표다. 홍영근 씨도 같을 텐데. (웃음)
홍영근: 저희 에너지가 바닥나지 않는 한 계속 건강하게 영화 찍는 게 목표다. <인베이전 오브 에일리언 비키니>의 주연을 맡았는데, 부천에서 홍보도 많이 하고 싶다. 그리고 운 좋게도 다음 탐정 영화에 주인공을 맡게 되어서 다른 상업영화나 독립영화의 오디션을 고사하고 있다. (웃음) 비중 있는 역할이고, 준비해야 할 액션도 많고 해서 책임감이 크다. 시간을 거의 탐정영화에 쏟아 부을 생각이다. 앞으로 나올 영화들에도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린다. (정리: 박예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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