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특별전/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영화를 만들면서 즐겁고, 보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시네토크] 키노망고스틴의 <이웃집 좀비>

4월 1일 만우절, 서울아트시네마의 상영관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서슴없이 스스로를 가족이라고 말하는 제작 집단 키노망고스틴의 오영두, 장윤정, 홍영근, 류훈 감독의 공동연출작 <이웃집 좀비> 상영 후에 시네토크를 가진 것. 4명의 연출자 중 3분이 참여하여 영화만큼이나 참신하고 유쾌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그 현장을 전한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먼저 키노망고스틴이라는 공동 제작 집단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린다.
오영두(영화감독): 특별한 집단은 아니고, 이름이 필요했는데 아내인 장윤정 씨가 망고스틴을 좋아해서 앞에다 키노만 붙여서 이름을 지은 것이 키노망고스틴이다. 어떤 구속력이 있어서 의무를 부여하는 집단은 아니고, 영화 찍는 친한 사람끼리 알음알음 놀자는 취지다. 다들 시간이 맞아 만나서 저희 집에서 찍으면 키노망고스틴 작품이 되는 것이다. 원래 류훈 감독님도 같이 왔어야 했는데 일이 있어 자리하지 못했다. 어쨌든 누구나 키노망고스틴이고 누구나 키노망고스틴이 아니라고도 볼 수 있다. 이건 좀 아닌가? (웃음)
장윤정(영화감독, 제작자): 친구들끼리 모여서 영화를 찍는 것이다. 남편인 오영두 씨가 예전에 단편을 만들 때 처음 키노망고스틴이라는 이름을 썼는데 이왕 이름을 만든 거 키우자해서 계속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웃음)

허남웅: <이웃집 좀비>는 제작비가 2000만원 정도로 굉장히 저예산으로 찍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좀비라는 설정보다는 공간에서 먼저 영화의 아이디어가 출발했다고 들었는데 처음 영화기획 당시의 상황을 듣고 싶다.
장윤정: 처음에는 몇 백 단위로 찍어보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나가면 다 돈이다 보니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서 저희 집 안에서만 찍자는 공간의 제약을 두게 되었고, 집 안에서만 만들 수 있는 영화를 고민하다가 좀비 영화라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오영두: 홍영근 씨가 좀비를 좋아하기도 하고, 직접 좀비 아이디어를 냈다. 그리고 제작자 장윤정 님께서 그걸로 가자고 하셔서 그에 따른 것이다. (웃음) 그 외에도 굉장히 많은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그 아이디어를 전부 좀비에 맞춰서 찍게 되었다.


허남웅: 취향을 떠나서 좀비라는 장르 자체가 한정된 공간에 적합하다고 판단하신 이유가 있었나?
홍영근(영화감독, 배우): 잘 맞아떨어지는 소재였던 것 같다. 적은 예산으로 집 안에서만 찍자는 아이디어만 있던 상태에서 좀비라는 소재가 들어오면서 한정적인 공간, 갇혀있는 공간이 적합해진 것이다. 외부적으로 커다란 설정보다는 모든 부분을 안으로 갖고 들어와서, 외부적인 긴장감 하나만 설정해주고 내부적인 긴장감을 형성해주면 마찰이 생기면서 더 많은 긴장감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영두: 아니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웃음)
홍영근: 사실 제가 좀 피곤하다. (일동 웃음) 정리하자면 많지 않은 예산으로 준비하다보니 공간 집약적으로 배경을 좁히는 것이 큰 숙제였다. 거기에 좀비라는 소재가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허남웅: 이 작품은 여섯 개의 에피소드가 묶여있는 장편이다. 각각의 작품이 전혀 다른 이야기라기보다는 일종의 연대기를 이루고 있다. 각자 연출도 따로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하나의 흐름을 잡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사용하셨나?
오영두: 옴니버스 영화가 기획되거나 만들어질 때는 보통 중앙에 프로듀서가 있다 하더라도 각자 감독들에게 주어진 테마 외의 구속력은 없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저희는 매일 붙어있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부분도 있고, 또한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기 위한 일종의 전략을 만들기도 했다. 시간 순서를 맞춘다든지, 각 에피소드마다 드러나는 좀비의 상태에 규칙을 만든다든지 하는 식으로 보통의 옴니버스 영화에는 없는 서사적인 구성을 집어넣었다.
장윤정: 시나리오 작업 할 때부터 좀비의 상태 같은 부분에 대해 조건을 두고 시작했다. 그래서 하나같이 보일 수 있게, 관객들이 뭔가를 하나씩 차례로 얻어갈 수 있게끔 했다.

허남웅:
제목은 <이웃집 좀비>지만 감독님들이 실제로 사시는 집에서 찍은 것이다. 아무리 스태프가 최소라고 해도 주변에도 동의를 구해야 했을 것 같다. 이웃집의 동의는 어떻게 구하셨으며 현장에서 문제는 없었는지도 궁금하다.
오영두: 당연히 소소한 문제들이 있었다. 아래층이 주인집인데, 될 수 있으면 밤 촬영을 피하고 낮에 촬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 에피소드 같이 막 뛰어다니는 촬영을 하면 주인집에서 올라오시곤 했다. 그런데 정말 운이 좋게도 주변에 사시는 분들을 너무 잘 만난 편이다. 옆집 분들께 시끄럽지 않으시냐고 물으면 사람 사는 것 같아서 좋다고 말씀하시고. (웃음) 주인집에서도 몇 번 올라오시긴 했지만 지금은 잘 이해해주시고 있다. 저희가 옥수동에 사는데, 저희는 결혼 후에 이사 가긴 했지만 다들 오래된 이웃분들이라 정말 ‘이웃집’ 같은 분위기가 있다. 심지어 식당에 밥 시키면 영화 찍는 집이라고 그냥 오셔서 구경 좀 해도 되냐고 물어 보시기도 한다.

관객1: 몇 회차나 찍으셨는지. 그리고 비용 조달을 어떻게 하셨는지?
오영두: 20회차 찍었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 에피소드까지는 다 찍는데 2주 걸렸다. 그 뒤로 이런저런 일 때문에 일정이 조금 밀렸다.
장윤정: 처음 세 편 시나리오를 써서 다 찍고 나서 다음 세 편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중간에 류훈 감독님이 선교활동을 2주 정도 갔다 오고, 편집도 하고 하면서 두 달 반 정도 걸리긴 했지만 실제 촬영은 20회차 정도 했다. 비용의 경우에는, 제가 1년 8개월 정도 모아둔 곗돈이 있었다. (웃음) 처음에는 3백에서 5백만원만 들이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영화가 커지더라. 후반작업에도 돈이 많이 들어가고. 결국 2000만원이 그냥 없어졌다.

관객2:
<이웃집 좀비> 찍으시면서 가장 좋았던 때, 설렜던 때가 언제였는지, 그리고 연출자로서의 영화 철학 같은 있다면 듣고 싶다.
오영두: 찍다 보면 모든 부분이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게 안 나올 때는 답답하지만, 정말 탁해서 딱 나와서 확 오는 순간이 있다. (웃음) 생각 이상의 뭔가가 나오는 순간에는 기분이 정말 좋다. 찍을 때는 그런 순간순간들이 설레는 것 같다. 그래서 찍고 우리끼리 박수치고 그런 식이다.
장윤정: 창작의 기쁨 같은 것이 있다. 새롭게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찍는 것. 또 저희는 사이가 좋다보니 합숙을 하며 놀듯이 즐겁게 촬영한다. 하지만 동시에 치열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처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이웃집 좀비>를 내고, 경쟁작에 진출했을 때. 그리고 상까지 받았을 때, 사람들이 같이 즐거워 해준다는 것이 느껴져서 정말 좋았다.
홍영근: 상 받으면 좋지 않나. (웃음) 부천에 경쟁작 진출한 것도 정말 영광이었는데 관객상을 받을 때 정말 짜릿했다.
오영두: 철학은 즐거움인 것 같다. 충무로에서 스태프로 일할 때, 솔직히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꼭 감독만 즐거워야 하는가, 혹은 감독조자도 고통스러워야 하는가. 물론 영화를 찍는 건 당연히 고통스러운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도 굉장히 즐거울 수 있다. 영화 끝나고서도 늘 보고 싶은 사이가 될 수 있는데 왜 찍고 나면 다들 원수지간이 될까, 라는 생각도 했다. (웃음) 개인적으로는 관객들이 저희가 찍은 영화를 보면서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그 과정 안에서 저희나 스태프들이 다 즐거웠으면 좋겠다. 다들 이 영화를 만들면서 행복하고, 보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게 일종의 철학인 것 같다.
홍영근: 비슷하다. 저는 배우지만 영화인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좋아한다. 스태프나 배우를 다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같이 모여야만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그 사람들이 모두 재미있고 즐거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가운데, 제가 배우이다 보니, 우리가 만든 영화가, 내가 비춰지는 모습들이 진실 되어 보였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다. 몸으로 하는 연기든, 카메라를 들고 찍은 것이든. 정말 그 사람의 즐거움과 재미가 가득 담긴 진심이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게 개인적인 철학이다.
장윤정: 좀 어려운 질문이다. 20살 때부터 영화 일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18년 정도 왔다. 생각해보면 최선을 다했을 때 스스로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그런 게 철학인가. (웃음)


허남웅: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는지 들으면서 정리해야겠다.
오영두: <이웃집 좀비>가 끝나고 <인베이전 오브 에일리언 비키니>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지난 유바리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4월에는 이 영화가 프랑스 영화제에 가게 되어서 거기 다녀와야 한다. 그리고 유바리에서 받은 상금으로 탐정 영화를 만들 계획이다. 프랑스에 다녀와서 바로 탐정 영화를 준비하면 시간이 금방일 것 같다. 또 여름에는 부천영화제에 <인베이전 오브 에일리언 비키니> 공개해야 하고, 영화제가 끝나고 탐정 영화를 마무리 하면 올해는 거의 가지 않을까 한다. 그 사이에 끊임없이 전부터 생각해왔던 상업영화들도 준비 해가야 하고. 큰 영화든 작은 영화든 열심히 찍겠다.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장윤정: 저희는 부부라 일정이 같다. (웃음) 보통 남편이 영화를 찍으면 제가 제작을 한다. 이번 부천영화제에 잘 선보여서 한국에 개봉을 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다음에는 탐정 영화 잘 찍는 게 목표다. 홍영근 씨도 같을 텐데. (웃음)
홍영근: 저희 에너지가 바닥나지 않는 한 계속 건강하게 영화 찍는 게 목표다. <인베이전 오브 에일리언 비키니>의 주연을 맡았는데, 부천에서 홍보도 많이 하고 싶다. 그리고 운 좋게도 다음 탐정 영화에 주인공을 맡게 되어서 다른 상업영화나 독립영화의 오디션을 고사하고 있다. (웃음) 비중 있는 역할이고, 준비해야 할 액션도 많고 해서 책임감이 크다. 시간을 거의 탐정영화에 쏟아 부을 생각이다. 앞으로 나올 영화들에도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린다. (정리: 박예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