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 남다정 감독 GV 현장스케치

지난 12월 9일 저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작은 영화의 조용한 반란’이란 제하 아래 올해 6월에 개봉한 <플레이>가 상영되고, 상영 후에는 이 영화를 연출한 남다정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작년 겨울에 찍었던 영화를 올해 겨울에 이야기하는 것이 묘하다”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풀어나갔던 남다정 감독과의 만남의 시간을 여기에 옮겨 본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시작하기에 앞서 글렌 한사드가 나왔던 장면의 사용 허가를 받으면서 그가 당신의 영화를 꼭 보겠다고 답변을 했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그가 영화를 봤는지.
남다정(영화감독): 그 장면을 써도 되냐고 메일로 물어봤을 때, 메이트에게 축하한다고 전해달라며 어떤 것이든 사용해도 좋다고 답변이 왔다. 그런데 영화를 메일로 보냈는데 아직까지 답이 없다.

허남웅: <플레이>가 기획사로부터 제안을 받은 작품이라고 알고 있는데 제작 과정이 궁금하다.
남다정: 2009년 10월 즈음 영화제작사에서 음악영화를 만들자는 제의를 받았다. 구상 중에 밴드들을 만나는 자리가 있었고, 거기서 메이트를 처음 만났다. 아직 유명하진 않았지만 우연히 TV에서 메이트가 공연하는 걸 보고 눈여겨봤다. 몇 번 만나다가 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도 될 것 같아서 인터뷰와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하는데 1년 정도 걸렸다.

허남웅:
이 작품은 음악이 극중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또 메이트 밴드 멤버들이 직접 출연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음악영화와는 달랐다. 연기가 검증 되지 않은 멤버들에게 어떻게 그 자신들을 연기하게 했는지.
남다정: 데뷔작이고 연기 경험이 없기 때문에 나도 많이 부담이 되었다. 처음에는 연기를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배우를 캐스팅할 경우에는 배우들이 연주를 연기로 할 수 있는지, 또 라이브를 봤을 때 느꼈던 현장감을 살릴 수 있을지 문제가 있었다. 처음엔 멤버들 다 부담스러워했으나, 상당 부분이 실제 이야기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갈수록 본인들이 열심히 참여했다. 어색한 연기들은 연주하는 모습으로 커버가 된 것 같다.

허남웅: 외려 본인들의 모습이 묻어난 연기가 사실적으로 느껴졌다. 연기에 대한 판단 부분에서는 감독님은 어떤 기준을 적용했는지.
남다정: 연기를 못하게 했다. 카메라를 놓고 한 달 동안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연습을 시켜서 카메라에 어떻게 나오는지 터득을 하게 했다. 멤버들이 내성적이라서 서로 친해지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시나리오 쓰는 것보단 만나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고, 본인의 입에 맞는 대사와 행동들을 같이 썼다. 결과적으로 연기할 때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고 한다.

허남웅: 현실과 극적인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허구에 대한 부분은 어떻게 얘기를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남다정: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연애 얘기를 많이 하였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경험이 녹아있는 1집 음악의 얘기들을 시나리오에 넣었다. 밴드가 된 이후에 만들어진 이야기들은 극화되었고 그 이후에 만들어진 음악들도 영화를 위해 새로 만든 음악들이었다.

허남웅:
메이트 멤버들과 다른 배우들의 최근 근황도 궁금하다.
남다정: 임헌일 씨는 4월에 군대를 갔고 다른 분들의 앨범에 세션으로 참여하며 지내고 있다. 정준일은 얼마 전에 솔로 앨범을 내서 소극장 공연을 하였고 내년엔 군대를 간다. 이현재 씨는 조만간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은채 씨는 일일드라마를 끝내고 휴식 중인 걸로 알고 있다.

허남웅: 정준일 씨가 임헌일 씨와 만났을 때의 의상이 웃음을 주기도 했지만 확실한 캐릭터를 주는데 도움을 준 것 같다.
남다정: 정준일의 캐릭터는 다 그의 공이다. 기분이 극과 극을 달리는 것과 자고 미동 없이 누워있는 것도 실제다. 의상도 본인들 것을 사용했었는데 정준일은 패셔니스타로 유명해서 어마어마한 양의 옷을 가져왔다. 실제로 밴드 제의를 해서 만난 날 준일이 스카프를 두르고 바가지 머리를 하고 나타나 헌일씨가 본 순간 철렁했다고. 많은 분들이 준일 때문에 웃을 줄 몰랐다.

허남웅: 실제로 그 장면이 웃기지만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이었다. 엔딩인 글렌 한사드 공연의 버스킹 장면을 정확히 재현을 해서 스태프끼리 감동했다고 들었다.
남다정: 당시 버스킹을 처음 했었던 건데, 글렌 한사드가 내한했을 때 그가 항의하면 끝낸다는 상황에서 시작하였던 거다. 그런데 글렌 한사드가 실제로 보고 무대에 서달라는 말에 너무 놀랐다고 한다. 사실 이 엔딩 부분은 힘을 주려고 많이 노력을 했다. 장면이 촬영 막바지에 이루어졌었는데 그 날 아침에 노래의 가사가 나왔다. 촬영을 하면서 실제로 처음 노래를 부르게 된 거여서 엑스트라와 스태프가 관객이 된 듯이 관람했다. 1년 반 전 일을 떠올리며 멤버들이 노래를 하니 다들 얼굴에 열이 올랐다. 기분이 매우 묘해서 나도 모니터를 보다가 눈물을 흘렸다.

허남웅: 음악영화를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과 매력적이었던 점은 무엇인가.
남다정: 언젠가는 음악영화를 만들고 싶단 생각을 했지만 음악 영화로 데뷔할 줄은 몰랐다. 약 3년 동안 한심하게 살고 있는 와중에 지금 내 얘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때 음악 영화 제의를 받았다. 그래서 '음악 영화를 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음악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은 모든 콘티가 확실해야만 후반 작업 시 음악이 들어갈 시간이 맞아 떨어진다는 거다. 만들고 보니 더 세밀하게 신경을 써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남웅: 다큐멘터리와 극이 혼재해 있는 형식의 작품인데, 이런 형식을 밀어붙여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실제 밴드를 캐스팅해서 그렇게 진행이 되었는지.
남다정: 연주 장면 같은 경우에는 3명이 처음 모여서 데모 만드는 경우에는 다큐멘터리처럼 찍고, 멜로 장면들은 극영화 식으로 포착했다. 이처럼 두 형식이 섞이도록 의도했다.

허남웅: 데뷔작은 감독에게 엄청난 경험이면서 시행착오의 단계인데 과정에서 느꼈던 교훈은 무엇인가.
남다정: 좋은 친구들을 만나 음악 영화로 데뷔를 한 걸 고맙게 생각한다. 마지막에 무대로 나가는 모습이 내가 영화를 가지고 세상에 나가는 것과 맞닿아 있다. 또래의 이야기로 데뷔를 할 수 있었다는 게 개인적인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관객1: 시나리오를 1년 정도 준비했다고 했는데 제작이나 촬영 기간은 얼마나 걸렸는지.
남다정: 2009년 10월에 처음 만나서. 2010년 10월에 촬영이 들어갔고 2010년 12월에 촬영을 마쳤다. 두 달 동안 30회차 정도 촬영을 했고 나머지 두 달 정도는 후반 작업을 했다.

관객2: 메이트의 팬인데 그들의 매력이 돋보인 좋은 영화였다. 촬영 중에 배우들과 갈등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남다정: 시나리오 과정이 오래 걸린 이유가 바로 그거다. 영화작업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지문에 쓰인 작은 행동도 본인과 일치 하지 않으면 거부했다. 그런 걸 설득시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배우들이 촬영하면서는 감독의 지시를 다 받아들였다.

관객3: 시나리오를 쓰는 와중에 포기해야하는 순간이 있다면 욕심대로 밀어붙이는지 아님 타협을 하는지 궁금하다.
남다정: 내가 원하는 캐릭터와 실제 그 친구들의 모습들을 타협할 수가 없었다. 항상 둘 중에서 선택을 해야 했기 때문에 어려웠다. 인물의 실제 모습들을 사실적으로 느끼게 보여주는데 있어서 많은 공부를 한 것 같다.


관객4: 감독 판으로 DVD를 만들고 재개봉을 하기도 하는데, 혹 못다한 이야기가 있나.
남다정: 정준일 씨의 전사와 곡들이 조금 더 있다. 편집을 해보니 밴드가 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려서 그 부분을 삭제를 해야 했다. 생략된 연주 장면이나 준일 씨의 오버하는 연기가 들어가면 더 재밌어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관객5: 제목 플레이의 의미는 뭔가.
남다정: 연주하고 놀기도 하고 또 극이라는 의미도 있다. 본인들의 이야기가 기본이지만 이건 극영화이다. 그래서 명료하게 플레이라고 지었다.

허남웅: 마무리할 시간이다. <플레이> 이후 어떤 작품을 준비 중이신지 향후 계획과 마무리 말씀 부탁드린다.
남다정: 1930년의 신여성의 센 치정극에 대한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는데, 치정극을 하기에는 경험을 더 쌓아야 할 것 같아서 나중으로 미뤘다. 내년에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지 고민 해봐야 될 것 같다. 겨울이 되니까 플레이 때 스태프들이 작년이 떠오르는지 많이 연락을 한다. 겨울 옷 입고 마이크 잡고 영화 얘기하는 건 작년에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많은 분들이 영화를 봐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드린다. 이 극장에서 졸업 영화제 영화를 상영했던 것이 떠오르는데, 그때의 그 처음의 마음을 간직하고 싶다. 이 영화가 대단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잠깐의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리 윤서연(관객에디터) | 사진 조유성(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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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성기완이 말하는 로버트 알트만과 그의 영화 속 음악

로버트 알트만의 영화에 애정에 바치는 사람은 많다. 그중 지난 11월 29일 저녁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 멤버이자 시인 성기완이 로버트 알트만 특별전을 찾아 관객들과 함께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네토크 시간을 가졌다. <내쉬빌> 상영 후 ‘내쉬빌, 미국 고향냄새’라는 주제로 열린 그 현장을 여기에 전한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가수이자 시인이신 성기완 씨를 모셨다. '내쉬빌, 미국 고향냄새'라는 주제로 강연을 해 주실 예정이다. 이 영화를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성기완(‘3호선 버터플라이’, 시인): 좋은 영화 보여주셔서 감사하다. 필름에 스크래쳐가 많은데 보다 보니 굉장히 환상적인 느낌이 들었다. 많은 종류의 음악들이 등장해서 그 음악을 듣는 재미만으로도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였다.

허남웅: 이번 강연은 영화에 대한 내용보다는, 영화에 나온 내쉬빌이라는 지역성에 대한 부분과 컨트리 음악에 대한 부분에 중점을 둬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모셨다. 영화 구조도 상당히 음악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성기완: 구조가 굉장히 복잡하더라. 굉장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마치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의 인간희극 시리즈의 인물들 같았다. 다양한 인물들의 초상화를 보여준 달까. 발자크는 사람들을 하나씩 등장시키면서 그 사람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측면들에 대해 아주 현실적인 구조 안에서 그려내는 반면에, 알트만 감독은 현실적이기도 하지만 거기서부터 떨어져나와 아이러니컬하게 다루는 방식까지 동시에 쓰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브레히트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물의 전형적인 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알트만이 특이했던 게 어떤 사람을 볼 때, 어떨 땐 진지하고 어떨 땐 아이러니컬하게 바라보는 게 아니라 늘 진지하면서 동시에 아이러니컬하게 바라본다는 점이다. 음악을 다루는 방식도 그렇다. 모든 음악이 다 비꼬는 방식으로 활용되면서도, 모든 음악이 다 진지하며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등장한다. 그와 겹치는 것이 시간적인 구조다. 이게 1970년대 중반 정도에 나왔는데, 70년대는 사실 의심의 시대였다. 히피족도 한 물 갔고, 사람들은 '깨어진 꿈' 같은 것을 안고 있었다. 케네디처럼 정치적인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세력이 아주 잔인하게 죽거나 분산된 후에 과연 뭐가 남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시대였다. 이런 생각은 히피에서부터 나왔지만, 그것이 하나의 태도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70년대가 아닌가 싶다. 그런 시대에 사람들이 갖는 시간관은 과거로 휘는 것 같다. 처음으로 자꾸 돌아가게 되는 신화적인 시간관이랄까. 이것을 노래로 치면 후렴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노래가 시작되는 지점을 알려주는 것이 후렴구인데, 담론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것이 신화적인 담론인 것이다. 그 당시 본 영화 중에서 <대부>가 그렇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시간을 미래로 가는 한 줄기의 수단으로 보는 게 아니라, 휘어서 ‘우리가 어디서부터 왔지’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관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휘어서 후렴구로 돌아가는 그 대목에 노래나 음악이 배치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종의 같은 시간대로 놓는 것으로 노래가 쓰이는 것 같다. 또 하나는, 다 각자의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사회가 주로 이민 온 사람들이 사는 나라다. 그래서 각기 뿌리가 다르고 각각 자신의 시간이 다 있는 것이다. 특히 멤피스 같은 도시는 백인 노동자들, 특히 폴란드나 동유럽 ‧ 북유럽 쪽에서 많이 와서 세례를 받고 살게 된 곳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사실 남에게 관심이 없을 수 있는 것 같다. 이런 방식으로 자기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라서 여러 시간들이 겹치게 때문에 복잡하게 되는데, 그때그때마다 하나의 타임라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노래가 감당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노래가 나올 때 마다 시간이 휘어서 그 사람들이 출발한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허남웅:
<내쉬빌>의 첫 편집본이 나왔을 때 다섯 시간이 넘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쉬빌 레드>, <내쉬빌 블루> 이렇게 두 편으로 해서 개봉을 하다가 다시 2시간 40분으로 줄였다는 일화가 있다. 30명에 달하는 출연진이 나오기 때문에 그만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영화에서는 내쉬빌이라는 배경이 가장 중요하게 기능한다. 그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성기완: 음악으로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전기를 번역한 적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미국 남부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엘비스는 멤피스에서 태어났는데 사실 생각보다는 내쉬빌보다 멤피스에 더 유명한 가수가 많은 것 같다. 더 뿌리로 내려가면 뉴올리언스가 있다. 거기 음악을 '딥 싸우스Deep South'라고 하는데, 질척하고 더운 날씨에서 나오는 끈적거리는 음악이다. 그런 것들을 들으면서 자란 백인들의 음악이 멤피스 음악인 거 같다. 내쉬빌은 '딥 싸우스'의 끈적거리는 블루스적 자장의 끝머리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블루지한 느낌이 보다 옅게 나타난다. 이후 내쉬빌 음악은 백인 노동자들의 음악이 되고, 그런 사람들의 음악의 뿌리인 컨트리의 한 거점이 된다. 내쉬빌의 '내쉬'는 원래 독립전쟁 당시의 장군 이름인데 그래서 애국주의의 느낌이 강하다고 한다. 그런 만큼 컨트리와 군가의 느낌이 섞이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진지하면서 동시에 아이러니컬하게 바라볼 수 있는 지점이 생긴 것 같다.

허남웅: 컨트리 음악 자체가 보수적인 느낌이면서 고향의 음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컨트리 음악이 미국에서 갖는 의의는 무엇인가.
성기완: 컨트리 음악에 관심이 있는 분은 국내에서는 '바비 빌'이란 사람들의 음악을 찾아보시면 좋다. 홍대 '스트레인지 프룻'에서도 자주 들어보실 수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음악들의 박자를 정리해 보면, 처음에 해밀턴이 부르는 음악은 컨트리 풍인데 사실 그 반주는 군가였던 것 같다. 그 이후에 나오는 가스펠은 진지하면서도 매우 웃기게 박수치면서 열광적으로 부른다. 컨트리 이전에 군가와 가스펠이 나오는 게 특이하다. 그 다음 중간에 컨트리 음악이 나오는데 특이하게 박자를 앞에서 친다. 두 박자짜리 군가 같은 박자의 음악이다. 그 다음에 세 박자의 음악이 나온다. 어떤 장면이든 처음에는 두 박자로 시작했다가 점점 끈적해지는 방향으로 진행되더라. 가령 스트립쇼 장면에서도 나중에는 블루스로 변한다. 컨트리 음악의 특징은 1인칭이라는 점에 있다. 자기를 까서 보여주는 거. 컨트리는 자기가 겪은 이야길 하지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도 겪었다는 느낌을 준다. 영화에서도 모든 여자들이 다 자기 얘기라고 생각하고 쳐다본다. 그 다음에 블루스적인 게 등장한다. 맨 끝에 거지로 보이는 여자가 마이크를 받아 노래를 했을 때, 결국엔 컨트리가 아니라 블루스 풍의 가스펠로 끝나서 인상 깊었다. 이 영화는 얼핏 컨트리가 주인공인데, 그것을 감싸는 것이 군가, 가스펠, 블루스이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음악이 등장하는데, 그것들이 영화에서 다 각자의 시간을 이룬다고 생각된다. 이런 음악들이 충돌하고 서로 바라보는 효과가 있더라.

허남웅:
각자의 음악을 부여했다고 말씀하셨는데, <내쉬빌>의 시나리오 자체가 대략적인 이야기만 완성한 채, 각 연기자들이 좋아하는 음악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연주를 직접 할 수 있도록 연습하면서 음악들에 대해 구분을 지었다고 한다.
성기완: 내쉬빌에 '홍키통크'라는 이름이 바가 있는데 '홍키'는 백인을 뜻하고 '통크'는 피아노의 상표다. 누가 오면 바에 올려서 노래도 시키고 하는 시골스러운 분위기다. 영화에 정치적인 색채도 집어넣었는데, '희망'이라던 사람도 선거자금을 모으려고 여자한테 스트립쇼도 시키지 않나. 이런 것들이 70년대 중반의 미국이라는 복잡한 시대를 드러내는 것 같다. 몰락의 시기랄까. 몰락의 전조랄까. 무언가 반추해볼 만한 시대를 대표하지 않나 싶다.
허남웅: 마지막 장면을 보면 최근에 보여지는 한국적인 상황과 흡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벌어지는 충돌도 있고 자동차 충돌도 있다. 영화 속에서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자동차 충돌을 넣은 게 아닌가 싶었다.

관객1: 내쉬빌도 그렇고 미국 영화에 국기가 자주 나오는데, 그게 어떤 심리로 그러는지 궁금하다.
성기완: 영화에서 기름통에 국기가 새겨진 오토바이를 타고 국경을 넘어서 멕시코에서 마약을 가져오는데, 그런 반체제적인 부분에서 국기를 사용했다. 성조기를 자주 활용하는 건, 내 생각에는 하나로 모을 게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미국이란 나라가 워낙 인종도 종교도 모든 게 다양하고 가지가지이기 때문에, 뭔가 하나 포장할 게 필요한데 그게 성조기가 아닐까 싶다. 그것들의 밑바닥에 있는 게 뭘까. 미국사람들이 흑인 노예를 부렸지 않나. 그 사람들이 가졌던 죄의식과 그 죄의식 아래에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리듬인 블루스가 죄다 밑바닥에 있는 것 같다. 무의식의 밑바닥에 있는 거다. 이게 신화의 핵심인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어떤 신성화된 지역이 있는 거고, 그런 게 '딥 싸우스'가 된 것 같다. <내쉬빌>은 각 지역의 음악적인 여러 모델들이 결합하는 방식들을 보여주는 영화인 것 같다. 그리고 미국 남부 사람들이 간직했던 음악적 리듬들이 전 세계로 퍼지는 게 20세기 대중음악의 흐름이 아닐까 싶다.


관객2: 박자 설명이랑 음악 설명이 도움이 많이 됐다.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박자가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하다.
성기완: 외국의 박자는 맥박에 맞춰져 있는데, 우리는 호흡에 기반 한다. 농악의 장단은 흑인 음악의 비트 운용 방식과 비슷한데, 커다란 비트로 엑센트를 주면서 세부적인 비트의 다발들을 묶어나가는 것이다. 묶인 다발들이 레이어를 쌓아가면서, 그것들을 다시 풀어서 엮어나가는 방식들이 있다. 지금 전 세계에서 각 지역마다의 로컬한 리듬의 다발과 흑인들에게서 나온 미국적 대중음악의 리듬을 어떻게 결합시키는지 주목할 만하다.

관객3: 블루스를 이해하면 모든 음악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도 있고, 남부 음악에서 영향을 받은 유명한 밴드도 많다. 미국 내에서 지역 색채가 강하며 영향력이 큰 것 같은데 이에 대해 말씀 부탁드린다.
성기완: 컨트리의 가사는 자기 시점으로 '내가 어떻게 어렵게 살았나' 얘기하는 거다. 자기 얘기를 하는 걸 들어보는 기회, 그런 뿌리 깊은 어떤 것을 컨트리가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음악적인 당당함과 쿨함, 그리고 자기 얘기들, 그리고 여전히 유럽적인 방식으로 감싸고 있는 리듬들 때문에, 백인들이 놓치기 어려운 것 같다.

정리 박영석(관객에디터) | 사진 임유정(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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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은 할리우드로 넘어가 작업하던 막스 오퓔스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윤무 La Ronde〉(1950)에 이어 두 번째로 연출한 작품이다. <윤무>에서처럼 <쾌락> 역시나 내레이션이 등장하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에피소드 형식으로 진행되며 트레이드마크라 할 만한 우아한 카메라 움직임이 여전하다는 점에서 막스 오퓔스의 영화적 세계가 심화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영화는 기 드 모파상의 작품을 원작삼아 ‘쾌락’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쾌락>의 내레이션은 <스팔타커스>로 1961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피터 유스티노프가 맡았다. 스탠리 큐브릭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 중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유일한 경우다.) 첫 번째 에피소드 ‘가면’은 지나간 젊음이 아쉬워 가면을 쓰고 무도회장에 들러 여성들에게 구애하는 노인의 이야기이고, ‘텔리에 부인의 집’은 조카의 성찬식에 참여하기 위해 창녀들과 함께 시골로 가는 텔리에 부인의 사연이며, ‘모델’은 자신의 모델과 사랑에 빠진 쟝이라는 화가가 등장해 그리 달콤하지만은 않은 사랑의 면모를 보여준다.
막스 오퓔스는 <쾌락>의 내레이션을 통해 행복에 대해 이런 생각을 드러낸다. “행복은 그저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이 영화의 에피소드에서 보이는 쾌락의 실체는 지극히 짧고 제한적이다. ‘가면’의 노인의 경우, 무도회장에서 만난 여인들과의 짧은 쾌락 이후 나이를 이기지 못해 쓰러지고 마는데 그렇게 된 사연의 이면에는 오랫동안 젊음을 그리워해온 회한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모델’의 화가 쟝 역시 상대 모델과 뜨거운 인연을 이어가지만 사랑의 유통기한은 그리 길지 못하다. 연애 초반에는 잠시만 떨어져도 안달 나는 사이였다가 이내 관심이 멀어지면서 서로에게 상처주고 비수를 꽂는 남보다도 못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연극 연출가로 일한 경력 때문인지, 막스 오퓔스의 영화는 무도회장(‘가면’), 기차 안(‘텔리에 부인의 집’), 집안(‘모델’)과 같은 실내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까닭에 오퓔스 감독은 실내에 어울릴만한, 그러니까 제한된 공간에서의 카메라 이동에서 탁월한 성과를 이끌어냈다. <쾌락>에서도 그런 카메라 이동의 미학은 여전히 눈을 사로잡는데 ‘가면’에서 젊은이로 분장한 노파가 여인의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장면에서의 카메라는 빙글빙글 돌아가며 우아한 움직임을 뽐내고 ‘모델’에서는 쟝에게 버림받은 여자가 계단을 뛰어올라가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이 카메라의 시점이 되어 실제적인 느낌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 오퓔스의 카메라 이동 미학은 계단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이 계단의 미장센에는 오퓔스가 품고 있는 행복에 대한 생각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찰나의 쾌락 뒤 찾아오는 씁쓸한 비애가 짧은 상승과 급격한 하강이라는 계단의 이미지 속에 덧씌워져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영화평론가 크리스 후지와라는 “오퓔스의 영화에는 스타일이 있다. 숙련된 장식가들은 의미의 부재를 은폐하기 위한 예쁘장한 터치들을 ‘스타일’이라고 말하지만 오퓔스의 스타일은 오히려 의미를 생산한다.“고 평했다. 또한 스탠리 큐브릭의 초기 영화를 보면 유별나게 부드러운 카메라, 복잡한 크레인, 그리고 바람에 날리는 듯한 돌리의 움직임 등에 오퓔스의 영화가 보여준 매혹적인 숏의 운용이 어렵지 않게 감지된다. 또한 2편의 영화에서 함께 작업한 배우 제임스 메이슨은 막스 오퓔스의 카메라 움직임에 대한 짧은 시를 남기기도 했다. 믿거나 말거나.


A shot that does not call for tracks 트랙이 필요하지 않는 숏이란
Is agony for poor old Max, 불쌍한 늙은 막스에겐 고통일지니
Who, separated from his dolly, 달리에서 떨어지자
Is wrapped in deepest melancholy. 깊고 깊은 멜랑콜리에 싸이네
Once, when they took away his crane, 한번은 크레인을 뺏기자
I thought he'd never smile again. 다시는 미소 짓지 않을 사람처럼 굴었지

글/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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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당신과 나의 전쟁> 태준식 감독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소재의 무거움에 함몰되지 않고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형식의 실험과 사례의 활용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에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9 1일부터 8일까지 '다큐멘터리의 진실의 정치학'이란 제하로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의 주목할 만한 8편의 작품을 모은 특별전을 열고 있다. 이 중 지난 9 1일 저녁에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현장을 기록한 다큐 <당신과 나의 전쟁>이 상영되었고, 상영 후 이 영화를 연출한 태준식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 현장의 일부를 옮긴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영화를 보니 당시 현장 상황은 이렇게 보는 것 보다 훨씬 더 심각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태준식(영화감독): 시기상으로 싸움이 한창 치열했을 때는 바깥에 있었다. 오히려 싸움이 끝나고 나서 굉장히 음울하고, 죽어있는 평택을 보게 된 경우다. 그때부터 자살 시도를 하시는 분들이나 정신 질환이 생긴 분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다들 먹고 살기도 막막했다. 게다가 노동자들 역시 정리해고, 징계, 구속 등 굉장히 다양한 성격의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하나의 대오를 만들어 단결의 접점을 찾기가 굉장히 힘들었고, 노조를 재건하는 일 역시 어려웠다. 영화의 마지막에 잠깐 나오는 정리해고자특별위원회 역시 간신히 만들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는 좀 더 많은 것을 느꼈다.

허남웅:
이 작품에는 감독님이 직접 찍으신 분량 외에 다른 분들이 찍은 분량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진행하게 되셨는지?
태준식: 예전에 노동자뉴스제작단에서 오래 활동을 했었다. 쌍용차 파업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그런 영상활동가들이 꽤 많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현장에 카메라가 많다. 개인적으로 촬영하시는 분들도 많고, 칼라TV도 있고, 특히 현장에서 촬영되었던 화면은 거의 대부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교육부장님이 촬영하신 것이다. 그런 소스들을 모으니 테이프가 300개 정도 되더라. 그것들을 프리뷰 하고, 동시에 제가 촬영을 해야 하는 부분은 다시 촬영을 진행하는 식으로 작업했다. 사실 <당신과 나의 전쟁은>, 이 작품의 프로듀서를 맡아주었던 상황실장이 현장에서 쌓아두었던 관계들, 그리고 오랫동안 미디어 영상 활동을 해왔던 사람들의 노력이 모여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는 그것들을 편집해서 모아 두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허남웅: 300개는 어마어마한 분량인데, 어떤 기준으로 편집을 하셨는지 궁금하다.
태준식: 사실 300개라고 해도 거의 250개가 집회다. 사실 고르는 어려움은 별로 없었다. (웃음) 어쨌든 명확하게 패배한 싸움이고 비극적인 상황이긴 했지만 애초에 노동자 계급의 가열찬 선동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화면을 보기보다는 이런 저런 글 자료들을 보면서 싸움의 주요한 포인트들을 잡았고, 다행히도 그런 포인트들의 영상이 대부분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가지고 싸움의 전 과정을 잘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를 고민했다.

허남웅: 영화의 제목이 <당신과 나의 전쟁>이다. 결국 우리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내용들을 다루고 있는데, 영화를 시작하기 전부터 잡으신 방향성인지 혹은 영화를 만들면서 깨달으신 바인지 궁금하다.
태준식: 제목은 다른 데서 모티브를 얻은 것인데, 원래는 <당신과 나의 계급투쟁>이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그건 좀 아니라고 해서. (웃음) 조직된 대중들에게 이 작품을 보여주겠다는 생각보다는 쌍용차 파업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제목을 애초부터 정하고 들어간 거고, 결국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있었던 거다.

허남웅:
작품 전체가 결국 쌍용차 파업에 대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 안의 여러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신동기 씨가 주요하게 등장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태준식: 원래 영화의 라인을 잡아 줄 특정한 인물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고, 아까 말씀 드렸듯이 싸움의 결과로 피해를 입은 여러 성격의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사실 정리해고자나 구속자들을 통해 제가 생각했던 작품의 메시지를 담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바 산 자였던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싸움에 동참하게 되는 경우가 더 적합할 것 같았다. 촬영을 시작했을 때 신동기 씨는 해고는 아니었다.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정도였는데 결국 해고가 되셨다. 사실 함께 공장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전쟁 같은 싸움에 동참한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리라 생각하는데, 실제로 그런 분들이 6, 70명 가량 있었다. 자신에게 어떤 결과가 돌아올지 뻔히 알면서도 그 많은 분들이 왜 버텨내면서 함께 싸움을 했을까, 하는 부분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징계위원회를 찾았고 몇 분을 만나보았다. 당시 싸움이 거의 끝나는 상황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일을 술로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제가 주요하게 삼을 인물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마침 신동기 씨를 찾은 것이다. 쉽지 않은 결정을 했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들어보고 싶었다. 촬영을 하면서 그 친구에게 영향을 받은 부분도 굉장히 많다.

허남웅: 사실 8월에 싸움이 끝났는데 10월에 사람들을 찾고 자료를 조사한다는 것이 어떤 면에서 그분들에게는 아팠던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신동기 씨의 경우도 설득의 과정이 많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태준식: 영상활동가들의 숙명 같은 것이기도 하지만, 현장에 계신 분들과 '동지, 동지' 하기는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가면 딱히 믿음을 주시지 않는다. 사실 방송국도 아니고, 다큐를 만들어서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도 아니고, 그런 느낌이 당연히 있다. 그래서 항상 설득하기가 상당히 힘들다. 그런데 신동기 씨 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흔쾌히 응해주었고, 또 다른 인터뷰이 같은 경우에는 처음 조직을 다시 추스릴 때 정리해고자특별위원회 의장을 맡으셨던 분이다. 그러다 보니 직접 인터뷰도 하시고 사람 찾는 데도 도움을 많이 주셨다.


허남웅: 그런 분들의 이야기가 부각되다 보니, <당신과 나의 전쟁>은 쌍용차 파업이 일어나게 되는 현상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안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교감을 얻어내거나 동의하자고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편집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태준식: 신동기 씨는 정말 전형적이고 평범한 사람이다. 자기 주위의 동료들이 부당하고 합리적이지 않은 일을 당했을 때 아주 자연스럽게 싸움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300만원 가까이 받던 급여가 80만원으로 뚝 떨어지는 삶의 고통이나 아픔 같은 것을 잘 몰랐던 사람인 거다. 그 분이 그런 일종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에까지 함께 있었는데, 지켜보는 것도 굉장히 힘들었다. 결국 이런 사람이, 당신이 될 수도 있고 내가 될 수도 있는 이런 사람이 어떤 과정을 겪게 되는지 사람들에게 좀 알려주고 싶었다.

정리: 박예하 관객에디터 사진: 주원탁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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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청계천 메들리>의 박경근 감독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소재의 무거움에 함몰되지 않고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형식의 실험과 사례의 활용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에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9월 1일부터 8일까지 '다큐멘터리의 진실의 정치학'이란 제하로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의 주목할 만한 8편의 작품을 모은 특별전을 열고 있다. 이 중 지난 9월 2일 저녁에는 탈다큐멘터리적인 다큐로 새로운 형식의 보여준 <청계천 메들리>가 상영되었고, 상영 후 이 영화를 연출한 신예 미디어 아티스트 박경근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전한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번 프로그램은 다큐멘터리 진실의 정치학이다. 보신 작품은 <청계천 메들리>. 박경근 감독님이 연출하셨는데 다큐멘터리면서 탈다큐적인 작품이었다. 다큐멘터리라고 프로그램에 넣었지만 애니메이션도 등장하고 극영화 같은 성격도 보인다. 음악사용도 독특했다. 단순히 다큐멘터리로 설명하긴 부족한 면이 있는 듯하다. 어떤 생각으로 작품 준비하셨는지 궁금하다.
박경근(영화감독, 미디어 아티스트): 2004년부터 미술가그룹에서 활동했다. 거기서 청계천 지역과 서울의 도시 환경을 기록하는 작업을 했다. 청계천을 아카이브화 하는 미술작업을 했다. 그러다가 지원을 받아 영상작업을 하게 되었고 제가 영상파트를 커미션 받아 하게 되었다. 청계천이 저에게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것은 서울의 얼마 남지 않은 역사의 흔적 같은 것이 남아있는 공간이라서 서울 어느 공간보다 자연스러운 공간인 것 같다. 흔적 같은 것이 자연스레 쌓여있는 공간, 그런 것에 매력을 느꼈다. 공포 영화세트 같은 매력적인 공간이다. 그래서 끌렸다.

허남웅
:
영화를 보면 개인사도 느껴진다. 어려서부터 감독님 아버님이 외교관이셔서 해외를 많이 돌아다녔다고 알고 있다. 그런 가족사로 들어가게 된 경위에 대해 알고 싶다.
박경근: 영화를 편집할 때 이 스토리를 어떻게 만들까 고민을 많이 하는데 사실 찍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찍었다. 매일 가서 일상적인 것을 찍고 재미있는 일 생기면 찍었다. 다큐 작업이 거의 70~80퍼센트는 편집으로 만드는 것 같다. 편집하면서 스토리들을 만들어 나갔다. 개인적인 이야기 중 반은 픽션이고 반은 사실이다. 하지만 편집에서 지키려고 노력한 건 하나 있다. 항상 내가 외부인의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걸 숨기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제가 청계천에서 자란 것도 아니고, 말씀하셨듯이 외국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인으로써 들어가서 카메라 앞의 대상들과 생기는 관계, 거기서 생기는 충돌들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런 부분을 신경 많이 썼다.

허남웅: 거창하지만 다큐멘터리의 윤리라고 하면 진실을 말하는 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감독님은 픽션이 가미 되었다고 하셨는데.
박경근: 일반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다큐멘터리는 픽션적인 부분이 많다. 진실이다, 믿어라 하는 다큐멘터리는 싫어한다. 왜냐면 어차피 카메라를 들어서 들이 대는 게 가공이다. 그걸 무시하고 작업을 진행하면 허상이 너무나 자세하게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지 자체가 허상이라는 걸 인식하면서 작업하는 것과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차이가 많은 것 같다.

허남웅
:
이 다큐멘터리는 탈다큐멘터리적인 형식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보면 청계천의 쇠를 다루는 노동자, 그러니까 쇠를 가지고 이야기를 다룬다.
박경근: 제가 이걸 찍을 때 이런 형식을 하겠다라는 생각은 안 했다. 찍고 편집하려다 보니 뭔가 이게 기존 방식으로 표현하려던 것들을 못하는 한계에 이르렀다. 내용이 큰 드라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투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건 청계천에 대한 뭔가 보편적인 의미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하다가 이런 형식이 되었다.

허남웅: <청계천 메들리>가 영화제에서 주로 상영되었다. 아직 정식 개봉을 한 것은 아니다. 극장에서 상영이 되기도 했지만 설치미술로 전시되기도 했다. 사실은 아핏차퐁 감독의 <엉클 분미>도 그런 형태로 작업이 이루어졌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
박경근: 미술하는 사람이 영화를 만들고 하는 게 많이 있는데, 요새는 더 많이 부각 되는 것 같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경계는 없다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영화라는 자체가 이미지로서 체험하는 것이라 내러티브가 있던 없던 우선 이미지로 체험하고 그 후에 이야기를 받아 들인다고 생각한다. 제가 미술관에서는 설치미술을 내러티브없이 이미지로만 5채널로 5개의 스크린으로 했는데 이미지로 표현이 다 되었다고 생각한다. 미술관과 영화관이 이미지를 체험하는 방식이 궁극적으로는 비슷하다고 본다.


허남웅: 갑자기 궁금해진다. 감독님의 직업이 영화감독인지 미디어 아티스트 인지?

박경근: 영화관에 오면 감독 미술관가면 작가라고 한다.

허남웅: 인간의 역사라기보다 쇠의 역사를 통해서 인간을 본다라는 느낌이 있다. 인간이 오히려 뒤로 물러나는 느낌을 받았다. 이걸 처음부터 의도 하신 건지? 편집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박경근: 그 아이디어는 촬영하면서, 관찰하면서 생각한 건데 여기 나오는 기술자 분들의 종목,  예를 들어 선반 돌리는 분, 쇠 주물을 하시는 분, 목형 만드시는 분, 이런 다양한 기술하는 기술자 성격이 달랐다. 주물은 작업을 같이해야 한다. 누가 쇠를 부으면 누가 받아야 한다. 영화에 나왔듯이 여러 명이 작업한다. 그래서 사람간의 관계가 더욱 친밀하고 더욱 끈적한 관계다. 맨날 작업하다가 술 마시러 간다. 그러나 정밀분야는 항상 혼자다. 정밀은 세밀하게 1mm 가지고 고민한다. 그렇다면 이분들의 성격을 사실 그러한 쇠 자체가 바꾸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따지면 인간이 쇠를 다루는 게 아니라 쇠가 인간을 다듬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야기를 확장하자면 문명에 대한 이야기도 되겠다. 산업화가 인간을 위한 게 아니라 산업화를 위해 인간이 희생되는 주체 객체가 바뀌는 그런 현상이 생각 외로 많은 것 같다.

허남웅: 감독님의 작업은 정체성을 찾아가는 작업으로 보인다.
박경근: 제 생각에는 종은 창작물은 자기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힘이 없다고 보인다. 카메라 앞의 대상만 중요시하는 진실을 봐라이런 류의 다큐의 힘이 부족한 이유가 예전 보다 정보가 많고 이야기도 많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보다는 그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하고 누가 이야기할건지가 중요해 질 것 같다. 좋은 작품은 자아성찰이나 자기의 반성이 꼭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허남웅: 이번 작업 끝내고 또 다른 계획이 궁금하다.
박경근: 다음은 군대에서 있던 일을 소재로 다루려고 한다. 악몽 시리즈의 하나다. 사회가 문제지만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가진 문제들이 사회 문제기도 하다.

허남웅: 한국인이라면 군대체계가 우리 사회에 박혀있어서 이것이 공포로 다가온다. 감독님에겐이것이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박경근: 군대는 싫다. 다 똑같이 느낄 거다.

허남웅: 이 작품을 보면 경계의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경계에 있고 다큐멘터리면서 아닌 부분도 있고 말이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다. 끝으로 다큐멘터리 작업하시면서 매체의 매력, 여전히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박경근: 매체는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매체를 쓸 때 그 매체를 어떻게, 누가 쓰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디어 아트의 장점은 빛을 이용한 장점이라고 본다. 기존의 조형물 보단 더 가벼운 표현방식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동시성, 그런 것 들을 포착해내는 것이 미디어 아트가 아닌가 정의를 내리고 있다.

정리: 정태형(관객 에디터) 사진: 조유성(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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