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당신과 나의 전쟁> 태준식 감독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소재의 무거움에 함몰되지 않고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형식의 실험과 사례의 활용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에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9 1일부터 8일까지 '다큐멘터리의 진실의 정치학'이란 제하로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의 주목할 만한 8편의 작품을 모은 특별전을 열고 있다. 이 중 지난 9 1일 저녁에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현장을 기록한 다큐 <당신과 나의 전쟁>이 상영되었고, 상영 후 이 영화를 연출한 태준식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 현장의 일부를 옮긴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영화를 보니 당시 현장 상황은 이렇게 보는 것 보다 훨씬 더 심각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태준식(영화감독): 시기상으로 싸움이 한창 치열했을 때는 바깥에 있었다. 오히려 싸움이 끝나고 나서 굉장히 음울하고, 죽어있는 평택을 보게 된 경우다. 그때부터 자살 시도를 하시는 분들이나 정신 질환이 생긴 분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다들 먹고 살기도 막막했다. 게다가 노동자들 역시 정리해고, 징계, 구속 등 굉장히 다양한 성격의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하나의 대오를 만들어 단결의 접점을 찾기가 굉장히 힘들었고, 노조를 재건하는 일 역시 어려웠다. 영화의 마지막에 잠깐 나오는 정리해고자특별위원회 역시 간신히 만들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는 좀 더 많은 것을 느꼈다.

허남웅:
이 작품에는 감독님이 직접 찍으신 분량 외에 다른 분들이 찍은 분량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진행하게 되셨는지?
태준식: 예전에 노동자뉴스제작단에서 오래 활동을 했었다. 쌍용차 파업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그런 영상활동가들이 꽤 많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현장에 카메라가 많다. 개인적으로 촬영하시는 분들도 많고, 칼라TV도 있고, 특히 현장에서 촬영되었던 화면은 거의 대부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교육부장님이 촬영하신 것이다. 그런 소스들을 모으니 테이프가 300개 정도 되더라. 그것들을 프리뷰 하고, 동시에 제가 촬영을 해야 하는 부분은 다시 촬영을 진행하는 식으로 작업했다. 사실 <당신과 나의 전쟁은>, 이 작품의 프로듀서를 맡아주었던 상황실장이 현장에서 쌓아두었던 관계들, 그리고 오랫동안 미디어 영상 활동을 해왔던 사람들의 노력이 모여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는 그것들을 편집해서 모아 두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허남웅: 300개는 어마어마한 분량인데, 어떤 기준으로 편집을 하셨는지 궁금하다.
태준식: 사실 300개라고 해도 거의 250개가 집회다. 사실 고르는 어려움은 별로 없었다. (웃음) 어쨌든 명확하게 패배한 싸움이고 비극적인 상황이긴 했지만 애초에 노동자 계급의 가열찬 선동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화면을 보기보다는 이런 저런 글 자료들을 보면서 싸움의 주요한 포인트들을 잡았고, 다행히도 그런 포인트들의 영상이 대부분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가지고 싸움의 전 과정을 잘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를 고민했다.

허남웅: 영화의 제목이 <당신과 나의 전쟁>이다. 결국 우리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내용들을 다루고 있는데, 영화를 시작하기 전부터 잡으신 방향성인지 혹은 영화를 만들면서 깨달으신 바인지 궁금하다.
태준식: 제목은 다른 데서 모티브를 얻은 것인데, 원래는 <당신과 나의 계급투쟁>이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그건 좀 아니라고 해서. (웃음) 조직된 대중들에게 이 작품을 보여주겠다는 생각보다는 쌍용차 파업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제목을 애초부터 정하고 들어간 거고, 결국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있었던 거다.

허남웅:
작품 전체가 결국 쌍용차 파업에 대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 안의 여러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신동기 씨가 주요하게 등장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태준식: 원래 영화의 라인을 잡아 줄 특정한 인물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고, 아까 말씀 드렸듯이 싸움의 결과로 피해를 입은 여러 성격의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사실 정리해고자나 구속자들을 통해 제가 생각했던 작품의 메시지를 담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바 산 자였던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싸움에 동참하게 되는 경우가 더 적합할 것 같았다. 촬영을 시작했을 때 신동기 씨는 해고는 아니었다.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정도였는데 결국 해고가 되셨다. 사실 함께 공장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전쟁 같은 싸움에 동참한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리라 생각하는데, 실제로 그런 분들이 6, 70명 가량 있었다. 자신에게 어떤 결과가 돌아올지 뻔히 알면서도 그 많은 분들이 왜 버텨내면서 함께 싸움을 했을까, 하는 부분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징계위원회를 찾았고 몇 분을 만나보았다. 당시 싸움이 거의 끝나는 상황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일을 술로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제가 주요하게 삼을 인물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마침 신동기 씨를 찾은 것이다. 쉽지 않은 결정을 했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들어보고 싶었다. 촬영을 하면서 그 친구에게 영향을 받은 부분도 굉장히 많다.

허남웅: 사실 8월에 싸움이 끝났는데 10월에 사람들을 찾고 자료를 조사한다는 것이 어떤 면에서 그분들에게는 아팠던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신동기 씨의 경우도 설득의 과정이 많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태준식: 영상활동가들의 숙명 같은 것이기도 하지만, 현장에 계신 분들과 '동지, 동지' 하기는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가면 딱히 믿음을 주시지 않는다. 사실 방송국도 아니고, 다큐를 만들어서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도 아니고, 그런 느낌이 당연히 있다. 그래서 항상 설득하기가 상당히 힘들다. 그런데 신동기 씨 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흔쾌히 응해주었고, 또 다른 인터뷰이 같은 경우에는 처음 조직을 다시 추스릴 때 정리해고자특별위원회 의장을 맡으셨던 분이다. 그러다 보니 직접 인터뷰도 하시고 사람 찾는 데도 도움을 많이 주셨다.


허남웅: 그런 분들의 이야기가 부각되다 보니, <당신과 나의 전쟁>은 쌍용차 파업이 일어나게 되는 현상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안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교감을 얻어내거나 동의하자고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편집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태준식: 신동기 씨는 정말 전형적이고 평범한 사람이다. 자기 주위의 동료들이 부당하고 합리적이지 않은 일을 당했을 때 아주 자연스럽게 싸움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300만원 가까이 받던 급여가 80만원으로 뚝 떨어지는 삶의 고통이나 아픔 같은 것을 잘 몰랐던 사람인 거다. 그 분이 그런 일종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에까지 함께 있었는데, 지켜보는 것도 굉장히 힘들었다. 결국 이런 사람이, 당신이 될 수도 있고 내가 될 수도 있는 이런 사람이 어떤 과정을 겪게 되는지 사람들에게 좀 알려주고 싶었다.

정리: 박예하 관객에디터 사진: 주원탁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