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의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파스칼의 내기’라고 불리는 흥미로운 논증을 제시한다. 신을 믿을 경우, 신이 없으면 아무런 이득도 없지만 신이 있으면 천국에 간다. 그러나 신을 믿지 않을 경우 신이 없으면 아무런 이득도 없고 신이 있으면 지옥에 간다. 그러므로 신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면 신을 믿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에릭 로메르는 이를 사랑에 적용한다. 파스칼의 내기에 대한 로메르식의 해석인 <겨울 이야기 Conte d'hiver>(1992)는 믿음과 대한 작고 기적 같은 이야기이다.



펠리시(샤를로트 베리)는 휴양지에서 샤를르(프레데릭 반 덴 드리에슈)를 만나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져 이상적인 나날을 보낸다. 휴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샤를르에게 주소를 건넸지만, 5년이 흐른 뒤에 그녀는 그때 생긴 딸을 키우며 여전히 샤를르를 기다리고 있다. 미용사 일을 하며 애인인 로익(에르베 퓌릭)의 집에서 지내던 펠리시는 또 다른 애인인 맥상스(미셸 볼레티)를 따라 느베르로 이사하게 되지만, 보채는 딸에게 마지못해 이끌려 들어간 성당에서 묘한 깨달음을 얻고 파리로 돌아온다.



펠리시의 여러 얼굴을 자주, 그리고 진중하게 담아내는 이 영화에는 그녀의 시점숏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 한 번, 샤를르와 비슷한 사람을 쫓아 시장으로 들어갔을 때 쓰이는 시점숏은 어느 특정한 인물도 주목하지 않고 수많은 익명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때의 프레임은 텅 빈 것과 마찬가지다. 심지어 샤를르와 펠리시가 휴양지에서 사랑에 빠져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오프닝 시퀀스를 보고 나서 명확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펠리시의 얼굴뿐이다. 숏의 빈도나 지속시간, 앵글까지 모두 온전히 펠리시에게 집중되어있다. 이는 <겨울 이야기>의 시선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펠리시는 영화 내내 한결같이 샤를르를 기다리며, 주변의 모든 인물들과 샤를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샤를르가 돌아오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 쪽이 되었든 펠리시는 샤를르가 돌아올 것을 믿으며 그를 기다리는 것이다. <겨울 이야기>가 응시하는 것은 다름 아닌 펠리시의 그 믿음이다.



그러나 “나는 도식화를 원치 않는다.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Ma nuit chez Maud>(1969)에서 나는 한 명의 맑시스트와 한 명의 카톨릭주의자를 보여주는 것이지, 맑시스트와 카톨릭주의자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라는 로메르의 말처럼, 영화의 라스트에 펠리시에게 찾아오는 기적이 믿음에 대한 강요나 약속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을 가지고 살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믿음을 가지고 살면 기적이 찾아올 것이라고 약속하는 것도 아니다. 파스칼의 내기는 여전히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이라는 단서를 가지고 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믿어보기로 하는 것이다. 펠리시에게 찾아오는 기적은 파스칼의 내기에 응할 용기를 준다. 로메르와 눈을 맞추고 그것을 건네받을 수 있는 이들에게, <겨울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소박한 기적이, 희미하지만 분명히 빛나는 녹색광선이 된다. (박예하: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1월. 25일. 14:00 에릭 로메르의 <겨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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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에릭 로메르의 <겨울 이야기>


<겨울 이야기>의 주인공 펠리시는 미용사다. 그녀는 ‘미’를 다루는 게 자신의 직업이고, 그래서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펠리시는 세 명의 남자와 만나고, 그 세 명 중 누구를 선택할지 고민한다. 선택의 기준은 미적 취향에 의거한다. 펠리시는 먼저 동년배의 친구 로익과 자신이 일하는 미장원의 사장 맥상스를 두고 고민한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로익은 지적이고 부드러운 남자이지만 펠리시는 그에게 위축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펠리시의 미적 기준은 지혜와 강인함이다. 로익을 마음에 들어 하는 홀어머니는 남자의 아름다움이 지적 능력에 있다고 말하지만, 펠리시는 경험에서 오는 지혜를 갖고 있고 육체적으로 강하고 아름다운 남자를 좋아한다. 영화의 한 장면, 느베르에서 펠리시는 맥상스와 거리의 고고학 박물관을 둘러본다. 전통도자기 가게 앞에 멈춘 펠리시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 나오는 비너스와 활과 화살을 든 큐피트 그림이 그려진 도자기를 본다. 비너스는 미의 여신이고 큐피트는 사랑의 신이다. 이 장면은 비너스와 큐피트의 관계를 빌어 미적 취향이 사랑을 낳는다는 가치를 보여주는 듯하다.



펠리시는 여름 브르타뉴의 해변에서 우연히 샤를르를 만나 짧은 사랑을 나누고 파리로 돌아오는 기차역에서 서로의 연락처를 나누다 실수로 틀린 주소를 가르쳐주어 다시는 그를 만나지 못한다. 그의 아이를 낳게 되면서 펠리시는 언제까지 그를 기다려야 할지를 두고 고민에 빠진다. 이 영화에서 겨울은 차갑고 혹독하다. 긴 기다림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로익이 읊는 빅토르 위고의 시도 기나긴 겨울의 혹독한 기다림을 상징한다. “황폐해진 겨울 거리에. 사물의 두께 밑에. , 나무, 야수, ,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은 무게. 엄청난 깊이에. 영혼이 꿈꾸네. 그것은 무엇인가? 신의 꿈이라네.



맥상스와 헤어져 파리로 돌아온 펠리시는 로익과 세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를 관람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장면은 왕비가 죽은 후 15년이 지난 뒤 왕과 딸이 서로 만나는 장면이다. 딸을 만난 왕비는 이렇게 말한다. “신이시여, 당신의 은총을 나의 딸의 머리 위에 내려주소서. 신께서 네게 희망을 줄 것을 알고 있었기에 결과를 알기 위해 내 자신을 지켜왔단다.” 모성의 지극한 사랑을 담은 이 작품을 보며 펠리시는 믿음이 그를 살린 거라 생각한다. 로메르는 여기서 믿음과 기적의 문제를 펠리시의 선택과 연결한다. 로익은 그녀에게 샤를르를 만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그러기에 인생을 망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펠리시는 그러나 다른 생각이다. 그녀는 자신이 샤를르를 다시 찾는다면 그건 정말 놀라운 일이며, 그걸 위해 삶을 기꺼이 바칠 만큼 큰 기쁨이기에 희망을 갖고 사는 게 가치 있는 삶이라 말한다. 펠리시의 주장은 로익이 말하듯이 파스칼의 ‘내기’와 비슷한 점을 갖고 있다. 파스칼은 영혼의 불멸에 내기를 걸 때, 그 이득은 희박한 가능성을 보상할 정도로 무한하지만, 영혼이 불멸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믿는다면 믿지 않는 것보다 더 잘 살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오랜 기다림 끝에 펠리시는 신이 내린 축복처럼 소박한 사랑의 기적을 얻는다. 이는 지극히 로메르적인 결말이다. 로메르는 유작 <로맨스>에서 이와 비슷한 세계를 다시 한 번 그려냈다. (임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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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에릭 로메르의 부음을 접하면서 과거의 추억이 떠올랐다. 2001년 7월 29일. ‘문화학교 서울’ 주최로 아트선재센터 지하에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에릭 로메르의 17편의 작품을 상영하는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했었다. 당시 문화학교서울의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기획한 두 번째 회고전이었다. 지금에야 에릭 로메르는 시네마테크에서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인기 작가이지만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여름이야기>가 개봉당시 천명의 관객을 넘기지 못했을 정도로 그는 소수의 시네필들에게만 알려져 있던 인물이었다. 그러니까 2001년의 회고전은 로메르를 국내에 처음 온전하게 알리는 행사였다.


회고전에 즈음해 로메르의 영화사인 ‘로장주 필름’(로메르는 누벨바그 작가 중 거의 유일하게 자신의 영화사를 설립해 40년 동안 거의 전작을 그곳에서 독립 제작했다)을 통해 그가 직접 서신을 보내왔다. 친필로 쓴 팩스에는 ‘멀리 있는 친구들에게, 저희 모든 작품에 대한 당신들의 오마주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내 모든 감사와 따뜻한 우정의 표현을 받아주시길’이라는 짤막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당시 17편의 영화를 상영하면서 가장 역점을 두었던 것은 그의 ‘연작들’을 소개하는 것과 두 편의 시대극인 <O후작 부인>(76)과 <갈로아인 페르스발>(78), 그리고 여전히 미지의 작품으로 남아있는 <나무, 시장, 메디아테크>(93)를 상영하는 것이었다. <나무, 시장, 메디아테크>는 로메르적인 우연이 전체에 일관되게 작동하는 영화로 거의 책 한권 분량의 대사가 담긴 가장 ‘수다스런’ 영화다. 이 영화는 지금도 프랑스를 제외하자면 로메르의 영화들 중 전 세계적으로 많이 상영되지 않는 작품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로메르의 팬이라면 이 영화를 꼭 봐야만 한다!






그 때의 회고전 이래로 한국에서 로메르의 영화를 필름으로 만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영화는 덜 소개되어 있고, 덜 평가되어 있다. 그가 평생을 연애 이야기를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를 ‘연애박사’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특히나 그가 70년대에 만들었던 도시와 건축에 관한 다큐멘터리들을 살펴보는 일은 중요하다. 80년대 ‘희극과 격언 시리즈’의 무대가 되어있는 장소들은 사실 70년대에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를테면, <비행사의 아내>의 인조공원이나 <내 친구의 남자친구>의 파리외곽의 도시건축물들이 그러하다. 로메르는 영화가 ‘공간의 예술’이라 여긴 작가였다. 공간이 인물과 맺는 극적관계는 그의 영화에서 풍경과 자연이 그러하듯 언제나 중요하다.


로메르는 대단한 절약의 작가이기도 했다. 그는 영화가 선택의 예술이자 거절의 예술이라 여긴 사람이다. 영화는 불필요한 것을 없애는 것, 버려야할 부분을 버리는 것이기에 기술적 결함을 제외하자면 그는 놀랍게도 언제나 한 번의 촬영만을 했다고 한다. 그는 배우를 선택할 때 리허설을 하지 않았고, 연기지도를 절대 하지 않았다. 연기는 배우의 몫이라 여겼던 탓이다. 데뷔작을 제외하자면 그는 조감독을 평생 두지 않았고 단지 5-6명의 스태프로 영화를 만들었다. 시네마테크에서 무성영화로 영화를 배웠던 그는 영화가 문학이나 회화처럼 그 역사의 초기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변용해 뛰어난 영화가 나온다고 믿었던 사람이다. 가장 근대적인 화가가 결국은 가장 잘 과거의 화가를 이용한 사람인 것처럼, 그는 영화에서도 자연을 앞에 둔 인간의 감동을 가장 웅변적으로 표현한 거장들의 작품을 계승하고자 했다.


로메르는 ‘우연성을 믿는 것, 그것이 나의 영화적 방식이다’라 말한다. 이 발언은 그런데 그가 영화의 전권을 통제하는 작가를 옹호하는 ‘작가주의 정책’의 주창자였음을 감안할 때 미학적인 입장에서 무언가 작은 모순이 있음을 느끼게 한다. 작가주의는 통상적으로 반우연성의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작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영화의 모든 장면들에는 견고한 의미론적 연결이 존재한다. 히치콕, 프리츠 랑, 스탠리 큐브릭 등 그들만의 고유한 영화적 구조를 구축한 작가들의 경우 그러하다. 로메르는 그러나 다른 입장을 갖고 있다. 설사 인과론적인 연결이 존재할지라도 영화적 사건은 결정론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가령 그의 단편 옴니버스 영화 <파리의 랑데부>의 한 장면에서 우연히 장터에서 만난 낯선 사내는 남자친구의 새로운 애인에 대해 의혹을 갖는 여주인공 에스테에게 접근해 수작을 부린다. 그는 에스테에게 “항상 예외적인 만남은 가장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이루어진다고 확신 했었죠. 가령, 여행 중이나, 휴가의 마지막에 혹은 급한 약속이 있을 때요. 이건 내 불행이기도 하고,  또 행운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대담해지거든요”라 말한다. 에스테는 그에게 싫지는 않은 표정을 보이지만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의 표시로 “그래요, 하지만 당신도 알듯이, 늘 좋은 결과를 가져오진 않죠”라 응수한다. 로메르의 영화에서 이런 낯선 사람과의 우연한 만남과 예기치 않은 사건의 전개는 흔히 엿보인다. 가령, <봄이야기>에서는 목걸이의 실종과 우연한 목걸이의 발견이 발생하고 <겨울이야기>에서는 서로 헤어진 두 남녀가 우연히 수년이 지난 후에 버스 안에서 재회하는 사건이, 그리고 <여름이야기>에서는 세 명의 여성과 동일한 약속을 해 궁지에 몰린 남자가 우연히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위기를 모면하는 일이 벌어진다.






우연을 받아들이는 것은 영화연출에 있어서 대단히 위험스런 시도다. 스토리의 공백과 결여, 거대한 빈틈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메르의 영화에서 우연은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에게 우연은 생생한 현재, 신비로운 현재를 드러내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어떤 인과율과 결정론에 좌우되지 않는 현실의 불투명성과 애매함, 즉 무언가를 읽어내기 어려운 불분명함으로 가득한 생생한 현실이 신비롭게 드러난다. 여기서 우연은 마치 어떤 패가 보일지 알지 못하는 포커 판의 카드 패와도 같은 것으로 그 패들은 현실의 표면에 다만 덮여 있을 뿐이다. 아직 보이거나 드러나지 않은 불투명한 패의 향방에 따라 로메르적 사건이 발생한다. 그에게 영화는 마치 거친 바다 속을 항해하는 것과 같다. 진행하고 싶은 방향으로 가려해도 능숙하게 가지 못해 순풍대로 항해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는 다른 예술보다 우연에 좌우된다. 많은 영화작가들은 그러나 반대로 말하곤 했다. 사건을 준비하고, 모든 것을 조직해 계획을 세워 우연에 맡기는 것을 멈추어버린다. 로메르는 그러나 일견 부조리하고 무질서해 보이는 우연에 자신을 내어 놓아 자연의 바람과 흐름대로 영화를 이끌려가게 했다.


로메르의 영화에서 우연은 인물들의 실존적 선택의 문제와도 관련된다. 실존의 양식, 선택들, 거짓된 선택들, 그리고 선택에 대한 의식의 전체이야기가 그의 초기 ‘도덕이야기 시리즈’를 지배하고 이는 오랫동안 지속했다. 그런데 왜 이러한 것이 영화적인 중요성을 지니게 되는 것일까? <모드 집에서의 하루 밤>, 그리고 <겨울 이야기>에서 언급되는 파스칼의 ‘내기’는 신이 존재하는가 혹은 존재하지 않는가를 내기할 때 분별 있는 도박사라면 신이 존재한다는 데에 배팅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파스칼의 논증은 행위자가 행위를 선택할 때 결단의 결과에 따른 효용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로메르의 선택과 관련한 문제는 또한 키에르케고르의 미학적, 윤리적, 종교적 인간과 관련해 보다 풍요로워진다. 파스칼에서 키에르케고르에 이르는 하나의 매혹적인 사상이 말해주는 것은 들뢰즈의 표현을 빌자면 양자택일이 선택하는 사람의 실존 양식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때로는 도덕적 필연성에 의해(선, 올바름), 때로는 물리적 필연성에 의해(사물들의 상태, 상황), 때로는 심리적 필연성에 의해(어떤 것에 대해 가지는 욕망),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설득한다는 조건 위에서만 선택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하여, 키에르케고르를 경유한 로메르의 결론은 이러하다. 선택과 비-선택 사이에서 제기되는 선택이란 우리를 내밀한 심리적인 의식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외부 세계 저 편에 있는 바깥과 절대적인 관계를 맺게 한다. 이것만이 우리에게 세계와 자아를 다시 부여할 수 있게 한다. 이는 로메르의 영화가 지닐 수 있는 고귀한 주제이다. 그런데, 이 바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연, 혹은 은총인가? 여기에 우연의 놀이, 그리고 진정한 선택, 이를 통한 은총의 도래가 있다. 로메르의 유작인 <로맨스>는 이러한 것들의 집대성이었다. 몸과 영혼의 문제, 자연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문제, 남녀의 사랑에서 발생하는 오해와 거짓말들, 불멸의 문제 등이 망라되어 있다. 최종적 국면에서 인물들이 누리는 은총은 로메르가 평생을 걸쳐 영화에 담아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로메르의 명성에 비해 이런 신비로움은 적게 논의되어 있다. 이 작은 추모전이 로메르의 영화를 되돌아보는 기쁜 기회가 되기를 기원한다.(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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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벌써 여섯 번째를 맞았습니다. 2006년에 서울아트시네마의 안정적인 공간 마련과 재원확보를 위해 영화감독, 배우가 참여한 것이 벌써 6회에 접어든 것입니다. 아울러 서울아트시네마의 개관 또한 9년째를 맞았습니다. 매년 1월에 친구들과 영화로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는 행사가 친구들 영화제입니다.

올해는 친구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물음은 '당신에게 영화의 즐거움이 무엇인가'입니다. 지난해에 시네마테크는 물론이고 영화인들 상당수가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2011년에는 그런 시간을 넘겨 영화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영화의 향락을 낙원에서 누려보자는 취지입니다. 영화의 즐거움을 함께 하자는 것은 우리들의 욕망의 실현이 아니라 반대로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들을 누리자는 것입니다. 영화가 제공하는 즐거움은 다양합니다. 오래된 영화를 상영하는 기억의 극장을 찾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익명의 친구들과 감성적 교제를 나누는 일이나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의 거대한 스크린에서 빛을 만나는 즐거움, 그리고 본 영화들을 두고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거나 글을 쓰는 비평적 욕구도 있습니다. 낯선 세계를 만나는 즐거움은 영화를 만들고자하는 욕망으로 진전되기도 합니다. 시네마테크는 이런 다양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장소입니다.


'2011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열일곱 명의 친구들이 참여합니다. 예년보다 적은 예산이지만 반대로 전례 없이 가장 풍성하고 다양한 행사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친구들의 선택작들과 관객들의 선택, 그리고 무엇보다 올해는 특별히 해외와 국내의 시네마테크 두 기관을 친구로 초대합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지난 해 서울아트시네마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대표인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명의로 재정지원 확대와 독립성의 확보, 안정적인 전용관이 필요하다는 서한을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카르트 블랑슈'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역사와 함께 했던 12편의 프랑스 영화가 소개됩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복원하고 발굴한 장 르누아르, 사샤 기트리, 막스 오퓔스의 영화와 시네마테크에서 꿈을 키웠던 고다르, 그리고 누벨바그 이후의 장 으스타슈, 필립 가렐 등의 영화가 상영됩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프로그램 디렉터인 장 프랑수아 로제가 2월에 서울 아트시네마를 방문해 시네마테크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아울러 영상자료원이 새롭게 복원한 한국영화 네 편이 상영됩니다.

특별전에서 상영하는 마태오 가로네의 영화는 지난해부터 서울아트시네마가 활발하게 진행한 우리 시대의 작가를 소개하는 행사의 일환입니다. 특별히 그의 대표작인 <고모라>를 포함해 세 편은 이탈리아 문화원의 협조로 국내 판권을 구매해 특별전 상영 이후에 시네마테크를 포함한 예술영화관에서 상영할 계획입니다. 지난 해 타계한 에릭 로메르를 기념하는 '오마주: 에릭 로메르'에서는 6편의 영화가 상영됩니다. 에릭 로메르는 시네마테크가 사랑하고 시네마테크를 사랑한 감독입니다. 2001년에 그를 기리는 '에릭 로메르 회고전'을 처음 기획해 시네마테크에서 개최한 바 있는데, 당시 에릭 로메르는 '멀리 있는 친구들에게 저의 모든 작품에 대한 당신들의 오마주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내 모든 감사와 따뜻한 우정의 표현을 받아주시길'이란 서한을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로메르에게 따뜻한 우정의 표현을 보낼 차례입니다.


영화가 허락한 즐거움은 영화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도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세 분의 영화감독이 참여했지만, 2011년에는 이명세 감독부터 윤성호 감독에 이르는 현역의 감독 여섯 분이 참여해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젊은이들과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네클럽' 행사가 열리게 됩니다. 지난 10년의 한국영화를 되돌아보는 행사도 있습니다. 장현수 감독의 <라이방>과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 2001년도에 개봉했던 영화들입니다. 이 두 편의 영화는 '와라나고'라는 한국의 예술영화 제작과 배급, 예술영화 상영공간에 대한 논의를 촉진하게 만든 영화들이기도 합니다. 그 시간이 이미 10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10년간 한국영화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살펴보는 기회입니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시네마테크를 후원하기 위한 영화제입니다. 알다시피 시네마테크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에 있습니다. 지난 해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을 위한 추진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건립과  공간 확보, 재정 마련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시네마테크에 대한 공적 지원이 50% 삭감되면서 임대료를 낼 수 없는 위급한 상황이 생겼지만, 영화인들과 배우들의 후원 광고 덕분에 힘든 상황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삭감된 예산을 복원하려는 노력도 있었습니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의 대표인 박찬욱 감독이 직접 국회를 방문해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2011년에는 당장 급한 시네마테크의 안정화 노력 외에도 전용관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의 마련과 예산 확보에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전용관을 마련하는데 서울시가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2월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관계자와의 좌담과 포럼을 시작으로, 3월에는 시네마테크 정책과 관련한 심포지엄이 열리고, 시네마테크의 해외 친구로 외국 영화인들의 초대 행사가 열릴 예정입니다. 내년은 서울아트시네마의 개관 1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에 올 한해 십 주년을 맞는 준비들이 있을 것입니다.

올 해의 개막작은 에릭 로메르의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입니다. 누벨바그의 동료였던 프랑수아 트뤼포, 자크 리베트, 장 뤽 고다르가 초기 시절에 만든 단편 영화의 느낌으로 되돌아가 만든 작품입니다. 대표작인 <녹색 광선>을 만들고 불현듯 로메르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이 영화를 즉흥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첫 에피소드에는 '블루아워'라는 동이 크기 전의 1분간의 정적의 시간에 대해 말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밤새들이 잠들기 전, 낮 새들이 깨어나기 전의 정적이 시간은 영화 속 소녀의 말을 빌자면 마치 배심원들이 심의에 들어간 후 '사느냐 죽느냐'의 판결을 기다리는 시간처럼 고요함과 불안이 함께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이 시간은 농부들이 '누가 뭐래도 내일은 새로운 날이 될 거야'라던가 '무슨 수를 써도 내일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말하는 그런 시간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시네마테크가 그런 블루아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고요함과 정적의 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내일이 오고, 내일이 오는 것을 누구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내일 우리는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을 함께 누릴 것입니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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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즐거움을 나누다!!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대표 최정운
www.cinematheque.seoul.kr)는 오는 18일부터 2월 27일까지 한 달 반 기간 동안 시네마테크를 후원하는 영화인들과 함께 벌써 6주년을 맞이하는 ‘2011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개최한다. 2006년에 시네마테크의 설립취지에 공감하고 활동을 지지하는 영화인들이 참여해 처음 열린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영화인들이 직접 참여해 영화를 선택하고, 관객들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독특한 형식으로 매년 1월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대표적인 영화축제이다.


영화의 즐거움을 나누다!
‘2011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2012년 서울 유일의 민간 비영리 시네마테크전용관 개관 10주년을 앞두고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는 간절한 마음을 모아 '영화의 즐거움을 나누다! - Jouissance Cinema – '를 컨셉으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영화에서 어떤 즐거움을 발견하는지, 영화로 교류하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관객들과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하며, 이와 관련한 다채로운 행사들을 마련한다. 이번 영화제의 전체 섹션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개최된 이래 지속적으로 관개들에게 선보인 프로그램인 ‘친구들의 선택’과 ‘관객들의 선택’, 그리고 ‘시네마테크의 선택’을 메인 섹션으로 선보인다.


친구들의 새로운 선택

먼저 제6회를 맞이한 2011년의 친구들로는 이준익, 이명세,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최동훈, 오승욱, 김태용, 민규동, 이해영, 정가형제 등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과 정성일, 김영진 영화평론가 등의 영화인들이 참여해 그들이 선택한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네토크 행사를 가질 예정이며, 새로운 친구로 황덕호 재즈평론가와 손관호 파고뮤직 대표 등 영화를 좋아하는 음악인들도 친구들로 참여, 다양하고 새로운 영화읽기, 즐거운 영화문화 환경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관객들이 뽑은 최고의 코미디 배우, 버스터 키튼
관객들의 손으로 직접 뽑은 영화를 상영하는 ‘관객들의 선택’ 섹션 역시 놓칠 수 없는 영화제의 묘미다. 특히 올해는 ‘영화의 즐거움을 나누다’란 컨셉에 맞춰 관객들의 선택으로 만나고 싶은 코미디 배우를 선정해 그 배우가 출연한 영화를 상영한다. 대표적인 코미디배우 15인 중에서 관객들이 지난 11월 20일부터 12월 2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 카페 및 상영관 로비 게시판을 통해 온/오프라인 투표를 진행한 결과 몸 개그의 선구자인 버스터 키튼이 1위로 선정되어 기존에 시네마테크에서 자주 만나볼 수 없었던 키튼의 단편 영화들을 모아 상영할 계획이다.


카르트 블랑슈: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한국영화의 고전

한편 시네마테크 활동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네마테크 관련 특별행사를 마련한다. 먼저 해외 시네마테크와의 교류 확대를 위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선택한 프랑스 작품을 상영하는 ‘카르트 블랑슈’ 섹션으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관계자를 초청해 파리 시네마테크의 상황과 시네마테크의 미래에 관한 좌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 다른 ‘카르트 블랑슈’ 섹션으로 한국영상자료원이 새롭게 복원한 한국영화의 고전들을 소개하는 ‘한국영상자료원 컬렉션’도 연다. 이 섹션에서는 새롭게 복원한 6-70년대의 한국영화 4편을 상영한다.


에릭 로메르, 신예 마테오 가로네의 영화와 만나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거장들의 특별전도 만날 수 있다. 2010년 타계한 프랑스 누벨바그의 거장 에릭 로메르를 추모하는 ‘오마주, 에릭 로메르’전을 열어, 에릭 로메르의 작품들 중에서 대표작과 국내에 덜 소개된 작품들을 포함해 6편을 상영할 예정이다. 특히 ‘오마주, 에릭 로메르’는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가 가장 사랑한 감독으로 시네마테크의 선택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탈리아 문화원의 협력으로 이탈리아 신예 감독 마테오 가로네의 작품 중 <고모라>를 포함한 3편을 필름 라이브러리로 구매해 첫 선을 보이고 그의 미 공개작을 포함한 ‘마테오 가로네 특별전’ 영화 7편을 소개한다.


마스터 클래스, 교육 행사, 한국영화 10년의 회고
이외에도 제6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해외 게스트를 초청해 심도 깊은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마스터클래스도 열리며,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젊은 친구들을 대상으로 이명세, 김태용, 이해영, 정가형제, 김종관, 윤성호 등 활발하게 작업을 진행중인 감독들과 만나 영화 연출론을 듣는 ‘시네클럽’ 행사도 열릴 예정이다. 그리고 영화제 기간 동안 진행되는 ‘작가를 만나다’도 특별한 시간으로 꾸며진다. 2011년을 여는 연초에 진행되는 영화제인 만큼 개봉 10주년을 맞는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장현수 감독의 <라이방>을 2011년 1, 2월 작가를 만나다 시간에 상영하고, 감독과의 대화를 마련한다. 10년 전인 2001년, 뛰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흥행대작들에 밀려 아쉽게도 조기 종영된 영화들을 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펼쳤던 이른바 ‘와라나고 운동’의 중심에 섰던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지난 10년의 한국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영화의 즐거움을 테마로 한 제6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더욱 많은 친구들이 다양하고 의미 있는 영화들을 가지고 실제 자신들의 기억 속에 있는 시네마테크에 대한 단상, 그리고 영화에 얽힌 다양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관객들에게 들려줄 것으로 보여 예년과는 또 다른 재미와 큰 만족감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신선자 서울아트시네마 기획홍보팀장)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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