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영화를 선정해 상영하고, 상영 후 영화에 대한 강좌와 함께 관객들과 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과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인 ‘시네클럽’ 행사를 하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모든 영화인들의 안타까움 속에 세상을 떠난 프랑스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에릭 로메르의 유작 <로맨스>를 상영하고, ‘에릭 로메르를 말한다’라는 제목으로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열띤 강연을 펼쳤다. 로메르의 유작을 통해 그의 작품이 남긴 의미와 가치를 관객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었던 소중한 자리였다. 그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로메르가 타계한 다음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에릭 로메르의 밤'이라는 회고전을 했어요. 저희도 로메르 회고전을 열고 싶었는데, 한국에 수입된 영화가 <여름 이야기>하고 방금 보신 <로맨스>라는 영화하고 두 편밖에 없어서 회고전 개최가 쉽지 않은 사정이죠. 로메르 회고전은 아트선재 시절에 개관 프로그램으로 했던 적이 있었고, 국제 영화제 때문에 로장주 필름에서 배급담당을 하시던 분이 한국에 오시면서 또 한 번 연 적이 있었어요.

 

로메르는 대단한 절약의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박을 터트린 적은 없지만 적은 비용으로 만들어서 손해를 결코 보지 않는 방식의 작가예요. 촬영 당시에도 절대 두 번 이상 촬영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로메르는 ‘영화는 거절의 예술’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a라는 선택을 하느냐 b라는 선택을 하느냐의 문제에서 a를 선택했을 때 b를 버리게 되는 것을 말하는 거죠. a를 선택했을 때 b를 동시에 선택할 수 없으니까 여벌로 찍는 장면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거절의 예술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의 영화는 끊임없는 반복과 변주로 이루어져 있어요. 모든 영화를 통틀어 연애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연애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작가라는 이야기도 합니다. 하나의 스타일을 일관되게 자신의 전 작품에 담아냈어요. 모든 예술가들은 자신의 일관된 주제와 테마를 반복해서 보여주지만 매 작품마다 변주를 해서 보여 주는데 로메르도 이런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로메르 영화에 대해서 거의 언급이 안 되는 것 중 정말로 중요한 것은 공간에 관한 문제 같아요. 로메르는 ‘영화는 시간의 예술이 아니고 공간의 예술’이라고 말한 적도 있죠. 70년대에 로메르가 찍은 텔레비전용 다큐멘터리가 있는데, 건축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요. 그건 공간과 장소에 대한 관심의 결과물인데, <내 친구의 남자친구>, <녹색광선>, <비행사의 아내> 같은 작품은 실제로 70년대 다큐를 찍었던 곳에서 촬영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일산 신도시처럼 공간 자체가 한정되어 있고 사람들이 밀집되어져 있으면 그곳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거죠. 우연히 만나고 우연성을 빙자해서 만나기도 하는 사건들이 전개가 되는 곳, 그런 공간성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일종의 거대한 아쿠아리움 같은 공간인거죠.

 

로메르는 우연성과 즉흥성을 즐겼던 감독이에요. 영화의 전체적인 구조가 터무니없는 우연성을 내포하고 있죠. 예를 들어, <파리의 랑데부>은 우연을 가장한 부조리한 놀이들을 벌이는 영화입니다. 우연히 만나고 우연히 내가 거기에 있고 하는 식의, 즉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놀이나 게임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것들이 로메르 영화를 특징짓는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로메르의 영화는 주제적인 측면에서 독특한 부분이 있죠. <로맨스>에 그런 게 집대성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데요, 몸과 영혼과 관련된 부분이 전체적인 테마, 자연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문제, 남녀의 사랑에서 여러 가지 문제들, 한 사람의 몸이 사라진 이후에 그 사람이 여전히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것, 불멸성 등. 이런 것들이 영화 전체에 있는 테마예요. 그리고 이것들의 최종적 국면으로서 은총적 세계는 로메르가 평생을 걸쳐서 자기 영화를 통해서 담아냈던 부분이죠.

 

아이러니하게도 로메르의 명성이나 위상에 비해서 그의 영화가 가진 풍부함이 많이 담론화되어 있지 않아요. 인터뷰나 서적 등도 별로 없고요. 익숙하게 잘 알고 있는 작가라고 생각하지만 풍부하게 언급되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정말 미스터리이기도 합니다. 돌아가신 이후이긴 하지만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까지 확실히 다 모아놓고 전부 다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좀 더 다양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다양한 지점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이후에도 또 있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최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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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우리들의 시네마테크, 이제는 행동이다"
2010년 3월 2일 화요일  신선자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나는 민간이 운영하는 서울 유일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를 제집처럼 드나든 지 만 5년차에 이르는 열혈관객(?)이다. 비디오테크 시절부터 시네마테크에서 영화와 조우해온 이들에 비하면 아직 애송이 시네필에 지나지 않지만, 게다가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아 그곳에서 본 수많은 영화들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정리해 놓지도 못하지만 그 공간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십분 짐작하고 있다.

그 모든 것이 논리적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해도 시네마테크에서 영화 보는 행위가 내 삶의 자양분, 양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저 시네마테크에서 영화 보는 행위가 좋아서, 그 시공간의 느낌이 마냥 좋아 자주 찾았던 나에게 시네마테크는 놀이터이자 마음의 위안처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나와 같은 마음을 지닌 관객들, 영화의 친구들을 시네마테크에서는 손쉽게 만난다. 그래서 나는 내 머릿속에서 영화가 망각될지언정 계속 그 행위를 지속하고 있고 앞으로도 쭉 그러하길 바라 마지않는다.

그런데 최근 극장 안팎이 시끄럽다.
조용히 영화를 보며 곱씹어 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놈의 공모제 논란 때문이다. 내 삶의 황금 같은 5년이란 시간이 어려 있는 곳인데, 소위 영화를 진흥한다는 영화진흥위원회의 파행적 공모제 강행으로 이곳의 안정성을 보장받기 힘들어졌다. 그리하여 나는 스스로 시네마테크 지키기 운동에 동참을 결의하고, 현재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더불어 지지난해부터 해왔던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웹데일리팀에 결합해 친구들 영화제와 관련한 이러 저러한 소식을 전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그렇게 지내온 한 달 반, 준비기간까지 거의 두 달여의 시간이 이제 막을 내리려 하고 있다.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다단하다. 앞으로의 행보도 명확하지 않다. 몇몇 매체에서는 영진위가 지원자가 없어 자동 유찰되었던 시네마테크 운영자에 선정에 관한 재공모를 한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실상 공식적으로 재공모 일정이 공지되지는 않은 상태다. 한편으론 충무로 영화인들까지 공모 철회를 요구하고 나서며 파장이 커지고 있으니 영진위 스스로 사태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지원을 계속하지 않을까 하는 행복한 상황도 상상해본다. 진정 그러하길 기대해보지만 사태가 어떤 국면을 맞이하게 될 지는 잘 모르겠다. 영진위가 그간 행한 모든 일들이 상식적으로 납득 불가능했고 웃지 못할 코미디를 연출했기 때문이리라.

사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나는 그토록 보고팠던 영화, 기다리던 영화를 편히 보지 못했다. 영화를 봐도 피곤했고 안 봐도 피곤했다. 영화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심정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나 이곳이 반드시 지켜지길 바라기 때문에 스스로 자원 활동을 했으나 가끔은 이 분위기가 짜증나기도 하고, 내가 도대체 무슨 영광을 보자고 이 짓을 하고 있나하는 생각도 했다. 결코 후회는 없다. 그리고 안타까운 일이었음에는 틀림없지만 그 와중에도 얻은 것도 많다 생각한다. 끝이 있으면 또 다른 시작이 있는 법이니까. 자원 활동을 하면서 한 줄기 희망을 다시금 느꼈다. 나, 우리, 그리고 시네마테크는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도대체 무엇을 잃었고 얻었을까. 이 부분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한다면 그간의 상황을 다시금 돌이켜보며 또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하여 한달 반의 시네마테크 자원 활동을 돌아보며 일련의 사태에서 대해 다시금 정리해 보고자 한다. 함께한 시간에 관한 일종의 후기랄까. 뭐 그렇다.

일단 시네마테크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시네마테크란 Cinéma와 thèque가 결합된 조합어다. 사전적 정의를 보면 영화 관련 자료를 보존하고, 이것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여 그 자료의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설립된 곳이다. 영화 자료 보관소, 또는 영화 박물관의 공간적 개념이 크지만, 그보다 시네마테크는 극장 형태를 갖추면서 주로 고전 영화 또는 예술 영화를 정기적으로 상영하는 데에 더 큰 중점을 둔다. 시네마테크의 중요한 기능 중 또 하나는 필름 복원 작업이다. 긴 세월을 거치며 훼손된 고전 영화의 필름을 여러 복잡한 과정을 통해 비교적 깔끔하게 복원시키는 일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처럼 시네마테크는 상업적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 더 큰 목적을 두기 때문에 정부 산하의 기관 또는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비영리 단체가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 시네마테크는 가치가 있는 옛것을 복원하고 보존하는 곳이며, 그 작업은 영화문화저변 확대와 교육활동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지속성을 가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시네마테크는 공간적 개념도 있지만 일종의 운동적 성격으로 시간성도 지니고 있다. 국가에서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꾸준한 지원이 이뤄져야 하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공공적 성격이 강하니 영진위가 시네마테크 운영자를 공모한다는 것이 얼핏 듣기엔 문제가 없어 보인다. 보다 다양한 영화보기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시네마테크 사업을 더 잘할 수 있는 운영자를 투명한 과정을 거쳐 선정한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못할 것은 없다.

그런데 왜 이리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우선 권리주체의 문제, 다시 말해 영진위가 그렇게 진행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인지, 또는 그것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에서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운영하는 곳은 서울아트시네마가 유일하다. 그것은 시네마테크에서 보는 모든 영화가 시작되기 전 나오는 리드필름에도 명확히 명시되어 있다. 서울에서 시네마테크 활동을 펼치며 안정적이진 않아도 근간히 어렵게 전용관을 꾸려온 것은 민간 영역의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지속적으로 운영해온 서울아트시네마 뿐이다. 영진위는 자체적으로 시네마테크 사업을 펼친 바도 없으며, 시네마테크에 관한 어떠한 자산도 갖고 있지 않다. 단지 영진위는 약 3, 40%의 지원금을 지원해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영진위는 고작 30% 정도의 지원금이 전용관을 꾸려 나가는데 절대적인 도움을 주는 금액이니만큼 주인행세를 해도 가능한 것 아니냐고 말한다. 설상가상으로 영진위는 그간 자신들이 지원해줬던 지원금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운영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종자돈이 되었으니 수익발생까지 고려한다면 거의 90%의 지원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 밝혔다. 논리도 근거도 모르겠고 그저 헛웃음이 인다.

일반 기업체의 경영권을 가지려면 적어도 51%의 지분을 가져야 한다고 하는데, 영진위는 고작 30%에 달하는, 것도 자체 지분 자산이 아니라 보조 지원금을 가지고 주인이라고 말하는 거와 다름없다. 게다가 수익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민간 비영리법인의 활동에 수익성을 운운하고 있다. 투명성을 위해 공모를 강행하는 것이라지만 스스로 논리적 모순을 안고 있는 부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뭐 정책입안자들이 그것이 원칙이니 그렇게 하겠다면 더 보탤 말은 없다. 작금의 사회는 경우에 따라서 그러한 논리가 통할 수 있는 세상이니.

현 사태의 심각함을 인지할 수 있는 또 다른 지점은 바로 공모를 둘러싼 논의의 과정, 절차상의 문제다.
원칙을 고수한다는 정책입안자가 시네마테크 운영자를 공모한다는데 어떠한 공청회도 거치지 않은 상태다 재작년 국감에서 그저 한 단체에게 왜 그토록 오랫동안 지원을 해주었냐는 지적사항이 제기되어 공모제 전환을 일방적으로 통보했고 시기적으로 상황이 여의치 않자 1년을 유예한 뒤 올 들어 그 정책을 무리하게 그리고 일방적으로 입안한 것이다. 공평성, 투명성 보장을 위해 공모제를 적용하려면 적어도 그간 서울아트시네마의 운영에 대한 정당한 평가, 어떠한 문제가 있었는지 여부를 먼저 밝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영진위는 그러한 절차 없이 무작정 실행에 옮겼고 원칙이기에 진행한 것이라는 얘기만 되풀이하고 있다. 너무도 부당한, 모순덩어리의 처사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귀를 열어두지 않는 곳에 이와 관련한 여러 목소리를 내고 싶지는 않다. 사회문화적 합의는 고사하고 시네마테크 자체, 사업의 성격에 대한 이해도 자체가 떨어진다 생각되니 말이다. 원론적으로만 치자면 지원중단으로 받아들이면 그뿐이다. 현재의 서울아트시네마는 8년간 그렇게 어렵사리 유지돼 왔고, 나를 포함해 많은 관객들이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자원 활동에 나선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

하지만 문제의 복병은 또 다른 것에 숨겨져 있다. 바로 시네마테크 운영자를 선정하는데 1년 단임제로 한다고 한다는 거다. 어떠한 평가절차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권리도 없는 자가 단지 자본의 논리를 앞세운 돈을 위시하여 공모전환을 논하는 것 자체도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는데, 거기에 더해 시네마테크 운영자를 1년 단임제로 매해 공모를 하겠다고 한다. 물론 연임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과연 이게 말이 되는 얘기인지 도대체 이해불능이다. 문화예술의 영역에서 보존과 복원의 임무를 가장 크게 부여받은 시네마테크를 매해마다 갈아치운다는 심사. 어떻게 그런 발상이 가능한지 진정 납득하기가 힘이 든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이보다 더 재미있는 코미디가 없다”, “요즘 영진위 때문에 개콘이 별로다”라는 말을 공공연히 하나 싶다. 이는 시네마테크의 의미, 활동의 본질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파악하고 있는 자라면 쉽게 인지할 수 있는 문제인데 소위 영화를 진흥한다는, 영화발전을 위해 무단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영진위가 이러한 정책을 내세운다는 게 부끄러울 뿐이다.

나는 단지 일반 관객에 지나지 않는다. 시네마테크의 프로그램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시기에 배치되는지 잘 알지 못하나 먼발치에서 자부심 하나로 시네마테크 운동을 펼쳐온 사람들을 보면서 적어도 하나는 알 수 있었다. ‘금방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거구나‘라는 거다. 일례로 얼마 전 시네마테크에서 모스필름 회고전을 한 바 있는데 듣기엔 그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는 데만 거의 3여년의 시간이 걸렸다 한다. 그런데 1년마다 공모를 한다면 과연 장기프로젝트를, 그동안 소개되지 않은 다양한 영화를 관객에게 선보일 수 있을까라는 문제가 남는다.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만약 그것을 가능케 하려면 다음해에도 시네마테크 운영을 계속 할 수 있게 공모에 응해야 하고 그 공모에서 낙찰을 받아야만 한다. 그렇게 되려면 온갖 비상식적인 수순으로 진행되는 이 사회체제 안에서는 또 다른 로비와 부정비리가 난무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달리 말하자면 공평성을 위해 공모를 진행한다고 하는데 이는 또 다른 비리의 전당이 될 소지가 다분히 있다는 거다.

나는 그렇게 운영되는 시네마테크를 찾고 싶은 마음이 없다. 세계 곳곳의 유수의 시네마테크에서는 누벨바그의 거장 에릭 로메르가 타계한 후 앞 다퉈 로메르 회고전을 준비했다. 허나, 이 같은 상황으로 인해 우리는 로메르 영화를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지금 여기의 지리멸렬한 현실탓이다. 만약 공모제 논란이 일지 않고 영진위의 지원이 예전처럼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면 상반기 내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리며 회고전을 기획했을지 모른다. 소모적이고 어이없는 공모제 논란으로 나와 같은 관객은 그러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만약 새로운 운영자가 나타나 내가 원하는 그러한 프로그램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난 또 어느 순간 잊어버리고 ‘어 이런 영화를 하네, 보고 싶었는데 잘 되었다’라며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애쓸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을 도대체 어떻게 보장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5년 간 제집 드나들 듯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던 것은 그만큼의 시간 동안 쌓아왔던 극장 운영자와 관객간의 암묵적인 지지와 신뢰, 신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신의와 우정을 시네마테크의 파트너를 자처?해온 영진위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진정 안타깝다. 영진위가 사태의 심각성을 빨리 인정하고 부당한 공모를 철회하고 꾸준한 지원을 약속해줬음 좋겠다.

다시 원점으로.

이 글 서두에 나는 시네마테크는 지속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주장했다. 그것이 관객의 권리라고 생각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간의 성과에 대한 올곧은 평가가 먼저 수행된 후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네마테크 활동이 이뤄져야 한다 보는 것이다.

아울러 그간 내가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던 것은 내 마음이 그들이 선보인 수많은 영화들에 매혹됐고, 그러한 프로그램을 선정해 준 운영자에 대한 신뢰,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말을 다시금 전하고 싶다. 그래서 난 오늘도 서울아트시네마에 간다. 영진위의 지원 없이도 서울 유일의 민간 비영리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가 굳건히 설 수 있길 바라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후원활동을 하고자 하고 실천에 옮기고 있다. 나와 같은 자원봉사자들이 스스로 후원모금 부스를 마련하고 제 시간을 쪼개고 희생해가며 한 달 여 동안 극장에 상주하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렇게 해서 현재까지 모아진 현금 후원금은 약 3천5백만원. 월 자동납부하는 CMS 후원회원의 후원금은 월 3백만원 수준이다. 현재 서울아트시네마 운영자를 통해 듣자니 영진위 지원 없이 자립하기 위해 최소 필요한 운영자금은 월 5천만원 수준이라고 하던데, 현재의 후원금으로는 턱없이 모자라고 여전히 앞일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한 가지는 건진 것 같다. 이를 불씨 삼아 시네마테크는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 시네마테크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고, 더 많은 친구들을 얻었다는 것. 그렇게 시네마테크는 이곳을 사랑하는 관객과 함께 봄날을 기다리며 버티고 견디어나가고 있다. 스스로 서기 위해. 지금의 활동이 한층 더 진전되어 시네마테크가 진정한 영화인, 영화애호가의 온전한 집을 갖길 바란다.

그리고 항상 꿈꾼다. 그 역사적인 날이 빨리 오길!
하여 외쳐본다.
이 땅의 시네필들이여! 지금은 관객이 나서 시네마테크를 후원해야 한다고,
영화를 보는 행위만큼이나 중요하고 수반되어야 할 시네필의 윤리가 있다고,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다시금 곱씹어 보자고.
권리를 내세우려면 그에 합당한 의무를 해야 하지 않던가. 이제는 행동이 필요한 때다.


글_신선자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출처] 무비스트 2010년 3월 2일 (http://www.movist.com/article/read.asp?type=24&type2=2&id=17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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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문화학교서울이 주최해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에릭 로메르 회고전'

시네필의 전당, 영화박물관, 영화도서관이라 불리는 시네마테크.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와 말을 나누고 픈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고 즐기며, 배움을 얻고 있다. 손쉽게 다운받아 홀로도 영화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지만 극장에서 영화의 원판인 필름을 많은 이들과 함께 체험한다는 것은 비단 영화문화를 향유하고픈 욕심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많은 시네필을 설레게 하고 경이로운 순간을 맛보게 했으며, 여전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뜨게 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시네마테크. 어떻게 만들어져 지금에 이르렀을까? 길게는 20년, 짧게는 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시네마테크의 활동을 연대기별로 살펴본다. <편집자>


민간 영역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되어 서울 유일의 시네마테크 전용관으로 자리잡고 있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전신은 지금으로부터 근 20년 전인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비디오테크부터 출발해 영화사 100주년을 기념하며 전국시네마테크연합이 창립되었고, 2002년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사단법인 인가를 받고 발족한 이후 서울아트시네마는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공간을 대관해서 수많은 회고전과 특별전을 진행해왔다. 그렇게 서울아트시네마는 2002년 서울 유일의 시네마테크 전용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나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안정적인 공간 확보의 어려움을 매번 겪고 있다. 2004년 재임대 계약을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서울아트시네마는 존폐위기를 맞았고 2005년도에 결국 안국동 시기를 마감했다.

 

그리고 현재 위치하고 있는 낙원 허리우드극장으로 옮겨오면서 서울아트시네마는 다시 전용관을 마련했다. 하지만 재정적 어려움으로 기획된 여러 회고전을 진행하지 못했던 적도 적지 않다. 하여 2006년 1월엔 시네마테크 지원을 결의해주었던 다수의 영화감독들이 주축이 되어 처음으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라는 것을 기획하게 되었고 그게 어느덧 2010년 5주년를 맞았다. 하지만 영화인, 관객 할 것 없이 시네필들의 물질적, 정신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현 시네마테크는 여전히 공간을 찾아 헤매야 하는 실정이다. 시네마테크 부산의 경우 창립 때인 1999년부터 전용관으로서 역할을 다해왔지만, 서울은 아직도 안정적인 전용관 마련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에 2010년 국내 내로라하는 감독, 배우 등 영화인들이 주축이 되어 현재는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까지 발족했다.

 

영화의 도서관, 시네필의 성지라 불리며 쓰러지지 않고 버텨온 현재의 시네마테크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역사가 녹아들어 있는 곳이다. 숱한 위기의 순간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이곳을 보존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애를 썼고 그 중심에는 영화문화를 마음껏 향유하고 싶은, 이곳에서 위안과 배움을 얻는 관객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화애호가들에게 깊은 인상으로 아니 가족처럼 다가오는 시네마테크가 영원히 꺼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굳건히 서길 바라며, 그간 시네마테크가 걸어온 길, 그 역사적 순간들을 연대기별로 되돌아본다. 시네마테크의 진화는 계속되어야하기에.  


ㆍ1991. 5 


문화학교 서울, 서울 사당동에서 '새로운 영화읽기의 제안'이라는 모토 하에 비디오테크로 출범

√ 다양한 국가와 장르의 영화들을 소개하고 시네마테크 구축과 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 생산

√2000년까지 180여 회의 영화제와 '시네마테크'라는 이름의 토론 프로그램 진행 및 30여 권의 자료집 발간

 

ㆍㆍ1995

√ 영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영화 백년사를 정리한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발간

‘전국시네마테크연합’ 결성


ㆍㆍㆍ1999

3월 ‘아시아 감독 3인전- 차이밍량, 이시이 소고, 홍상수’ 개최 (문화학교 서울, 아트선재 공동주최)

 
ㆍㆍㆍㆍ2000

11월 ‘오슨 웰즈 회고전’ (서울 시네마테크 주최)

12월 ‘루이스 부뉴엘 회고전’ (문화학교 서울 주최)

 



ㆍㆍㆍㆍㆍ2001

1월 ‘오즈 야스지로 회고전’ (서울 시네마테크 주최)

7월 ‘에릭 로메르 회고전’ (문화학교 서울 주최)

8월 ‘영화사 강의’ 진행 (서울 시네마테크 주최)

 
ㆍㆍㆍㆍㆍㆍ2002

1월 25일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발족

4월 11일 사단법인 인가(문화관광부)

5월

√ 서울 유일의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 개관(소격동 아트선재센터) & 개관기념 영화제 개최 (오손 웰즈 <시민 케인>, 베르히만 <외침과 속삼임>, 트뤼포 <400번의 구타> 등 상영)

6월

√ 제2회 포르투갈 영화제 (올리베이라 <언어와 유토피아>, 마누엘라 비에가스 <찬미> 등 상영)

√ 라틴 아메리카 영화제 (오스카 블랑카르떼 <미네르바의 여행>, 살바도르 아귀레 <방황> 등 상영)

 

ㆍㆍㆍㆍㆍㆍㆍ2003

2월 문화학교 서울 ‘영화사 강좌’ 개설

6월 10일 심포지엄 ‘시네마테크는 지금’ 개최

(예술영화의 수입 및 배급과 관련한 문제, 영상자료원의 필름 보관, 시네마테크 활동의 현황 및 대안, 지역 네트워크 활성화 등의 문제 논의. <시티즌 랑글루아 Citizen Langlois>(에드가르도 코자린스키) 상영)

 

ㆍㆍㆍㆍㆍㆍㆍㆍ2004

2월 최양일 회고전 (최양일 감독 방한, 감독과의 특별대담 진행)

2004년 처음 개최된 '구로사와 기요시 회고전'에 맞춰 방한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3월

√ 구로사와 기요시 회고전 (구로사와 기요시 방한, 감독과의 특별 대담 및 강연회 진행)

√ 프랑스 아방가르드: 장 앱스탱, 장 비고, 장 콕토 회고전 개최, 무성영화 라이브 연주 상영

5월 ‘기억의 영화들’ 서울아트시네마 개관2주년 기념 영화제: ‘시네필의 향연’ 개최

(장 르누아르의 <시골에서의 하루>, 하워드 혹스와 빈센트 미넬리, 고다르와 클레르 드니의 90년대 작품 상영)

6월 “시네마테크는 지금” 심포지엄 개최

(아트선재센터로부터 2005년 2월 건물임대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게 됨)

8월 26일

√ 한국독립영화협회와 영화인회의를 포함한 12개 단체에서 서울아트시네마 폐관 위기와 관련하여 ‘서울아트시네마는 중단 없이 운영되어야 한다’는 성명서 발표

9월 새로운 영화의 첫 번째 만남, ‘CINE-Rendezvous’

(할 하틀리 <인생전서>, 오타르 이오셀리아니 <안녕 나의 집>, 브루노 뒤몽 <휴머니티>, 고레에다 히로카즈 <환상의 빛> 상영)

낙원상가 건물로 이주하 처음 열린 재개관 영화제'시네필의 향연'

12월 ‘시네마테크를 말한다-일본 커뮤니티 시네마의 사례’ 토로회 개최

(극장 이전을 포함한 한국 시네마테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논의. 일본 문화청 문화부장 데라와키 켄의 강연)

 




ㆍㆍㆍㆍㆍㆍㆍㆍㆍ2005

1월 시네클럽 ‘카페 뤼미에르’ 출발

(5회에 걸쳐 ‘일본 영화의 역사와 미학’에 대한 강연 진행 및 영화 나카히라 코우 <미친 과실>, 이마무라 쇼헤이 <일본 곤충기>, 신도 가네토 <벌거벗은 섬> 등 상영)

소격동 시절을 마감하는 마지막 회고전 '라이너 베르어 파스빈더 회고전'

3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회고전’

(3년 간 800여 편을 상영했던 서울아트시네마의 안국동 시기 막 내림)

4월 4일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 낙원상가((구)허리우드 극장)로 이전

√ 재개관 특별영화제 ‘시네필의 향연’ 개최

(G.W. 파브스트 <판도라의 상자>, 로베르 브레송 <불로뉴 숲의 여인들>, 하워드 혹스 <리오 브라보>, 알프레드 히치콕 <싸이코> 등 상영)

5월 한국영화 정기 프로그램 ‘한국영화, 과거 속의 미래’ 시작 (연간 6회)

7월 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 해방 60주년, 광주혁명 25주년 기념 ‘영화와 혁명 특별전’

(60-70년대 일본 언더그라운드 영화들과 68혁명기의 프랑스 영화, 광주혁명을 다룬 영화 상영 & ‘영화와 혁명’이라는 주제로 일본과 한국의 영화평론가와 액티비스트들(히라사와 고, 조영각, 김성욱, 김곡)이 참가하여 심포지엄 개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대만 뉴웨이브 영화제'에 참석한 허우 샤오시엔과 차이밍 량 감독

9월 ‘대만 뉴웨이브 영화제-허오 샤오시엔, 에드워드 양, 차이밍 량’

(방한한 허오 샤오시엔, 차이밍 량의 마스터 클래스 및 대만 뉴웨이브 심포지엄 개최)

12월 쇼치쿠 110주년 기념, ‘일본영화: 계승과 혁신’ 영화제

(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과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공동 주최, 오즈 야스지로의 초기 무성영화부터 시미즈 히로시, 기노시타 케이스케, ‘쇼치쿠 누벨바그 3인(오시마 나기사, 요시다 기주, 시노다 마사히로)’ 등 상영 및 강연)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2006

1월 ‘제1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최

(감독, 평론가, 배우 등 영화인들이 소개하고 싶은 영화를 상영하자는 의미에서 기획된 프로그램으로 박찬욱, 김지운, 류승완, 오승욱 감독 등이 시네마테크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와 시네마테크의 중요성을 피력함)




2월 ‘스크린쿼터 축소’와 관련한 성명서 발표

3월 ‘독립영화: 김종관의 영화작동법’ 시작

6월 흥미로운 테마의 독립영화 최신작을 선정, 상영하는 ‘금요단편극장’ 시작

7월 개관 기념 영화제 ‘시네필의 향연’을 대중적으로 확대하여 ‘제1회 시네바캉스 서울’ 개최

(감독들의 연출 특강,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네키드’, 음악과 함께하는 ‘필름콘서트’ 등도 진행)

9월

√ 영화상영회에 관심있는 지역일꾼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상영교육 실시

√ 청소년 대상의 교육프로그램 ‘영화관 속 작은 학교’ 실시

√ 예정했던 ‘미조구치 겐지 회고전’이 재정적인 문제로 취소

10월

√ 시네마테크의 문화적인 소명 및 재정적인 어려움 등을 논의하기 위한 ‘시네마테크 관객 토론회 ‘시네마테크를 영화의 집으로!’ 진행

√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 계획 추진과 관련한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와 함께하는 영화문화 활성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 진행

11월 시네마테크 부산과 함께 추진했던 ‘마르셀 카르네 회고전’ 재정적인 문제로 취소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2007

2007년 서울아트시네마를 다시 방문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과 봉준호 감독

1월

√ 시네마테크 전용관 설립을 위한 ‘제2회 시네마테크와 친구들 영화제’ 개최

(김기영 및 빌리와일더 특별전을 포함 23편의 영화 상영. 구로사와 기요시 방한,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학교’ 진행)

√ ‘서울아트시네마의 5년의 기억’-사진전 개최

√ 서울아트시네마 후원 기금마련을 위한 미술전 개최(갤러리 아트싸이드)

4월 씨네21, 아름다운 재단,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공동주최로 ‘아름다운 영화 상영회’ 시작

6월 ‘오슨 웰즈 특별전’

(오슨 웰즈 아카이브 디렉터 질리언 그레이버 방한, 특별 강연 및 관객과의 대화 진행)

7월 ‘제2회 시네바캉스 서울’ 개최

(미이케 다카시 특별전, 한국 영화 속 서울 풍경과 역사를 회고하는 기획전 진행 및 자크 리베트의 <아웃 원> 상영)




10월 ‘애니충격감독열전 인 서울아트시네마’ 개최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2008

(위) 2008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기자회견 (아래) '창호 감독 특별전' 개막행사

1월 ‘제3회 시네마테크와 친구들 영화제-시네마테크의 새로운 영년’ 개최

(이두용 특별전 및 아벨 페라라 특별전 등 총 29편의 영화 상영)

2월 영진위에서 2008년 신규사업의 일환으로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 건립 발표

(80억; 2~3년에 걸친 총 사업비 250억)


7월

√ ‘제3회 시네바캉스 서울’ 개최

√ ‘필름 라이브러리’ 사업의 첫 시작으로 ‘세르지오 레오네 컬렉션’ 소개

√ ‘일본영화걸작 정기 무료 상영회’ 시작 (일본국제교류기금,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공동주최)

10월

√ 수포로 돌아간 복합상영관 건립

(연합뉴스에 「영진위 ‘다양성영화 전용관’ 내년 예산확보 실패」 라는 기사 보도. 영화진흥위원회 측은 ‘복합상영관 건립’ 사업의 본질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고, 단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좋은 편의를 제공하려는 목적에서 예산을 늘려 부가 기능들을 확충하고자 검토를 진행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해명함)

2008년에 열린 '촬영감독 유영길 특별전'의 개막 행사

 

12월

√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 건립사업 추진 불가 판정

(영진위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 건립사업’은 2008년 예산불용사유 등의 이유로 추진 불가하다고 발표하고 2008년에 불용된 120억 원의 예산은 다시 영화발전기금으로 환원됨)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2009




1월

√ ‘제4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최

(시네마테크 라이브러리 및 아카이브 구축사업 전개, 시네마테크 네트워크 사업 강화, 시네마테크의 공간성 확보 방안 마련, 활동의 공공성 강화라는 2009년 서울아트시네마 사업 계획 발표)

√ ‘영화의 고전과 미래의 시네마테크’,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긴급 토론회-시네마테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의 포럼 진행

2월

2월 2일 영진위 2009년 3월부터 시네마테크 지원 사업을 공모로 전환한다고 한시협에 1차 통보

2월 11일 영진위로부터 2009년 2월로 시네마테크 사업이 종료되고 3월부터 공개 공모 절차를 통해 업무위탁사업자 선정을 추진할 예정임을 일방적으로 재통보

2월 27일 시네마테크 지원사업의 공모 전환에 대한 전문가 간담회 진행

3월

√ 시네마테크 지원사업 공모 전환 통보에 따른 ‘지원사업 공모 전환 반대 성명서’ 발표

√ 서울아트시네마 CMS 후원회원 1천 명 모집 캠페인

(‘시네마테크 필름 라이브러리 무료 상영회’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아카이브’ 영화 9편 상영)

시네마테크를 후원하기 위한 영화인들의 사진전

8월 제4회 시네바캉스 서울’ 개최

(‘B급 장르영화의 거장: 돈 시겔 특별전’을 비롯 ‘오타르 이오셀리아니 특별전’ 등 진행. 4회의 ‘영화사 강좌’와 시네토크, 하퍼스 바자의 사진전)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2010

1월 제5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진행 중

1월 15일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 발족





(정리: 우혜경_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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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씨네필 2010.01.26 1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저기 1999년 '아시아 감독 3인전'때부터 함께 하고 있었네요. 98년에 문화학교 서울에 다니기 시작했구요. '아시아 감독..'때 재미있는 일이 하나 있었는데요. 그때 영화제에 온건지 아트선재센터에 온건지 고현정이 왔었어요. 저는 당시 고현정의 팬이었기 때문에 고현정을 따라가서 사인을 받았거든요. 근데 그때 고현정이 정용진과 결혼해서 얼마 안되었을 때라 임신하고 있었는데 제가 "결혼 생활은 어떠세요?" 뭐 이런 질문을 했던 것 같은데 고현정이 "배도 보여드릴까요?"하고 재치있게 응수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근데 그 사인을 잃어버렸어요 ㅠ 연대기를 쭉 보고 있으니까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도 나고 뭔가 애틋하네요..
    99년부터 현재까지 거의 모든 회고전에 참여를 했지만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회고전 단 하나만 뽑자면 전 '칼 드레이어' 회고전을 뽑겠습니다. 그때 영화사를 수놓은 칼 드레이어의 주옥같은 걸작들을 보면서 더 이상 영화를 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었죠. 드레이어의 영화로 시네마의 어떤 경지를 보았다는 생각에 포만감을 느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 이후로 칼 드레이어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감독 10인 안에 속하게 되었고 드레이어의 <오데트>는 개인적으로 영화사상 베스트 10 목록에도 올리게 되었어요. 드레이어의 유작인 <게르트루드>가 사실 더 대단한 작품이긴 하지만 신앙적인 이유로 <오데트>를 더 좋아합니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오데트>가 상영되는 것은 저에게 무척 반갑고 뜻깊은 일인 것 같아요. 그 영화를 제가 제일 좋아하는 홍상수 감독님이 추천하신 것도 기쁘구요. 개인적으로 이번 상영때 <오데트>가 꼭 매진이 되어서 이 영화의 진가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전에 상영할 때는 매진은 되지 않았거든요. 특히 믿음의 문제에 관심이 있는 크리스챤들에게 강력히 추천하는 바입니다. 결론: 시네마테크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합니다!

  2. 노는 건달 2010.01.28 0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윗 분도 쓰시기는 했는데 '아시아 감독 3인전'은 제 기억이 맞다면 1999년이 아니라 2000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책상에 그 때 관련 자료가 있는데 딴 방에 있어서... :)

    제가 선재에 영화보러 첨 간 것이 99년 가을 이었고 (독립영화, 관객을 만나다) 그 후에 00년에 아시아 감독 3인전 보러 갔었어요

    그 때 이시이 소고도 왔었던 것 같고 챠이밍량도 왔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