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한창인 지난 2월 3일, 존 포드의 <기병대> 상영 후에 오승욱 감독과의 시네토크가 있었다. 오승욱 감독은 <기병대>는 불균질함에서 오는 매력이 있는 영화이며 존 포드 영화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영화라고 생각해서 추천했다고 밝혔다. 오승욱 감독과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의 흥미로운 대화의 일부를 옮긴다.

 

오승욱(영화감독) : 여기 오신 분들 모두 추운 날씨에 이런 이상한 영화를 봤다니 황당하셨을 것이다. 저는 <기병대>가 존 포드 영화중에서 매우 이상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느낌은 별로 못 받았고, 존 포드 영화중에서 많이 불균질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초등학교 때 TV에서 봤는데 존 웨인이 윌리엄 홀덴과 두어 번 결투 비슷한 걸 하다가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끝나버려서 재미없게 봤다(웃음). 그 땐 사사건건 간섭하는 윌리엄 홀덴도 너무 싫었고, 존 웨인도 싫었다. 이 둘이 싸우는데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도 몰랐다. 존 포드랑 존 웨인을 싫어하게 된 계기가 <기병대>랑 <아파치 요새>다. <아파치 요새>는 인디언을 학살하는 영화라고 생각했고, <기병대>는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되게 재미없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할리우드 웨스턴은 절대 안 본다는 결심을 하게 된 영화들이 <기병대>랑 <아파치 요새>다. 그런데 5, 6년 전에 <기병대>를 DVD로 다시 봤다. 그때 이 영화가 굉장히 이상하면서도 매력적인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불균질함이 있지만 너무나 감동적인 장면이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감정적인 클라이맥스는 소년병들과 존 웨인의 기병대가 싸우려는 장면이다. 어떤 병사가 늙은 교장부터 쏴 버리겠다고 총을 들이댔을 때, 존 웨인이 그 총을 치면서 ‘도망갈 수밖에 없지’ 하면서 도망가는 그 장면이 감동적이었다. <기병대>를 존 포드가 만든 영화중에서 잘 만든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에피소드가 쭉 나열되어 있는데 너무 감상적이기도 하고, 자기가 얘기하는 걸 교훈처럼 들려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건, 인간이 전쟁을 한다는 건 일종의 광기인데 이 광기에서도 인간들에게 그래도 지켜야 될 예의가 있지 않느냐, 라고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다.

오늘 큰 화면으로 보니까 클라이맥스 장면이 가슴을 저리게 만들었다. 소년병 육군 사관학교에서 교장이 소년들을 데리고 있고, 소년들이 떠난 다음에 기도하는 모습과 그 다음에 나오는 장면들을 보면서, 존 포드가 했던 이야기가 ‘상식’ 이거라는 생각을 했다. 상식이 안 통하는 곳에서 상식을 얘기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 그건 아마도 존 포드가 50년대 초 매카시즘을 겪고 나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어둠과 밀접하게 관계있지 않을까. 존 포드는 아일랜드 사람이고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갖고 있는 멋진 정신과 가치들,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프런티어 정신과 청교도적인 정신들에 대한 자부심과 명예가 대단했다. 존 웨인을 통해 그 정신들을 보여주다가, 한국전쟁과 매카시즘을 겪으면서 존 포드는 흐트러지기 시작한 것 같다. 아까 <기병대>에 불균질함이 있다고 했는데, 영화를 못 만들어서 생기는 불균질함은 매혹적이지 않다. 내가 매혹적이라고 생각하는 불균질함은 균형이 맞지 않지만 감독이 말하고 싶은 욕망이 너무 커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들을 집어넣다보니까 균형이 깨지는 것이다. 감독이 이 시대 얘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뭔가가 좀 균질하지 않게 되는 영화들이 매혹적이다. 모든 감독들은 영화를 균질하게 만들고 싶겠지만, 자신이 얘기하고자 싶은 것들이 많아서 불균질함이 나오는 게 매력적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
저도 비슷하게 이 영화를 어릴 때 TV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다시 보면서는, 이 영화가 남북전쟁을 다룬 영화임에도 인상적인 순간들이 전쟁을 회피하려고 할 때 나온다고 생각했다. 존 웨인이 보여준 행동들이 특별하다. 울퉁불퉁하고 불균질하다고 말했을 때, 그것들 대부분은 존 웨인의 행동들에서 나온다. 발로 걷어차고, 때리고, 집어던지는 신경질적인 행동들이 인상적으로 남았다. 영화의 마지막에 흐르는 음악 또한 인상적이다. 그 음악은 알다시피 <수색자>의 테마 음악이다. 라스트 신의 구도가 <수색자>의 시작과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서 존 웨인과 제임스 스튜어트가 한 여자를 둘러싸고 있는 설정이 이 영화의 존 웨인과 윌리엄 홀덴과 겹쳐지는 면이 있어, <기병대>가 <수색자>와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의 중간에 위치한 것 같은 인상이다. 존 포드의 다른 영화와 비교할 때, <기병대>는 약간 심심한 것 같지만 기저에 깔려 있는 이상한 장면들이나 느낌들을 얘기해본다면 그 점이 독특하게 와 닿는다.


오승욱 :
얼마나 많은 관객이 들었건 간에 마초들을 다루는 영화들의 시효는 5~10년이라고 생각한다. 5~10년이 지나면 그 마초들의 행동은 다 비웃음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 마초영화는 잘못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더티 해리>에서 이스트우드의 행동은 시간이 지나면 패러디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존 포드 영화에서 남성들에 대해 영웅시되는 것들이 있다. 존 포드 영화에서 클로즈업은 많지 않은데, <기병대>에서 매우 인상적인 클로즈업이 있다. 흑인들 사이로 북군이 지나갈 때 남군이 총으로 쏘는 게 북군이 아니라, 북군 속에 있는 한나 헌터의 흑인 하녀를 죽이는 장면이 있는데, 그 여자가 죽어갈 때 존 웨인의 클로즈업이 등장한다. 이건 진짜 클로즈업인데 존 웨인이 한나 헌터에게 ‘나 때문에 죽은 것 같다’면서 사과를 한다. 이때 <기병대>는 존 웨인이라는 인간의 성장영화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봤다.

존 웨인은 떠나기 전에 부상병이 생기면 놓고 갈 거라고 했던 사람인데 마지막엔 그가 부상병이 된다. 영화 초반부엔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 많이 바뀌어가면서 자기가 갖고 있던 신념이 침해를 받으니까 신경질을 부린다. 존 웨인의 히스테리가 최고조에 달하는 건 남군이 기차에서 내리는데, 정규군이 아니라서 일방적인 학살이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다. 윌리엄 홀덴과 마지막에 악수하는 것도 이들의 우정이 쌓여서가 아닌 것 같다. 부대 지휘관으로서 처음 등장했을 때는 용맹했었는데, 이제는 다른 지휘관이 되어 있다는 게 느껴진다. 존 포드가 미국에 대한 환희의 송가를 떠들었던 감독에서 50년대를 거치고 난 후 어두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감독으로 변한 것이 존 웨인을 통해 보이는 것 같다.



김성욱: <기병대>가 이전의 존 포드 영화와 다른 것은 풍경을 활용하는 방식에서도 엿볼 수 있다. 시작부를 장식하는 모뉴먼트 밸리나 대자연의 풍경이 이 영화에는 보이지 않고, 타이틀 시퀀스 이후 곧바로 실내로 들어가 버린다. 마지막은 집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난다. 통념적인 방식의 존 포드 세계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가 완전 실내극에 가까운 서부극인 걸 보면, <기병대>는 그 중간정도에 위치한 것 같다. 대자연이 갖고 있는 미국적 서부에 있어서의 포용적 세계들이 사라지고, 그걸 대체하는 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성조기이다. 자연의 포괄적인 세계를 대신하는 것이 규범, 법, 국가로서의 깃발들이다. 남북전쟁과 관련해 노예 해방이라든지 주제적인 면이 부각되는 것도 없다. 흑인이 묘사되는 장면은 크게 두 번 나오는데, 그 중 하나는 말씀하신 하녀의 죽음의 순간이다. 그 장면은 아무런 부연설명도 없이 갑자기 전개된다. 또 하나가 영화 초반에 기병대가 진군해가는 과정에서 흑인 아이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이 장면은 <분노의 포도>에서 빈민촌을 방문하는 순간의 장면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존 포드의 세계를 이루던 것들이 사라지고, 그것을 대체해나가는 국가적 규범, 혹은 가정이라는 두 세계가 구축되고 거기서 존 웨인은 최종적으로 도피하는 듯하다. 그런 식의 설정이 이 영화를 독특하게 보이게 만든다.


오승욱 :
<아파치 요새>도 기병대들이 임무 수행을 다루는데, 거기에서의 클로즈업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 중 하나는 존 웨인이 헨리 폰다의 죽음에 경외심을 보내고 우리도 죽을 차례라고 말할 때의 클로즈업이다. 반면 <기병대>에서는 남성의 의지를 표상할 때 클로즈업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과하는 장면에서 클로즈업이 나온다는 게 특별하다. 기존의 존 포드 영화에서 많이 생각이 바뀐 영화다. 마초 남성들의 굳건한 남성성이 계속 영화 속에서 조롱당하고 있다. 존 웨인을 통해서 히스테리를 표출하는데 히스테리라는 게 여성들의 행동에서 나온 것 아닌가. 또한 남성성을 표방한다는 것은 남성성에 대한 자부심이 없어서 치장한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치장들이 조금씩 조롱되고 있다. 마초 영화들은 그들 행동의 많은 부분이 여성에 대한 두려움과 죄의식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초적인 것을 표방하는 소설도 항상 여성성에 대한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다.

사실 이 영화가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화를 만들어야 하니까 할 수밖에 없었던 타협들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존 포드는 전쟁은 이래야만 하는가, 라고 질문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바로 그게 존 포드의 위대한 점 아닐까. 어떤 상황이 되었건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는 상식을 놓지 않으려 존 웨인은 안간힘을 쓰는데, 이 영화의 감동적인 부분이 그런 것에서 나온다.


정리: 송은경(에디터)
사진: 임유정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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