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당대의 공기를 올곧게 증명하는 것”

변영주 감독이 말하는 장 피에르 멜빌의 ‘그림자 군단’

 

지난 1월 27일 오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감독 변영주가 추천한 장 피에르 멜빌의 <그림자 군단> 상영 후 시네토크가 열렸다. 어린 시절, 멜빌의 영화에 매혹되었던 기억을 비롯하여 <그림자 군단>에 대한 감흥, 멜빌 영화의 현대적 특징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이 날의 대화를 일부 옮긴다.

 

 

변영주(영화감독):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어떤 영화를 추천할까를 고민하면서 영화적 매혹을 강렬하게 느꼈던 어떤 순간들을 떠올려봤다. 어렸을 적, 부모님께서 보시던 비디오를 통해 <암흑가의 세 사람>(1970)을 처음 접했었다. NHK에서 방영되었던 일본어 더빙판을 녹화한 비디오였기 때문에,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영화에 대한 느낌은 굉장히 강렬했다. 나중에서야 당시 보았던 영화가 장 피에르 멜빌의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멜빌의 영화 중 <암흑가의 세 사람>이나 <사무라이>(1967) 같은 영화들을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 훨씬 더 어울릴 영화가 <그림자 군단>(1969) 같다는 생각을 해서 추천하게 되었다. 대학을 다니던 때 읽었던,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이라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소설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인용하는 구절이 있다. “왜 나는 인류를 사랑하면 할수록, 특정한 어떤 사람을 혐오하고 증오하게 되는가. 반면 특정한 인물을 증오하고 혐오할수록 왜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은 깊어져 가는가.” 오늘 보신 <그림자 군단>과도 잘 맞는 구절이라고 생각된다. 폭압이나 독재와 싸우는 일은 멋진 일이 아니다. 영화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영화 속 레지스탕스들이 실제로 하는 일은 계속해서 잡히거나 도망가거나, 누군가를 의심하거나 죽일 수밖에 없거나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딱히 독일군에게 위협적인 일을 한 것도 아니다. 이처럼 불의에 항거한다는 것이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이상과 싸울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자 군단>은 실제 레지스탕스인물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 원작이고, 멜빌 감독 자신도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었다. 마틸드 역을 연기한 시몬느 시뇨레은 부모가 유태인으로 독일에서 탈출해 레지스탕스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처럼 감독과 배우들이 그 때의 기억을 명백하게 갖고 있었고, 그것이 어떤 일이었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영화였다. 멜빌 감독의 영화는 다이렉트하면서도 굉장히 힘이 있다. 멜빌의 영화를 흔히 장르 영화라고 하지만, 단지 스타일로서의 장르가 아니라, 당대의 공기를 올곧게 증명하는 것으로서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악의가 아니었건, 누군가가 겁에 질렸건 간에 ‘잘못된 일에 대해 용서하지 않는다’라는 굉장히 명백한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떠올렸던 건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세대이다. 마흔 살이 될 때까지 나의 아버지 세대를 이해해 본적이 없었다. 왜 아버지에게는 내 가족과 삶의 안정 이외에 보다 더 높은 가치, 이를테면 대의, 올바름, 보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열망 같은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생각했었다. 그래서 철이 든 이후에는 아버지와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었고, 언제나 서로 굉장히 방어적이었다. 하지만 마흔 살이 되던 해에 우연히 박완서 작가의 『그 남자네 집』을 읽다가, 청춘이라는 것이 살아야한다는 강박과 공포로 대치된 인생을 산 사람에게 있어서, 자신의 가정과 삶 외에 보다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일이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훨씬 역사의 과오에 대해 훨씬 더 냉정해지는 것, 그 앞에서 정말 명징해지는 것들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그 세대가 그 세대의 나라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사는가가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1: <그림자 군단>이 주제적인 측면 외에, 스타일이나 형식, 연출에 있어서 현재에도 호소력을 갖고 있다면 어떤 점에서 그런지 궁금하다.

변영주: 멜빌의 영화가 놀랍도록 현대적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장르라는 것은 이미 관객에게 익숙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다음의 이야기를 하기가 쉬워진다. 장르로서의 완벽한 자기 구조를 갖게 되면 관객에게는 구조 자체가 낯설지 않기 때문에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더 나아갈 수가 있다. 그런 면에서 보다 어려운 이야기, 어떤 심층의 이야기를 숨겨서라도 표현하고 싶을 때 장르라는 것이 용이하다고 생각한다. 멜빌은 <암흑가의 세 사람>이나 <사무라이>와 같이 범죄자를 주인공으로 해서,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느와르 장르의 이야기 구조를 가져오는데, 그러한 방식이 흥미로울 뿐 아니라, 고조된 감정과 상황에서 더욱더 당대의 향기를 맡기가 쉬워진다. 당대의 질서, 그 세대의 감정에 대해 알기 쉬워지는 부분이 있다. 멜빌의 영화는 미학적으로 현대적이라기보다는 영화에 담겨있는 시대적 공기라든가 하는 것들이 훨씬 현대적이라고 느껴진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가 무엇보다 탁월하다. <그림자 군단>의 경우 실제 인물들을 참조해 캐릭터가 만들어짐으로써 영화가 표현하고 있는 최대치를 담을 수 있었고, 그래서 러닝타임이 긴 편임에도 매 순간 긴장감이 있다. 일본어 더빙판으로 멜빌의 영화를 보았던 어린 시절, 내용을 알 수는 없어도 영화에 매혹되었던 건, 쇼트와 쇼트를 연결하는 방식과 카메라의 움직임들에서의 김장감을 때문이었던 것 같다.

 

관객2: 멜빌의 영화 중 <그림자 군단>이 요즘 시대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

변영주: 물론 지금의 우리가 레지스탕스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웃음) 우리가 어떤 것들을 바라고 꿈꿀 때 그것이 어느 한 순간에 이뤄지는 경우는 없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필리핀 감독 닉 데오캄포의 <혁명은 유행가 가사의 마지막 후렴구처럼 다가온다>는 영화가 있다. 혁명이든 변화든 우리가 바라는 어떤 세상은 어느 한 순간에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은 굉장히 지지부진할 수 있고, 누군가를 의심하게 되거나 필요 이상으로 좋아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걷다 유행가의 후렴구를 떠올리듯이 그렇게 혁명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보자면, 올바르다는 것, 정의롭다는 것은 끊임없이 검증되어져야하고, 위험에 노출되게 된다. 주인공이 내레이션을 통해 갈등하듯이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으면 그 다음 걸음을 가기가 힘들다. 그런 면을 이 영화를 통해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정리: 장지혜(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문지현(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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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작 리뷰

전형적 장르 문법과 작가적 야심의 기묘한 충돌

- 알란 파커의 '페임'

 

시장통과 다름없는 예술고의 오디션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자신과 어머니의 관계를 얘기하다 선생의 눈치를 보는 몽고메리의 자기소개에서 시작한 화면은 곧 무용과와 연기과, 음악과에 응시한 아이들의 실기시험 장면들을 빠른 속도로 훑는다. 그리고 지원서조차 제대로 내지 않은 아이가 오로지 실력으로 높은 점수를 얻어 합격하는가 하면 이른바 ‘문 닫고 합격’을 하는 아이도 있고, 친구는 붙었는데 자신은 떨어지자 온갖 저주의 말을 내뱉으며 눈물과 함께 퇴장하기도 한다. 도대체 왜 이 학교에 지원한 것인지 잘 모르겠는, 춤도 악기도 잘 다룰 줄 모르면서 무용과와 음악과를 차례로 순방했다가 결과적으로 연극과에서 합격한 아이도 있다. 이렇게 높은 경쟁률을 뚫고 예술고에 합격한 이들의 4년을 다루는 영화가 바로 <페임>이다. 영화는 이 중에서도 연극과의 3인방 맥닐리와 도리스, 랄프, 그리고 무용과의 리로이와 코코, 음악과의 브루노 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페임>에 대해 “꿈을 가진 10대 예비 예술가들의 좌충우돌과 좌절과 성장” 운운하는 건 너무 뻔한 소개가 될 것이다. 그보다, 영화평론가 구회영이 그의 저서에서 80년대 할리우드 영화의 가장 큰 특징으로 ‘장르의 해체’를 지적한 면을 상기하고자 한다. 어쩌면 이 영화야말로 애초 ‘뮤지컬’ 제작을 염두에 두고 기획되었으면서도 전형적인 뮤지컬 공식은 한사코 피하며 ‘장르의 해체’ 경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10대의 방황과 성장을 다룬 점에서 청춘영화로, 예술고가 배경이라는 점을 십분 활용해 뮤지컬 장르의 전매특허라 할 만한 잼 공연 장면이 두 시퀀스나 삽입돼 있다는 점에서 뮤지컬로 볼 수도 있다. 특히나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차지하기도 한 아이린 카라의 주제곡이 큰 인기를 끌었는가 하면 그녀가 직접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부 ‘전형적인 외형’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결코 ‘전형적인 장르영화’로 이어지지 않는다. 특정한 한두 명이 아닌 다수의 주인공들이 무더기로 등장하는 캐릭터 구성, 영화의 클래이막스가 될 만한 중심적인 사건 대신 이들의 4년의 일상적인 학교생활을 스케치하듯 그려나가는 이야기 구조, 그리고 이를 위해 이들의 소소한 사연들을 빠르고 훑고 교차시키는 편집.

 

결정적으로, 이 영화의 두 번의 잼 공연 장면은 한 번은 일부 주인공들의 참여 거부와 황급한 퇴장으로, 또 한 번은 주변 인물들의 격렬한 항의와 싸움으로 이어진다. 뮤지컬 공연 장면의 전형적인 대단위적 ‘동화와 참여’ 대신 ‘불화와 방해’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는 시퀀스를 넘어서, 전형적인 상업적 장르영화의 외피와 작가적 야심이 기묘하게 충돌하고 부조화를 이루며 오히려 독특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이 영화의 전체적 특성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다른 영화도 아닌 <록키 호러 픽쳐쇼>를 이 영화가 중요하게 인용하는 장면이 더욱 의미심장해지는 것이다.

 

김숙현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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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사람의 기억은 머리에 남을까,

마음에 남을까?!”

- 배우 배수빈이 말하는 미셀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

 

2013년 여덟 번 째 친구들 영화제가 한창인 지난 24일,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 상영 후 배우 배수빈과 함께 한 시네토크 자리가 마련되었다. 배수빈은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함께 볼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인사를 전하며, 삶과 영화에 대한 진심어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배수빈(배우): <이터널 선샤인>을 네다섯 번 정도 봤는데, 볼 때마다 가슴에 와 닿는 장면이나 대사가 달랐다. 볼 때마다 그 느낌이 달라서 신기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인 후 다시 본다면 또 어떤 장면과 대사가 나에게 영감을 줄까하는 기대감에 이 영화를 같이 보자고 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자주 보게 됐던 건 이 영화 속 주인공처럼 뭔가 잊고 싶은 게 있었던 건가?

배수빈: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운명인 것 같다. 나와 너무 달라서 혹은 나와 너무 비슷해서, 자기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끌림들 때문에 상대를 사랑하게 되고 그래서 그 사람과 함께 무언가를 경험하게 되지 않나. 잘 끝났건, 잘 끝나지 못했건 그 기억들은 소중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 기억들로 인해 우리는 한 사람으로서 성숙한 연애를 할 수 있고,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됐다. 딱히 나에게 안 좋은 기억이 있었던 게 아니라. 나는 좋은 기억이든 안 좋은 기억이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려고 하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김성욱: 영화 속 조엘(짐 캐리)이라는 인물은 과거의 상처 때문에 기억을 지웠다. 상대역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도 그렇다. 짐 캐리는 이런 캐릭터를 많이 맡아왔다. 나에게는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의 캐릭터로서 조엘이라는 인물이 특별하게 와 닿는다. 배우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이는가?

배수빈: <이터널 선샤인> 속의 짐 캐리를 보면 당시에 어떤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것 같은 모습이다. 얼굴에서 그런 분위기가 나지 않나. 나도 연기를 하면서 상처를 갖고 있고, 결핍을 가진 인물들에게 끌리곤 했다. 작년에 작업한 <26년>이라는 작품 같은 경우, 혼자만의 트라우마가 아닌 전 국가적인 트라우마를 다루고 있다. 나는 트라우마가 너무 크다면 살아가는 힘마저도 빼앗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들이 올 수도 있겠지만 긍정적으로 이겨내다 보면 또 다른 삶이 펼쳐지지 않을까. 영화 속에서는 트라우마에 빠져버린다 해도 최소한 삶에서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성욱: <이터널 선샤인>과 함께 추천했던 작품은 <태양은 가득히>였다. 이 작품은 어떤 점에서 끌렸나?

배수빈: 그 영화 역시 알랭 들롱의 부와 명예에 대한 결핍 때문이었던 것 같다. 거짓말에 거짓말이 더해지고. 자신이 따라가고 있는 욕망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다. 내 입장에서 본다면 내가 배우로서 추구해 나가야하는 방향성 같은 것을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였다.

 

김성욱: 이 영화를 보며 짐 캐리라는 배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초기작 <마스크>나 <케이블 가이>를 보면 몸으로 CG를 구현하는 듯한 배우였는데(웃음), 2000년대 초반에는 진지한 역할을 자주 맡았다. <트루먼 쇼>도 그렇지 않나. 오늘 영화에서 인상 깊은 탁자 장면을 보면, 한편으론 진지하면서도 한편으론 이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위트 있는 캐릭터를 잘 소화해낸다. 배우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배수빈: 굉장히 특별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나도 배역을 맡다보면 한 쪽으로 치우쳐진 경우가 많다. 짐 캐리 같은 캐릭터 소화가 가능한 것은 여유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초반에는 나이도 어리고 경험치도 없는 배우가 본인의 개성으로 이슈화되어 나오다가, 시간이 흘러 여유가 생기면 그 개성이 페이소스 있게 풀어지는 게 아닐까. 나도 세월의 무게가 더해지면 여유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성욱: 이 영화에서 어떤 장면을 특히 좋아하나? 내 경우에는 탁자 장면이 인상 깊다. 재미있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이다.

배수빈: 짐 캐리가 어린 시절 자위행위 하던 기억으로 돌아간 장면. 중고등학생때 누구나 경험해봄직한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성욱: 다 경험하지는 않는다. (웃음)

배수빈: 미셸 공드리의 편집도 좋다. 그러니까 중간 중간 갑자기 인물이 사라지고 거꾸로 진행되고, 신기할 정도로 편집을 잘 했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천재 감독 같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기억을 없애는 방법이 머릿속의 점들을 지우는 것이란 아이디어 자체도 신기했다. 사람의 기억은 머리에 남아있나, 마음에 남아있나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김성욱: 이 영화를 촬영했을 당시 이야기를 들어보면, 짐캐리가 몇몇 장면들에서 편집에 의존한 게 아니었다고 한다. 어떤 장면은 카메라 뒤로 돌았다가 본인이 직접 다시 카메라 앞으로 나타나고. 두 명이 나오는 장면도 각기 찍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인터뷰에서 미셸 공드리는 이런 방식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 때 한 대답이 “해보지도 않고 가능하냐고 묻느냐”는 것이었다. 배우로서 감독과의 그런 경험이나 일화가 있는지.

배수빈: 유지태 감독의 장편 데뷔작 <마이 라띠마>에서 함께 촬영을 했는데, 매 장면마다 2테이크 씩 간 것 같다. 한 장면 장면을 위해 합심해서 노력 했다. 감독의 의지가 이렇다고 해서 이렇게 되는 것도 아니고,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그렇지 않나. 함께 합의를 한다면 몇 테이크인들 촬영 못하고, 거꾸로 찍는 것인들 못하겠나. 배우는 자신의 역할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다. 그런데 그건 어떻게 보면 사족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라는 매체는 내가 느끼는 것보다 관객들이 느끼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김성욱: 그런 식의 경험이 있있던 장면이 있나? <26년> 같은 작품에서는 많았을 것 같다.

배수빈: <마이 라띠마>를 찍을 때 스테디캠으로 1분 이상 지속되는 장면이 있었다. 출연 인원만 30-40명이 얽혀서 나오는 건데, 그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 8시간 정도를 투자한 것 같다. 딱 한 테이크를 위해서. 거기에는 주연, 조연 배우도 있겠지만 보조출연 하시는 분들도 있고 스탭분들도 있다. 정말 작은 역할부터 스탭들까지 전부.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 다 함께 힘을 기울였던 장면이 생각난다.

 

김성욱: 짐 캐리는 <이터널 선샤인> 시나리오를 받고 로또에 당첨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배우로서 활동하면 여러 종류의 시나리오를 받을 텐데, 어떤 식으로 판단을 하나?

배수빈: 반반이다. 정말 잘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 시나리오는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지금 <광해>의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 <광해>의 영화 시나리오를 봤는데 이 영화는 될 것 같다는 생각이 확실했다. 시나리오가 주는 묵직함이 있었다. 배우들은 내 생각에 감인 것 같다. 내 경우에는 잘 넘어가느냐, 읽는 중간에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잘 넘어가느냐, 시나리오를 다 읽고 딱 덮었을 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드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었던 작품들은 거의 그런 식이었다.

 

김성욱: 첫 영화, 첫 작품을 한지 거의 10년 가까이 된 것으로 안다. 어떤 계기로 배우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배수빈: 사실 처음에는 배우가 될 생각이 없었다. 원래 나는 사진을 하고 싶었다. 어린 시절엔 사진, 음악 이런 것들이 너무 좋았다. 우연찮게 배우라는 직업을 갖게 된 거다. 배우로 지내다보니 결국 과연 무엇 때문에 내가 창작 활동을 좋아했을까 궁금해졌다. 결국 그것은 사람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회 현상들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연기를 하면 캐릭터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 캐릭터들이 갖고 있는 상처들을 감싸 안으면서 따뜻한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앞으로도 휴머니티가 살아있는 작품들을 위주로 선택하고자 한다.

 

관객: 지금까지 TV나 영화에서 진지하고 의미 있는 캐릭터 위주로 선택했던 것 같다. 사극도 그렇고. 생각하고 있는 롤모델 배우나 감독이 있나? <26년>, <마이 라띠마>, <무서운 이야기> 등 영화 선택이 대중적이지 않을 것 같다.

배수빈: 마음이 가면 그냥 한다. 그게 정답인 거 같다. 어디에 구애 받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연기만 할 뿐이다. 실험적인 작품에 가능한 한 많이 출연하고 싶다. 본받고 싶은 배우라고 하면, 상(像)이 없는 배우가 되고 싶다. 고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싶지 않다. 상을 부수상이 없는 배우. 고정적으로 저런 느낌이야, 이런 상을 갖는 게 싫다. 상을 부수는 작업을 해나갈 생각이다.

 

정리: 김경민(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박지연(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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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30년 전의 안개마을과 현재의 안개마을

- 영화제작자 심재명이 말하는 임권택의 '안개마을'

 

지난 20, 영화 제작자인 심재명 명필름 대표가 추천한 <안개마을> 상영 후 시네토크가 진행되었다. 심재명은 1984년에 허리우드 극장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본 이후 스크린으로 다시 보는 게 삼십여 년만이라며 감회가 새로움을 술회했다. 영화 제작자로서는 처음으로 친구들 영화제에 참여한 심재명은 제작자 지망생들을 위한 진심어린 충고를 전해주기도 하였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안개마을> 1983년 당시 허리우드 극장에서 개봉하기도 했더라. 30년 만에 다시 상영을 하는 게 특별하다고 생각이 든다. 영화를 추천할 때 84년도에 허리우드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고 했는데.

심재명(영화 제작자): 84년에 이 영화를 처음 봤는데 당시에 대학교 1학년이었다. 84 3월에 월간 스크린이라는 잡지가 처음으로 창간이 되었다. 거기서 대학생 모니터 기자를 뽑았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매달 15일 마감을 지키는 것뿐이었는데, 그땐 모니터기자가 됐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고 기뻤다. 잡지의 창간  이벤트를 허리우드 극장에서 했었다. 80년대뿐만 아니라 당대 대표적인 한국감독이었던 이두용, 하길종 등의 70년대 영화들까지 상영을 했는데, 이분들의 영화를 이때 처음 보게 되었다. 84년도에 영화제를 통해 한국영화를 본 것은 굉장히 충격이었다. 영상문화의 충격. 그 중의 하나가 안개마을이었다. 이 영화를 추천한 이유는 84년도에 봤던 영화가 뭐였는지, 내가 본 것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비디오테이프가 아닌 스크린으로 보고 싶었다.

 

김성욱: 그 때 당시의 느낌이 어떤 것이었고, 오늘 느낀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심재명: 많은 부분이 다르다. 당시에는 집성촌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암묵적으로 무언가 이루어진다는 것의 매혹을 느꼈다. 이 영화는 12일 만에 촬영을 끝냈다고 하는데, 12일 만에 미장센과 주제에 깊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에 감탄했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영화가 되게 설명적이다. 임권택 감독님을 당시에 알았다면 내레이션을 다 빼면 좋을 거란 생각을 말씀드렸을 것 같다. 하지만 화면이나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하면서 볼 수 있었다. 30년 만에 안성기 씨나 정윤희 씨 얼굴을 보는 게 굉장히 반가웠다. 조연출의 김상범 씨는 지금은 한국 최고의 편집감독이다. 그런 분들의 이름을 다시 이렇게 보니까 남다르다.

 

 

김성욱: 80년대의 제작자는 감독을 고르는 일에 몰두하고, 감독을 선택하면 모든 걸 감독이 다 하는 식이었다고 하더라. 80년대와 90년대 제작환경의 차이가 있었다면 무엇인지.

심재명: 80년대 제작환경이나 시스템에 대해서는 풍문으로 듣고 경험은 못해봤다. 90년대 중반에 내 또래의, 혹은 바로 윗세대인 젊은 제작자들이 많이 등장했다. 이들은 창작자인 감독과는 또 다른 입장에서 영화란 것에 큰 매력을 느끼고 창작에 존경심을 가지며, 제작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새로운 세대였다. 그들이 봉준호, 박찬욱, 홍상수 등의 젊은 감독들과 만나게 되면서 90년대 중반 이후에 새로운 한국영화의 세계가 열렸다고 볼 수 있다.

과거의 제작자님들이 하는 풍문 같은 얘기들을 들어보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바보들의 행진>(1975, 하길종)을 제작할 당시 하길종 감독님이 제작자 몰래 영사실에 들어가서 제작자가 잘라놓은 걸 다시 붙여 상영을 했다고 한다. 제작자가 처음에는 화를 냈지만 그 이후에는 서로 통쾌한 미소를 지으며 그냥 넘어갔다고 하더라.

  

관객1: 여성 관객으로서 마지막 장면은 깨칠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부분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심재명: 개인적으로 성적욕구의 배설구이자 암묵적인 합의하에 벌어지는 이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여성의 욕망을 다룬 것을 보기 힘들기도 했고. 남성 중심적인 영화만 보다가 신선했다.

 

관객2: 상업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하다.

심재명: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한편의 영화는 어떤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을 것인가 그것이 소재일수도 있고 한 장면의 이미지가 떠오를 때도 있고 제작자의 손에서든 감독의 손에서든 출발한다. 영화 제작은 굉장히 많은 회의와 의구심이 들게 하는 작업이다. 이 시대의 관객에게 효용가치가 있는 것인가가 굉장히 애매한 상태인 것이다.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한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출발한 이야기가 수십억 원의 자본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만든다. 투자사를 설득하고 주연배우를 설득하고,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상대를 향해서 계속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만들어내는 것이 영화작업이다. <안개마을>처럼 12일 만에 프로덕션이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건축학개론> 같은 영화는 십년이란 기간 동안 공회전을 하다가 2012년에 간신히 만들어지기도 했다. 콘텐츠를 책임지는 작가의 힘도 중요하지만 투자 배급사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힘의 역학관계가 바뀌는 상황이다. 한국영화의 새로운 지형도를 읽을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관객3: 임권택 감독님 작품 중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심재명: 대중적으로 정말 재밌게 본 건 <장군의 아들>,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만다라>. 작가주의 감독이라기보다는 영화 장인의 선에 서서 새로운 영화문법이나 영화세계를 깨쳐나갔던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개마을>을 추천하게 된 데에는 이 영화를 다시 확인하고 싶다는 열망과 동시에 임권택 감독님의 다음 영화를 명필름에서 하게 될 것 같다는 점도 작용했다. 얼마 있으면 팔십이 되시는데 유일한 현역이다. 임권택 감독님의 마지막 영화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는 게 소망이다.

김성욱: 영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관객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한다.

심재명: 꿈꾸는 일로 먹고 사는 게 행운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영화를 하고자 하는 감독 지망생과 제작자 지망생에게 무엇보다 치열하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제작자도 감독과 함께 궁극의 영화를 꿈꾼다. 궁극의 영화를 만들고 싶은 열망에 의해서 출발을 하고 함께 견디는 거다. 궁극의 영화를 만들고 싶은 열망, 본질적인 영화정신이 갈수록 필요한 때이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2015년에 파주에서 만들게 될 명필름영화학교는 졸업과 동시에 장편영화 한편을 만들게 된다. 새로운 재능들이 끊임없이 영화계에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리고 수십 편의 영화를 만든 노하우를 젊은 후배들에게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서 영화학교를 기획하게 되었다. 혹시 지원하실 분이 이 자리에도 계실지 모르겠으나 관심 가지고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정리: 박민석 (관객에디터)  |  사진: 문지현(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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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 <범죄소년>의 강이관 감독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기를”

 

 

 

 

 

 

2013년 첫 번째 ‘작가를 만나다’에서는 <범죄소년>(2012)을 상영하고 강이관 감독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범죄소년>은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과 최우수 남자배우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 영화제의 연이은 수상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두 모자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가며 풍부한 감정들을 담고 있는 영화처럼, 이날의 대화 역시 차분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청소년 이야기가 전체를 끌어가리라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엄마의 느낌이 더 많이 와 닿았다. 어떻게 소년원에 가게 된 청소년을 다루면서 미혼모의 이야기를 함께 연결시키게 되었나.

강이관(영화감독): <범죄소년>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제작한 영화이다. 처음에는 인권영화를 찍는다는 것에 대해 부담이 많았는데, 인권위 쪽에서는 평소 만들던 대로 만들면 된다고 얘기했다. 인권위에서 주제를 주지는 않았다. 그동안 제일 다뤄지지 않은 것이 재소자 문제와 노인 문제라는 얘기를 들었고, 평소에 청소년에 관심이 있어서, 청소년과 재소자 이 둘을 묶게 되었다. 일단 청소년 범죄의 전 과정을 보고 싶었다. 학교, 유치장, 법원, 소년원, 소년분류심사원, 소년교도소, 청소년쉼터를 찾아가 그 곳에서 아이들, 선생님들과 만나 얘기하는 과정에서 여자 친구들의 경우 미혼모 문제가 많이 와 닿았었다. 그리고 소년원을 가보면 학교와 다름이 없다. 체육복 입고 수업도 받는데, 가만히 있기 때문에 착해 보이기도 하고, 몸은 굉장히 큰데 얘기해보면 초등학생 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다. 범죄소년은 법률용어인데, '14세 이상 19세 미만의 소년으로서 형벌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해 형사책임을 지는 자'를 뜻한다. 예전에 범죄소년이었고, 미혼모였던 그녀가 성인이 되면 어떻게 될까 떠올리면서 미혼모 문제를 결부시키게 됐다. 엄마는 아직 엄마가 될 준비가 안 되었는데 아이를 만나게 되고, 아이는 보기에는 아직 어린데 죄를 저지르고 엄마를 만났을 때, 그러한 변곡점이 만났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드라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김성욱: '도쿄 영화제'에서 상영될 때 영화의 일본어 제목이 ‘미숙한 범죄자’다. 영화와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와 엄마까지 포괄해서 이 영화는 사회 안에서 미숙한 인물을 다룬다. 남자 아이가 두 번 반복해서 “한번만 용서해주시면 안돼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와 달리 두 번째에 얘기할 때 아이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얘기하는데,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못 느끼고 있다는 것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왜 용서가 안 될까라는, 사람들의 관용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아이의 그 대사는 어떤 뉘앙스로 생각하셨는지 궁금하다.

강이관: 시나리오 상에서 의미 부여를 하고 반복 한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에는 굉장히 진심을 다해서, 정말 용서해달라는 느낌을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에 엄마를 만나는데, 엄마의 캐릭터가 어떻게 보면 닳고 닳은 인물이고, 그런 것을 아이가 엄마를 통해 배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찰서에서 두 번째로 그 말을 할 때는 엄마처럼 한번 던져보고 아님 말고, 하는 식이다. 저로서는 슬픈 느낌의 대사였다.

 

 

 

 

김성욱: 엄마의 캐릭터가 독특하다. 미숙해보이면서도 다정함이나 발랄함이 느껴지는데, 캐릭터 설정에서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셨는지 궁금하다.

강이관: 갑자기 엄마 역할을 해야 하는데 한 번도 제대로 된 준비나 생각을 안 해봤던, 굉장히 젊고, 예상보다 굉장히 큰 아이가 있는 미숙한 엄마를 떠올렸다. 영화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지지만 굉장히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어서 그 낙차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를 만들기 전에 박찬욱 감독님의 <파란만장>을 봤는데, 이정현 배우의 연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해 나온 영화들 중 가장 연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라면 같이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이정현 배우에게 연락을 했는데 마침 그 쪽에서도 좋아해서 만나게 되었다. 엄마의 캐릭터는 감정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데, 감정적으로 확 몰입될 때는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가도, 어떤 때는 엄마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그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미용실에서 난리를 피우는 모습은 논리적인 행동은 아니다. 하지만 평소에 길에서 갑자기 화를 내는 사람들을 보면 무서워서 피하다가도, 한편으로는 저렇게 밖에는 자기를 표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나 생각된다. 사람이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그렇게 밖에는 표현할 수밖에 없는데, 이정현 배우는 그런 캐릭터의 상태를 자기 식대로 잘 소화해서 연기 했다고 생각한다.

 

김성욱: 두 사람이 함께 한강을 걸으며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와 닿았다. 방 안에서 아이가 자기 얘기를 털어놓는 순간 엄마와 격하게 싸우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강이관: 방에서의 장면은 찍기도 어려웠고 고민도 많이 했다. 엄마가 굉장히 감정적인 반응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때린다는 설정, 그리고 한 방안에서 맞는 것에서 아이가 방을 나가는 것까지 한 번에 찍는 것 때문에 테이크도 많이 갔다. 과연 아이가 그런 얘기를 했을 때 엄마가 차분하게 대처할 것인가, 아니면 애들처럼 그냥 폭발할 것인가 많이 고민했는데, 폭발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계속 쌓여 왔던 것이 갑자기 엄마한테 맞으니까 폭발해서 오해가 쌓이게 되는 장면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성욱: 아이는 두 번이나 소년원에 들어가게 된다. 소년원은 교도소는 아니고 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학교 같은 곳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소년원에 나온 뒤 재범을 하는 확률이 성인범죄 보다 두 배 이상 많다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교화의 기능보다는 반복적으로 범죄행위를 유발하는 부분도 있다. 이 영화에서 재판장면의 경우 그런 점들을 느끼게 한다.

강이관: 재판장 장면은 실제와 많이 비슷하다. 일반인들은 방청이 불가능하지만 판사의 재량에 따라서 견학을 갈 수 있어서 몇 군데를 실제로 가봤다. 판사의 입장에서 그 분들도 두 가지 감정이 있다. 아이들이 측은하게 느껴지고, 부모 같은 심정이 들고 또 한편으로는 그것이 자신의 일이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에서 사무적으로 처리하는 부분이 있다. 우리나라가 이혼율이 많아지면서 이혼에 대해선 사회적으로 얘기가 많이 이루어졌는데,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그렇지가 않다. 영화 처음에 나오는 얘기처럼, 이혼을 하면 부모가 서로 양육권을 주장 하며 싸우다가 재혼을 하면 아이를 상대방에게 보내고, 또 재혼하면 할아버지나 할머니한테 보내게 된다. 사실 넓게 보면 복지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영화 속 설정에서는 아이와 할아버지는 차상위계층 일텐데, 복지사가 있긴 하지만 그런 가정을 끝까지 돌본다든가 아이가 소년원에 보내지고 난 뒤의 과정까지 책임을 진다든가 하진 않는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할 일을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사각지대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어른들을 따라 하기 때문에 성인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같다. 그동안 재소자문제가 잘 다뤄지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죄를 졌기 때문이다. 그들만이 잘못했다고 계속 얘기할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한번쯤 생각을 해볼 수 있다면 좋겠다.

 

김성욱: 아이는 다시 소년원에 들어가고, 여자아이는 짐을 꾸려서 또다시 떠돌게 된다. 엄마는 어떤 선택 앞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그 모든 부분을 정확하게 얘기하지 않으면서 엄마의 모습과 빈 방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결말은 원래 그렇게 끝내려고 했나?

강이관: 시나리오에서는 결말이 이렇지 않았다. 소년원 퇴소식에서 아무도 없었던 전과 달리 엄마와 여자아이가 찾아온다. 그리고 함께 차를 타고 떠난다는 설정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장면을 다 찍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뭔가 아닌 것 같았다. 촬영이 끝나고 스태프들에게는 아무래도 재촬영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얘기한 뒤 편집실에 와서 보니, 그런 식의 마지막 장면이 단지 극을 끝내기 위한 장면이어서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대신 엄마가 아들을 만나려고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자연스럽겠다고 생각했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처음 엄마와 아이가 만나서 헤어지는 게 1막 정도이고, 다시 만나서 어떻게 잘 해보다가 또 다시 헤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흔히 소년원이나 미혼모 문제라고 하면 굉장히 무겁게 느껴지는데, 그냥 아들과 엄마가 만나 이런저런 일을 겪고, 만나서 헤어지기도 하는 그런 이야기를 떠올렸었고, 그래서 보시는 분들도 가볍게 봐주셨으면 했다.

 

 

 

 

정리: 장지혜 관객에디터 | 사진: 김윤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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