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만나다] <범죄소년>의 강이관 감독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기를"

2013. 1. 24. 11:40작가를 만나다

[작가를 만나다] <범죄소년>의 강이관 감독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기를”

 

 

 

 

 

 

2013년 첫 번째 ‘작가를 만나다’에서는 <범죄소년>(2012)을 상영하고 강이관 감독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범죄소년>은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과 최우수 남자배우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 영화제의 연이은 수상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두 모자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가며 풍부한 감정들을 담고 있는 영화처럼, 이날의 대화 역시 차분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청소년 이야기가 전체를 끌어가리라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엄마의 느낌이 더 많이 와 닿았다. 어떻게 소년원에 가게 된 청소년을 다루면서 미혼모의 이야기를 함께 연결시키게 되었나.

강이관(영화감독): <범죄소년>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제작한 영화이다. 처음에는 인권영화를 찍는다는 것에 대해 부담이 많았는데, 인권위 쪽에서는 평소 만들던 대로 만들면 된다고 얘기했다. 인권위에서 주제를 주지는 않았다. 그동안 제일 다뤄지지 않은 것이 재소자 문제와 노인 문제라는 얘기를 들었고, 평소에 청소년에 관심이 있어서, 청소년과 재소자 이 둘을 묶게 되었다. 일단 청소년 범죄의 전 과정을 보고 싶었다. 학교, 유치장, 법원, 소년원, 소년분류심사원, 소년교도소, 청소년쉼터를 찾아가 그 곳에서 아이들, 선생님들과 만나 얘기하는 과정에서 여자 친구들의 경우 미혼모 문제가 많이 와 닿았었다. 그리고 소년원을 가보면 학교와 다름이 없다. 체육복 입고 수업도 받는데, 가만히 있기 때문에 착해 보이기도 하고, 몸은 굉장히 큰데 얘기해보면 초등학생 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다. 범죄소년은 법률용어인데, '14세 이상 19세 미만의 소년으로서 형벌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해 형사책임을 지는 자'를 뜻한다. 예전에 범죄소년이었고, 미혼모였던 그녀가 성인이 되면 어떻게 될까 떠올리면서 미혼모 문제를 결부시키게 됐다. 엄마는 아직 엄마가 될 준비가 안 되었는데 아이를 만나게 되고, 아이는 보기에는 아직 어린데 죄를 저지르고 엄마를 만났을 때, 그러한 변곡점이 만났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드라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김성욱: '도쿄 영화제'에서 상영될 때 영화의 일본어 제목이 ‘미숙한 범죄자’다. 영화와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와 엄마까지 포괄해서 이 영화는 사회 안에서 미숙한 인물을 다룬다. 남자 아이가 두 번 반복해서 “한번만 용서해주시면 안돼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와 달리 두 번째에 얘기할 때 아이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얘기하는데,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못 느끼고 있다는 것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왜 용서가 안 될까라는, 사람들의 관용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아이의 그 대사는 어떤 뉘앙스로 생각하셨는지 궁금하다.

강이관: 시나리오 상에서 의미 부여를 하고 반복 한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에는 굉장히 진심을 다해서, 정말 용서해달라는 느낌을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에 엄마를 만나는데, 엄마의 캐릭터가 어떻게 보면 닳고 닳은 인물이고, 그런 것을 아이가 엄마를 통해 배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찰서에서 두 번째로 그 말을 할 때는 엄마처럼 한번 던져보고 아님 말고, 하는 식이다. 저로서는 슬픈 느낌의 대사였다.

 

 

 

 

김성욱: 엄마의 캐릭터가 독특하다. 미숙해보이면서도 다정함이나 발랄함이 느껴지는데, 캐릭터 설정에서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셨는지 궁금하다.

강이관: 갑자기 엄마 역할을 해야 하는데 한 번도 제대로 된 준비나 생각을 안 해봤던, 굉장히 젊고, 예상보다 굉장히 큰 아이가 있는 미숙한 엄마를 떠올렸다. 영화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지지만 굉장히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어서 그 낙차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를 만들기 전에 박찬욱 감독님의 <파란만장>을 봤는데, 이정현 배우의 연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해 나온 영화들 중 가장 연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라면 같이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이정현 배우에게 연락을 했는데 마침 그 쪽에서도 좋아해서 만나게 되었다. 엄마의 캐릭터는 감정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데, 감정적으로 확 몰입될 때는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가도, 어떤 때는 엄마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그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미용실에서 난리를 피우는 모습은 논리적인 행동은 아니다. 하지만 평소에 길에서 갑자기 화를 내는 사람들을 보면 무서워서 피하다가도, 한편으로는 저렇게 밖에는 자기를 표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나 생각된다. 사람이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그렇게 밖에는 표현할 수밖에 없는데, 이정현 배우는 그런 캐릭터의 상태를 자기 식대로 잘 소화해서 연기 했다고 생각한다.

 

김성욱: 두 사람이 함께 한강을 걸으며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와 닿았다. 방 안에서 아이가 자기 얘기를 털어놓는 순간 엄마와 격하게 싸우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강이관: 방에서의 장면은 찍기도 어려웠고 고민도 많이 했다. 엄마가 굉장히 감정적인 반응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때린다는 설정, 그리고 한 방안에서 맞는 것에서 아이가 방을 나가는 것까지 한 번에 찍는 것 때문에 테이크도 많이 갔다. 과연 아이가 그런 얘기를 했을 때 엄마가 차분하게 대처할 것인가, 아니면 애들처럼 그냥 폭발할 것인가 많이 고민했는데, 폭발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계속 쌓여 왔던 것이 갑자기 엄마한테 맞으니까 폭발해서 오해가 쌓이게 되는 장면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성욱: 아이는 두 번이나 소년원에 들어가게 된다. 소년원은 교도소는 아니고 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학교 같은 곳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소년원에 나온 뒤 재범을 하는 확률이 성인범죄 보다 두 배 이상 많다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교화의 기능보다는 반복적으로 범죄행위를 유발하는 부분도 있다. 이 영화에서 재판장면의 경우 그런 점들을 느끼게 한다.

강이관: 재판장 장면은 실제와 많이 비슷하다. 일반인들은 방청이 불가능하지만 판사의 재량에 따라서 견학을 갈 수 있어서 몇 군데를 실제로 가봤다. 판사의 입장에서 그 분들도 두 가지 감정이 있다. 아이들이 측은하게 느껴지고, 부모 같은 심정이 들고 또 한편으로는 그것이 자신의 일이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에서 사무적으로 처리하는 부분이 있다. 우리나라가 이혼율이 많아지면서 이혼에 대해선 사회적으로 얘기가 많이 이루어졌는데,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그렇지가 않다. 영화 처음에 나오는 얘기처럼, 이혼을 하면 부모가 서로 양육권을 주장 하며 싸우다가 재혼을 하면 아이를 상대방에게 보내고, 또 재혼하면 할아버지나 할머니한테 보내게 된다. 사실 넓게 보면 복지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영화 속 설정에서는 아이와 할아버지는 차상위계층 일텐데, 복지사가 있긴 하지만 그런 가정을 끝까지 돌본다든가 아이가 소년원에 보내지고 난 뒤의 과정까지 책임을 진다든가 하진 않는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할 일을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사각지대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어른들을 따라 하기 때문에 성인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같다. 그동안 재소자문제가 잘 다뤄지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죄를 졌기 때문이다. 그들만이 잘못했다고 계속 얘기할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한번쯤 생각을 해볼 수 있다면 좋겠다.

 

김성욱: 아이는 다시 소년원에 들어가고, 여자아이는 짐을 꾸려서 또다시 떠돌게 된다. 엄마는 어떤 선택 앞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그 모든 부분을 정확하게 얘기하지 않으면서 엄마의 모습과 빈 방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결말은 원래 그렇게 끝내려고 했나?

강이관: 시나리오에서는 결말이 이렇지 않았다. 소년원 퇴소식에서 아무도 없었던 전과 달리 엄마와 여자아이가 찾아온다. 그리고 함께 차를 타고 떠난다는 설정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장면을 다 찍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뭔가 아닌 것 같았다. 촬영이 끝나고 스태프들에게는 아무래도 재촬영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얘기한 뒤 편집실에 와서 보니, 그런 식의 마지막 장면이 단지 극을 끝내기 위한 장면이어서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대신 엄마가 아들을 만나려고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자연스럽겠다고 생각했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처음 엄마와 아이가 만나서 헤어지는 게 1막 정도이고, 다시 만나서 어떻게 잘 해보다가 또 다시 헤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흔히 소년원이나 미혼모 문제라고 하면 굉장히 무겁게 느껴지는데, 그냥 아들과 엄마가 만나 이런저런 일을 겪고, 만나서 헤어지기도 하는 그런 이야기를 떠올렸었고, 그래서 보시는 분들도 가볍게 봐주셨으면 했다.

 

 

 

 

정리: 장지혜 관객에디터 | 사진: 김윤슬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