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노 비스콘티 특별전


최근 이탈리아영화의 약진을 보면 이미지의 힘과 우아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탈리아 특유의 고풍스럽고 귀족적인 분위기를 아름답게 잡아낸 일련의 영화 속 아름다운 화면들은 일정 부분 루키노 비스콘티의 미학적 성취에 빚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감히 말하건대 루키노 비스콘티는 리얼리스트이다. 단지 그가 네오리얼리즘의 태동을 알린 <강박관념>(1943)의 감독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후기 대표작으로 익히 알려진 <베니스에서의 죽음>(1971)의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화면들을 떠올려볼 때, 이러한 선언에 선뜻 동의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가 진정 리얼리스트인 까닭은 영화에 자신을 온전히 투영해냈기 때문이다. 네오리얼리즘의 선구자에서 출발하여 극단적 탐미주의까지, 작품의 폭넓은 스펙트럼은 스스로의 삶이자 인생 그 자체이다. 낭만과 퇴폐에 익숙한 귀족 가문의 자제로서, 행동하는 공산주의자로서, 그리고 솔직했던 동성애자로서, 타인도 자신도 속이지 않았던 그의 정직함이야말로 그를 모든 리얼리스트들의 위에 설 수 있도록 허락한다. 오는 3월10일부터 20일까지 열흘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루키노 비스콘티 특별전’을 통해 이러한 그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번 특별전은 지난해 가을 있었던 비스콘티 특별전에서 소개되지 않았던 6편의 작품을 중심으로, 리얼리즘 형식 안에 존재하는 인간적 감성의 실재를 포착한 비스콘티의 진정한 미학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안나 마냐니의 극성스런 모성연기가 돋보이는 <벨리시마>(1951)는 어린 연기자 딸을 둔 엄마 막달레아를 통해 영화산업의 생리를 비판하는 네오리얼리즘 색채의 영화이다. 비교적 단순한 모녀간 멜로드라마를 흥미로운 현실비판으로 이끄는 것은 쇼비즈니스의 추악한 현장의 생생함을 잡아낸 비스콘티의 세밀한 관찰력이다. <흔들리는 대지> <레오파드>와 함께 시칠리아 삼부작 중 하나로 불리는 <로코와 그의 형제들>(1960)은 핍박받는 노동자 계급의 악순환을 담담히 포착한 네오리얼리즘의 걸작이다. 남부 이탈리아에서 북부 시칠리아로 이주한 가족의 삶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단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아름다울 준비를 마친 화면들을 제시함으로써 이후 탐미주의로 나아갈 징후들을 드러낸다.

독일 삼부작으로 불리는 <저주받은 자들>(1969), <베니스에서의 죽음>(1971), <루드비히>(1972)는 이번에 모두 상영된다. 1960년대 중반 이후 탐미주의로 전환한 비스콘티 극적인 변화의 끝에 있는 이 세 작품은 비스콘티의 인생, 취향, 문화적 자의식을 모두 투영한 비스콘티 미학의 완성을 보여준다. 익히 알려진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의 미학적 성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4시간에 걸쳐 바바리아의 왕 루드비히 2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다룬 대작 <루드비히>는 실로 극단적 유미주의의 절정을 이룬다. 실제 그의 마지막 연인이기도 했던 헬무트 그리엠이 출연한 <저주받은 자들>은 1930년대 독일의 재벌 에센벡가의 비극적 사건에 대해 다루는데, 이탈리아가 아닌 독일 나치가 배경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순수한 사람들>(1976) 역시 비스콘티 스스로 끝내 공개되는 것을 보지 못했던 유작이라는 주목할 만한 사실 이외에도 최근 이탈리아영화의 화려함과 가장 밀접한 감성을 보여주는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글: 송경원 영화평론가)

* 이 글은 영화전문주간지 씨네21 794호에 실린 기사를 발췌 게재한 것입니다. 원본은 씨네21 794호 96p나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1002005&article_id=65127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