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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루키노 비스콘티 특별전

[리뷰] 순수한 사람들


연극과 오페라 연출가이기도 했던 비스콘티는 거의 평생 동안 멜로드라마에 탐닉했다. 유작인 <순수한 사람들>에서 그는 19세기 이탈리아 상류 사회에서 벌어지는 불륜과 정조의 문제를 다루며 다시 한 번 멜로드라마로 돌아온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공간은 사교계의 살롱과 귀족들의 저택인 실내 공간들로, 소품들의 화려함과 다채로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주인공들을 비롯한 모든 인물들의 의상 또한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하고 아름답다. 장면이 바뀔 때, 동일한 공간이나 의상이 다시 등장하는 일이 거의 없으며, 사물들은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정점에 달한 영화미술, 숏 하나하나가 회화 작품과도 같은 프레이밍으로 이뤄진 미장센은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극 전체의 분위기와 상황, 인물들의 감정을 매우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정열적인 애정, 격정적 질투의 감정을 발현하는 주인공들의 얼굴과 눈빛을 보여주는 클로즈업은 그 자체가 최고의 미장센이기도 하다.

영화는 전형적인 멜로드라마 식의 4막 구성을 따라 진행된다. 훤칠한 미남 주인공 툴리오(지안카를로 지안니니)가 정숙하고 순진한 아내 줄리아나(로라 안토넬리)를 버려두고, 치명적인 매력을 내뿜으며 사교계의 여왕처럼 군림하는 테레사(제니퍼 오닐)와 정분을 나누는 격정과 질투의 이야기가 영화의 1막이다. 테레사와 줄리아나를 연기한 두 배우의 외모가 무척 닮았는데, 이는 다분히 의도적인 캐스팅으로 보인다. 많은 남자와 정분을 뿌리고 다니는 테레사와 정숙한 아내인 줄리아나는 툴리오에게 욕정과 순수라는 두 가지 형태의 사랑을 대변한다. 그러나 줄리아나의 순수함이 깨어져나가면서 두 여인 사이의 간격은 점점 좁혀지며, 그들의 외모 또한 더욱 더 닮아간다.


툴리오가 줄리아나에게 돌아오면서 부부는 행복을 되찾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처럼 밝은 분위기의 2막은 싱그러운 자연의 실외 공간에서 진행된다. 그러나 평화는 너무도 짧다. 줄리아나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영화의 분위기는 일순간에 바뀐다. 그리고 줄리아나의 아이가 태어나면서 이제 영화는 파멸과 죽음의 4막으로 치닫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툴리오와 테레사는 검은 옷을 입고 있다. 이 검은색은 줄리아나의 아이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실은 툴리오 자신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함이었음이 곧 밝혀진다. 그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보인다. 비스콘티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과 데카당스의 미학에 매혹된 사람이었다. (박영석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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