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만나다] 영화의 정체성을 붙잡기 위해 - 이명세 감독과의 대화

2015. 9. 15. 16:322015 시네바캉스 서울 영화제

[작가를 만나다]


작가를 만나다 : 영화라는 모험


이번 시네바캉스 기간 동안 영화라는 모험에 과감히 뛰어든 네 명의 한국 감독을 만나 보았다. 그들의 대표작들을 본 후 나눈 대화에서 감독들은 모두 자신이 느낀 아쉬움을 이야기하면서도 더 나은 차기작에 대한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이들의 모험이 계속 이어지기를 응원한다.



영화의 정체성을 붙잡기 위해 - 이명세 감독과의 대화



액션 영화에 꽂힌 이유


무협 영화를 꼭 찍고 싶었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액션 영화를 찍어 봐야 진짜 영화 감독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액션 영화는 호흡, 리듬, 템포가 중요하기 때문에 영화의 가장 기본 움직임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영화감독으로서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꼭 액션 영화를 찍겠다고 결심했다. 영화의 가장 큰 본질이자 목표는 결국 무성영화의 리듬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대사도 없이 움직임과 리듬만으로 관객과 승부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배우 강동원에 대한 기억


어떤 움직임이든 소화할 수 있는 최상의 컨디션을 항상 준비하고 있는  연기자가 감독이 원하는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동원 씨는 그런 면에서 호흡이 가장 잘 맞는 배우였다. 이 영화를 보신 분은 알겠지만 그는 엄청나게 빨리 뛰면서도 헉헉거리지 않고 바로 멈출 수 있는 대단한 신체 능력을 가진 배우다. 강동원 씨와 이야기할 때는 그냥 ‘초秒’를 이야기했다. 이를테면 어떤 움직임을 7초에 끊어달라고 한다. 그러면 강동원 씨는 그 말만 듣고 알아서 연습을 한 뒤 딱 7초에 맞춰낸다.



3D 영화에 대한 생각


인간은 사진에서 움직임을 꿈꾸고, 움직임에서 입체를 꿈꾼다. 하지만 3D 영화에는 오랜 시간 미술가들이 찾아낸 원근법, 즉 깊이가 없다. 또한 70mm 영화가 주는 장대함과 스펙터클도 없다. 3D 영화의 특징 아닌 특징은 선배 감독들이 고안해낸 영화의 문법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것을 극복할 수 있다면 3D 영화를 찍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영화 제작 환경의 변화


20세기와 21세기의 한국 영화에는 다른 점이 있다. <형사>를 찍을 때 나와 스탭들의 목표는 ‘될 때까지 한다’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 비교를 위해 말하자면 <형사>를 촬영할 때 사용한 필름이 <봄날은 간다>(2001)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보다 1/3 정도 적은 편이다. 액션 영화치고는 상당히 적게 쓴 편이다. 그 비결은 본 촬영 전에 연습을 아주 많이 하는 것이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내가 현장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연습만이 살 길이다”이다. 그런데 요즘 현장에서는 리허설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필름이 아니니 얻어 걸릴 때까지 계속 찍다가 제일 좋은 걸 채택하는 방식인 것 같은데, 긴장감이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렇게 찍으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감독이 원하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 계속 추구할 수 있는 환경과는 멀어졌다.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얼마 전 독일의 대학 교수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분이 한국 영화가 2000년대 이후 특유의 개성을 잃고 너무 비슷해지고 있다고 하더라. 누구나 쉽게 영화를 찍는 시대가 왔지만 우리가 정말 중요한 걸 잃어버리고 그걸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걱정이 들었다. 지금은 정체성을 잡아야 하는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정리ㅣ 이상현 자원활동가

사진ㅣ장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