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17. 12:36ㆍ2015 시네바캉스 서울 영화제
[작가를 만나다]
작가를 만나다 : 영화라는 모험 이번 시네바캉스 기간 동안 영화라는 모험에 과감히 뛰어든 네 명의 한국 감독을 만나 보았다. 그들의 대표작들을 본 후 나눈 대화에서 감독들은 모두 자신이 느낀 아쉬움을 이야기하면서도 더 나은 차기작에 대한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이들의 모험이 계속 이어지기를 응원한다. |
감독으로서 영화 속 인물을 다루는 태도
- 윤종빈 감독과의 대화
<군도> 복기하기
개봉 당시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관객들의 호불호가 많이 갈려서 좀 놀랐다. 그리고 1년 동안 천천히 생각을 해 보았는데, <군도>가 ‘여름 성수기’에 많은 관객이 볼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 더 명확한 컨셉을 확실히 잡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뚜렷한 선악 구도 같은 것 말이다. 또한 만들 때는 초반부의 독특한 나레이션이나 무협과 웨스턴 장르를 혼합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에는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했고, 후자의 경우에는 극의 리얼리티를 깨뜨리는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좀 길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시퀀스 하나 정도는 빼는 게 좋지 않았을까. 그런데 <군도>는 내가 찍은 영화 중 편집을 가장 적게 한 영화이기도 하다. 개봉 버전이 2시간 17분이고 현장 편집 버전이 2시간 34분이었으니 결과적으로 15분 정도만 덜어낸 셈이다. 그것도 촬영한 장면 자체를 덜어내는 것이 아니라 각 장면의 처음과 끝을 조금씩 줄여서 그렇게 된 것이다. 처음 <군도>의 기술 시사를 했을 때 내가 처음에 구상하고 계산한 대로 영화가 나와서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제목도 한 번 생각해 봤다. ‘군도’라고 하니 사람들이 그 뜻을 바로 모르더라. 칼 이야기냐고 묻기도 하고 섬 이야기냐고 묻기도 하더라(웃음). 그래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려고 “민란의 시대”라는 부제를 붙였는데, 이 부제가 관객들에게 리얼리즘에 대한 기대를 심어주면서 오해를 산 것 같다.
<군도>의 첫 구상
<군도>를 처음 만들 때는 일단 ‘신나는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범죄와의 전쟁>(2011) 같은 경우에는 먼저 주제를 잡은 뒤 소재를 잡았는데 이 영화는 아니었다. 그리고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없이 하정우와 강동원이 나오는 액션 영화를 한 편 찍고 싶다는 마음도 막연히 갖고 있었다(웃음). 그래서 두 사람은 시나리오를 쓰기 전부터 함께하기로 정했었다.
의식적으로 잡은 테마는 ‘아이’였다. 나는 세상이 나빠지는 가장 큰 이유가 아이들이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라고 생각한다. 조윤(강동원) 역시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지 못해 나쁜 길로 빠지고, 세상에 인정받기 위해 나쁜 짓을 한다. 하지만 조윤은 결국 아이와 마주했을 때 이 아이를 죽이지 못하고, 심지어 구하려 한다. 사람들이 왜 마지막 그 순간에 아이가 등장하냐고 많이 물어보았다. 그런데 영화의 첫 장면도 그렇고, 의적 집단의 풍경도 그렇고, 아이를 계속해서 등장시키고 싶었다.
<군도>의 주제
도치(하정우)가 무술을 열심히 연마해서 조윤을 실력으로 깔끔하게 죽이면 장르적 쾌감이 더 컸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어떤 영화가 선의 입장에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이를 돕기 위해 악이 기능적인 역할만 맡는 게 싫었다. 어떤 철학자가 ‘우리는 철학하는 사람이지 경찰이나 법관이 아니다’라고 했더라. 그 말이 내가 영화를 만드는 태도와 비슷한 것 같다. 내가 만든 영화를 통해 영화 속 인물을 단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맥락에서 조윤 또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조윤이 죽고 난 뒤 남은 사람들이 우르르 화적떼에 합류한다. 즉 평범한 사람들이 용기를 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장르적 통쾌함은 좀 줄어들었지만 말이다(웃음). 지금 다음 영화를 준비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내 작품 중 가장 노골적으로 주제를 드러내는 영화로 만들어보려 한다.
정리 ㅣ 김보년 프로그램팀
사진 ㅣ 고상석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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