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만나다

"궁금해서 갔고 많이 배웠다. 다음에는 좀 더 자신이 반영된 작품을 만들고 싶다"


- <라스트 스탠드> 김지운 감독 



배우나 감독할 것 없이 한국 영화인의 할리우드 진출 소식은 ‘성공의 여부’가 뜨거운 관심사다. <라스트 스탠드>도 한국 언론과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영화는 짧은 시간에 극장에서 내려져야만 했고 그 관심도 빠르게 식었다. 지난 4월 13일, 김지운 감독이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라스트 스탠드>를 연출하면서 무엇을 느꼈고 불편했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지운 감독이 발매되지 않은 <라스트 스탠드>의 OST를 그날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직접 나누어 주었다는 훈훈한 일화도 덧붙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2007년에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제 2회 친구들영화제’에 참석한 적 있다. 그때 기요시 감독은 미국영화에 대한 애정을 표하면서 기회만 된다면 미국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감독으로서 제약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만약 자신이 미국에서 영화를 만들게 된다면 자신을 잃지 않고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김지운 감독에게는 미국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주는 의미가 무엇이었으며, 그 느낌이 어땠는지.


김지운(영화감독): 구로사와 기요시가 어떤 느낌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다. 궁금해서 미국으로 갔다. 한국에서 <악마를 보았다>를 찍고 오래 우울했었다. <악마를 보았다>를 촬영할 때 열정은 사그라들고 기술만 남은 것처럼 느껴졌다. <장화,홍련>부터 미국으로부터 연락을 많이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영화를 만드는 스케줄과 미국에서 온 제의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처음과 같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다시 그 열정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싶어서 미국으로 갔다. <라스트 스탠드>의 시나리오가 꼭 마음에 들어서 갔던 것은 아니다. 인터뷰에서도 많이 밝혔지만 사실 리암 니슨을 캐스팅하길 바랐다. 리암 니슨은 개인적으로도 매우 좋아하는 배우다. 그는 단순한 상업영화의 액션스타일 뿐만 아니라 진지하고 대단한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배우이기도 하다. 그와 같이 작업한다는 것이 기대되기도 했다. 그러나 부인의 사고사로 인한 충격으로 그는 짧은 기간 동안 강박적으로 많은 영화에 출연했고 이미 지쳐버린 상태였다. 리암 니슨이 자체적인 휴식을 가지기로 결정한 상태였고, <라스트 스탠드>를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라스트 스탠드>에 관심이 표했고, 그렇게 그와 함께 하게 되었다. 사실 리암 니슨과 함께 했더라면 미리 완성본을 대충 그려볼 수 있었으나,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와 함께 한다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쉽게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 결과가 더 궁금했다.


리암 니슨에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로 바뀌면서 시나리오의 수정이 있었을 텐데


원래의 시나리오는 딱딱하고 진지했으며, 유머가 없었다. 그런데 그 속에는 완전히 다른 두 측면이 자리하고 있었다. 화려한 로스앤젤레스라는 공간과 서부의 자연주의적인 공간, 하이테크로 무장한 적을 로우 테크로 막아낸다는 이야기. 가장 빠른 차를 탄 악당을 가장 느린 속도로 살아가는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막아낸다는 점. 이런 점들이 흥미로웠다. 시나리오가 그것들을 작정하고 쓴 것 같지는 않았으나 그런 점을 더 끌어내고 싶어서 캐릭터들을 살려내기 위해 노력했고, 그러다보니 유머가 많이 첨가되었다. <라스트 스탠드>는 특히 아놀드의 합류로 같은 이야기이나 완전히 다른 톤과 다른 색을 가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시스템에 적응하기 어려우셨다는 기사를 읽은 적 있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워낙 이야기를 많이 해서 여러분도 많이 아실 테지만, 우선 조감독이 내 편이 아니다. 미국 조감독은 20% 정도만 내 편이고, 나머지 80%는 스케줄에 맞춰서 현장을 진행시켜 나가는 역할을 맡는다. 연출부도 없어서 현장에서 굉장히 외로웠다. 미국에서는 오후 12시가 되면 모두가 무조건 식사를 하고, 7시가 되면 퇴근해야만 하는 시스템이었다. 한국의 경우, 장면을 다 찍기 전에는 멈추지 않는다. 그건 감독이나 배우나 할 것 없이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은 다르다. 두 테이크 정도 더 찍으면 뭔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도 12시만 되면 점심을 먹어야 한다고 조감독이 이야기해왔다. 처음에는 농담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원칙대로 진행하지 않으면 제작사가 고소를 당한다는 거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적응하게 되었다. 배우들은 점심시간 직전에 찍은 그 장면, 그 감정을 잘 되살려냈다. 모두들 그 제도에 이미 잘 적응해있었다. 사실 나만 바뀌면 되는 문제더라. 그러나 적응하기 힘든 지점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현장에서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편인데 미국에서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해서 그것을 바로 영화에 적용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한국의 경우 감독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을 그대로 찍을 수 있다. 수직적인 면이 강하다. 그러나 미국은 그렇지 않다. 제작자와 감독이 모두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굉장히 수평적이다.


완성된 영화에서 아쉽거나 삭제된 부분이 있는지?


아쉬운 거요? 다 아쉽죠.(웃음) <라스트 스탠드>는 <조용한 가족>을 찍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작가로서의 미학이나, 굉장한 비전을 가지고 다가간 것이 아니고 재밌고 유쾌한 영화를 찍으려고 했던 것이기 때문에 많은 박탈감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할리우드가 궁금했기 때문에 할리우드 시스템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속에서 시행착오를 겪었을 뿐이다. 그럼으로써 많이 배웠다. 이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두 번째 작업을 해보고 싶다. 좀 더 내 자신이 많이 반영된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 이전의 김지운 감독의 작품과 비교해보면 <라스트 스탠드>는 굉장히 유쾌한 편이다. 이전의 작품들은 더 어두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경우가 많았는데 <라스트 스탠드>는 밝고, 법과 질서의 집행을 다루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전의 영화들과는 매우 다르다. 또 굉장히 미국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미국에서 영화가 찍는다고 하면 ‘자동차, 총, 여자’가 등장하는 영화라고 이야기하지 않나. 이 영화는 그러한 점과도 잘 부합한다. 

 

애리조나만 가도 트럭 뒤에 총을 매달고 다닌다. 미국에는 총기가 매우 관대하다. 할머니가 총을 가지고 있는 장면은 미국 관객들도 많이들 좋아했다. 이를 미국 총기 문화에 대한 비판, 비틀기로 봤다. 이 영화가 개봉할 당시 미국에서 총기사고가 있었고, 미국 내에서도 총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던 시기였기 때문에 흥행이 더 어려웠던 것 같다.


 

흥행만 잘 안됐을 뿐이지 영화로서는 굉장히 재밌었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이즈음에 회고전을 한다면 <라스트 스탠드>는 배우로서도 중요한 작품이 될 것 같다.


이 영화가 어쨌든 미국에서 나의 데뷔작이 되었고,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컴백 작품이 되었고, 내 필모그래피 중에서는 흥행에 있어서 가장 실패한 작품이 되었다. <라스트 스탠드>에 대해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는 굉장히 만족스러워했다. 자신의 연기가 새로운 지평에 올라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로튼 토마토’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는데 그게 연기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나 보다. 계속해서 ‘로튼 토마토봤느냐’고 물어 보곤 했다. 아놀드가 이번에 한국에 방문했을 때, 그때 나는 지방에서 단편영화를 촬영 중이었는데 그가 지방에 있는 촬영지까지 찾아왔다. 아놀드가 걸어오자 주변이 웅성웅성했다. <라스트 스탠드>의 촬영장에서 아놀드가 걸어 들어올 때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면서 만들어지는 분위기와 오버랩되면서 갑자기 뭉클한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라스트 스탠드>를 찍을 때의 느낌이 들어서 진심으로 포옹을 했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에게는 진실한 면도 많다.


관객 1 차기 할리우드 작품을 논의 중인 걸로 알고 있다. 다음에 할리우드에 영화를 찍을 때 가장 고려하는 지점은 무엇인지.


일단은 배우다.(웃음) 어떤 배우와 작업할 수 있는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 다음으로 장르, 이야기의 밀도가 중요한 것 같다. 이야기 중인 영화들 중에는 큰 이야기의 영화도 있고 작은 이야기의 영화도 있다. 어떤 이야기의 영화와 어떤 배우가 묶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계속해서 에이전시와 이야기하고 있다.



웨스턴 영화와 액션 영화가 공존하는 가운데, 두 가지 액션장면이 인상적이다. 옥수수밭에서의 액션도 인상적이고, 영화 마지막의 코르테스와 다리 위에서의 액션도 굉장히 인상적이다. 나이든 남자와 젊은 남자가 결국 맨 몸으로 싸우지 않나. 다리 위에서의 액션씬은 정말 서로 밀착한 채 조르고, 꺾는 식의 종합격투기 액션장면이다. 액션씬을 어떻게 구상했는지.


촬영감독과 아놀드를 놓고 어떻게 촬영할 것인가 많이 논의했다. 아놀드의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이 정말 멋있었고, 정말 좋았다. 그 얼굴을 보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떠오르기도 했다. 돌아온 영웅의 느낌이 있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의 말년의 영화에서 그가 출연했던 장르영화에서의 캐릭터를 성찰하는 의미에서 돌아온 영웅들을 연기한 것처럼 아놀드에게 그러한 연기를 원했다. 다리 위에서의 액션 연기는 단순히 맞고 때리는 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놀드가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하는 얼굴을 잡아내고 싶었다. 육체적으로 강인해서 미션을 완수한 인물이 아니라 힘들고 괴롭고 아픈 과정을 견디고 승리를 얻은 인물을 그리고 싶었다. 아놀드는 자신의 연기 인생에서 그런 식의 승리를 그려본 적이 없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그런 식의 액션을 연기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옥수수밭 씬 같은 경우는 그전에 보지 못한 액션을 보여주고 싶었다. 보통 추격영화는 상대가 보이는 상태에서 거리를 좁히거나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옥수수밭 장면과 같이 상대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뒤쫓아 가는 장면을 꼭 넣고 싶었다.


<라스트 스탠드>를 만들면서 느낀 아쉬움을 많이 이야기하셨지만 모순적인 두 측면이 충돌하는 모습이 크게 다가왔다. 어쩌면 이 영화는 시스템적인 측면과 올드한 감성이 잘 맞아떨어진 영화같다.


의도된 방치같은 것이 이 영화에 존재한다. 이러한 방치가 이 영화와 잘 맞아떨어지는 데가 있다. 그런 점들이 영화의 부족함으로 읽혀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아쉬움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영화적인 방식,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화적인 전략이 이 영화와 맞는다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애정이 가기도 한다. 



정리 ㅣ 관객에디터  배동미 

사진 ㅣ 김윤슬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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