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 28. 14:47ㆍ작가를 만나다
작가를 만나다
"우리가 난잡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 난잡하다"
- <솔루션>, <코메디: 다 웃자고 하는 얘기>의 김곡, 김선 감독
곡사가 작년에 발표한 두 개의 단편 <솔루션>과 <코메디: 다 웃자고 하는 얘기>는 그렇게 보기 편한 영화는 아니다. 어린아이는 문자 그대로 똥을 밥처럼 먹으며 해맑은 웃음을 짓고, 인기 없는 개그맨은 죽은 아내의 시체 옆에서 강박적인 개그를 시도한다. 곡사는 왜 이런 난감한 전략을 택한 것일까. 지난 2월 23일에 진행했던 관객과의 대화 내용을 여기에 옮기니 그 답을 찾아보자.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곡사가 지금까지 만든 영화 중에 가장 웃긴 영화이지만 동시에 무섭기도 하고 비극적인 면도 있다. 일단 두 편의 영화가 모두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고 <솔루션>의 유령과 <코메디>의 시체처럼 두 편 모두 죽음이 등장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김선(영화감독): 나이가 들어서 가족 이야기에 관심이 생기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영화를 준비할 때의 상황부터 설명을 드리자면, 상업영화를 한 다음에 이제 정말 우리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모든 작업이란 게 그때까지 축적해 온 내면의 경험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시나리오를 쓴 것이 <코메디>였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작은 공동체, 그리고 여러 가족들이 모여서 구성한 사회에 만연한 유령들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었다. 그건 정말 죽은 사람의 혼일 수도 있고,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압박감일 수도 있다. 사회적인 억압이나 압력들, 그런 유령들과 싸워나가는 이야기를 가족에서부터 시작해볼까 했다. 그리고 그런 어두운 존재인 유령들과 가장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이 누굴까 생각해보니 코미디언이 생각났다. 어두운 존재들을 잊게 만들고, 동시에 환기시키는 사람들인 것 같다. 진짜 웃긴 사람들은 슬픔도 같이 전달하지 않나. 그들이 무대에서는 유령들과 잘 싸우는 것 같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그 유령들한테 완전히 지배당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패배를 인정하는 비참한 삶을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솔루션> 역시 같은 시기에 쓰였으니 비슷한 맥락의 시나리오다. 공교롭게도 <코메디>를 찍다가 전주국제영화제의 맹수진 프로그래머에게 <숏!숏!숏!> 프로젝트로 <솔루션>을 제안받은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쓰여서 가족과 유령이 등장하는 비슷한 느낌의 시나리오가 나온 것 같다. 그런데 <솔루션>은 좀 더 적은 예산으로 찍어야 했기 때문에 페이크 다큐 포맷을 차용했다. 그리고 이제껏 영화를 찍으며 연구 끝에 도달한 이미지들 - 무당, 유령, 박정희, 똥, 항문 같은 것들이 총 집약된 영화였다.
김성욱: 두 작품 모두 구순기와 항문기를 다루고 있다. <코메디>에서도 계속 담배를 입에 물고 있지 않나, 맥
김곡, 김선: 녹색, 그린(좌중 폭소).주를 마시고 뭔가를 먹는 행위도 반복되고. 담배에 불이 잘 안 붙다가 마지막에만 확 켜지는 설정 같은 것들이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솔루션>의 변 색깔은 무슨 색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푸른색이랄까(웃음).
김곡(영화감독): 굉장한 논쟁에 휩싸였던 부분이다. 보도자료에는 두세 시간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2, 3일을 싸웠다. 스탭들 역시 김곡파와 김선파로 나뉘어서 ‘리얼리즘’으로 가야할지 편하게 웃게 해야할지 나뉘었다. 김곡파는 갈색 계열만 아니면 된다는 쪽이었고, 김선은 원칙주의자였다.
김성욱: “사람 음식을 달라!”는 변짱이의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강조된 대사는 아니지만 묘하게 와 닿더라.
김곡: 식변증도 사실 식인습성의 일종일 수도 있지 않나. 신체나 다름없는 거니까. 그리고 만들 땐 별 생각이 없었는데 다시 관객 입장에서 보니 옛날에 만들어지고 역사 속에 버려두었던 쓰레기들, 그 똥들을 우리가 먹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 싸는 것의 순환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거꾸로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똥까지는 알겠는데 왜 하필이면 먹는 행위를 다루었는지 자문하게 되더라. 먹는다는 건 정치에서 굉장히 본질적인 행위인 것 같다. 권력이라는 건 누군가를 먹는 것이고, 많이 먹을수록 센 거 아니겠나. 오늘 보니 이런 원형적인 상징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김선: 어떻게 보면 다이어트처럼 안 먹는 게 권력이 되기도 하지만 먹는 것이 권력의 원형인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먹는 것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는 역전되고 모순된 상태를 표상하고 싶었다. 설정이 괴팍한 만큼 형식도 재미있게 가보자는 생각으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나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프로그램들을 희화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코메디>에서는 그런 역전된 소화 상태를 극으로 풀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일상적으로 보이는 삶의 기저에 어두운 유령들이 깔려 있다는 것. 죽은 아내의 유령을 피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웃겨야 하고, 이 세상을 웃겨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마누라까지 웃겨야 한다는 플롯을 떠올려보았다.
관객1: 페이크 다큐라는 형식이나 풍자가 담긴 영화들이 노리는 감정이 경쾌하고 통쾌한 것이라면 개인적으로 이 영화들은 난잡하게 느껴졌다. 공허하고 구차한 느낌이었다.
김곡: 일부러 난잡하게 만드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숨기지도 않는다. 만약 난잡하게 보였다면 우리가 난잡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묘사하는 대상이 난잡해서 그런 것이다. 일단 세상이 똥밭이다. 그런 세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난잡해진다. 굉장히 기예가 좋은 시나리오 작가나 연출이 와도 난잡해질 수밖에 없는 거다. 그리고 리얼리티 쇼라는 형식 자체가 난잡하다. 리얼리티 쇼에서는 하나의 디테일들에 사람들이 열광한다. 무대 안과 밖이 난잡하게 섞이기도 하고, 그들의 연기 안에서 공적인 지위와 사적인 욕망이 난잡하게 섞이기도 한다. 어떻게 말하면 난잡성에 열광하는 시대라는 거다. 오히려 이 영화가 욕을 먹어야 한다면 왜 리얼하지 않느냐, 가 아니라 왜 그대로 베꼈냐는 비난을 들어야 할 것이다.
관객2: <솔루션>의 솔루션은 결국 항문으로 음식물을 흡입해서 입으로 내뱉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왜, 어떻게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김선: 우리도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이다. 똥이 밥이 되고 밥이 똥이 되는 자기모순을 묘사하는 난잡한 영화가 될 텐데, 제목이 ‘솔루션’인 것이다. 궁극적으로 곡사가 말하는 솔루션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분명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솔루션 없이 찍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코메디>의 경우에는 그곳을 벗어날 수 없는 비극적인 존재에게 담배 한 대 정도가 솔루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담배가 나의 생명을 줄일지언정 지금의 안도감으로 이 비극을 잠시라도 잊게 해주는 솔루션이 아닐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었다. <솔루션>의 경우에서는 똥인지 된장인지를 아는 게 먼저라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 비록 주지는 못했지만 노력은 했다(웃음). 사회자까지 똥을 뒤집어쓰는 것, 누가 나쁜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는 느낌을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변명처럼 애니메이션을 덧붙였는데 결과적으로 더 난잡해졌다.
김곡: 우리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지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정치에 대한 답을 줄 수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솔루션>은 타이틀만 ‘솔루션’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선 : 처음에는 그럴듯한 저서를 남기는 마음으로 영화를 찍었다면, 영화를 찍으면 찍을수록 책을 쓰는 게 아니고 춤을 추는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솔루션>은 막춤, <코메디>는 살풀이 같은 것이다. 영화의 커트나 호흡감 같은 것들이 신체와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체험하면서 감독 일을 해가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시나리오를 쓰거나 어떤 이야기를 떠올릴 때 춤을 생각하는 버릇까지 생겼다. 감독은 글쟁이가 아니라 모션을 하는 사람, 춤을 추는 사람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김성욱: 어쨌든 두 분이 만든 영화들 중 가장 즐거웠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 봐서 더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새로운 5년’이 시작되는데 어떻게 계속 비타협적으로 영화를 만들어갈 예정인가.
김선: 최근 많은 연락을 받았다. 지금 제한상영가를 받아서 행정소송 중인 <자가당착>이라는 영화 때문이다. 별 거 아니고 포돌이가 나와서 쥐 잡는 내용인데 두 번이나 제한상영가를 받았다. 앞으로의 5년 동안 곡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 일단 제한상영가 투쟁이 남아있다. 그리고 우리는 독립영화/상업영화의 구분 없이 막 찍으려고 하는 편이다. 찍고 싶은 것을 무조건 찍어야 성미가 풀리는 사람들이라 찍고 싶은 대로 찍을 것이다. 그리고 요전에도 찍으려다가 엎어진 영화가 있는데, 그중에는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영화도 있었다. 눈치 보지 않고 찍고 싶으면 찍겠다.
김성욱: <솔루션>의 일본 제목은 <역분사가족>이라고 해도 되겠다(좌중 폭소). 오늘은 곡사의 영화를 보고 내일은 <칠레전투>를 상영하고, 모레는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다. 특정한 시대와 관계를 가진 영화들을 연달아봐서 더 의미가 깊었던 것 같다.
정리: 박예하(관객에디터) | 사진: 김윤슬(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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