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다”

<사이비> - 연상호 감독



4월 작가를 만나다의 주인공은 <사이비>의 연상호 감독이었다. 지난 4월 26일, 어느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무서운 이야기를 그린 <사이비>를 상영한 후 감독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매우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간 이날, 관객들은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켰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처음부터 제목을 <사이비>로 생각했었는지 궁금하다.


연상호(영화감독)│일단 처음부터 제목은 사이비였다. 제목 먼저 나오고 이야기가 나온 케이스다. 원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이비라는 소재를 다루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엑스파일>을 좋아했는데, <엑스파일>의 에피소드를 한국에서 찍는다는 루머가 있었다. 한국 사이비 종교에 대해 멀더와 스컬리가 수사를 펼친다는 것이었다. 그 루머를 듣고 얼마나 재밌을지 혼자 상상해보고는 했다. 그 당시, 그러니까 고등학교 때 내가 좋아하는 그런 이야기를 어떻게 한국에서 만들 수 있을지 생각했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영화에 

<텔미썸딩> 정도를 제외하고는 스릴러 장르가 없었다. 한국적이면서도 <세븐>처럼 쫀쫀한 스릴러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키워왔다. <살인의 추억> 이 나오면서 그 생각도 사라졌지만 말이다(웃음).

어쨌든 사이비 종교를 소재로 재밌는 장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거기서부터 시작해 처음에는 착한 말을 하는 악인과 거짓말을 하는 선인이 대결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김성욱│고등학교 때부터 이야기에 대한 고민을 한 것인데, 어떻게 애니메이션을 선택했는지 궁금하다.


연상호│중·고등학교 때 TV를 통해 본 <스타워즈>나 <로보캅>을 좋아했다. 그런데 초등학교 후반부터 애니메이션에 심취하면서 아주 철저한 ‘오덕’의 길을 걸었다(웃음). 당시 청계천 같은 곳에서 구한 불법 자료가 세탁기 박스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는데 그러다보니 ‘독립 애니메이션’도 보기 시작했다. 일본 전통인형으로 만든 스톱모션 애니까지 구해봤을 정도였다. 거기서 더 깊숙하게 들어가고 싶어서 중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을 위해 그림을 시작했는데 한국에서는 애니메이션으로 진로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면서 김이 빠졌다.


그리고 고3부터 비디오방을 갔다. 미술학원 앞에 아모르 비디오방이라고, 한 편 보는데 2,500원이었다. 거기 가서 맨날 <젖소부인 바람났네> 같은 에로 비디오를 봤다. 그런데 에로 비디오 밑에 안 팔리는 영화들, <전함 포템킨>, <칼리갈리 박사의 밀실> 같은 것들이 깔려 있었다. 에로 비디오를 다 섭렵한 뒤 볼 게 없어서 그런 것들을 봤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짧은 시간에 굉장히 많이 봤다. 이건 오늘 처음하는 이야기인데, 그때 본 영화 중 영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해준 작품이 브래드 피트가 나온 <캘리포니아>였다. 보면서 무슨 이유인진 모르겠는데 ‘저런 건 나도 만들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영화는 ‘뭐지 저게’ 이런 느낌이었는데 <캘리포니아>를 보니 나도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드는거다. 그리고 대학에 가서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비디오카메라를 사고 편집프로그램을 속성으로 두 달 배운 뒤 찍기 시작했다. 당시 컴퓨터 하드 용량이 2기가였다. 그걸로 편집을 하고 동네 치킨집에서 일하는 잘생긴 친구를 배우로 캐스팅했다. 둘이서 20분 짜리 영화를 1년 동안 찍었다(웃음). 어찌나 그 배우가 말을 안 듣던지. 영화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비디오카메라가 60만원 정도였으니 정말 비싼 거였다. 백수 아들이 부모님을 졸라 그런 걸 샀으니 죄책감이 들더라. 그래서 뭘 해야할 것 같아서 비디오카메라 기능을 보니 ‘컴마 찍기’가 있었다. 그걸로 주변 사물을 조금씩 움직이며 찍으니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보자는 생각까지 미쳤다. 인형영화 2편, 실사영화 2편 정도 만든 뒤 스톱모션의 한계를 개인적으로 느끼고 군대 갔다온 뒤 애니과 친구들이 쓰는 그래픽툴을 배워서 2D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내 첫 단편으로 알려진 <지옥>이 그 때 만든 것이다. 그 전에는 네 작품 정도 만들었는데 다 폐기했다.


김성욱│짤막한 역사인데 흥미진진하다. 덕후에서 <전함 포템킨>을 거쳐 <캘리포니아>, 2D 애니메이션까지. 궁금한 건 전작들도 그렇고 사회 쪽 주제를 다루는 이유이다. 그리고 한국 애니메이션 안에서 스토리텔링이 뛰어난 편이다. 실사영화를 만들어보라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회적 주제를 다룰 때 애니메이션이 적합한 장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연상호│애니메이션을 선택한 건 단순한 취향의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실사보다 애니메이션이 좋았다. 그런데 단편 애니메이션으로는 제작 지원을 받기가 어려웠다. 그러다보니 강제적으로 애니메이션을 그만 두었는데 그때가 33살이었다. 하지만 <돼지의 왕> 시나리오는 이미 2006년에 써놓았었기 때문에 그걸 실사 영화로 만들려고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런데 투자 가능성이 없다더라. 당시 친하게 지내던 양익준 감독이 <똥파리>를 만들어서 뜬 상태라 <돼지의 왕>을 독립영화로 만들면 1억 안에 만들 수 있을까 물어봤는데, 도저히 안 된다고 하더라. <똥파리>는 그래도 자기가 출연도 해서 어떻게 했다고 치지만, 예를 들어, 너 아침 교실 장면 어떻게 찍을 건데, 1억 가지고 스탭이랑 배우들 도시락은 어떻게 할 건데 하면서 3~4억은 든다고 했다. 그런데 3~4억은 독립영화로서는 굉장히 애매한 돈이다. 이것저것 다 안 되다 보니까 제작사에서 스타를 캐스팅할 수 있는 연령대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시나리오를 쓰라고 했다. 그래서 삽십대 남자 둘이 싸우는 <사이비> 시나리오가 나왔다. 그런데 이 시나리오도 다들 안 한다고 했다(웃음). 그래서 실사영화는 결국 못 찍었다.


그러다 아주 우연한 계기로 상상마당에서 독립영화에 1억원 정도를 투자하는 프로그램을 발견했고 거기에 과감하게 애니메이션으로 기획안을 제출해서 통과 됐다. <사이비>는 <돼지의 왕>이 잘 돼서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케이스다. 사실 <돼지의 왕> 때도 그랬고, <사이비> 때도 그랬고 내가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실사영화 만들어보라는 것이다. 얼마 전 프랑스의 배급사에서 네 가지 질문을 보내왔다. 첫 번째는 미국이나 영어권에서 활동할 생각이 있는가. 두 번째는 <사이비>를 실사 영화용으로 각색할 생각이 있는가. 세 번째는 실사 영화를 연출할 생각이 있는가. 네 번째가 영어를 할 줄 아는가(웃음). 지금도 실사와 애니메이션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



김성욱│답변은 했나?


연상호│했다. “뭐든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지만 영어는 할 줄 모릅니다.”(웃음) 나는 <사이비>가 애니메이션이라서 더 재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비슷한 내용의 영화를 실사로 만들면 제작비 같은 부분이 너무 달라지기 때문에 제작하는 분들과 여전히 헤매고 있다. 돈이 많다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겠지만 남의 돈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어쨌든 나는 영화 쪽 일을 하는 사람이니 여건에 맞게 충실히 찍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인 메시지를 왜 넣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 나는 <사이비>나 <돼지의 왕>이 사회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개인적인 것에 대한 궁금함이 많았다. 내가 가진 화나 분노 같은 것을 표현하는 게 재밌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쓰려면 연구를 해야 하니까, 사람들의 화나 분노가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해보면 결국 사회, 환경, 국가, 이념에서 오는 것이다.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도 사회 부조리를 고발한다는 느낌보다는 이런 사회 아래 있는 인간의 모습을 충실히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것이다.


관객1│최근에 본 영화 중 몰입도가 제일 높았다. 기회가 된다면 꼭 실사로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연상호│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나는 기회만 된다면 뭐든 할 생각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여건상 힘들 것 같다. 해외에서 <돼지의 왕>을 실사로 만들자고 했는데 결국 안 만드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미국이나 몇 군데에서 이야기는 있는 걸로 안다. 미국에서 연출할 기회라는 게 흔치 않은 기회라서 기회가 온다면 열심히 하겠지만 큰 기대를 갖고 있지는 않다. 진행된 건 전혀 없고 간만 보고 있다. 그리고 <사이비>는 종교적인 내용이 강해서 영어권에서 쉽게 다룰 수 있지 않다고 한다.


관객2│비닐하우스 교회의 디테일이 좋았다. 어떻게 취재했는지 궁금하다.


연상호│기본적으로 개척교회는 특이한 곳이 많다. 아무 장소에 십자가만 세우면 개척교회다. 나도 크리스찬이라서 어릴 때 가본 적이 있다. 나무판 교회, 폐자재로 만든 교회, 천장에 나무 문짝이 붙어 있는 초현실주의 교회 등등. 그런데 사람이 많이 들어와야 하니까 공간이 넓어야 한다. 넓은 공간에 싸게 지으려면 비닐이 좋을 것 같아서 비닐하우스 교회를 떠올렸다. 그런 비슷한 건물들을 찾아서 자료에 참고했다.


관객3│감독님 작품 중 <창>을 보고 찝찝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사이비>의 결말에서 감독님이 의도하신 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연상호│이 영화가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비꼬는 시선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바보 멍청이로 보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믿음을 갖고 있다. 꼭 종교적인 믿음이 아니더라도 부모님, 국가에 대한 믿음 같은 것은 누구나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믿음에 대한 생각을 늘 가져왔다. 내가 갖고 있는 믿음이 정당한가, 같은 질문 말이다. 영화에 나오는 민철은 아무 믿음도 안 가진 사람 같지만 그도 갖고 있는 믿음이 있다. ‘모든 세상은 단순하게 돌아간다’, 또는 ‘단순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같은 믿음 말이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민철의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여러 층위가 있다는 걸 뒤늦게 안 것이다.

엔딩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보통 사람들이 갖는 애매모호하고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믿음이었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민철은 동굴에서 저주인지 기도인지 속죄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린다. 이 말을 충실히 영상으로 표현하려 했다. 민철은 진짜이면서도 가짜인, 또는 가짜이면서도 진짜인 것들 사이에서 혼란을 느낀다. 그리고 결국 눈물을 흘리게 되는데 이 것이 가짜이면서도 진짜일 수 있는 무언가와 맞닥뜨리는 순간이다. 그 결과 민철이 어떤 종류의 믿음을 갖게 되고 그 믿음이 어떤 모습인지 마지막 장면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김성욱│영화 마지막 장면에 풍경이 굉장히 아름답게 묘사되었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화사하고 반짝거린다.


연상호│일단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향을 받아서 그렇다(웃음). 미야자키 하야오는 워낙 유명한 감독이라 그에 대한 작가론을 여러 개 봤는데, 인상 깊게 본 것 중 하나가 “푸른 하늘, 그 밑에 폐허”라는 문장이었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같은 작품들을 보면 아름다운 대자연과 그 밑의 멸망한 인간 문명을 결합해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슬며시 차용했는데, 재개발로 사람들이 거의 다 나간 이 마을을 세계 종말이 가까워진 세계라고 봤다. 수많은 인간들의 감정과는 아무 상관없이 자연이 아름답게 그려지는 것이다. 그렇게 세계의 큰 틀과 거기서 살아간느 인간들의 감정이 중첩되고 충돌하는 이미지를 만들려 했다. 처음에는 인간들의 감정이 더 크게 보이겠지만 실은 그와 아무 상관없이 굴러가는 자연이 더 잔인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관객3│두 가지 질문이 있다. 작품들의 배경에 현실적인 부분이 많다. 작품 만들 때 실제 장소를 많이 참조하는 편인지 궁금하다.

두 번째는 감독님이 얼마 전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올린 한국 애니메이션 지원정책 관련 글에 대한 것이다. 동의하는 사람도 많으나 동의 안 한다는 사람도 많다.


연상호│다들 그렇겠지만 나도 열심히 취재를 하는 편이다. 디테일한 이미지를 주어진 환경 내에서 열심히 찾아본다. 그런데 표현주의적 연출을 좀 하는 편이다. 그림자를 극단적으로 쓰거나 빛을 많이 들여온다. 일그러진 이미지를 쓰는 건 아니지만 그런 그림자와 빛의 대조를 적극적으로 쓰려고 한다.

그리고 지금 한국 애니메이션 지원정책은 어마어마하게 문제가 많다. 지원금과 투자금에 차이가 있다. 투자금은 영화가 흥행이 되든 안 되든 돈을 다 갚아야 한다. 지원금은 돈을 받으면 돌려줄 의무가 없다. 물론 지원금 받으면 눈 먼 돈이 생기는 거라 편하다. 그런데 그 지원금을 둘러싼 관계들이 워낙에 복잡하다. <돼지의 왕>을 지원금으로 만든 줄 아는 분들이 많은데 <돼지의 왕>은 투자 받아서 만들었다. 지원금으로 들어온 돈은 천만 원 정도이다. <사이비>도 삼억 팔천 만원 정도 예산이 들었는데 그 중 팔천 만원 정도가 지원금이고 나머지는 투자금이었다. 즉 순제작비를 지원금으로 채운 적은 없다. 곧 나올 <서울역>도 투자금으로 만들었다. 지원 사업 공모에 낼 계획도 없다.


그런데 물론 그건 내 문제이고 독립 장편 애니메이션 하려는 동료들은 어떻게든 지원금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현실이 어떠냐면 5분 길이의 애니메이션 트레일러 만드는데 지원금 30억을 준다.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3, 4백억 예산의 장편 애니메이션 트레일러 만드는 데 30억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 돈 받은지 5년이 지났지만 거기서는 아직 작품을 만들지 않았다. 만일 투자금을 받는다면 그 돈을 갚아야 하는데 지원금을 30억 받으면 안 갚아도 된다. 일반적인 ‘상업 애니메이션’에 왜 공공재로서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하다못해 ‘독립 애니메이션’ 하는 나도 투자를 받는데 왜 상업 애니메이션 하는 분이 그 어마어마한 돈을 가져가서 안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거기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는데, 논란이 있었던 것은 알고 있다. ‘될 만하니까 세금 걷어서 주지’ 이렇게 말하는 분도 있던데, 앞으로는 여기에 대해 별로 말하지 않으려 한다. 그저 열심히 영화 만들어주기 만을 바랄 뿐이다.


관객4│감독님의 작품들에서 스토리가 주는 충격과 불편함 이전에 영상에서 주는 불편함을 먼저 느꼈다. <돼지의 왕>에서 고양이를 괴롭히는 장면이나 <지옥>에서 쥐를 괴롭히는 장면들 같은 것. 왜 이렇게까지 자극적인 장면이 필요할까란 생각이 든다. <사이비>에서도 개를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동물을 학대하는 장면이 꼭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걸 넣는 이유가 궁금하다.


연상호│ 일단 나는 폭력 장면 연출에 대해 원칙이 있다. 폭력 장면은 폭력적으로 연출한다는 거다. 폭력 장면을 멋있게 연출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물 괴롭히는 장면을 계속 넣고 있는데 나는 장르 영화를 만들면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데 필요하면 쓰는 편이다. <돼지의 왕> 때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외국에서는 고양이나 개를 죽이는 장면이 유아살해에 맞먹는 정도라서 굉장히 싫어한다는 것이다. 위험하다고까지 말했다. 그래도 계속 그런 장면을 넣었다. <돼지의 왕> 같은 경우는 계급 사회의 구조를 복잡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단순히 약자를 착하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약자도 또 다른 약자를 착취하며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서로가 서로를 착취하는 것 말이다. <사이비>의 개 장면은 꽤 고민을 했다. 처음에 성철우 목사가 개를 쓰다듬는데 개는 꼬리를 흔들고 뒤에 닥칠 위험에 대해서는 모른다. 목사가 가고 나서 최경석 일당이 개를 죽이는 것이 마을 사람들이 앞으로 겪을 일에 대한 복선이라 생각했다. 최장로가 앞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저지를 일에 대한 짤막한 우화인 것이다.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되는데, 오프닝이 우화와 같은 역할을 하길 바랐다. 그리고 처음에 관객이 헉, 하고 충격을 받은 뒤 그 긴장감을 가진 채 다음 시퀀스로 넘어가기를 바란 것도 있었다.



관객5│목사가 직접 복수할 것이라 다른 사람을 시킨다.


연상호│착한 성철우 목사가 나쁘게 변했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 나는 성목사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수가 행복하기 위해 소수가 희생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은 마지막에 아마 그런 행동을 취하지 않을까. 일단 성목사 혼자서는 최장로 일당을 상대할 수 없으니 도움이 필요했을테고, 또 한 편으로 성목사는 자신을 ‘선’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그는 그것이 결과적으로 더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선을 위해서 악을 행하는 그런 사람이다.


관객6│<돼지의 왕>과 비교해 이번 <사이비>에 점수를 매기면 몇 점을 주겠는가.


연상호│내가 만드는 작품은 늘 백 점이다(웃음). 그런데 만점이 몇 점인지는 모르겠다. 영화를 만들면서 아쉬운 점이 없을 수는 없지만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 만든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블루레이 만드느라 <돼지의 왕>과 <사이비>를 연달아서 계속 보고 있는데 배우들은 <돼지의 왕>이 몰입도가 더 크다고 하더라.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사이비>가 더 좋다. <돼지의 왕>은 나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작품이다. <지옥>도 마찬가지다.


김성욱│나에게 <돼지의 왕>은 이미지가 남고, <사이비>는 스토리가 남는 작품이다. 애니메이션의 표현적 측면에서는 <돼지의 왕>이 더 적극적이었고, 이 영화는 상당히 사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민철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가 등장하는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연상호│<살인의 추억>과 <사이비>의 비슷한 장면들을 비교해보면 <사이비>가 더 멋있다(웃음).


김성욱│인물들이 다양한 맥락과 과거를 갖고 있어서 <돼지의 왕>보다 에피소드와 인물이 폭넓게 느껴진다. 일단 장로가 가장 인상적이다. 특히 헤어스타일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에서 최장로가 성경 구절을 구체적으로 인용하길래 실제 있는 말인지 찾아보았는데 진짜 있더라. 그리고 목사의 설교는 별게 없는데 장로의 언변은 디테일이 살아있다. 그런 대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듣고 싶다.


연상호│최장로가 언변으로 사람을 설득시키는 사람이라 디테일이 꼭 필요했다. 성경이 두껍지만 교회에서 주로 쓰는 구절은 거의 정해져있다. 사람들을 잘 끌어모을 수 있는 구절 말이다. 여러 후보들이 있었는데 돈과 관련된 이야기로 골라서 넣었다. 교회의 디테일, 이를테면 춤 같은 것은 직접 가서 찍어왔다.

내가 캐릭터 디자인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런데 친구 중 최규석 작가에게 시나리오를 보내주면 인물 스케치를 해 준다. 그렇게 최규석 작가가 최장로의 이미지를 보내주었는데 괜찮았다. 눈도 작고 장난스러우면서도, 진지한 표정을 하니 무서운 사람.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만들었다. 민철의 경우는 <파란 대문>(김기덕)에 나오는 장항선 배우를 참고했다. 그리고 성호는 강풀 작가(웃음).


김성욱│나는 목사 캐릭터가 굉장히 특이하게 느껴졌다. 목사의 제스처도 다채롭게 그려진다.


연상호│<사이비>에는 절제된 장면을 써보려 했다. 극에 들어간 환상 장면은 모두 성철우 목사와 관련된 것이다. 죽은 여자아이가 등장하는 것과 엔딩에서 거울에 괴물이 등장하는 것. 그런 연출에 대한 동경이 있다. 후루야 미노루라는 만화가가 있다. <이나중 탁구부>, <두더지>, <시가테라> 같은 작품을 그린 작가인데 그가 자주 사용하는 연출이 뜬금포로 괴기스런 이미지를 그리는 것이다. <사이비>에 그런 걸 좀 해보고 싶었다. 절제된 상황에서 한 두 컷 정도 건조하게 들어가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해서 보는 사람의 감정을 이상하게 만들고 싶었는데 너무 절제해서 그런지 별 반응이 없더라.


김성욱│영화에서 신경 쓰이는 게 마을에 애가 없다는 것이다. 불모의 마을이다. 결국 공동체가 붕괴되는데, 이를 재건하겠다고 나선 것이 사이비다.

또 하나는 사랑의 문제이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노래도 극중에 나오지만 영화 속 사람들은 사랑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사람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신에게 요청한다.


연상호│일단 수많은 의문들을 끝까지 충돌시켜보려 했다. 칠성이 아내를 사랑하는 방식과 민철이 가족을 대하는 모습들을 비교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말이다. 결국은 무엇이 옳은지 질문을 던지려 했다. 이건 기본적으로 내가 갖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최근 ‘힐링’ 열풍이 불었다. 이걸 간단히 비꼴 수도 있겠지만 ‘이 바보 멍청아’ 하는 식으로 비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 비꼼에 계속 반론과 반론을 갖다대어 엔딩에서는 다시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답을 내기보다는 질문을 갖게 하는 것에 만족한다. 질문과 반론이 이어지며 영화를 보기 전에 갖고 있던 질문과는 다른 질문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김성욱│<서울역>이 궁금하다. 서울역에 창궐하는 좀비 이야기라고만 들었다.


연상호│시나리오를 본 사람들이 엥? 이랬다. 대사가 거의 없고 액션과 액션의 연속이다. 영화가 나오려면 한참 멀긴 했지만 일단 혁명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혁명을 이야기하는 영화는 혁명의 설계자들을 중심에 놓고 그린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혁명은 설계자에 의해 일어나는게 아니라 대중들이 갖고 있는 뭉뚱그려진 분노가 하나로 모이면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혁명의 설계가 설익을 수록 그 혁명이 더 폭발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혁명을 그린 영화가 희생적인 영웅을 등장시키는 게 불만이었다. 나는 자기가 혁명에 참여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의 단순한 불만과 분노를 그리고 싶다. 그리고 이를 액션으로만 보여주는 것이 목표이다.


물론 욕 먹을 수도 있다. 그냥 좀비 나오는 영화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나름대로 여러가지 설계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반인과 노숙자의 관계, 국가기관이 일반인을 대하는 태도, 노숙자와 좀비의 관계 등. 이를 통해 분노가 체계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우화를 만들려 한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거창하지만 그냥 좀비액션영화다. 흥행 했으면 좋겠다(웃음). 콘티그림이랑 선녹음한 걸 붙여 보았더니 영화가 너무 끔찍하더라. 그런데 무섭고 공포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가면 갈수록 더 큰 공포가 있는데 결국에는 그게 해피엔딩이라고 주장하는 느낌의 영화라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기대를 하며 만들어가고 있다. 내년 상반기 개봉 예정인데 배급이 제대로 될지 모르겠다. 작업은 올해 말에 완성 예정이다. 그리고 <서울역> 외에 네 작품 정도를 더 준비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


관객7│<서울역> 말고 다른 작품들은 어떤 것이 있나.


연상호│엠바고가 걸려 있어 자세하게는 이야기할 수 없지만 스릴러가 대부분이다. 애니메이션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관객8│계속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예산적인 측면을 제외하고 실사와 비교해 애니메이션이 갖는 강점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연상호│아까 말했듯 나는 후루야 미노루를 좋아한다. 그런데 항상 보고 나면 실망한다. 그래도 신작이 나올 때마다 기대하고, 보고 나면 실망하고, 이 과정을 반복한다. 그건 후루야 미노루라서 그렇다. 그의 그림과 스토리텔링이 너무 좋다. 그리고 나는 버전이 조금씩 다른 <아키라>가 일곱 개 있다. <인랑>도 박스세트, DVD, 블루레이 다 있다. 책상 옆에 놓고 있으면 배가 부르다. 우리 집에 블루레이 플레이어가 없어도 그냥 갖고 있다. 왜냐하면 좋아하기 때문이다.


만약 <사이비>가 실사로 만들어져 유명 배우가 민철을 연기했다면 나는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배우가 민철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살인의 추억>을 보면 다들 그 형사를 ‘송강호’로 알면서도 재미있게 본다. 모르는 척 그렇게 보는 건데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몰입을 잘 못 한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데, 영화 안에서만 살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데 왜 뻔히 다른 인물을 써야할까. 소심한 양익준 감독이 <똥파리>에서 쌍욕을 하면 나는 그게 너무 웃기고 손발이 오그라든다. 그래서 내가 실사영화를 하는게 굉장히 어렵다. 그래도 내가 처한 산업의 시스템을 벗어날 수는 없으니 만화만 하겠다고 고집하는 건 아니다.


관객9│마을이 수몰지구인데 마지막에 보면 주인공이 여전히 그 마을에 남아있다.


연상호│나도 몰랐던 사실인데 마을이 물에 잠긴다는 것이 사람들이 우르르 나간 다음 갑자기 물이 쏟아지는 게 아니더라. 마을 이주 계획은 굉장히 장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수몰 자체도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나는 것이다. 물을 서서히 흘려 넣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영화는 많은 분들이 얘기하듯 종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종말 ‘직전’에 끝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종말에서 끝나면 관객들이 마음 편하게 극장을 나설 것 같아서 종말을 곧 앞둔 시점에서 끝내고 싶었다.




정리 ㅣ백지원 자원활동가

사진 ㅣ장혜진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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