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은 아마 사랑받기를 원할 것이다.”


11월 작가를 만나다 - 정재은 감독의 <말하는 건축 시티:홀>



일 년 반 전에 <말하는 건축가>로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던 정재은 감독이 지난 11월 30일, <말하는 건축 시티:홀>로 “작가를 만나다”에 다시 초대를 받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서울시청 신청사 건립의 과정을 기록한 이 영화는 서울시청의 ‘쓰나미 디자인’을 무조건 비판하는 게 아니라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건물이 나왔는지 차분하게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영화를 보고 나니 왠지 싫기만 했던 신청사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감독은 과연 어떤 말을 하고자 했던 것일까.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처음 이 영화를 어떻게 시작했는지, 처음에는 어떤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정재은(영화감독)│<말하는 건축가>를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이 영화를 시작했다. 정기용 건축가가 공공건축에 대해 남다른 노력을 했던 분이었기 때문에 나도 공공건축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서울시청에 관심이 갔다. 만약 어떤 기업이 멋진 빌딩을 짓는 것이었다면 영화로 안 찍었을 것이다. 일단 공공건축이었고, 또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흥미로웠다. 그리고 유걸 건축가가 총괄 디자이너가 아니었다면 영화를 못 찍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말하는 건축가>처럼 유걸 건축가에 대한 영화를 찍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촬영 영역이 커졌다. 처음 트리트먼트를 만들 때는 시민들이 싫어하는 지금의 쓰나미 디자인이 어떻게 정해졌는지와 완공을 앞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 하지만 시공사나 서울시에서 촬영을 못하게 한 부분들이 있어 쉽지 않았다.


김성욱│왜 <말하는 건축가>가 아니라 <말하는 건축 시티: 홀>이라고 이름을 붙였나.


정재은│건축가보다 건축에 포커스를 맞추고 싶었다. 그리고 건축이란 것이, 게다가 시청을 만든다는 것이 한 사람만 잘한다고 잘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전체를 드러내는 방식을 취하고 싶었다. 그렇게 사회상을 보여주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김성욱│이건 사견이지만 나는 영화 속에 나오는 여러 시청 디자인 중에서 다른 건축가의 디자인이 더 좋았다. 그런데 이런 사견이 항상 문제가 된다(웃음). 무책임한 발언들 말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 디자인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있었을 법한 논쟁을 크게 다루지 않았다.


정재은│건물을 만들기를 원하는 사람의 의도가 매우 중요하다. ‘서울시청’이다 보니 당연히 서울시장의 의도가 중요하다. 그런데 시장의 임기가 4년이다 보니 많은 시장을 거치면서 건물이 조각조각 만들어져 버렸다. 전 시장이 시청을 만든다고 했을 때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고, 사람들이 그 의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영화에도 나오듯 사람들은 “나는 다른 안이 좋지만 시민들이 원하는 게 이것 같아서 지금처럼 결정했다”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2년 넘게 디자인을 계속 바꾸면서 그 사회를 살아가던 시민들의 의식과 여론,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물인 것이다. 우리 모두가 뭔가 대단한 걸 원했지만 그 대단한 걸 만들기에는 사회의 준비가 부족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사실 이 프로젝트는 애환의 프로젝트다. 우리 모두의 한계를 고스란히 갖고 있기에 애틋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사람들이 지금의 시청을 좋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보면 밑에 있던 사람들이 정말 최선을 다해 만든 건물에 여러 가지 것들이 섞여 있는 것을 보면서 굉장히 애틋하게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성욱│행정적인 어려움이 영화에서 부각된다. 전문적인 논의들은 알아듣기 어렵지만 이 사람들이 어떤 논란 속에서 서로 책임지기 어려운 조건 속에 작업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유걸 건축가도 마찬가지다.


정재은│맞다. 책임을 질 사람이 없다. 사실 이 영화는 어떤 면에서 ‘건축주’를 다뤄야 하는 영화다. 건축주가 왜 서울시청을 새로 만들기를 원하는지, 또 어떻게 만들기를 원했는지 그 생각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시장은 바뀌었고 그때마다 시청의 설계도 조금씩 바뀌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 한 명의 잘잘못을 따지기 어려운 프로젝트였다.



김성욱│풍선 모양 구조물의 디자인에 대해 설명할 때 인부들이 지나가는 순간은 완벽한 코미디의 순간이자 사람들의 갈등이 들어있기도 한 순간이다. 촬영을 끊지 않은 것이 절묘했다.


정재은│정말 완전한 장면이다. 그게 극영화였으면 NG였을 텐데 다큐멘터리를 찍다보니 NG와 OK의 경계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컷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얻어낸 이 영화의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김성욱│후반부에 관련자들이 논쟁을 벌이는 장면을 길게 보여준다. 그 장면의 마무리는 혼자 책상에 앉아 괴로워하는 한 사람의 모습이다.


정재은│시청을 짓는 7년의 과정 안에서 그런 회의들은 엄청 많았을 것이다. 좀 지겹더라도 관객들이 그런 힘든 과정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작은 일로도 이렇게 엄청난 회의를 하는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논란이 있었을까 유추해 보는 것이다.


김성욱│시청 광장에서 시위를 하는 분들의 인터뷰도 있다. 신청사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는데, 이런 인터뷰를 더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재은│물론이다. 시민 인터뷰를 정말 많이 시도했다. 우연히 만난 전문가도 있었고 건축을 잘 모르는 분도 있었다. 그런데 전체적인 방향을 감독이 미리 정해두고 거기에 맞는 시민들의 인터뷰만 짧게 보여주는 건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전문적인 영역에서는 전문가들의 선택도 어느 정도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정부에서 하는 건 일단 다 비판해 버리면서 더 새로운 걸 시도해 보려는 노력까지 비판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돈을 그렇게 써서 저런 걸 만드느냐 하면서 말이다. 나는 시민들이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보고 배워야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지 않은 시민들이 간단하게 한두 마디 하는 건 영화에 넣고 싶지 않았다.


관객 1│<말하는 건축가>를 봤을 때는 뿌듯하고 행복했는데 오늘 이 영화를 보니 너무 착잡하다. 마지막에 건축가, 그리고 함께 일하던 분들이 모이는 장면이 있다. 3천 억짜리 프로젝트고 7년에 걸쳐서 완공이 됐으니 축제가 되어야 하는데, 정작 그분들은 착잡한 표정을 하고 있다. 이 영화를 그분들도 봤을 텐데 소감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정재은│사실 그분들은 아직 일이 끝난 것이 아니다. 특히 영화에 출연하신 분들은 아마 앞으로도 거의 십 년 동안 지금 시청과 관련된 일들을 해야 할 것이다. 그분들에게는 시청이 여전히 진행 중인 일의 영역이다. 그리고 시민들도 지금의 건물을 너무 안 좋아했고, 우리나라 문화가 열심히 일한 사람들을 초청해서 축하해 주는 문화도 아니다. 착잡했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그래도 영화를 보신 분들은 감동을 받으신 것 같다. 특히 내 의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벌어진 상황들을 그냥 보여준 것에 대해 좋게 생각하신 것 같다.


관객 2│영화랑 관계 없는 질문일 수도 있겠는데, 지금 낙원상가 건물도 굉장히 이상한 건물이다. 만약 감독님이 이 건물에 대해 영화를 찍는다면 어떤 관점에서 접근할지 궁금하다. 그리고 극장을 많이 다니셨을 텐데 좋은 극장의 조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듣고 싶다.



정재은│낙원상가는 60년대부터 70년대, 80년대까지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고 김수근 건축가가 건축한 건물이다. 70년대의 한 정치적인 야심가와 건축가가 의기투합해 유토피아적인 꿈을 꾸면서 과감하게 도시 설비를 했던 결과물이 바로 이곳 낙원상가다. 조만간 김수근 건축가에 대한 작업을 할 것 같은데, 그때 이 건물도 당연히 찍을 것이다.

좋은 극장의 문제는 주변에 어떤 관객층을 소구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요즘은 특히 먼 길을 걸어서 영화를 보러 찾아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좋은 시네마테크는 영화와 같이 호흡할 수 있는 곳에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뻘쭘하게, 관객들과 동떨어진 곳에 새 건물을 짓는다고 좋은 게 아니다. 극장을 자주 이용할 사람들과 가까운 곳에 짓는 것이 중요하다.


관객 3│건물을 사람으로 비유하면 지금 신청사는 아기고 전에 있던 건물은 할아버지인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만약 이 아기가 말을 한다면 어떤 말을 할까?


정재은│독특한 비유다(웃음). 그러니까 저 건물이 아기인데, 사생아다. 불행한 것이다. 엄마 아빠가 자기 역할을 다 해서 낳지 못하고, 돌보지도 못한 그런 존재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 아기의 사정을 알면 연민을 보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그리고 지금 관객분들도 영화를 보았으니 보는 눈이 아마 좀 달라질 것이다. 이게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뉴스에서는 시청이 생긴 것도 주위 풍경과 안 어울리니까 모두 싫다고만 한다. 그런데 사실 건축이란 게 꼭 주변과 조화를 이루어야만 좋은 것도 아니다. 좋은 건축이 뭔가, 어떤 디자인이 내가 생각하는 시청에 가장 가까운가, 시청이라는 게 대체 뭔가, 이런 것들을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시청이 무슨 말을 할까, 그런 것은 사실 잘 모르겠다. 아마 사랑받길 원할 것이다. 결국은.


김성욱│정재은 감독은 영화를 꽤 전략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웃음). 보고 나면 그 다음 작품이 더 궁금해진다. 공공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멈춰 버린다. 이제 공공건축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로 막 다가서려는 순간, 서울 도심의 스카이라인을 보여주고 서울의 전체 모습을 보여주면서 끝나 버린다. 그러니 그 다음을 보고 싶어진다. 본격적으로 공공건축에 대한 작업을 다시 할 생각이 있나.


정재은│또 다른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할지 극영화를 해볼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올 겨울에 좀 쉬면서 차기작을 준비해 보려 한다. 서울시청을 다뤘으니 공공건축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가장 큰 프로젝트는 이미 했다고 생각한다. 다음에는 오프닝과 엔딩에 나오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도시 설계에 관한 것 말이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특히 신도시들의 대부분은 굉장히 인위적으로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도시들이다. 누군가가 선을 그은 뒤 여기는 학교, 여기는 집, 이런 식으로 대충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공간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나 정신에 그 도시 설계가 자연스럽게 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인데, 우리는 거기에 많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다음 영화에는 신도시에서의 삶과 도시 설계를 다뤄보고 싶다. 도시의 패턴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는 영화를 계획하고 있다.


김성욱│많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고, 얼마 전 시청에서도 상영회를 했다. 한 달 가까이 상영을 하면서 느낀 게 있다면 듣고 싶다.


정재은│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가 새롭게 안 것들을 관객들도 영화를 보며 알아가는 것이 너무 좋다. 극영화에서는 감정을 전달하는 데 주력하다 보니 지식과 정보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면 내가 접하고 알게 된 새로운 지식과 이야기를 관객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게 굉장히 큰 기쁨이다. 이렇게 딱딱한 다큐멘터리인데 오늘도 지금 이렇게 주말에 시간을 내서 보러 온 관객들이 너무 소중하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통해 사회적으로 조금 더 기여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고 싶다.


정리│백지원 자원활동가  

사진│곽혜원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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