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24. 11:30ㆍ작가를 만나다
유대얼 감독과의 시네토크 지상중계
지난 22일 열린 9월 “작가를 만나다”에서는 음악을 하나의 캐릭터처럼 영화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는 유대얼 감독의 영화 세 편을 <유대얼 단편선>이란 이름으로 묶어 상영하고 감독과의 대화를 가졌다. 시종일관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감동과 웃음이 오간 이날의 대회를 일부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최근에 <사중주>라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들었다. <브라스 퀸텟>, <듀오>, <에튀드 솔로>가 있고, 삼중주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 묶으면 하나의 완결된 형태가 될 것 같다. 혹시 전체가 하나의 일관된 계획에서 시작된 건지 우연인 건지 궁금하다.
유대얼(영화감독): 처음부터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고 광고일을 하다가 영화를 너무 만들고 싶어서 제작년에 <브라스 퀸텟>을 만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 영화는 우연히 교회에서 연락이 와서 아이들이 교회에서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를 만들자마자 곧바로 아시아나 영화제에서 연락이 와서 세 번째 작품을 만들게 됐다. <사중주>는 내가 재즈를 엄청 좋아하는 데다 한국에서 재즈를 소재로 한 극영화가 없다고 알고 있어서 첫 시도를 하고 싶어 작업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영화를 찍으면서 전작에 나왔던 배우들이 까메오로 나오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찍었는데 이제 트리오까지만 찍으면 다섯 편의 영화가 자연스레 하나로 묶일 것 같다.
김성욱: 영화에서 음악의 전곡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는데, 이 영화들에서는 언제나 전곡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음악이 모티브가 되고 많은 음악들이 나오는 만큼 영화를 착상해나갈 때 음악과 영화의 구성을 어떻게 시작하는지 궁금하다.
유대얼: 뭔가를 할 때 열정이 필요하다. 나에게 열정을 주거나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음악이다. 굉장히 좋은 곡이 있을 때 그 곡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영화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영화는 군악대 생활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 당시 <abide with me>란 곡에 많은 애착이 있었고 장송곡으로 알려졌지만 장송곡으로만 쓰기엔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곡으로 뭐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내 군대 경험과 결부시키면 재밌을 것 같아서 영화를 만들게 됐다. 두 번째 영화는 선교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라 어떤 찬송가가 좋을까 생각하다 어렸을 때 들었던 찬송가를 골랐다. 세 번째도 군대에서 착상한 이야기다. 사실 세 번째 영화는 처음 기획이 트레블링 숏이라고 해서 한국의 공간과 문화를 알리는 목적이 있었지만 내가 곡에 욕심이 있어서 음악영화로 만들었다. 어렸을 때 음악을 했었는데 지금은 못하고 있어서 음악에 대한 미련이 많다. 그걸 영화로 풀었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김성욱: 코미디에 욕심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음악과 영상의 결합이 그렇다기보다 구조적으로 숏의 연결이나 장면의 구성에서 코미디적 설정이 많다. 이런 코믹한 설정들을 생각해 낼 때 광고 일을 했던 경험이 도움이 됐는가.
유대얼: 즐거운 걸 좋아하는 성향이다. 심각하거나 진지한 주제의 이야기도 즐겁게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는 것 같다. <에튀드 솔로>에서 첫사랑을 마주하는 장면도 밋밋하게 만나는 것보다 재밌게 만나게 하고 싶어서 그런 장면을 넣었다.
김성욱: 실제 연주자들을 캐스팅 하다 보니까 대사가 거의 없다. <듀오>에서 마스크를 하고 나오는 것도 내용상의 설정이긴 하지만 대사를 없애기 위한 장치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오히려 대사 없는 것이 영화를 무성영화처럼 생략적이게 만들어간다. 영화를 만들 때 캐스팅은 어떻게 하고, 전체적인 스텝 및 촬영의 규모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유대얼: <브라스 퀸텟>은 실제로 군악대를 같이 보냈던 친구들 몇 명과 군악대를 나온 친구들 몇 명과 함께 했던 작업이다. <듀오>의 허민이라는 친구는 우연히 스타킹에서 연주하는 걸 보고 캐스팅했다. <에튀드 솔로>도 실제 피아니스트인 친구다. 이 친구는 독일 배낭여행 중에 만났는데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나중에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음악영화에서 어려운 점은 연주도 해야하고 연기도 해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연기 보다 연주가 우선이다. 연주가 가장 중요한 영화에서 흉내내거나 어설프게 되면 감동이 떨어진다. 그래서 실제 연주자를 캐스팅한다. 스텝은 다 합쳐서 한 삼 십 명 정도 되는 것 같다. <브라스 퀸텟>과 <듀오>는 광고하면서 만났던 학교 선후배들과 같이 했고, <에튀드 솔로>는 영화 쪽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같이 작업했다.
김성욱: <브라스 퀸텟>에서 중간에 눈물 흘리는 여자가 등장한다. 이 여자의 등장 설정이 특이하다고 생각한다.
유대얼: 사실 해결이 안 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반대되는 상황에서 받아들이는 음악의 형태들에 대해 고민했다. 세 가지를 생각했는데, 첫 번째는 카페에서 즐거운 춤곡을 들으며 슬퍼하는 여자의 상황, 두 번째는 장송곡을 결혼식장에서 연주하는 상황, 세 번째는 이별 노래를 고백의 노래로 부르는 상황이다. 이런 식의 세 가지 코드를 생각했었는데 전달이 잘 됐는지 모르겠다.
김성욱: 세 편의 영화들을 보면 음악이 연주되는 장소가 결혼식장, 교회, 야외 공간이다. 이렇게 대개 일상적인 영역에서 음악이 연주되는데, 특히 <에튀드 솔로> 에서 야외 공간과 빛의 배치 및 구도가 신기하다. 연주를 하는 순간 빛에 의해 공간이 배치되고, 연주가 끝나고 순간적인 정적이 흐르는 느낌이 좋다. 촬영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그런 묘한 순간을 포착했는가.
유대얼: 사실은 운이 좋았었다. 그 장면은 창덕궁에서 찍을 수가 없어서 민속촌에서 찍었는데, 때마침 빛과 공간의 느낌이 좋았었다. 연주자의 위치는 양달이고 애들이 앉았던 곳은 그늘이었다. 촬영하면서도 운이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김성욱: 전체적으로 세 편의 영화가 끝나는 지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늘 에필로그가 있다. <브라스 퀸텟>이나 <듀오>에서는 전형적인 에필로그가 있고, <에튀드 솔로>에서는 숨겨진 과거를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에필로그가 있다. 사실 코미디에서 에필로그는 약간의 반전을 주는 장치이다. 에필로그적 구성이 음악의 영향이 있는 건지 어떤 건지 궁금하다.
유대얼: 좋아하는 구성이다. 계획적인 것이 아니라 만들다 보면 뒤에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연주가 끝나고 정말 끝나버리면 허전하지 않은가. 영화가 그렇게 끝나면 아쉬울 것 같다. 그래서 덧붙여 줄 수 있는 이야기가 하나 더 붙으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관객1: <브라스 퀸텟>에서의 애니매이션이나 <듀오>에서 글씨 같은 경우 목소리가 아니고 다른 이미지들을 사용했는데 스스로의 생각인 건지 궁금하다.
유대얼: 영상디자인과를 나온 영향이 큰 것 같다. 미술 기반의 일을 하다보니 그런쪽으로 관심이 많이 가는 게 사실이다. <브라스 퀸텟>에서의 애니매이션의 활용은 내용상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듀오>의 애니매이션은 아이들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길 바라며 활용했다. 물론 미술감독들과 충분히 상의하면서 만들었다.
관객2: <에튀드 솔로>에서 설마 저 소년이 저렇게 어른이 됐나 싶었다. 마지막에 붕대 감은 손을 보면서 둘이 동일 인물이라는 걸 깨달았는데, 혹시 반전으로 일부러 비주얼을 다르게 한 건가.
유대얼: 비주얼적으로 같은 배우가 나오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그 둘이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한번에 알게 된다. 나는 극중 인물과 관객이 동시에 동일 인물이라는 걸 알게 하고 싶었다. 음악을 통해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경험을 극중 인물과 관객이 함께 하면 어떨까 싶었다.
관객3: 앞으로 같이 작업을 하고 싶은 음악감독이 있는지, 그리고 음악영화가 아닌 다른 영화를 찍을 계획도 있는지 궁금하다.
유대얼: 내 시나리오를 100% 공감하고 훨씬 더 많은 영감을 줄 수 있는 음악감독이면 누구라도 상관없다. 개인적으로 휴머니즘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자극적인 느낌을 주는 영화가 아니라 관객들이 의욕이 생기고 기쁨이 생기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음악 영화가 아닌 다른 영화를 만든다면 그런 영화를 만들 것 같다. 물론 음악이 좋은 영화를 하고 싶다.
정리: 최혁규(관객 에디터) | 사진: 박지연(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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