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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

[작가를 만나다] 김일란, 홍지유의 <두 개의 문>

“관객들이 목격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7월 28일 늦은 오후,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7월 ‘작가를 만나다’로 최근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이 상영되었다. 독립 다큐멘터리로서는 이례적으로 6만 명이 넘게 관람하는 등 일련의 반향을 일으키는 작품답게 상영 전 극장 로비는 관객들로 붐볐다. 그리고 상영 후 이 작품의 공동연출자 중 한명인 김일란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관객과의 대화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질문만큼이나 용산참사 자체에 대한 문제, 우리의 삶에 대한 문제들로 확대되기도 했다.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지난 25일 용산 CGV에서 이 다큐멘터리가 상영되는 게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는 한 편의 영화라기보다 한 편의 기록보관소 같다. 영화를 보러가는 게 아니라 용산이라는 장소를 보러 가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현실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중요한 사례가 이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싶은데, 관객이 이 다큐멘터리를 접하고 찾아올 때 예기치 않은 느낌을 받으실 것 같다. 먼저 최근 관객들의 반응이나 만났던 기억과 관련해서, 관객들의 이런 참여에 어떤 느낌을 갖고 계신지 듣고 싶다.

김일란(영화감독): 개봉하고 지금까지 찾아와주신 관객 분들이,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너무 자랑스럽고 감사드리고 싶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독립다큐멘터리를 6만 명이 본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 시대에 동참하고 싶은 관객들이 많다는 의미로 생각된다. 이 시대에 무언가를 하고 싶은 분들이 이 다큐를 보았고, 또 널리 알려주셔서 6만의 관객을 모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숫자에서 희망을 보게 되는 것 같다.

 

김성욱: 다큐멘터리를 만들어갈 때, 어디에서 출발점이 됐는지 궁금하다. 재판 자체가 미완으로 끝나버리게 됐던 것이 이런 다큐를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되진 않았을까. 다큐멘터리에서 제일 궁금했던 것도 녹취를 해서 다큐에 활용했던 부분인데, 그것이 갖고 있는 힘이 느껴지기도 한다. 용산에 관한 일들은 법정 재판을 하는 과정에서 체험하고 느낀 것들이 훨씬 크지 않았나. 작업의 시발점은 어떤 부분이었는지 궁금하다.

김일란: 다큐를 정확히 언제 시작했냐는 질문이 난감할 때가 있다. 특정한 어느 순간부터 시작하지는 않는다. 계기들이 쌓이고 쌓여서 정말 해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희는 용산참사 현장에서 미디어 활동을 하다가 재판에 참여했다. 재판의 속기록을 변호인단 분들이 받지 못하셔서 미디어 활동가들이 몰래 법정에 들어가서 모니터링을 하면서 방청을 하고, 법정에서 이뤄진 이야기들을 녹음을 했었다. 이 녹음들은 다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변호인단 분들이 재판을 더 잘 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기 위해 했던 것들이다. 재판에 직접 들어가기 전에는 편견 같은 것이 있었다. 경찰특공대가 진술을 하기 위해 증인으로 출두했을 때, 그쪽에서는 철거민 분들한테 불리한 증언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재판을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이 재판에서 증언하는 내용을 막상 듣다보니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철거민들이 얼마나 있었는지, 망루 구조가 어떤지 전혀 알지도 못했었고 철거민들이 왜 거기 올라가야만 했었는지도 몰랐던 상태였다. 더군다나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던 화재의 원인이 경찰은 화염병이이라고 했지만, 망루에선 화염병을 본 적이 없다는 증언이 나온 게 신기했다. 결정적으로 진짜 놀라웠던 건, 두 개의 문이었다. 남일당 건물은 복잡한 구조로 옥상이 둘로 나눠져 있다. 옥상으로 올라가려면 문을 지나야 하는데, 어느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몰라서 우왕좌왕했다고 진술을 하러 나왔던 경찰 특공대원들이 한두 명도 아닌데 전부 다 똑같은 얘기를 했다. 그날의 진압작전이 얼마나 성급했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망루 안의 상황을 몰라서 두려움을 표출하는 경찰 특공대원들이 많았다. 용산참사는 결국 철거민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진압해갔던 경찰들의 문제이기도 한다는 생각에 닿게 됐다. 집이 없는 시민과 제복을 입은 시민, 힘없는 시민들을 붙여놓고 적개심을 키우는 거였다. 그 상황에서 누구의 안전도 고려되지 않았다는 게 신기했다. 그때만 해도 다큐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1심 판결을 보면서 너무 화가 났다. 법정에서의 증거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기소내용 그대로 판결을 내릴 거면 왜 재판을 하는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의 판결이었다. 그 법정 안에서 다양한 증거들을 대중들이 본다면 과연 이와 똑같은 판결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서 다큐를 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성욱: 사건의 재구성이란 관점에서 보면 다큐멘터리의 증거들, 증언들, 동영상, 법정 진술 기록 이런 부분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재연의 부분도 많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특공대원들이 용산으로 가는 과정들을 찍은 재연이 있고, 특공대원들의 목소리를 육성으로 재연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얘기하면 픽션에서 작용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일반적인 다큐들이 재연과 관련해서 거리감을 둘 때가 있고, 반대로 활용하는 것도 있지만, 여기에선 굉장히 두드러지게 보인다. 재연이나 픽션을 작동시키는 것이 처음부터 의도한 것인지, 법정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이런 방식의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궁금하다.

김일란: 먼저 저는 한 사람의 꿈이나 가정이 다큐멘터리의 영역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연장면을 찍은 이유는, 우선 관객이 이 영화를 보면서 어떤 경험을 하면 좋겠는지를 고민하면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어떤 방향으로 이 사건을 관객들과 나눌 것인가 고민을 할 때 관객들이 목격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상황 전체를 다시 한 번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관객들이 만약 용산참사 현장을 보고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바로 이 위치가 아닐까.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은 갈등에 빠진다. 증언하고 함께 풀어갈 것인가, 아니면 침묵할 것인가. 용산참사 현장을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 그들이 목격자의 위치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에서 한 것이다. 그곳에서 뭘 하게 될지도 모르고 출발하는 특공대의 감정도 목격하고, 그들이 오는지도 모른 채 망루에서 무사히 시간이 지나기만을 바라는 철거민들의 입장도 목격하는 것이다.

 

김성욱: 음악이 많이 활용되고 있고, 현장음과 새로 만들어낸 듯한 소리들이 일반 다큐멘터리보다 굉장히 많이 느껴진다.

김일란: 마찬가지로 생생함의 문제다. 칼라TV나 사자후TV 소스들은 굉장히 멀리서 찍은 것이기 때문에 사운드가 그렇게 잡히진 않았다. 하지만 없는 소리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고, 현장에서 안타까운 상황을 지켜본다 했을 때의 소리와 감정을 살려내는 방식으로 음향 작업을 했다.

 

김성욱: 여러 가지 형태로 용산에 대한 기록이 삭제되어 있다. 시체 유기, 증언들의 누락, 채증영상 삭제, 제한적으로 진행된 재판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사건을 덮으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재판은 사실 규명을 해야 하고 충분한 객관적 증거가 제출되어야 하는데 그 자료들은 제거되거나 삭제되었다. 반면 영상에는 픽션으로 구성하거나 재연을 통해 누락된 구성들을 접근해 들어갈 수 있는 힘, 재구성의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이 다큐가 갖는 본질적인 힘이 아닐까.

김일란: 이 영화에 새로운 증거는 하나도 없다. 전부 다 언론을 통해 보도됐거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누구나 찾아볼 수 있는 정도의 정보들이다. 저희가 주목한 건, 이것들을 모두 종합했을 때 비어있는 것들을 남겨둠으로써 이걸 왜, 누가, 어떤 방식으로 은폐했는지 그 자체를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그 구멍들을 일부러 메우려고 하지 않았다. 만약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면 재판을 다시 시작했을 거다. 다만 이 다큐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던 건 특공대들의 ‘감정’을 증거로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감정은 법정에서 증거가 될 수 없지만 감정을 볼 수 있는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재판이었다면 특공대가 증언하는 감정에 주목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것만이 새로운 증거였던 것 같다.

 

 

관객1: 영화에 나온 사실들에는 비어 있는 부분들이 많다. 권력에게 불리한 사항이니까 의도적으로 누락시켰을 가능성이 큰데, 감독님께서 그려보신 공백이나 들은 내용이 있지는 않나 궁금하다.

김일란: 다큐 마지막에 쌍용자동차 진압장면을 넣었다. 망루에서도 이러지 않았을까. 쌍용자동차 진압 장면과 같은 상황이 혹시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부검을 빨리 서두른 건 구타의 흔적이 시신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계시는데, 그날 시너가 망루 안에 굉장히 많았는데 그건 발전기를 돌리기 위한 거였다. 물도 안 들어오고, 전기도 안 들어와서 망루 안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여서 자가 발전기를 돌려야 했기 때문에 양이 많은 거였다. 화재가 났을 때 통을 밖으로 던지는 장면이 보이는데, 화재가 우발적으로 발생해서 더 큰 화재가 날까봐 던지는 거다. 국과수에서도 누전에 의한 화재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 아직도 밝혀야 할 의문점이 남아있다.

 

관객2: 영화를 보면서 너무 갑갑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 우리가 권력에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영화 속 인터뷰, ‘이런 참사가 일어났는데도 이 나라 국민은 용인을 하는 구나’ 이 부분을 보면서 분노가 조금 일었다. 감독님들께서 영화는 흥행할지 모르겠지만 용산참사가 잊혀질까봐 두렵다는 기사를 봤다. 우리가 이 영화를, 다른 영화를 보듯이 보러 오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 영화가 이 사회의 갑갑함을, 분노를 해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인가, 보면서 그런 물음들이 들었다.

김일란: 아마도 이 영화를 보신 많은 분들이 그렇게 느끼실 거라고 생각한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옆에, 앞에, 뒤에 앉아계신 관객들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분들이 다큐를 보면서 절망하시거나 힘겨워하실 때, 저는 엔딩크레딧을 다시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정말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 다큐가 만들어졌고, 844명의 배급위원에 의해 개봉도 했고, 그런 영화를 6만 명이 봤다. 작은 숫자여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아직 우리가 좌절하기엔 이른 것 같다. 그래서 매일매일 이 영화를 찾아주시는 많은 관객들에게 너무 감사하고, 한 분 한 분 손을 잡으면서 진짜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에너지를 집중할 때, 우리 안에 내적인 힘을 발휘할 사람이 내 곁에 있는지 확인하는 게 중요하고 6만의 관객은 그런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다만 영화는 영화고 삶은 삶이니만큼, 지속적인 관심을 쏟는 건 분명 힘든 일이다. 그런데 삶이 피폐해지면 다른 사안에 관심을 갖기가 힘들어진다. 자신의 행복을 잘 지켰을 때 그것이 가능하다. 영화를 보고 지나치게 죄책감을 갖거나 너무 절망하지 마시고, 자신의 생활을 잘 유지하시면서 사안에 결합해주셨으면 좋겠다.

 

정리: 송은경(관객 에디터) 사진: 박지연(자원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