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6. 15:28ㆍ작가를 만나다
“하나는 죽음의 여행, 다른 하나는 삶의 여행이다”
지난 6월 30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6월의 ‘작가를 만나다’ 프로그램으로 올해 1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객평론가상을 수상한 <아버지 없는 삶>이 상영되었다. 상영 후에는 김응수 감독과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아버지 없는 삶>은 두 일본 여성의 여정을 복잡한 내레이션을 통해 그려내는 영화로 김응수 감독이 처음으로 시도하는 에세이 필름이다. 영화 속 내레이션만큼이나 많은 말들이 오갔던 그날의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개인적으로는 오늘 이 영화를 두 번째로 봤다. 이 영화를 처음 보신 분들한테는 영화가 낯설거나 당혹스럽게 느껴졌을 거다. 보시면서 느낀 것들을 같이 이야기 나눴으면 좋겠다. 먼저 어떻게 시작이 됐을까 궁금한 점이 생긴다. 영화에서는 소설 <요코 이야기>와 마사코라는 여인이 연결되어 있다. 각각 어떻게 접하셨는지 궁금하다.
김응수(영화감독):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가 있다. 우리는 강한 자가 만드는 시선의 논리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문화적으로 얘기하는 오리엔탈리즘의 대상이다. 이건 지구에 사는 이상 숙명인 것 같다. 그래서 바깥에서 우리를 규정하는 문제와 우리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 반일감정이나 민족주의도 아니면서 우리 자신의 문제를 정리해나가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한일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있는 중심과 주변에 대한 문제, 우리가 왜 이런 구조에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들을 물어보고 싶었다. 처음부터 역사를 짊어지고 가겠다는 사명감은 없었다. <요코 이야기>라는 소재를 보편화시켜서 여행을 하고 싶었다. 내 영화에는 주변과 중심의 문제, 시선 정립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요코 이야기>에 나오는 얘기들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한 공간에 시간차를 두고 살고 있는 일본인을 찾아가 하나는 죽음의 여행으로, 하나는 삶의 여행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김성욱: 영화는 <요코 이야기>의 요코라는 여자와 현재의 마사코 둘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내레이션에 나오는 얘기는 마사코 씨가 직접 얘기했던 개인사에 근거한 것인지 궁금하다.
김응수: 서너 번 마사코 씨를 만나서 얘기를 부탁했다. 굉장히 편하게 했다. 그 분이 얘기하시는 것들 중에서 중요한 부분만 쓴 거고 전부 다 사실이다. 다만 접근할 때는 조심스러웠다. 마사코 씨의 나가사키 여행 경로를 따라갈 때도 그랬다. 역사적인 장소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람이 나가사키에 가는 일본인을 찍을 때 ‘저 사람이 나를 찍어서 뭘 하려고 하는 거지?’ 하면서 궁금해 하는 게 당연하다. 내가 선뜻 나서서 나가사키 평화 공원에 가자고 얘기하지 못했다. 그런데 마사코 씨가 배려를 해 주시는 건지, 원래 시선에 별 신경을 안 쓰고 사시는 건지, 그냥 가시더라. 그래서 따라 찍었다.
김성욱: 영화 전체를 보면 요코와 마사코가 등장하고, 내레이션으로 언급되는 인물로는 <만춘>(1949)의 노리코와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의 프랑스 여인(엠마누엘 리바)이 있다. 일본에 가서 찍은 장면에선 여고생들이 나온다. 시간적으로 다른 연령대에 있는, 다른 여성들을 다루고 있다. 거창하게 생각한 건 아니지만 국가와 여성이라는 문제가 있다는 느낌이다. 일본에 가서 촬영을 할 때 처음부터 눈에 들어온 것인가.
김응수: 그건 염두에 뒀다. 아오모리로 향하는 여행 속에선 요코라는 인물에 맞는 이미지를 가지고 그 이미지에 맞는 비슷한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찾았다. 요코라는 사람이 고토에 살았다면 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을 것 같다. 일본은 근 200년 동안의 전통이 이어져 있다. 낡은 것을 버리지 않고 고쳐 쓰는 경우가 많아서 시간이 축적된 느낌이 강하다. 히로시마에서 사진 찍는 여학생들, 자기네 역사임에도 처음 보는 것처럼 또렷하게 응시하는 마스크 쓴 20대 아가씨 등 모든 것들이 굉장히 비슷하게 보였다. 그 영화들을 생각한 것도 무엇과 무엇을 대비하려는 게 아니라, 내레이션을 쓰면서 갑자기 생각난 인물들이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들어오는 내레이션이고, 역시 알지 못하는 사이에 보이는 비슷비슷한 이미지를 여행 경로 속에서 취사선택했다.
김성욱: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 것 같은데, b와 q라는 이니셜을 가진 두 인물의 영상 편지 같은 것이 나온다. 주체가 확실히 누구인지 불분명하다. 분산된 느낌이 강하다.
김응수: 내레이션은 모두 제 목소리다. 두 사람의 내레이션을 하나의 목소리로 녹음한 건, ‘b는 이런 성향이고 q는 이런 성향을 갖는다.’ 이렇게 설명하기보다 내 안에 있는 여러 가지가 좌충우돌하는 문제를 마주하고 싶었다. 각자가 아버지에 대해 가지는, 한편으론 무의식적으로 부정하고 싶은 것과, 다른 한 쪽으로는 거기서 떨어져 나오고 싶은 것. 그런 것 속에서 스스로가 가지는 내 안의 복잡함과 다면성들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그런 것을 여러분도 분명히 가질 것이라는 확신에 선택을 했다. 복잡한 것 같지만 내 방식이 맞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나는 아오모리에 가고, 또 하나의 나는 마사코 씨를 따라가고, 다른 또 하나의 나는 설명하고, 여러 가지가 있다. 처음엔 많이 혼재되지만 나중엔 완전히 갈라진다. 명확히 구분되면서 좋은 낙천성 속에서 영화가 끝난다고 생각한다.
김성욱: 영화를 보면 자기분열적인 작가의 내레이션을 듣는 듯하다. 전체적인 흐름과 초정을 향해 어떻게 나갈지 언제 결정되었나.
김응수: 이게 촬영 전에 시나리오를 써서 찍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촬영 감독 입장에선 일본에 가기 전에 뭔가를 써 주는 게 편했을 거다. 즉흥성을 발휘하는 게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잖나. 그래서 촬영 쪽에서는 그런 것을 요구했는데,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당시에 내가 가진 정도의 깊이를 갖고 뭔가를 쓰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냥 가는 여정에서 인상적인 장면들을 어림잡아 찍어 나갔다. 한쪽은 마사코 씨가 있으니까 그 사람을 그냥 찍었다. 다만 어떻게 찍느냐는 문제가 있는데, 그걸 고민하면서 찍었다. 그러니까 나중에 편집하기가 힘들었다. 사실 에세이 필름을 하고 싶은 욕심이 많았다. 에세이 필름이 볼 때는 쉬워보여도 막상 하면 되게 어렵다. 이미지, 내레이션, 음악, 소리 등 여러 박자가 있는데 그것들이 다채롭게 향연을 이뤄야 한다. 웬만한 음악적 감각이 아니면 굉장히 힘들다. 그때 이미지를 평탄하게 설명하지 않고 한번 툭 잘라본 것이 굉장히 과감했다. 툭툭 자르는 절단을 내레이션 등의 다른 층으로 연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1: 영화를 보기 전에 소개 글만 봤을 땐 ‘아버지 없는 삶’이라는 제목이 일본의 군국주의 문제랑 관련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일본 사람이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했던 게 비극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그런 부분에 대한 감독님의 견해가 그게 궁금하다. 또 영화가 마사코의 행적을 따라가는데, 그 분이 영화에서 보여질 때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면이 약한 느낌이 든다. 감독님의 내레이션이 그걸 대신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다가가기 조심스러운 태도와 관련이 있는 건지 궁금하다.
김응수: 각자의 관점에서 영화가 다가오는 측면은 분명 있다. 그래도 조금 부연을 드리자면, 마사코 씨의 얼굴은 굉장히 강렬한 얼굴이다. 보통 ‘다가온다’는 건, 감정이 확실하게 전해지고, ‘운다’, ‘슬프다’ 그런 것들일 거다. 그런 강한 감정들이 다 있는데 단지 많이 움직이지 않을 뿐이다. 저한테 마사코 씨의 표정의 변화는 순간순간 다 보인다. 떠날 때의 불안함과 도착했을 때의 스산함, 자기 나라인데도 낯선 곳에 왔을 때 보이는 눈빛과 행동 등은 매우 적나라했다. 내레이션을 쓰면서 이렇게까지 드러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의 문제는, 국가가 어떤 거다, 라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다. 나는 무정부주의자도 아니고, 어딘가 소속되어 살 수밖에 없다. 그래도 국가를 다 믿을 건 아니다. 쉽게 얘기해서, FTA가 되면 자동차를 팔고 농산물을 사는 게 유리하다고 하는데, 그럼 자동차를 판 돈이 나한테 오나? 자기의 이익을 왜 국가로 가져가나. 그건 국가와 ‘나’가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동차를 파는 사람은 자기 이익이 생기는데, 농사짓는 사람은 왜 생존이 걸린 문제를 포기해야 하나. 즉 동등하지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이 국가에 빠져 사는 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가 어떤 소속을 갖고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친구를 만들고 다른 흐름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언젠가는 국가 대 국가로 서로를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그럼 총을 들고 나가야할 거다. 그런 악순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미약한 개인이 어떤 사고를 갖고 어떤 흐름을 만들어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김성욱: 영화가 갖는 혼란함의 지점 중 하나가, 그전 작업에 다뤘던 범위에 비교해서 지리적으로 훨씬 더 넓어져서 그런 것 같다. 시간적인 문제로는 이전의 작업보다 더 과거로 들어간 부분도 있다. 또 한편으로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차가 있다. 영화가 다루는 건 여잔데 말하는 건 남성의 목소리다. 영화 대부분의 작업도 남성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차이도 있다. 영화 뒤에 나오는 내레이션의 상당부분이 차이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여성은 이동성이 있고, 영화 속에서 남성은 별로 표현되지 않는데 유일하게 표현되는 건 카메라를 들고 여행하는 감독의 내레이션이다. 그 둘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긴장성이 발생하는 것 같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샹탈 애커만의 <뉴욕에서 온 편지>가 생각났다. 뉴욕의 풍경과 편지의 내용은 일치가 안 된다. 이 영화에서도, 여자가 비행기 타는 장면에서 내레이션은 ‘단호함’이라고 말한다. 시각적 정보로는 단호함의 제스쳐를 읽을 수는 없다. 그 때 두 가지의 충돌이 있게 된다. 나쁜 경우라면 내레이션이 시각적 정보 완전히 엎어버리는 상태인데, 여기선 과다한 내레이션에 긴장성의 느낌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의 이야기를 감독이 촬영하면서 발생하는 긴장성이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 그런 점들이 흥미로웠다.
정리: 송은경(관객에디터) | 사진: 최미연(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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