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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바캉스 서울/Review

자크 베케르의 '현금에 손대지 마라'

알베르 시모닌의 원작소설이 처음 나온 것이 1953년의 일이니, 자크 베케르가 <현금에 손대지 마라>를 영화화한 것은 꽤 재빠른 시도였다. 갈리마르의 ‘세리 누아르’에 실렸던 이 소설은 초판 20만부가 팔리는 인기를 얻었고 유명한 문학상인 되 마고 상(Prix des Deux Magots)을 수상했다. 은퇴를 앞둔 노년의 갱스터가 주인공들이다. 오랜 친구인 막스와 리톤은 마지막 노후를 편하게 보내려 공항에서 금괴를 강탈하는데, 계획과는 달리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우정을 너무 과신했던 탓이고, 금괴 강탈에 야심을 보인 눈치 빠른 신흥 갱 안젤로의 도전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베케르가 이 소설에 관심을 보였던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두 사내들의 우정과 배신의 이야기가 흥미를 끌었다. 게다가 은퇴를 앞둔 그들의 나이가 중요했다.

트뤼포의 찬사를 빌자면, 이 영화는 쉰을 넘긴 사내들의 우정의 이야기다. 시모닌과 자크 베케르는 쉰을 앞두고 있었고, 주인공인 막스 역의 장 가뱅이나 리톤 역의 르네 다리는 이제 막 쉰을 넘긴 나이였다. 나이를 먹는 것은 그들 각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사내들의 우정이라 말했지만, 막스와 리톤의 관계는 과장된 정념보다는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들과 제스처들의 느슨한 연결로 묘사된다. 금괴의 강탈, 갱들 간에 벌어지는 폭력적 행동과 결과보다는 그들의 행위를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위험에 처한 리톤이 막스의 아파트에 머무는 장면은 거의 10여 분간 지속되는데,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놀라운 순간들이란 고작 그들이 포도주를 따서 잔에 따르고 빵에 치즈를 발라 먹거나 잠에 들기 위해 침대보를 정리하고 양치질을 하고 파자마를 갈아입는 장면들이다. 죽음의 리듬에 가까운 이 순간들은 참으로 아름답고 숭고할 지경이다. ‘곤충학자’처럼 인물의 행위와 제스처, 디테일에 편집광적인 집착을 보였던 베케르의 진면모가 이런 느슨한 장면들에서 엿보인다. ‘황혼의 프렌치 누아르’라 부르고 싶은 동시대 장 피에르 멜빌의 <도박꾼 밥>(1956)과 줄스 다신의 <리피피>(1955)와 미적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자크 베케르는 전후 프랑스 영화에서 가장 대중적인 장르였던 프렌치 누아르의 개척자였다. 1940년대 아메리칸 시네마에 명명된 ‘필름 누아르’란 프랑스식 표현은 정작 미국에서는 1950년대를 거치면서 소멸하기 시작하는데, 새롭게 베케르의 손을 거쳐 프랑스에서 생명력을 얻었다. <현금에 손대지 마라>는 미국식 필름 누아르를 차용하면서도 프랑스적 기원의 독특성을 체현한 작품이다. 장 가뱅이 연기한 막스는 1950년대 프랑스가 처한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는 낡은 세계와 새로운 세계, 전전과 전후 프랑스, 전후 프랑스와 미국의 격돌의 지대에서 고뇌한다. 그가 신흥 갱스터인 안젤로(이후 멜빌의 영화에서 두각을 보인 리노 벤투라가 이 영화로 처음 데뷔했다)와 다툼을 벌이는 것에서 팍스 아메리카로 대변되는 세계질서에의 프랑스식 저항의 흔적이 느껴진다. 장 가뱅은 레지스탕스의 적임자였다. 라스트에서 그가 보여준 몸짓은 친구를 떠나보내고 과거와 작별하는 숭고하고도 엄숙한 의례이다.

글/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