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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바캉스 서울/Review

로버트 알드리치의 '피닉스'


사막의 한복판. 무전기도 망가졌고 기체도 불안정한 ‘늙은 새’라는 군용 수송선을 개조하여 승객을 실어 나르는 낡은 비행기가 날아간다. 좁은 비행기 안에는 온통 남자 승객들뿐. 그리고 비행기를 모는 기장. 제임스 스튜어트가 있다. 그는 늙었다. 옛날에는 비행기를 몰고 하늘을 나는 것 자체에 프라이드가 있었지만, 지금은 조종사들의 실력이 예전보다 나아졌는데도 프라이드란 것이 없어졌다고 한다. 낡고 좁은 비행기 안에는 비행기의 조종간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는 심약한 부기장 리처드 아텐보로와 정신이 이상한 승객 어니스트 보그나인. 엄격한 영국군 장교와 그에게 불평불만이 가득한 병사. 술을 마시며 만도린을 타는 젊은이. 플레이보이 잡지를 보는 젊은이. 그리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햇병아리 독일인 젊은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앉아 있다.

그렇다 이 영화는 사막 한복판에서 프라이드가 사라진 대신 허세만 가득한 늙은 남자들의 몰락에 관한 이야기이다. 비행기보다도 작은 모래폭풍에 늙은 새는 박살이 난다. 그리고 사내들도 모두 박살이 난다. 사막 한복판에 표류한 그들은 물 한금과 빵 한 덩이를 얻기 위해 비겁하게 흉계를 꾸미거나, 어린아이처럼 싸움질을 한다. 사막의 폭염과 굶주림. 그 무엇보다도 참기 힘든 갈증. 남자들의 명예와, 조직에 대한 믿음과 전우애, 경험에서 온 현명함을 믿는 늙은 사내들은 자신들의 능력이 사막에서 아무런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에 절망한다. 그들이 삶을 포기하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그들을 구원하는 것은 햇병아리 젊은이이다. 그는 패전한 나치의 후손이며 글라이더 설계자이다.


알드리치는 1965년 이 영화를 만들었다. 2차 대전과 한국 전쟁을 치룬 세대들이 늙어 갈 때였고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는데, 플라워 무브먼트의 세대가 바로 그들이다. 이 영화는 내가 가장 처음 본 알드리치의 영화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집안 어른들이 모두 교회에 간 일요일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에 텅 빈 집안에 혼자 앉아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이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를 본 후 나는 갈증이 날 때마다 <피닉스>를 떠올렸다. 사막의 무서움과 절망에 대하여 <피닉스>만큼 나에게 각인된 영화는 없었다. 그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허리를 펴고 머리를 꼿꼿이 들고 사지를 향해 걸어가는 늙은 장교와 그의 뒷모습을 훔쳐보는 비겁한 젊은 부하였다. 늙은 장교는 군인의 명예를 걸고 다른 이들을 위해 사막의 도둑떼인지, 아니면 그들을 구원 할 행상들인지 판단이 안서는 자들과 교섭을 하러가는 대표자가 된다. 즉 군인으로 마땅히 치러야 할 희생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바로 다음 신에서 하얀 사막의 모래 위에 죽어 널브러진다.

늙은 제임스 스튜어트는 영화 내내 중용과 희생을 실천하는 멋있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젊은 독일인 글라이더 기사, 하디 쿠르거가 낡은 비행기 늙은 새를 해체하여 글라이더로 만들어 사막을 탈출하자는 제안을 하자, 그는 돌변한다. 이제까지 보여주었던 그의 미덕 전부를 날려버리는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것이다. 늙은 새는 낡고 산산조각이 났지만 비행기이다. 자기 스스로 동력을 만들어 하늘을 나는 비행기인 것이다. 그것은 늙은 스튜어트에게 마지막 남은 프라이드이다. 그의 프라이드를 해체하여 비행기라 볼 수 없는 바람에 의존 해야만 하늘을 나는 무동력 장난감인 글라이더를 만들어 목숨을 부지한다는 것을 그는 용납 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그는 타협을 한다. 자신의 프라이드를 산산조각내고 목숨을 연명하는 것이다. 늙어가는 감독 알드리치는 1960년대 중반 고약하게도 늙은 남자들의 몰락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가치를 잃고 몰락해가는 근대적 남성들이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2011년 한국에서 필름으로 보게 되는 이 영화는 의미심장하다.

글/
오승욱(영화감독 <킬리만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