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30. 01:00ㆍ2011 시네바캉스 서울/Review
미국으로 건너간 뒤에도 에른스트 루비치의 성공은 지속됐다. 도회풍의 세련된 코미디가 급격한 변화를 겪던 미국인, 미국 사회와 잘 맞아떨어진 까닭이다. 자기 영화의 성향과 잘 어울리는 파라마운트사와 주로 관계를 유지했던 루비치는 1941년에 폭스 사와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발표한 <천국은 기다려준다>는 루비치의 유성영화 중 흥행에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남았다. 영화는 헨리라는 남자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상류층 뉴요커인 그는 죽은 뒤 지옥사자 앞에서 자기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루비치는 역사물을 다룰 때에도 시대와 무관한 작품 세계를 선보이곤 했다. 사회와 역사의 무게에 짓눌린 개인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천국은 기다려준다>의 전작인 <죽느냐 사느냐>(1942)를 기억해보라). 그러한 점에서 <천국은 기다려준다>는 루비치 영화의 기념비에 해당한다. 영화는 19세기 말부터 이십세기 중반에 이르는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인물들의 삶은 역사와 무관하다(혹은 그렇게 보인다). 루비치는 당시 세계를 뒤흔든 전쟁과 공황의 흔적조차 깡그리 없애놓았다(인물의 변화에 영향을 끼치는 건 패션뿐이다). 아무리 한 개인의 기억을 반영했다 할지라도 바깥 세계와 단절돼 흘러가는 영화는 기이하다. 혹자는 루비치 영화의 이러한 경향을 ‘초월적인 성격’이라 일컫는다. 같은 해 나온 마이클 파웰과 에머릭 프레스버거의 <블림프 대령의 삶과 죽음>(1943)과 비교해보면 루비치 영화의 색깔이 극명해진다. 같은 시기를 살았던 남자의 회고담이라는 점에서 두 영화의 출발점은 동일하지만, 인물과 전개 방향은 판이하다. 일종의 전기 영화이면서도 <천국은 기다려준다>는 장르의 룰을 뒤엎는다. 주인공은 딱히 주목할 인물이 아니며, 그의 삶 또한 교훈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글/이용철(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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