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만나다]


“영화는 또 하나의 가능성이다”

<경복> 최시형 감독과의 대화



누구에게나 한 번뿐인 영화라는 게 있다고 한다. 예외적인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첫 번째 영화의 기회가 감독들에게 있는 법이다. <경복>은 그런 영화다. 젊음의 지나가는 한때라는 소재 때문이 아니라 이 영화가 그러한 삶을 지극히 예외적인 방식으로 포착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모두 동굴 속에 있고, 또 동굴을 통과하려 한다. 일종의 몽상가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미래는 어쩌면 예정된 실패로 끝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변화를 시도하려 했던 ‘전前’의 삶을 살지 않았던 이들은 삶의 달콤함을 알지 못할 것이다. 예외적인 데뷔작을 찍은 최시형 감독과 9월의 ‘작가를 만나다’에서 나눈 이야기를 소개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촬영을 진행한 시기와 최종본이 나온 시기가 꽤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중간에 칼라로 된 화면들은 추가로 촬영을 한 것인가?


최시형(영화감독)│촬영은 2009년에 끝났고 중간중간에 편집을 해서 2012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프리미어 상영을 했다. 2010년에 군대를 갔다가 처음 편집했던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웃음). 그 뒤 계속 다시 편집했고, 여러 영화제에 상영을 하는 동안 편집본이 매번 달랐다. 2013년에 개봉을 위해 마지막으로 편집했다. 추가 촬영은 없었다.


김성욱│영화의 제목이 ‘경복’인데 고등학교의 이름이기도 하고 ‘큰 복’이란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경복고등학교를 다닌건가?


최시형│경복고등학교 79회 졸업생이다. 영화에 나온 동환이란 친구도 거기서 만났다. 그런데 학교 이름의 의미보다는 매일 경복궁역에서 배우, 스탭들이랑 술 먹고 놀았다는 의미가 더 크다(웃음). 무엇을 하든 함께하는 것은 큰 복이고 좋은 것이란 의미에서 이 제목을 지었다.


김성욱│영화에서 공간적인 배경이 차지하는 부분이 큰데, 뒷부분에서 이해가 잘 안 가는 장면이 있다. 밖에 나가자마자 다시 문을 열고 또 방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처음 봤을 때는 밖으로 나갔다가 안으로 또 들어오는 것이 이 영화의 전체적인 느낌이라는 생각도 했다. 인물들이 바깥으로 나가기 보다는 또 다른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으로 여자들이 또 들어간다.


최시형│편집본을 본 사람들이 가장 질타했던 장면이다. 영화를 찍을 때마다 이런 것들을 반복하는데, 다른 시공간에 있는 두 개의 쇼트를 연속된 숏으로 붙이는 게 습관이다. 나는 자연스럽다고 했는데 큰 화면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다른 시공간에 있는 인물들이라도 동일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영화를 통해 만날 수 있다는 사소한 믿음이 있다. <경복>의 두 인물은 이제 스무 살이고 이수라는 동네 형은 한때 스무살이었다. 그리고 두 주인공들은 이제 이 집에서 나가는 것이고 여자들은 이제 이 집에서 살게 될 것이다. 이런 접점을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김성욱│데뷔작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상대적인 데뷔작과 절대적인 데뷔작. 절대적 데뷔작은 두 번 다시 찍을 수 없을 것 같은 영화다. <경복>에도 그런 느낌이 있다. 처음에만 찍을 수 있고 예외적으로만 찍을 수 있는 그런 시간의 느낌을 담아낸다.  <경복>은 아버지가 없는 상황에서 어머니가 여행을 떠나면 그후의 장면들은 하나의 휴가처럼 그려진다. 이후의 삶은 어떨지 모르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빛나는 시간인 것이다. 여행을 떠날 때보다 떠나기 전 짐 꾸릴 때가 가장 재미있듯이 그런 ’전’의 느낌을 이 영화가 담아낸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내부적 공간이 갖고 있는 힘이 독특하게 다가왔다. 보통 밖에 나가면 어떤 불안감 같은 것을 느끼는데, 이 영화의 인물들은 안에서 갖는 즐거움의 시간을 중단하는 것을 계속 유예한다.


최시형│그동안 몇 편의 영화에 배우로 출연하면서 늘 호기심과 질문들이 있었다. 이 장면에서는 B가 주인공인데 A가 주인공이라는 이유만으로 카메라가 A를 비추는 것 같은 ‘좋지 않은 정석적인 방법’에 의문이 생겼다. 내 영화를 찍고 싶다고 생각하며 몇 편의 단편 시나리오를 썼는데 영화 찍는 게 쉽지가 않으니 안 찍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경복의 이야기는 계속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기회가 왔다. 어느 날 공짜로 쓸 수 있는 카메라들이 생겼고, 윤성호 감독님이 집을 비우시면서 그 집에서 촬영을 할 시간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며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전국 노래자랑>의 이종필 감독, <숨바꼭질>의 허정 감독, <라라에게>의 신이수 감독 등이 모이고 나니 그냥 그 사람들을 찍는 게 더 재미있었다. 우리만 있는 모습을 기록하고 싶었다. 데뷔 못 하고 매일 술 마시고 놀면서 개똥철학 얘기하는 모습이 더 좋게 느껴진 거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그렇게 영화를 찍고 난 다음 4년 동안 우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매일 술 먹고 놀던 낭만이 이제는 끝이라고, 지속될 수 없는 것이라고 직감했던 것 같다.




김성욱│영화를 보면 정지된 사진들을 쓰는 경우가 있다. 특히 ‘정은임의 영화음악’을 들을 때 정지 사진이 뜬다. 정지된 사진을 활용하는 것 자체도 어떤 느낌을 전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훅하고 지나가 버리는 젊은 시절, 출발점의 시간을 다루는 영화에서 정지 사진을 쓰니 어쩌면 그 시간을 붙잡을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최시형│그 라디오 프로그램을 가져온 건 우리가 술 먹고 정성일 평론가 성대모사를 하면서 놀았으니 순전히 재미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스탭 사이에서도 영화는 사진에서 시작하는 게 맞다는 파가 있고, 한 줄의 문장에서 시작하는 게 맞다고 주장하는 파가 있다. 나는 전자다. 그리고 사진을 전공한 이종필 감독이 영화 촬영 전에 사진을 많이 찍는데 나도 그런 방법을 사용한 거다. 무식한 말일 수도 있는데, 나는 어떤 순간을 기록한 사진이 있을 때 그 다음 장면이 무엇일까, 그 장면이 좋았으면 좋겠다, 라고 바라는 마음이 영화라고 종종 생각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사진을 사용하고 싶었다. 정지 사진을 쓰는 것도 습관 중 하나이다.


김성욱│영화에 많이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가 걸어가는 발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끝 장면도 그런 식이고, 그 장면들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방향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계속 걸어가는 느낌 말이다.


최시형│솔직히 말해,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데뷔작 <지루한 삶>의 첫 컷을 따라했다. 이종필 감독과 함께 영화를 봤는데 그 장면이 좋았다. 우리끼리는  나름 의미를 붙였는데 그건 사실 말장난 같고, 솔직히 따라한 것이다(웃음).


관객1│우는 장면이 나온 다음에 친구가 음악을 그만뒀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은 미래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그렇게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상상인지 궁금하다.


최시형│연인 사이든 친구 사이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보다 시간이 지났을 때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형근이란 인물에게 집에서 나가는 건 사실 중요한 게 아니다. 그는 시간이 지났을 때 서로 좋아하던 것들이 변했으면 더 슬퍼할 것 같다. 그래서 넣은 숏이다. 그 다음 장면은 배우가 독일에 갔을 때 문득 보고 싶어서 스카이프를 하면서 연기를 시켰다. 그 메신저 창을 다시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넣은 장면이다.


김성욱│영화 끝부분에서 두 친구가 떠난 뒤에 세 명의 여자가 방에 들어오는데 그후 전개되는 장면에 독특한 느낌이 있다. 왕가위의 <중경삼림>에서 여자가 떠난 후에 양조위가 그 공간에 앉아 있는 장면이 생각난다. 하나의 공간 안에 연관성을 지닌 두 명의 사람이 따로 있지만 함께 있는 느낌 말이다.


최시형│여자 인물들이 들어온 후 피아노치는 장면까지는 시나리오를 쓸 때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이다. 지금 이야기를 들으니 또 <중경삼림>을 따라한 것 같기도 하다. 누구나 한집에 여러 가족 구성원들과 함께 사는데 어릴 때부터 그게 유치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엄마 방, 아들 방, 딸 방 이렇게 나뉘어져 있고 아빠는 큰딸 방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도 없다. 집을 삼팔선마냥 나눠 놓은 다음 밥 먹을 때만 다 모이는 이런 것들 말이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 때는 ‘공간에 어떤 인물이 있고 시간이 흐른다’를 기본 개념으로 한 뒤 한 공간에 인물들을 전부 모이게 하고 싶었다. 나는 영화를 공간에서 시작하는 편인 것 같다.


김성욱│터널 장면 같은 경우는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이런 영화에서 터널을 찍는 건 너무 클리셰다. 그런데 그렇다고 터널을 안 찍으면 이런 느낌이 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터널 장면은 많이 등장할 뿐 아니라 묘한 느낌을 내기도 한다.


최시형│이종필 감독과 함께 항상 터널을 자주 걸었다. 터널이란 것은 좌우가 없고, 한쪽 끝으로 가야만 하는 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걷는 옆으로는 차들이 무섭게 달린다. 이런 이미지가 영화를 지탱할 수 있는 가장 큰 구조가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혼자 걷는 것보다 둘이 걷는 게 좋다’는 의미에서 혼자 걷게 한 다음에 다시 두 명이서 걷게 했다. 그런 의미에서 터널 장면이 영화의 큰 주제이기도 하다. 갈등을 했던 것은 터널을 걸은 다음 햇빛을 받으면서 밖으로 나오는 장면이었다. 많은 고민을 했는데 그건 다음 영화에서 하자는 생각으로 덮어버렸다.


김성욱│베르톨루치의 젊은 시절 영화를 들어 말하자면, 세상의 바깥으로 출하는 것은 어렵지만 대신 “이미지로 탈출”하는 것은 가능하다. <경복>에서는 오히려 그 터널을 탈출하지 않는 것이 더 좋았다. 영화 속 집도 밀실 같은 동굴로 그려지지만 충분히 탈출할 수 있다고 본다. 앞으로는 어떤 영화를 찍고 싶나.


최시형│나는 지금 29살인데 첫 영화를 20살에 찍고 십 년이 지났다. 돌이켜 보면 잘못한 것도 많고 실수도 많이 했는데 요즘은 그에 대한 반성과 공부를 하고 싶다. 어릴 때 <동방불패>, <쇼생크 탈출>, <타이타닉>, 왕가위의 영화들을 좋아했는데, 영화는 그래도 꿈이나 판타지가 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다음 영화는 무조건 로드무비를 만들 거다. 터널을 나온 두 인물이 무언가를 찾아가는 영화를 잘 만들고 싶다.



정리│백지원 자원활동가 / 사진│김윤슬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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