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만나다]“이 영화는 나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 <길 위에서>의 이창재 감독

2013. 8. 30. 15:48작가를 만나다



“이 영화는 나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길 위에서> 이창재 감독



지난 8월 24일에 진행한 8월의 “작가를 만나다”에서는 비구니들의 수행과정을 조용히 기록한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를 상영했다. 상영 후에는 이창재 감독이 극장을 찾아 영화의 나레이션을 통해 들었던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영화 제작에 얽힌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다큐멘터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었다. 영화는 무엇보다 감독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라는 그는 과연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었을까.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오늘 본 <길 위에서>는 1년 정도 시간을 들여서 만든걸로 알고 있다.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하는 공간을 배경으로 만들었는데, 왜 이 공간을, 그것도 1년이란 긴 시간을 들여서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이창재(영화감독)│돌이켜보면 그 나이대에 관심이 가던 걸 영화로 만들었다.  <사이에서>의 경우에는 당시 가까운 사람이 어려운 일로 무당을 찾았을 때 그 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돼 영화로 만들었다. <길 위에서>는, 내가 수행이랍시고 진통제를 먹듯 이런저런 수행처를 찾아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구니 스님과 직접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칠순쯤 되신 분인데, 그분도 수행의 성과가 없어서 여전히 수행 중인 분이었다. 그런데 말씀 도중 핸드폰 배터리가 왜 이렇게 빨리 닳느냐며 보여주는데 그게 벽돌 같은 옛날 핸드폰이었다. 산 속에서 집도 절도 없이 수행을 하시다보니 그게 옛날 것인지도 모르고 계셨던거다. 아주 마르고 작고, 재산이라고는 지갑과 휴대폰 밖에 없는 그 분의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그 때의 생각을 4년 정도 삭히다 이 영화를 기획했다. 자료를 찾아봐도 한국에서 비구니에 대한 건 방송으로도 나온 적이 거의 없었다.


김성욱│서울역에 도착한 스님이 등장하는 첫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왜 이 장면으로 영화를 시작했는가.


이창재│그 스님은 출가하시기 전에는 강남에서 잘 자라신 분이다. 그런데 산 속에서 수행만 하다 1년 반만에 서울로 다시 나오니 간극이 생겨서 매우 당황스러워하셨다. 스님들은 그런 걸 ‘중물’이 들었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영화에는 넣지 않았지만 스님은 서울의 그 오염된 공기를 마시면서 ‘너무 좋아요’라고 말씀하기도 하셨다. 그리고 서울역의 사운드라는게, 교회에서 나온 분들은 큰 소리로 전도를 하고 있는데다 술 취한 사람은 스님에게 어디 가냐고 자꾸 말을 건다. 이런 여러가지 요소가 한데 섞인 상황 자체가 흥미로웠다.


김성욱│제목을 ‘길 위에서’ 라고 했는데 이 제목은 언제, 어떻게 정한 것인지.


이창재│영화 촬영이 다 끝나고 제목을 지었다. 처음에는 “비구니” 였다. 그런데 ‘비구니’라고 하면 우리나라만의 어떤 뉘앙스가 있다. 기구한 사연이 있다거나, 세상에 상처받고 도망 온 듯한 느낌 말이다. 그 뉘앙스를 그대로 사용하면 영화에 출연한 스님들의 삶을 단정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그 분들의 삶을 정의 내릴 수는 없는 것이고 여기 출연한 몇몇 분들이 한국 비구니의 대표성을 가질 수도 없다.

그리고 잭 케루악의 소설 『길 위에서』를 떠올렸다. 로드 무비의 시초라고도 할 수도 있을텐데 20대에 읽은 그 소설이 인상에 깊게 남았다. 이 분들의 삶이 우리 속세의 삶과 뭐가 다를까란 질문을 스스로에게도 던지고 스님들에게도 던졌다. 그때 느낀 것이 스님들의 인생의 지향점은 모두 같다는 것이었다. 물론 스님 중에도 게으른 스님이 있고, 아주 지독할 정도로 열심히 수련을 하시는 분도 있고, 술을 많이 드시는 스님도 있다(웃음). 하지만 어떤 분이든 간에 깨달음이란 길을 걷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뛰어 가든 누워 있든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반면 속세의 삶은 대학에 가는 것이라든지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라든지 목표가 전부 같지 않다.


김성욱│이 암자는 일 년에 두 번만 개방을 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그곳에서 촬영을 어떻게 진행했는지 궁금하다. 어느 정도 분량으로 촬영했는지, 그리고 밖에서 보면 이 공간이 폐쇄적으로 보이지만 막상 안에서 촬영한 부분을 보면 의외로 개방적인 느낌을 준다.


이창재│매 계절마다 네 번 쫓겨났다. 그때마다 수행하는 스님이 바뀌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말씀하신다. “제가 나갈까요, 감독님이 나가실래요.” 이러면서 실제로 짐을 싸면 정말 무섭다(웃음). 산 속에서 수행만 하는 것도 좋지만 바깥에 우리의 모습을 알리는 것도 좋지않을까 해서 큰스님이 허락해 주셨지만 그 다음이 더 문제였다. 스님들의 커뮤니티는 수평적 관계를 바탕으로 한 만장일치제에 가깝기 때문에 한 분이라도 동의를 하지 않으면 촬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수행하는 장면을 찍는 것이 어려웠다. 영화 속 겨울 장면은 사실 하루 동안 찍은 분량이 전부이다. 그리고 젊은 스님들이 특히 많이 어려워하셨다. 왜냐하면 영화가 개봉하고 가족들이 자신의 모습을 보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 잡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결국 마지막으로 쫓겨난 것이 그대로 크랭크업이었다.


나를 포함해 세 명이서 220일 정도 기숙하며 촬영했는데, 마침 우리가 묵는 방이 마주 보는 공간이 빨래터였다. 그런데 비구니 스님들이 남자들이 오는 바람에 빨래도 잘 못 말린다면서 항의를 하셨다. 그래서 또 쫓겨났다. 그리고 거기 있다고 해서 계속 촬영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그곳에서 맡은 일은 불 때는 일이었는데, 낮에는 장작을 패고 밤에는 불을 때야 했다. 촬영을 안하고 일을 한거다. 비율로 따지면 일이 7할, 촬영은 3할이었는데 스님이 우리들을 잘 활용하신 셈이다(웃음). 하지만 그런 시간이 쌓이면서 결국 관계가 만들어졌다. 일을 나한테 열 번 정도 시키시면 인터뷰를 안 하실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그러다보니 결과적으로 촬영이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본 많은 분들이 풍경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사실 사람보다 풍경을 더 많이 찍었다. 어떤 면에서는 스님들의 모습도 풍경을 찍듯이 촬영했다고 봐야한다. 망원 400mm 렌즈를 사용해 숲 속에 숨어 포착하듯이 촬영했다. 나중에 보니 렌즈 구매비가 제일 많이 들었더라. 워낙 종류별로 렌즈를 다 썼으니 말이다.


전체 분량은 160시간 정도 찍었는데, 200일 정도 찍은 것 치곤 굉장히 적은 편이다. 1주일 동안 18분 밖에 못 찍은 적도 있었다. ‘오늘은 30초 밖에 못 찍었네…’ 이러면서 얼굴이 하얘지는 거다. 내가 제임스 카메론도 아니고 정말 비싸게 찍은 셈이다(웃음). 나중에 추가촬영도 부탁했지만 실패했고, 편집이 끝난 후 영화를 보여드리면서 다시 만났다. 꾸지람도 하고 칭찬도 하시면서 이런 작품이 다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질 일이 없을거라고 하셨다. 개봉이 가까워졌을 때 보니 절에서 공사를 하고 있더라. 무슨 때 아닌 공사냐고 여쭤봤더니 개봉하면 사람들이 찾아올거라서 미리 바깥에 문을 하나 더 만든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아주 높은 산을 건넜다는 생각이 든다.


김성욱│비구니에 대한 다큐멘터리 같지만 사실 감독님 본인에 대한 영화로 보이기도 한다. 스님이 감독님에게 언제 출가할지, 만약 이번 생애가 아니면 다음 생에에는 출가하실 건지 묻기도 하더라.


이창재│사실 편집을 할때쯤 내가 그동안 무엇을 본 건지 스스로 궁금증이 들었다. 1년 동안 내가 그곳에서 본 건 사실 표면일 뿐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이야기를 정리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것이고, 그런 맥락에서 편집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건 ‘출입금지’ 표지판 뒤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관객들을 저 안 쪽으로 데려다 주면 그곳에서 관객들이 각자 다른 것들을 느끼길 바랐다. 그리고 이 영화가 나에 대한 영화이기도 한 것이, 한 스님이 나에게 물어보셨다. 언제 출가할건지, 만약 이번 생이 아니라면 다음 생에는 출가할 것인지 말이다. 처음에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분에게는 그 질문이 당연한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절에서 자라셨으니 절이 자신의 전부인 것이다. 그분에게는 오히려 내가 이 행복한 곳을 두고 왜 저렇게 머리를 기르고 사는지 궁금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 질문이 이상하게 계속 맴돌았다. 나도 스물 다섯 쯤에 그분처럼 출가를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분은 그 길을 갔고 나는 가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계속 들다보니 계절마다 스님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이 선택을 확신하느냐, 이 선택이 틀렸을 때 돌아올 길은 있느냐라고 말이다. 그런데 사실 그 질문은 나에게 한 질문이었다. 답은 아직 들려드릴 수 없다.


김성욱│초월적인 문제나 삶의 저편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이창재│요즘은 호스피스의 문제를 다룬 다큐를 찍고 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가 아직 이르다 싶어 미뤘었는데 이제 시작했다. 주로 말기암 환자 분들을 만나고 있는데, 죽음을 받아들이고 지금까지의 자신을 놓을 때 얼굴이 확 바뀌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보면 비약적인 성장인 셈이다. 스님들의 수행도 같은 맥락이다. 자기를 완전히 버릴 때 오는 깨달음이란 측면에서 두 경우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 사회적 다큐멘터리에 대한 마음도 있지만 지금 이 나이에 내가 해야하는 숙제라는 생각을 하다보니 <사이에서>부터 이런 작품 세 편이 몰린 것 같다. 하다보니 3부작이 갖춰진 것이다. 지금하고 있는 호스피스를 다룬 다큐멘터리까지 끝내면 내가 생각해왔던 사회적 문제를 다룬 영화를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다큐멘터리는 오로지 내가 관심이 있는 걸 만드는 것이다. 내가 1년 동안 이 ‘여행’을 재미있게 다닐 수 있을지만 생각한다. 흥행 같은 건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1년 반이나 하는 건데 내가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지 않겠는가. 지금은 죽음에 대해 1년 반 정도 충분히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재미보다는 의미로 밀어붙여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한다. 세상이 너무 재미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나는 좀 진지한척도 하면서(웃음) 의미를 향해 최선을 다해보고 싶은 것이다.


작업을 하다보면 항상 ‘나’에 대한 걸로 귀결된다. 처음에는 출연자의 이면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고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관객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마지막으로는 감독이 자기를 스스로 비춰보는 거울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진다. 이 세 번째 거울이 제일 좋다. 나를 위해 작업을 하다보면 거꾸로 출연자나 관객들에게도 거울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김성욱│촬영 첫 날 뭘 찍었는지, 그리고 어떤 걸 느꼈을지 궁금하다.


이창재│처음에 찍은 장면이 영화에도 많이 나왔다. 첫 사흘 동안 비가 계속 왔는데, 그때 마음이 참 그랬다. 스님은 얼굴도 못 보고 각종 비만 종류별로 찍었다. 지금 접을까 하는 생각도 사실 했었다. 촬영 내내 안개가 걷힌 적이 없었다. 늘 다음 발을 어디에 디뎌야 할지, 내가 어디로 걸어왔는지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 뜻대로 방향을 잡으며 찍었다기보다는 찍을 수 있는 것, 찍히는 것에만 한정적으로 집중했다. 그러다보니 가끔 이게 내 작품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길 위에서>의 반은 스님들이 만들어 주신 것이다.



정리│김보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팀 

사진│김윤슬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