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만나다]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것들을 내 영화 속에 담고 싶었다" - <마이 라띠마>의 유지태 감독

2013. 7. 24. 11:55작가를 만나다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것들을 내 영화 속에 담고 싶었다”


<마이 라띠마>의 유지태 감독



<작가를 만나다>의 7월 상영작은 유지태 감독의 <마이 라띠마>였다. 유지태 감독은 “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감독이나 배우라는 명칭 구분이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 말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매 컷 마다 정성을 들여 수공예 영화를 만들었다는 자신감을 비치며, 다음 영화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 중이라는 그는 감독으로서의 ‘새로운 삶(마이 라띠마의 뜻)’에 이미 뛰어든 것처럼 보였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영화를 보면 남자와 여자, 두 명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둘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게 된다. 처음에 이주여성에 대한 이야기에서 출발하면서 남자의 이야기가 들어가는데, ‘수영’이라는 인물만 따라가도 하나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청년 백수의 이야기도 있고,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한 사람의 성장통에 대한 이야기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처음부터 붙어있던 건지 아니면 ‘마이 라띠마’라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수영의 캐릭터가 같이 연관되어 들어간 것인지 궁금하다.

유지태(영화 감독): 처음 시놉시스는 대학시절부터 생각했던 이야기이다. 그 당시에는 어촌 마을 소년 소녀의 이야기였다. 소년 소녀가 아이가 생김으로써 어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였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르면서 나의 생각이 바뀌기도 하고, 사회에 대해 좀 더 책임의식이 생기게 되고, 사회 반영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여러모로 더 깊게 생각하다 보니까 이주여성이라는 소재도 등장하게 되고 청년 실업자도 등장한 것 같다. 청년실업자 같은 경우는 최종적으로 등장한 소재이다. 원래는 열아홉 살 수영이라는 캐릭터였는데, 배수빈 씨를 열아홉 살로 만들기엔 무리가 있었기에(웃음) 어떻게 하면 그를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청년실업자와 이주민의 사랑이야기를 그리면 되겠다 싶었고, 마지막에 각색을 하게 됐다.

김성욱: 영화 초반부에 한강 고수부지에서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 있다. 두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뒤에서 석양이 막 지려다 장면이 끝나버리고, 뒤이어 배수빈 씨가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보는 순간에는 특이했는데, 영화의 마지막에 똑같은 포즈로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 나오더라. 두 장면이 어떻게 관련된 것인지.

유지태: 배우 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현장에서 의사소통을 잘하고, 현장을 잘 이끌어 갈 수 있는가를 많이 고민했다. 그 고민의 결과는 철저한 ‘지속성’이었다. 나의 영화나 앞으로 만들어질 영화도 철저하게 계산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 영화에서도) 화면 디졸브 효과를 염두에 두었던 부분이 있다. 그 이유는 인생을 담은 영화, 성장을 담은 영화가 될 것이기 때문에 세월의 흐름을 묘사할 수 있는 장치들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김성욱: 수영이 처음 등장할 때 집 내부가 나오는데, 지난 앨범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졸업식 사진을 찍는 순간이 있다. 수영의 과거 여자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지만, 앞서 말한 두 개의 이미지가 이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유지태: 사람을 따라다니는 트라우마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수영은 마이 라띠마와 다르게 욕망을 쫓아다니는 백수기질이 다분한 사람인데, 왜 그가 청년실업자로 전락했을까를 생각했을 때 그에게 트라우마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와 함께 사랑을 나누었던 옛 여인, 그를 버렸던 주변사람들, 그를 방치했던 가족들이 트라우마로 작용했을 것이다. 마이 라띠마의 디테일한 묘사가 아닌, 화면 전환 방식과 같은 이미지를 통해, 화면 속에서 설명할 수 있는 방식들을 택한 것이다.

김성욱: 영화에서 수영은 타인의 일에 관여하면서 폭력을 행사하는 순간이 많다. 전반부에서는 포항 출입국 사무소에서 마이 라띠마가 아주버니에게 폭력을 당할 때 관여하고, 후반부에서는 소유진 씨가 폭행을 당할 때 관여한다. 수영이라는 인물이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 관여하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지태: 한국 남성의 전형적인 면을 담고 싶었다. 부정적인 면과 좋은 면. 간섭을 잘하고, 자기 일도 아닌데 열정적이고, 반면 좋은 점은 푸근하고 정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이 한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정서의 측면이 아닐까. 요즘 친구들은 다를 수도 있지만 30대 중후반 사람들의 그러한 면을 담으려고 했다.

김성욱: 포항 출입국 사무소 장면에서 아주버니와 싸움을 벌이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두 사람이 도주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굉장히 갑작스러운 순간에 벌어지는 일 같은데, 그 장면이 전체적으로 영화를 보았을 때 도약의 지점이다.

유지태: 맞다. 혹자들은 이 부분에서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말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를 볼 때 개연성을 가지고 보는 방식에만 익숙해져 있는 게 아닐까. 갑작스러운 등장, 다른 방식의 서사구조를 보여주고 싶었다. 독특함이라고 할 수도 있다. B급 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등장하는 게 더 매력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개연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건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알고 있었다. 여기에 대입해볼 수 있는 영화의 방식을 모두 적용해보았다. 다른 것들은 재미가 없었다. 일본 영화 <바이브레이터>처럼 즉각적으로 만나서 떠나버리는 방식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지금보다 어릴 때, 영화에는 엉뚱함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 같은 논리나, 알렉산더 페인의 <사이드 웨이> 같은 시선 말이다. 영화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것, 독특함, 사람들이 말하는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것에 더 흥분을 느꼈다. 그런 부분에서 시작을 하기도 한다. B급영화나 저예산 영화에서 이러한 독특함을 많이 실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독이 마음껏 작가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시스템화 되어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김성욱: 지하철에서 키스하는 장면도 참 예외적이다. 왜 하필이면 지하철인가?

유지태: 한국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걸 익숙해하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상대의 비친 모습을 보며 떨리는 마음으로 첫키스를 하면, 독특한 장소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하철 안에 조명기를 들고 가지 못해 더 예쁘게 찍지 못한 것이 아쉽다. 삼각김밥 키스신이라던지,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행동들을 내 영화 속에서 해보고 싶었다.

김성욱: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 카메라 움직임이 특이하다. 바깥으로 나갔다 한 바퀴 돌아오면, 두 사람이 누워서 꽃 이야기를 한다. 카메라의 움직임, 오버랩 등이 많은데 이 장면에서 카메라의 움직임을 어떤 식으로 구상하셨는지.

유지태: 영화배우로서 영화를 만드는 데 이유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차원에서 영화를 만드는 데 이유가 있을까 생각했을 때, 현재 한국영화는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는 상업영화와 초저예산 영화로 양극단화 되어 있다. 나는 중간급의 예산으로 만들 수 있는, 저예산 영화판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5억 미만의 영화들을 보면 낙후되어 있거나 기술적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한계를 넘어보고 싶었다. 한계를 넘어가면서도 관객과 소통하는 데 유리하길 원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지루한 편집이 아닌 다이내믹한 편집과 카메라 워크를 구사하려 노력했다. 그 장면을 연출할 때 영감을 얻은 영화는 가스파 노에의 <돌이킬 수 없는>이다. 그 이유는 두 사람의 비정상적인 사랑과 그들의 사랑을 격리시키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카메라 워크가 두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을 밝히고, 창 너머 죽어있는 도시와 살아있는 도시가 나누어진 사회를 유영하는 모습을 화면 속에 담고 싶었다. 산세베리아꽃 같은 경우는 이주여성들이 쓴 여러 글을 찾아보면서, ‘산세베리아가 자기와 같다’는 글을 보았다. 산세베리아는 자생력이 강해서 한 달에 한 번씩만 물을 주면 사막에서도 자라는 강력한 식물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음지식물로 아는 바람에 물을 안 주어서 수명보다 더 빨리 죽는다고 한다. 무관심 속에 고립되어 있는 산세베리아와 자기가 닮았다는 이주여성의 글을 읽고 감동해서 영화에 넣게 되었다.

관객1: 한국인 배우가 마이 라띠마 역을 했는데, 어떤 이유 때문인지.


유지태: 염두에 둔 태국 배우도 있었지만, 영화 예산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배우에게 항공료, 숙박료 등등의 돈을 주면서 제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여성들을 구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미지와 부합하는 사람들은 방송국에서 모두 캐스팅한 상황이었고, 비자 문제 등의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했다. 그래서 저예산 영화가 한국 신인의 등용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방식을 <방가방가>와 같은 영화에서 힌트를 얻었다.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큼 연기를 잘 시키자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적중한 것 같다.

관객2: 마지막에 나오는 태국의 전통춤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


유지태: 마이 라띠마를 그릴 때, 마이 라띠마의 색깔을 분명하게 하고 싶었다. 감독으로서 그녀의 삶을 축복하고 싶었고, 희망을 그리고 싶었다. 사실 마지막에 마이 라띠마가 한국에 정착하고 있는 장면은 거짓이다. 불법 체류자가 되면 무조건 추방되어야 하기에, 그 부분은 사실과 다르게 만들었다. 나의 바람이기도 하다. 산세베리아의 꽃말이 ‘관용’이라고 한다. 한국 사회가 냉정하고 배타적인 성향이 강해졌는데, 인권의 입장에서 관용을 베풀 때가 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한다.

관객3: 이 영화 안에서 감독님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아름답게 나왔다 싶은 장면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런 영화 만들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는지.


유지태: 매 커트가 나에게는 아름다운 것 같다. 한 커트, 한 커트를 수공예처럼 만든 작품이다. 한계를 깨는 것은 결국 노동이다. 나는 빠르게 프로세스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잘 정렬되어 있지 않은 작품을 내놓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프로세스가 느린 편이다.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점은 정성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정성스러운 영화를 만들고 싶다. 화면이나 테크닉에 집착하는 시기는 지났고, 지금은 나를 두근거리게 하는 소재와 주제가 중요하다.



정리ㅣ 관객에디터 지유진

사진ㅣ 자원활동가 김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