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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네마테크는 동굴이다





나는 다른 영화광이나 감독 지망생들과는 다르게 늦게 영화에 빠졌다. 열아홉 살 때 수능 끝나고 논술 준비하러 서울에 와서 처음으로 돈 주고 영화를 봤다. 그때 <판의 미로>를 보고 영화의 마술 같은 힘에 빠졌고 영화감독이란 직업에 대해서 호기심과 동경이 생겼다. 


그 땐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나이도 먹고 영화를 보기 시작해선지 영화를 볼 때도 남들이 안 보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 개성 있는 영화를 만들진 못해도 보는 취향에서만큼은 개성 있고 싶어서였나보다. 여러 예술 영화관을 전전하던 끝에 시네마테크를 방문하게 됐고 이곳을 자주 와야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관객회원으로 등록해 연회비를 내기에 이르렀다. 


시네마테크를 자주 찾은 건 아니어서 발권 받을 때마다 할인 받은 액수가 연회비에 못 미치는 사태를 초래했다. 하지만 시네마테크를 유명한 감독님과 배우 분들이 찾는다는 사실에 별 이유 없이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멀티플렉스와 다르게 매일 상영하는 영화도 다르고 그 영화들도 하나 같이 특이해서 멀티플렉스에선 조조로 영화를 보고 점심 조금 지나서는 일반 예술 영화관엘 가고 어둑어둑해질 무렵부턴 시네마테크에서 두 편 연속해서 영화를 보게 되는 신기한 날도 있었다. 


그렇다고 시네마테크에 매일 같이 드나든 건 아니다. 내가 인생 경험이 별로 없어서거나 아니면 영화를 보는 데도 순서가 있어서인지 지금 당장엔 내 체질에 맞지 않는 영화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어떨 때는 몇 달 만에 한번 시네마테크를 찾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영화를 열심히 보던 중에 시네마테크에서 에디터로 일하게 됐다. 그래서 반강제로 영화를 보고 리뷰도 쓰고 있다. 친구들 영화제 같은 경우에는 감독님들의 주옥같은 말들을 유심히 듣고 성경이나 불경 말씀인양 정성스레 글로 옮기고 있다.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 기간에 진행된 이벤트 중에 현장 감독님들의 수업을 듣는 시네클럽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에 <기담>을 만든 정가형제 감독님은 “시네마테크에 다니지 마라. 나처럼 된다.”고 한 박찬욱 감독님의 농담을 들려줬다. 이 말은 감독님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의미에서 크게 와 닿았다. 시네마테크에 다니면 개성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 남들과 다른 시선과 감성을 지니게 된다. 이건 이 세상의 적지 않은 곰들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쑥과 마늘을 부지런히 먹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용혁: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