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서 전쟁영화를 하나의 굳건한 장르로 규정하자면, 1970년대까지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대세’였다. 그러다 1970년대 말에 이르러 <대전장>(1978), <3중대의 병사들>(1978)같은 베트남전 영화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기존 2차 세계대전 영화들의 사소한 변형에 지나지 않았다. <영화 장르: 할리우드와 그 너머>를 쓴 배리 랭포드는 <디어 헌터>가 “전쟁영화의 역사적 무게중심이 결정적으로 베트남으로 옮겨가게 된 계기”로 본다. 또한 미국영화 투자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EMI가 당시 성공적인 출발을 하게 해준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배리 랭포드는 <디어 헌터>를 <지옥의 묵시록>(1979)과 함께 베트남전과 무관하게 ‘할리우드 르네상스 스타일의 실험’이 더해진 전쟁영화로 본다. 그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 <플래툰>(1986), <햄버거 힐>(1987), <7월4일생>(1989)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 양상은 대부분 ‘액션오락영화’로 분류되던 2차 세계대전 영화들과 사뭇 달랐다. 배리 랭포드가 말하길 “전쟁의 격렬하고 지속적인 정치화와 더불어 현대 미국의 첫 패배 경험의 파장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디어 헌터>는 <모히칸족의 최후>를 쓴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사슴 사냥꾼 Deerslayer>으로부터 유래한 제목이다. 쿠퍼는 내티 범포라는 하층민 출신의 사냥꾼이 등장하는 5부작 소설을 통해 변경의 백인과 인디언의 관계를 다채롭게 묘사, 탐색해왔는데 마이클 치미노는 그를 베트남전으로 치환하여 스러져가는 미국의 처참한 현실을 드러냈다. 영화가 시작하면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클레어튼에 있는 제철소의 삭막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것은 이후 베트남에서 겪게 되는 악몽과 연결되는 지옥으로의 입구다. 이곳에서 일하는 마이클(로버트 드니로)과 닉(크리스토퍼 워큰), 스티븐(존 세비지) 등은 절친한 친구 사이로 종종 산으로 사슴 사냥을 떠난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안 가 베트남으로 파병된다. 하지만 그들은 베트콩에게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고 러시안 룰렛으로 대표되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피폐해져 간다. 그렇게 우정은 산산조각 나고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은 휴지조각이 된다. 그렇게 그 누구도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 한다.


<디어 헌터>에 대해서는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를 통해 무려 30페이지 넘게 이 영화에 대해 할애한 영화평론가 로빈 우드의 분석이 압권이다. 그는 “사실주의적이라고 해서 많은 칭찬을 받았던 반면 한편으로는 반동적인 영화라고 가차 없이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둘 중 어떤 반응도 정당하거나 유용한 것 같지는 않다”며 “정치학과 미학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좌파의 입장에서 보면 실제 존재하지 않았던 베트콩의 러시안 룰렛 등 베트남전 묘사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있지만, 형식적 측면에서는 이후 만들게 되는 <천국의 문>과 더불어 “미국영화의 위대한 건축가이자 가장 멋진 형식의 혁신자”라고 추켜세운다. “존 포드와 하워드 혹스가 함께 속해 있는 전통의 절정이자 그 전통에 대한 만가”라는 것. 그러면서 <디어 헌터>가 <수색자>(1956)와 <리오 브라보>(1959)와 맺고 있는 강한 대응관계에 대한 분석도 시도한다. 그가 보기에 <디어 헌터>는 “치미노의 이상주의가 만들어낸, 그러니까 현대문명이 폐기처분해버렸지만 여전히 숭고함과 순수함을 가지고 있는 인물(마이클)에 대한 탄식”이다. 물론 로빈 우드는 일방적 가치 찬양에 경도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영화에 대한 혼란을 긍정하면서 “<디어 헌터>의 위대함은 그러한 혼란의 풍부함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썼다. <디어 헌터>는 과작(寡作)의 작가 마이클 치미노가 만들어낸 가장 문제적인 작품이다.

글/주성철(씨네21 취재기자)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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