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과 죽음을 동시에 그리려 했던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



“루키노 비스콘티 특별전 - 치명적인 사랑”을 맞아 비스콘티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는 한창호 평론가의 지난 시네토크를 다시 정리해 보았다. <레오파드>와 <순수한 사람들>이 중심에 놓여 있지만 비스콘티의 데카당스를 테마로 한 다른 작품들을 이해하는 데에도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비스콘티와 죽음 - <레오파드>

영화 <레오파드>의 시대적 배경은 이탈리아 통일 운동 시기이다. 당시 이탈리아,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통일 전의 ‘이탈리아’는 대부분의 도시가 왕정 체제였다. 그러다가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 지역의 사보이 왕가를 중심으로 흡수 통일이 시작됐다. 이때 비토리오 엠마누엘레라는 왕과 카부르라는 재상, 그리고 직접 전투를 벌였던 주세페 가리발디가 통일 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이들은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대의에는 합의를 했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는 서로 생각이 달랐다. 이를테면 사보이 왕가는 입헌군주제를 원했다. 귀족과 부르주아가 서로 합의하여 권력을 분점하려 한 것이다. 반면 가리발디는 국민이 주권을 갖는 공화국을 건설하려 했다. 그런데 가리발디가 국민적 영웅으로 주목받자 왕가는 가리발디를 매우 부담스러워 했다. 통일 이후 새로운 나라가 만들어지면 귀족들의 기득권을 가리발디에게 뺏길 것이라 우려했던 것이다. 그래서 귀족들은 가리발디를 압박해 그를 무력화시킨다. <레오파드>의 끝부분에 나오는 내용이 그때 당시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비록 통일은 이루었지만 처음에 목표로 했던 ‘혁명’을 이루었다고 말하기에는 미흡한 상태였던 것이다.


즉 근대 국가로서의 ‘이탈리아’는 정치적 타협과 함께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레오파드>의 주인공 돈 파브리치오(버트 랭카스터)는 구시대에 속한 사람으로서 본능적으로 가리발디를 적대시한다. 반면, 조카인 탄크레디(알랭 드롱)는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고 가리발디에게 자신의 미래를 건다. 세간의 상식은 가리발디를 이탈리아의 국민적 영웅으로 생각하지만 <레오파드>에서는 가리발디를 공포를 뿌리는 사람이자 무뢰한으로 그린다. 이는 영화가 당시 사회를 귀족의 관점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비스콘티가 데카당스 미학을 본격적으로 시도한 작품이 <레오파드>이다. 1953년에 만든 <센소>에서는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처음으로 드러냈고, <레오파드>부터는 죽음이 그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잡는다. 비스콘티는 유명한 오페라 연출가이기도 한데, 이런 대서사적 멜로드라마를 만든 것도 오페라의 영향일 것이다. <레오파드> 역시 본격적으로 오페라의 4막 형식을 갖추고 있다. 1막에서 큰 줄거리를 설명한 뒤 2막에서는 마치 아다지오처럼 서사의 긴장을 살짝 낮췄다가, 3막에서 다시 상승기류를 타기 시작해 마지막 4막에서 종결시킨다. 오페라의 전형적 구성이다.





그리고 영화의 공간 구성도 오페라처럼 각 장에 따라 명백하게 분리된다. 1막에서는 주위에 아무 것도 없는 황금빛 저택이 홀로 등장한다. 그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모두 엄숙하게 검은색 옷을 입고 있다. 그리고 밖에서 소음이 들리며 지금까지 지켜 온 평화가 깨진다. 군인의 시체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이는 구질서의 종말을 상징하며, 또한 돈 파브리치오의 운명을 암시하는 복선이기도 하다. 2막에서는 돈 파브리치오 일가가 시칠리섬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며 피난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사막과도 같은 죽음의 공간이 펼쳐진다. 시칠리아의 색깔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비스콘티는 ‘메마른 색’이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이때의 분위기는 완전히 가라앉는다. 특히 가족들이 교회에 도착해 나란히 앉은 모습을 보여주는 수평 트래킹 숏은 명백하고 노골적인 죽음의 암시다. 이 귀족 가문의 사람들은 곧 밀려나는 세대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라 트라비아타”의 격정적인 아리아를 오르간으로 들려준다. 대단히 세속적인 음악을 교회의 파이프 오르간으로 들려주는 것이다. 이와 함께 1막의 살랑거리던 바람은 어느새 거센 모래 바람으로 바뀌어 있다.


3막은 탄크레디가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여기서부터는 부유한 상인 가문의 안젤리카(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의 변화된 사회적 위치를 보여준다. 안젤리카는 처음에 이 집에 들어올 때 심호흡을 하고 들어올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3막에서는 별다른 예의도 차리지 않은 채 거침없이 집으로 들어와 탄크레디와 키스를 나눈다. 이때 영화는 성의 폐허 같은 공간으로 이동한다. 이곳은 산 사람이 있을 만한 곳과는 거리가 멀다. 먼지도 많고, 쥐도 없을 것 같은 그런 공간. 그리고 생명이 없을 것 같은 이곳에서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눈다. 죽은 공간에 인물을 배치하는 건 비스콘티가 자주 이용하는 화법 중 하나로서 결실을 맺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암시를 하는 것이다.


또한 3막에서부터 데카당스에 대한 테마가 많이 등장한다. 토리노의 정치인이 돈 파브리치오에게 의원 자리를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이때 파브리치오는 그 제안을 거절하면서 “시칠리아인들은 늘 피곤하다. 우리는 계속해서 자고 싶다. 시칠리아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불멸이다”, “우리는 표범과 사자였는데 지금은 하이에나와 양들의 세상이 우리를 대체했다”라고 말한다. 이때의 불멸은 사실 ‘죽음’을 의미한다. 즉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의 시스템이 바뀐다면 사실상 자신은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지막 4막은 45분간 이어지는 무도회 장면이다.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런데 춤 추는 장면을 보여주기 전에 비스콘티는 자신의 코뮤니스트적인 입장을 슬쩍 드러낸다. 어디선가 왈츠가 들려오지만 농부들은 계속해서 노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상이 바뀌어도 권력을 독점한 계층만 바뀔 뿐이지 농부들은 여전히 땅을 파고 끊임없이 착취당할 뿐이라는 것이다. 즉 혁명의 기운은 찾아볼 수 없다.



4막에서 중요한 춤이 세 번 등장한다. 첫 번째 춤은 탄크레디와 안젤리카 커플의 춤이다. 이 춤은 귀족과 부르주아의 결합을 보여주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자들을 보여준다. 이때 돈 파브리치오는 소녀들이 떠드는 장면을 보며 현기증을 느낀다. 사회적인 죽음은 이미 받아들였고 머지않아 육체의 죽음도 찾아올 것이란 암시를 준다. 두 번째 춤은  무도회를 주최한 공주와 가리발디를 패배시킨 대령이 추는 춤이다. 이는 승자들의 춤이다. 이때 돈 파브리치오는 집주인의 서재에 들어가 프랑스 화가의 그림을 본다. 그 그림 중 아버지의 임종을 맞는 가족들을 그린 작품이 있다. 마침 탄크레디가 그 그림을 감상하는 파브리치오를 본다. “삼촌, 지금 죽음에게 구애하고 있습니까?”라고 묻자 파브리치오는 “나의 죽음도 저런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시트가 더 깨끗하고 자식들의 복장도 더 단정하면 좋겠다”라고 답한다.


그리고 세 번째 춤은 파브리치오와 안젤리카의 춤이다. 이 춤은 4막의 피날레이자 영화 전체의 피날레로서 가장 중요한 춤이다. 흰 옷을 입은 소녀와 검은 옷을 입은 나이든 남자가 우아하게 춤을 추는데, 이는 소녀가 상징하는 사랑과 파브리치오가 상징하는 죽음을 동시에 만나게 하면서 죽음과 순결을 더욱 강조한다. 이 춤이 끝난 뒤 돈 파브리치오는 정치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죽음을 맞이할 것이란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파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에필로그에서 탄크레디와 안젤리카는 마차를 타지만 파브리치오는 걸어가는 쪽을 택한다. 그때 교회의 종소리가 들리는데 이는 마치 죽음을 앞둔 파브리치오의 영혼을 위로하는 진혼가처럼 들린다. 그의 앞에는 좁고 깊은 골목이 펼쳐지고, 그는 어깨를 당당히 펴고 골목으로 들어간다.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는 담담한 모습이다.



일시2011년 1월 9일(토)

정리│박영석



비스콘티의 마지막 초상 - <순수한 사람들>


<순수한 사람들>은 루키노 비스콘티가 만 69세에 발표한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영화를 찍을 때도 비스콘티의 건강은 매우 좋지 않았다. 결국 1976년 3월 17일에 세상을 떠났고, 그해 5월에 열린 칸영화제에서 <순수한 사람들>이 최초 공개됐다. 비스콘티의 죽음과 함께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고, 작품의 우울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죽기 직전까지 영화를 만들었고, 또 그 영화들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점에서 비스콘티는 운이 좋고 행복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시작할 때 책을 넘기는 손, 그 손이 바로 비스콘티의 오른손이다. 그때 당시 그의 왼쪽 반신은 이미 마비된 상태였다. 3년 전에 <루드비히>를 무리해서 찍다가 쓰러진 뒤 그렇게 됐다. 이후 어느 정도 회복해서 <가족의 초상>을 만들었지만 결국 다시 쓰러져버렸다. <순수한 사람들>은 휠체어에 앉아서 연출해야 했다. 비스콘티는 이 영화의 1차 편집본을 보고 대단히 실망해 대대적으로 수정을 하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우리가 보는 상영본은 그후 각본가와 촬영감독이 다시 편집한 버전이다.



<순수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인형의 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에는 지나치게 자의적인 공간과 의상, 그리고 마리오네트처럼 의례화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만 나온다. 어떻게 보면 반쯤 죽은 존재들이다. 영화 전체적으로 활기가 없고 느릿느릿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데카당스의 멜로드라마적 표현법이 더 멜랑콜리하게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가브리엘 단눈치오는 이탈리아 데카당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기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니체의 영향을 많이 받아 ‘초인’에 대한 욕망이 컸다. 보편적인 평범함을 경멸했고, 소설의 주제는 주로 쾌락과 죽음에 집중되어 있었다. 죄의식을 자극하는 테마, 또는 자기 파멸적인 쾌락과 자기 자신을 스스로 몰락시키는 죽음 등, 금지의 선을 넘어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루었다. 당시 세기말적 유럽의 분위기와 맞아들어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비스콘티도 데카당스, 즉 부패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단눈치오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비스콘티는 <순수한 사람들>의 툴리오 캐릭터에게 매혹을 느꼈다. 툴리오가 가장 견딜 수 없는 고통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는 것이었다. 자기만의 공간에 갇혀 있는 그는 누구도 자신을 심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지만 인간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버림을 받으면 이를 견디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광기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비스콘티는 이 툴리오에게 동병상련, 또는 연민을 느꼈다.

그런데 몇몇 비평가들은 <순수한 사람들>이 툴리오로 대표되는 부르주아 남성을 통해 당시 이탈리아 내 권력자들의 반사회성이나 비윤리적인 부분을 데카당스를 통해 표현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적어도 <베니스에서의 죽음> 이후 비스콘티의 작품에 대해 사회 비판적인 맥락을 일방적으로 적용시키는 건 무리라고 본다. 코뮤니스트였던 비스콘티가 <센소>를 내놓았을 때 좌파 비평가들은 이 영화에서 ‘좌파적’ 주제 의식을 찾을 수 없다고 비판했었다. 하지만 <센소>를 옹호한 것도 좌파 비평가였다. 루카치의 리얼리즘론, 즉 겉으로 드러나는 주제 의식과 별개로 지금 세상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한다면 그게 더 리얼리즘의 정신에 가깝다는 옹호였다(이때 또 하나의 모범적 사례로 든 것이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센소>는 루카치적 리얼리즘의 모범이며 제대로 된 리얼리즘의 사례를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베니스에서의 죽음> 이후 비스콘티의 영화들에는 패배주의와 개인주의자들의 체념, 그리고 필멸의 존재가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운명에 대한 성찰이 있다. 즉 데카당스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런 맥락에서 비스콘티의 후기작들에 대한 리얼리즘이나 사회-정치적 맥락에서의 해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비스콘티 스스로도 <센소>를 만들 때 주변의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비판을 받을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스콘티는 그런 어려움을 정면으로 돌파했고, 이는 멋진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천성이 ‘보편적인’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카당스에 대한 자신의 끌림을 숨김 없이 표현해냈다는 점에서 그는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비스콘티는 낭만주의 시기의 예술가의 초상에 맞게 자신의 삶을 살아간 인물이다.



일시2011년 3월 12일(토)

정리│박영석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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