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1. 14:04ㆍ회고전/아녜스 바르다 회고전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현재 아녜스 바르다 회고전이 한창이다. 지난 10월 24일 오후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 상영 후에는 누벨바그의 시작점에 있으면서도 기존의 누벨바그 관습과 체제에 맞서 선명하게 자신만의 여성주의와 예술성을 보여준 작품을 만들었던 바르다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를 위해 ‘바르다와 여성주의 영화’란 주제로 변재란 교수의 강연이 이어졌다. 그 현장을 전한다.
변재란(서울국제여성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 프랑스의 여성 감독들은 여성이라는 희소성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현대 영화에서 혁신을 이루어 낸 독특한 예술가라는 점에서 존중받아야 한다. 특히 아녜스 바르다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재미있는 것은 1950년대 중반에 만든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 덕분에 누벨바그의 대모로 불리고 있는 바르다가 누벨바그의 유일한 여성감독이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 2의 성>이 출간되었던 1949년까지 프랑스에서 실험영화나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를 만든 여성감독은 자클린 오드리가 유일했다. 그만큼 바르다가 등장했던 시기에는 프랑스에서도 여성 감독의 숫자가 상당히 적었다. 처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시작할 때 조사했던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955년에 <미망인>을 만든 박남옥 감독 이후로 1997년까지 여성 감독이 7명에 불과했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들을 통해 여성 감독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우선 여성 감독들은 대체로 몇 가지 특징으로 남성 감독들과 구분된다. 먼저 이들은 제작자라면 기대하기 마련인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데 실패했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남성 감독들은 처음부터 연출로 영화 경력을 시작하기 마련인데 비해 여성들은 잡다한 일들을 하다가 어느 순간 운이 좋으면 감독이 되곤 했다. 또한 그들은 안정적으로 경력을 쌓지 못했으며 보통 두 세편의 영화를 몇 년에 걸쳐 제작하거나, 데뷔작이 마지막 영화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대체로 적은 예산으로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래서 그들이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전형적으로 온건하고 예산이 적게 드는, 말 그대로 무난한 소재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바르다가 개인적인 영화, 혹은 다큐멘터리적인 현실을 담은 비평적 에세이를 만들거나 일상에 대한 관심, 사진과 예술에 대한 흥미를 영화에 드러낸 것은 지극히 예외적인 일이다. 대부분의 여성감독들이 여성으로서 영화를 위해 영화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할 틈도 없이 남성중심적인 영화 시스템에 자신을 적응시키기에 급급했던 가운데, 여성 문제에 대한 실천적 노력으로서의 쉼 없는 영화작업을 해왔다는 점에서도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녀는 남성중심의 이데올로기가 어느 분야보다 강하게 군림하는 영화 제작 시스템에서 기존의 전형화된 여성의 모습을 벗어난 강하고 독립적이고 특별한 여성들을 등장시켰다. 특히나 방금 보신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바르다는 매 작품에서 시대와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불합리한 성역할과 조건들을 고발하고,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독창적인 화법으로 담아냈다.
바르다는 ‘나는 가난을 숭배하지도, 돈을 숭배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욕망에서 실현으로 움직일 수 있는 빠른 가능성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할리우드 영화처럼 자신의 영화도 돈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자신이 영화를 만드는 동기는 아니라고 하면서, 자신의 즐거움은 여성들의 기쁨, 문제, 잠재력, 특히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사는 독특한 리듬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 영화의 마지막에도 “한 여자는 노래했고 한 여자는 노래하지 않았지만 두 여자는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처럼, 수잔과 폼므에게도 각자의 리듬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누벨바그 감독들과 함께 관습화된 영화언어를 해체했고 더 나아가 주체로서의 다양한 여성을 그려낸 바르다는 다른 어떤 감독보다도 영화언어의 기존 체계를 과감히 부수고 모순과 단절로 요약되는 현대사회의 변화에 당당히 맞섰다. 50년대 중반 이래로 50여 년 동안 영화를 만들어 온 바르다는 여성들의 경험을 보여주는 데에 신랄하고 통렬하게 일관성을 보이고 있다. 바르다가 표현하는 세계를 고려한다면 그녀의 영화에서 여성들이 갖는 동시대성은 놀랄만하고 심지어 충격적이다. 비록 바르다는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에게 여성들의 관심사를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다루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항상 자신의 영화에 나오는 여성들의 생각이 바로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영화 속의 장면에서도 등장하듯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가 출산에 대한 열정을 노래한다는 비판을 받았을 때 바르다는 이 영화가 내적 모순, 여성들의 자립에 대한 욕망과 가족과의 유대 및 안정된 관계에 대한 욕구 사이의 내적 모순에 대한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녀는 항상 페미니즘은 모든 여성들, 심지어 부엌과 집에 머물기를 선택하고 거기서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바르다는 영화 속에서 전형화된 여성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열정적이며 지속적으로 활동해왔다.
관객1: 아녜스 바르다의 생각이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에게는 그리 와닿지 않는 점들이 있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여성의 삶의 모습이나 그녀의 고민, 혹은 진심이 잘 소통되지 않고 왜곡되거나 오해되었던 지점들에서 어떻게 소통하려고 노력했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잘 소통이 되었는지, 감독의 진심이 여성 운동사 안에서도 반영되고 투영되어서 소통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변재란: <행복>으로 대표될 수 있듯 바르다는 대단히 논쟁적인 감독이었다. 우리가 흔히 그녀를 페미니즘을 실천한 감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영화가 모든 여성들의 가슴에 와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부엌이나 가정에 유폐된 여성들이 여전히 존재했고, 낙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문제를 가진 여성들은 바르다의 영화에 공감했을 것 같다. 바르다는 급진주의적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여성들보다는 사회주의적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관객들과 소통하는 매개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그래서 격변기에 화두가 되었던 수많은 주제들 중에서도 제한된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다. 급진적이고 도전적인 영화를 만들기 보다는 오히려 여성의 삶의 다면적이고 복잡한 측면들 자신의 관점에서 보여주는 것 같다. 다만 모든 영화는 현실이 아니라 현실의 재현이라는 점에서, 이것이 누구의 관점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르냐고 질문했을 때 그 점에서는 애매한 면이 있다. 어쨌든 60~70년대까지 시기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는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정리: 박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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