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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아녜스 바르다 회고전

‘代母? 大母!, 어머니의 이름으로

누벨바그의 대모 아녜스 바르다 회고전


‘아녜스 바르다’라는 이름을 인터넷 창에 검색할 때마다 그녀의 이름 앞에 지독하리만치 집요하게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누벨바그의 대모’, 여기서 ‘대모’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아마 그런 수식어가 따라붙게 된 일차적인 원인은 그녀가 누벨바그를 이끈 일군의 감독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그녀의 첫 번째 장편 극영화인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1954)이 푸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1959)나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1959)보다 수년 전에 누벨바그적 영화 실험들을 감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바르다의 영화들을 다시 훑어보면서 개인적으로 ‘代母’인지 ‘大母’인지도 불분명한, 그렇지만 분명히 ‘어머니’라는 의미를 품고 있는 단어들이 자신의 이름 앞에 따라붙는 것에 대해 과연 그는 만족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어머니’라는 단어는 그 이름을 선사한 지고의 ‘행복’과 함께 강요되는 수만, 수천 가지의 미덕과 아이러니하게 포기되어야 하는 여성성의 다른 부분들을 포함하고 있다. 아녜스 바르다의 여성의 삶의 무수한 국면들과 그것을 다루는 섬세한 사유들은 어떻게 보면 그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되는 관용적 수식에조차 날카로운 반성적 사유를 들이댔을 것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페미니즘 영화의 대가? 반동적 부르주아 영화?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에서 우리는 여성과 남성이 관계 맺는 방식들을 본다. 하나는 라 푸앵트 쿠르트라는 어촌을 유지하는 가부장적인 가족구조 안에서의 전통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파리에서 휴양차 이 마을을 찾은 커플의 히스테릭하지만 로맨틱한 관계다. 전통적 가족구조 안에서 여성과 남성은 서로의 영역이 명백하게 나뉘어 있다. 그들에게 사랑은 말이 아니라 그냥 살아가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당사자의 의사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승인이다. 아버지는 딸을 보호하려 하지만 어머니는 딸이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란다. 파리에서 온 커플에게 라 푸앵트 쿠르트는 하나의 사랑이 종결되고 다른 사랑이 시작되는 공간이다. 그들은 상대방의 다른 면모를 발견하고, 파국으로 치달았던 사랑은 새롭게 부활한다. 하지만 섬사람들의 눈에 비친 그 연인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지나치게 말이 많고’, ‘강아지처럼 휘청거리며 돌아다니는’ 이상한 커플이다. 바르다는 두 개의 삶 중 어느 것이 진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녀를 페미니즘영화의 대가로 추앙받는 동시에 반동적인 부르주아영화로 혹평받게 한, 상반된 평가의 한가운데에 놓이게 만든 이유다. 그는 여성들이 살아가는 현실적인 삶과 이성적으로 추구하는 삶을 적대적 관계에 놓지 않고,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짊어져야 하는 여성들의 짐과 힘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사랑이라는 권력관계 안에서 여성이 쟁취해야 할 입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바르다에게 영화는 꿈이나 환상 혹은 전투지가 아니라 ‘자신이 늘 그 속에서 살아왔던 집’이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5중주가 과도하게 사운드트랙을 장악했던 <행복>(1965)은 그런 논란의 불씨를 댕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한 가족의 피크닉 풍경이 있다. 사랑스러운 두 아이와 아름다운 젊은 부부의 애정 넘치는 대화, 그러나 남자는 곧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한다. 그로 인해 그는 더 행복해진다. 남편에게 행복의 근원이 무엇인지 물었던 아내는 그녀도 사랑하고 있다는 대답을 듣는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사랑을 빼앗지 말고 그냥 자신을 더 사랑해달라는 남편의 이기적인 부탁에 알겠다고 대답하지만 이내 자살한다. 그녀의 장례식 이후 아이들의 양육문제로 가족간 회의가 소집되지만 어머니와 성적 파트너로서의 그녀의 빈자리는 남편의 새 애인으로 곧 채워진다. 놀랄 만큼 유사한 피크닉 풍경을 나란히 이어붙임으로 얻어지는 정서적 충격. 같이 영화를 보던 이는 “뭐 이렇게 ‘무윤리적인 영화’가 다 있냐”고 물었다. 지독하게 불행한 한 여성의 삶은 지나치게 아름다운 화면과 음악 속에 묻혀버리고 가장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바르다는 이 영화를 통해 행복의 욕망구조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이 사회 안에서 그것이 얼마나 성적으로 편향되게 구조화되어 있고, 역할 분담되고 있는지 냉정하게 제시한다. 이 영화는 스스로 전시하고 있는 행복은 매우 피상적이고 폭력적인 것임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담백한 이 영화의 화법은 1970년대 여성주의 이론가들로 하여금 억압적 이데올로기의 신화를 그대로 재연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았다.

여성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1976)는 영화를 장악하는 시선의 주체를 완전히 여성에게 넘김으로써 좀 더 명백하게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작품이다. 영화 속 주인공 중 한명인 폴린의 직업이 가수라는 점은 이 ‘목소리’의 중요성을 예리하게 각인시킨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만난 것이 화면이 아니라 <암스테르담>이라는 주제가를 통해서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벨바그 영화운동 안에서 바르다의 명성과 실질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시네마테크라는 제한적인 상영 공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소개된 적이 없었고, 중학생이었던 나는 FM의 영화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폴린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으며 영화를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낙태를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건너온 여성들이 착잡한 심경으로 운하를 관람하는 심사를 담은 것이었는데,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나는 이를 사랑노래로 오해하고 있었다. 그만큼 폴린의 노래는 시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가사는 정치적이고 전투적이다. 이 영화는 여성의 자기 몸에 관한 실질적 주권 회복에 관한 이야기를 낙태를 계기로 만난 수잔과 폴린의 오랜 세월에 걸친 자매애를 통해 펼쳐 보인다. 그들의 관계는 낙태에 대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피해자로서 강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하며, 수잔은 직접적인 여성운동을 통해 폴린은 여성주의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들을 통해 가장 사적인 체험에서 얻은 정치적 깨달음을 실천해 나간다. 바르다는 그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어머니인지를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낙태와 모성성이 동시공존할 수 없는 윤리적 태도가 아님을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에 <쿵후 마스터>라는 제목으로 비디오 출시되었던 <아무도 모르게>(1987)는 좀더 미묘한 지점에 서 있다. 미성년인 딸의 친구 줄리안을 사랑하게 된 이혼녀 메리 제인의 욕망을 너무나 솔직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줄리안은 <쿵후 마스터>라는 오락 게임에 열광하고 메리 제인을 그 게임 속에 나오는 성에 갇힌 공주 캐릭터와 동일시하며 자신이 그녀를 구출해줄 쿵푸 대가라고 착각할 만큼 어린 소년이지만 남녀 관계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려는 폭력적인 남성성 역시 배태하고 있다. 미성년에 대한 성적 학대가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는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도대체 저 영화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부모는 어떻게 이 영화에 출연하는 것에 동의했을까 궁금해지는데, 재밌는 것은 줄리안 역을 맡은 마티유 드미는 바르다가 자크 드미와 낳은 아들이고, 제인 버킨의 딸인 샬롯 갱스부르가 역시 둘의 은밀한 관계를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 메리 제인의 딸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바르다에게 영화는 세상과 소통하는 자신만의 방식이자 사회에서 그녀의 위치를 획득하게 만드는 도구이지만, 동시에 가족에 대한 끈끈한 애정을 표현하는 장이기도 한 셈이다(바르다는 자신의 아이들을 여러 작품에서 배우로 기용하였는데, 너무나 사랑스러운 그들의 모습을 영화로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뿐만 아니라 죽어가는 자크 드미의 삶과 영화를 자신만의 화법으로 담아두고 싶었던 그녀의 열렬한 사랑은 <낭트의 자코>(1991)가 탄생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아무도 모르게>의 원작자인 제인 버킨은 그 스스로가 전방위적 예술가인 동시에 아녜스 바르다의 예술적 동지이기도 하다. <아녜스 V에 의한 제인 B>(1985)는 어떤 잣대로도 규정할 수 없는, 자유분방한 버킨의 매력과 그녀를 바라보는 바르다의 애정어린 시선 그리고 둘을 끈끈하게 연결하는 동지의식을 느끼게 한다. 그들은 마치 영화의 안과 밖에 실존하는 폴린과 수잔처럼 보인다.

바르다의 인물들은 사회가 임의로 부과하는 통상적인 삶의 규범들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은 <방랑자>(1985)에서 상드린 보네르가 연기하는 모나이다. 그녀의 죽음을 시작으로 역추적한 그녀의 삶은 주변 사람들의 증언으로 제구성되는데, 흥미로운 것은 여성들의 증언이 그녀의 자유로운 삶에 대한 동경 혹은 묘한 동질감으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남성들의 혐오감 혹은 무관심으로 일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구원의 대상도 욕망의 대상도 될 수 없는 여성 존재에 대해서 느끼는 남성들의 공포감과 모든 사회적인 규범들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를 갈망하며 그런 모나의 여정을 어떤 방식으로든 지켜주지 못한 여성들의 연민이 엇갈린다. 정체를 알 수 없고 욕망의 방향을 예측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사회의 어떤 계층이나 공간에도 귀속되지 않는 여성에 대한 성차화된 반응이 흥미롭다.


바르다의 영화들은 분명히 여성으로서 그의 시선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지만 동시에 거리를 장식하고 있는 예술 양식들이나 사진, 그리고 영화에 대한 정열적인 애정과 정치적 태도들 역시 담아내고 있다. 바르다 안에서 여성과 예술가로서의 자아는 결코 분리되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를 강화하고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녀의 다정한 주석을 들으면서 파리의 풍경과 LA의 벽화들,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예술가이자 생활인이며 애인이자 아내이며 어머니이고 할머니이며 또 딸인 그녀의 삶이 느껴진다. 바르다는 평범한 삶 속에 숨겨진 비범한 의미들을 아무렇지 않게 던져놓는다. 그래서 그의 영화들은, 그녀만큼이나 복잡하고 다양한 역할들이 부여된 우리네 삶을 관통하는 풍경 안에 숨겨진 예술적인 찰나들을 포착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글: 김지미 영화평론가)

* 이 글은 2010년 10월 19일에 발행된 씨네21 775호에 게재된 글을 실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