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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아녜스 바르다 회고전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 세계

아녜스 바르다 회고전이 한창이던 지난 10월 22일 저녁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상영 후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 세계’란 제목으로 홍성남 영화평론가의 강연이 열렸다. 다큐멘터리적인 현실을 담은 비평적 에세이, 일상에 대한 관심, 사진과 예술에의 흥미, 여성문제에 대한 실천적 노력을 보여준 그녀의 영화세계를 엿볼 수 있었던 그 현장을 옮긴다.


홍성남(영화평론가): 아녜스 바르다는 흔히 ‘누벨바그의 대모’로 잘 알려져 있다. 보통 누벨바그의 시작을 1959년으로 꼽는데, 이 해에 트뤼포의 데뷔작과 끌로드 샤브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영화가 정식 극장 개봉을 하면서 크게 흥행에 성공했다. 바르다는 1954년에 그녀의 데뷔작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을 만들게 된다. 바르다는 보통 누벨바그의 시작이라고 하는 시기보다 5년 전에 누벨바그적인 영화를 미리 만든 셈이다. 누벨바그 이전까지는 프랑스 영화계에서 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일종의 도제시스템 안에서 단계를 밟아가야만 했기 때문에 아무나 감독이 될 수 없었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통해 명성을 얻었던 알랭 레네 같은 경우도 당시에 다큐멘터리나 단편을 만드는 사람과 장편을 만드는 사람은 노동조합부터가 달랐다고 말한 바 있다. 다큐멘터리나 단편을 통해 명성을 얻었다 해도 상업영화의 장벽을 뚫고 들어가기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그러한 장벽들을 무너뜨렸던 것이 누벨바그의 큰 공로였다고 할 수 있다. 즉 누벨바그는 이전까지의 영화작업 시스템의 관행과 단절을 이뤄내며, 독립적으로 영화를 만들고 작업을 계속해 나가는 것을 가능하게 했는데, 이는 바르다가 최초였다고 할 수 있다. 바르다는 원래 미술사와 사진을 했던 사람이다. 영화에서는 아웃사이더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이지만 누벨바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누벨바그적 요소라고 하는 것들을 미리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바르다가 누벨바그 세대의 정신과 공유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아스트뤽의 ‘카메라 만년필론’을 들 수 있다. 작가주의의 선배격이라고 할 수 있는 아스트뤽은 영화가 회화나 소설처럼 새로운 표현 형식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감독의 카메라가 작가의 만년필과 같다고 말했다. 당시까지 영화는 제작관행에 의한 제한이나 카메라라는 기계적 제한 때문에 자유롭게 만들 수 없는 매체라고 생각되었는데, 그와 달리 카메라를 펜처럼 사용하여 자신의 상상력이나 아이디어를 풍요롭게 담아낼 수 있는 매체라고 말하는 것이 ‘카메라 만년필론’이며, 이를 계승해 나간 것이 작가주의 이론이다. 바르다가 직접 아스트뤽의 글을 읽은 것은 아닌 것 같지만 그녀는 처음 영화를 만들 때부터 ‘카메라=펜’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데뷔작인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네오리얼리즘적이다라고 평가한다. 이 영화는 주인공 커플만 연극에서 활동했던 직업 배우였고 나머지는 모두 비직업 배우였다는 점, 어촌 마을의 로케이션 활용, 경제적으로 곤궁한 삶을 그린다는 점, 내러티브로 구성하는 데에 있어서 에피소드를 모아놓음으로써 열린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점 등의 네오리얼리즘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누벨바그 세대가 존경했던 감독인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적 태도, 즉 세계에 카메라를 놓고서 카메라가 세계가 대면하고 상호작용하는 것을 영화에 담아낸다는 점은 누벨바그에 있어 중요한 가르침으로 작용했다. 바르다의 영화들은 그러한 네오리즘적인 요소들을 가지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누벨바그의 선조적인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는 로셀리니의 영화, 특히 <이탈리아 여행>의 구조를 따라가는 것 같다. 이 영화의 이야기의 흐름을 보면 두 가지가 있다. 어촌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위기를 맞게 된 커플의 이야기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묘하게 엮여져 있다. 또한 커플의 이야기를 담는 데에 있어서 앵글들이나 그들의 추상적인 대사들, 대사들이 실제로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보다는 허공에 울려 퍼지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 사운드의 활용 등은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영화는 네오리즘적 면모와 함께 레네나 뒤라스의 복잡한 형식적 내러티브 구조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르다의 영화를 보다보면 이 사람이 어떤 경력을 갖고 영화를 만들게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영화사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는 사실 누벨바그 세대들이 보여줬던 자질이기도 하다.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와 직접적으로 많이 비교되는 영화는 비스콘티의 <흔들리는 대지> 역시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삶의 곤궁함을 다루고 있다. 바르다에게 이 두 영화가 서로 닮아있다는 얘기를 해준 사람이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의 편집을 도왔던 레네였다. 하지만 정작 바르다는 비스콘티가 누구냐고 물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그녀가 이전까지의 영화의 역사나 이후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기 때문에 영화사에 대해 박학할 거라 생각하게 되는데 실은 전혀 문외한이었다는 것이다. 바르다는 자신이 갖고 있었던 제한된 영화의 지식을 넓히는 데에 도움을 준 사람이 레네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후에 고다르나 트뤼포, 로메르를 만나게 된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에서 주인공이 보는 단편영화의 주인공은 고다르와 카리나다. 바르다가 데뷔작을 만들 때가 25살이었는데, 그때 까지 본영화가 10편 남짓 이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10편 중에는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이 있다. 그녀가 80년대에 만든 <방랑자>가 바로 <시민 케인>에서 아이디어를 얻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한 사람의 인물을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구성한다는 점에서 그러한데, 구조 자체는 <시민 케인>에서 가져왔지만 <방랑자>와 <시민 케인>은 전혀 다른 인물을 다룬다. <시민 케인>엔 부유하고 나이든 남성인데, 똑같이 죽음에서 출발하지만 <방랑자>의 인물은 여성이며 젊고 가난하다.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은 오히려 초심자이기 때문에 만들 수 있었던 영화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독특한 앵글이나 대사, 사운드의 활용들은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용감하게 배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바르다는 영화가 아닌 사진에서 본격적인 경력을 시작했었고 어느 정도 명성을 얻었었다.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의 두 배우도 사진작업을 통해 알게 된 배우들이다. 바르다가 배경이 되는 마을 출신의 친구를 알고 있었는데 그가 병 때문에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게 되자, 그를 위해 선물 하는 마음으로 대신 그 고향에 가서 사진을 찍어 주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 사진 이미지가 미진한 구석이 있는 매체라고 느꼈다고 한다. 사진은 멈춰진 운동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세계의 중요한 요소인 사운드 말이 들어갈 수 없으며, 시간이 기입되지 않는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에서도 나타나지만, 과연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 혹은 그 시간의 흐름이 왜 무자비할 수밖에 없는가, 그리고 그것은 왜 인간에게 상처를 주거나 그것을 지속시키는가 하는 것들을 탐구하기에는 사진 이미지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러한 점들이 바르다가 영화 이미지를 탐구하는 데에 있어 어떤 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바르다는 자신은 작가가 되고 싶었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이때의 작가는 말 그대로 글쓰는 사람으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녀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 대해서 그녀 스스로 ‘시네크뤼테르(시네마+에크뤼테르)’라는 명칭을 붙였다. 영어로 하면 cinewriting 정도가 되겠다. 바르다는 영화 이미지에는 시간이 기입되기 때문에 하나하나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지들의 흐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그러한 면에서는 문학과 많이 닮아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어떤 시퀀스를 만들고 어떤 리듬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작가가 단어와 문장 문단을 구성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 한편으로는 그녀가 영화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영화의 매체적 특성에 대해 고민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바르다는 상업영화에 대해 불만이 많았던 사람이다. 상업영화에서는 실제 삶에서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를 다루지 않으며, 형식적 측면에서도 진부하기 때문에 탐구할 게 없다는 점을 비판하면서, 그것과 다른 방식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바르다의 의식이 ‘시네크뤼테르’에 담겨있다.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의 커플은 그들의 내밀한 얘기가 존재하지만 이름도 직업도 역사도 나타나지 않으며 대사들은 굉장히 추상적이고 연극적이다. 영화 속에서 인물을 추상적으로 다룬다고 하는 것은 문학적인 것에서 온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바르다는 그 영화를 만들면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것은 포크너의 소설이었다고 말한다.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는 자신이 전쟁기간 동안 살았었던 마을에 돌아가 그 마을을 포착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역시 장소에 대한 감각에서 시작된다. 바르다의 단편들 중 굉장히 유명한 것으로 <오페라 무페거리>같은 영화가 있다. 그런 영화에서 보면 바르다에게 가장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공간을 포착하는 능력이다. <네 멋대로 해라>와 같은 누벨바그 영화들의 유명한 제작자인 조르주 드 보가는 바르다에게 파리라는 도시에 대해서 값싸게 찍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영화가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이다. 바르다는 직접적으로 공간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얘기한다. 사람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는 그가 성장하고 살아온 공간 뿐 아니라 그가 사랑하는 공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람을 잘 이해하려면 공간을 이해해야하고 공간을 이해하려면 사람을 이해해야한다는 것이다. <5시부터 7시부터 클레오>에서도 느끼셨을 텐데 이 영화는 파리를 포착하는 가장 아름다운 영화이기도 하다.


바르다는 장소에 대한 관심도 있었지만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리얼리티, 디테일에도 관심이 있었다. 추천하고 싶은 영화 중에 하나는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이다. 이 영화는 여러 가지를 줍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바르다는 일상을 가지고 시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에서도 클레오 뿐 아니라 그녀 주변의 일상적 디테일이 풍부하게 담겨있다. 바르다에게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이 천성적으로 어우리는 작업이라는 생각도 든다. 바르다는 영화에서 픽션에 다큐멘터리적인 결을 넣곤 한다. <방랑자>는 상드린 보네르가 연기하는 모나라는 인물의 자취를 바라본 사람들의 증언들로 구성된 영화다. 영화에서 상드린 보네르나 몇몇 인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배우가 아니라 실제로 영화에서와 같은 일을 하는 현실속의 인물들이다. 그 현실 속의 인물들은 굉장히 자연스런 연기를 하고 있는데, 바르다는 인물들이 스튜디오가 아닌 실제 자신들의 공간에서 자신들이 사용하는 물건들을 가지고 연기를 시켰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연기가 가능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즉흥적으로 포착하여 다큐멘터리적 방식으로 찍힌 것은 아니라 미리 짜여진 대사와 구성이었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교묘하게 섞여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르다 스스로도 자신이 예전부터 해왔던 것은 다큐 픽션이라는 두 장르에 교량을 놓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페드로 코스타나 다르덴 형체처럼 최근의 아트영화를 만드는 많은 감독들이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데, 특히 페드로 코스타와 바르다는 다큐멘터리에 픽션을 기입하는 면에 있어서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코스타 영화의 인물들의 특징은 현실에서 보다 더 크고, 위엄있고, 근사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바르다 역시 자신의 다큐멘터리의 인물들, 이를테면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에 등장하는 쓰레기를 줍는 인물은 우리와 좀 다르고 뭔가 멋진 사고 방식을 가진 것으로 느껴진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의 애정과 비전을 통해 인물들이 빛난다는 점에 있어서 코스타와 바르다는 비록 직접적인 교류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공유하는 지점이 있다.
바르다를 이야기하는데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여성을 어떻게 그리는가하는 문제다. 바르다가 다른 누벨바그 멤버들과 비교해서 두드러진 것은 그녀가 계속해서 페미니스트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다. 실제로 바르다 자신도 영화를 만들면서 발전을 시켰던 자신의 태도 중에 하나는 페미니스트적 자세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르다의 페미니스트적 태도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선도 존재한다. 특히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는 낙태와 피임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던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바르다 자신은 이 영화가 많은 관객들을 모으게 되면서 여성운동의 확산, 여성권리의 쟁취에 큰 기여를 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이 영화로 인해 일부 페미니스트 진영으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다.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이 영화는 너무나 서정적이고 조화롭게 그려져 있기 때문에, 미국의 비평가 폴린 케일은 여성운동을 다룬 영화에 디즈니적인 터치를 가져왔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르다는 페미니즘 영화도 충분히 서정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같은 영화에서도 바르다가 여성을 그리는 관점이 잘 나타나 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에 대해 좀 더 말씀드리겠다. 클레오가 탄 택시 안에서 라디오에서는 알제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카페에서 나누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중에도 전쟁에 대한 얘기가 잠깐씩 등장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만나는 인물은 휴가를 나온 군인이며 그는 죽음에 대해 항상 두렵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이 영화를 두고 알제리 전쟁이 오래 지속되었을 때 프랑스인들이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을 담아낸 영화라는 비평도 존재한다. 이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의 상황에서 보면 어느 정도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것 같진 않다. 이 영화는 클레오라는 여성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전반부에서 굉장히 많이 나오는 이미지 중 하나는 거울에 관한 것이다. 클레오는 끊임없이 거울을 본다. 클레오가 모자를 사러갔을 때의 미장센이 흥미로운데, 클레오 뒤 편에 놓인 거울 속에서 클레오 모습 뿐 아니라 바깥의 길거리 풍경도 비춰지고, 가게를 나올 때도 유리창 위에 클레오의 모습이 비춰진다. 클레오는 자신을 거울을 통해 바라보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항상 자기 앞에 자신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그 너머는 보지 못하며, 외부 혹은 바깥 세상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의 거울 위에 비춰지는 하나의 이미지로 존재한다. 거울이라고 하는 도구에 의해 볼 수밖에 없고, 계속해서 보여지는 존재로만 그려지던 클레오가 영화의 후반부에 들어선 다른 모습을 보인다. 후반부에 많이 나오는 것은 클레오가 보는 것을 그녀의 시점을 통해 보여주는 장면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여성이 스스로 바라보고, 세상과 대면하면서 대상에서 주체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클레오가 아파트를 나가기 전에 그녀의 마음의 변화를 보여주는 몇몇 행위들이 흥미롭다. 가발을 벗어던지는 모습이나, 검은 커튼으로 인해 화면전체가 어두컴컴했는데 커튼을 열고 클레오가 나서는 장면들이 그렇다. 그것은 연극의 막을 젖히고 실제 세상으로 나가는 클레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 장면 바로 전에는 클레오의 아파트에 작사가와 작곡가가 찾아오고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하나의 숏으로 구성되었는데, 그녀가 부르는 노래의 원제는 <당신이 없다면>이다. 클레오가 노래를 부르고 카메라가 이동하면서 어느덧 클레오의 뒷배경은 완전히 검어진다. 카메라가 움직이면서 그녀를 검정 배경 위에 놓는다는 점 때문에 마치 그녀가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일종의 리허설에서 퍼포먼스로 옮겨가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특징적인 것은 그렇게 옮겨가면서 그녀 주변의 다른 인물들이 완전히 지워진다는 것이다. 리허설의 청중이었던 작사가와 작곡가가 퍼포먼스에서는 배재되면서 현실 안의 판타지가 형성된다. 그 순간 공연을 하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클레오의 시선을 담아내는데, 현실적인 공간 안에서 카메라의 미세한 움직임을 통해 판타지로 이동하고 의미가 발생하게 된다. 자신이 ‘보여지는’ 존재라는 것, 스펙타클의 대상이라는 것에 서글픔을 느끼는 그 순간 그녀는 커튼을 젖히고 밖으로 나가는 것은 허구적 세계에서 벗어나 현실로 나아간다.


그런가 하면 <방랑자>에서는 일반적인 영화에서 혹은 일상적으로 떠올리는 기존의 여성의 이미지를 타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에는 주인공인 모나를 설명하는 내레이션이 딱 한번 나오는데, 내레이션을 통해 바르다는 모나라는 인물이 바다에서 온 존재인 것 같다고 말한다. 이는 미술사와 관련시켜보면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이 때 모나라는 존재는 통상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비너스와는 전혀 다르다. 그녀는 불결하고, 냄새나고, 행동자체가 굉장히 불손하며 오만하기도 한 모습을 보인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불가해한 존재로 회상하기도 한다. 여성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깨뜨린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녀를 영화는 긴 트래킹 숏을 통해 보여준다. 하지만 이 때의 트래킹 숏 역시 통상적인 방식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모나라는 인물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카메라는 종종 그녀를 놓치거나 추월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마치 모나라는 인물은 카메라를 통해 쉽게 포착될 수 없는 존재인 듯 느껴진다.
바르다는 끊임없이 형식적 실험을 감행해왔기 때문에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바르다에게 있어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공간과 장소와의 대면으로 그러한 면에서 바르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와의 연루에서 시작되는 영화들을 만들어왔다. 또한 여성의 정체성을 다루는 면 역시 중요한 문제였는데, 여성에 대한 탐구에 있어 지각의 문제, 80년대 후반 이후에는 특히 기억에 대한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기도 했다. 이번 회고전을 통해 아녜스 바르다의 다양한 영화들을 직접 만나보시고 바르다가 제시하는 풍부한 관점들에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시길 바란다. (정리: 장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