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두고 '말의 영화'라 말한다면 이 영화는 그런 특징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인물들의 말의 속도가 빠를 뿐만 아니라 말이 영화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방데에 있는 작은 마을의 젊은 사회주의 시장은 공유 녹초지에 거대한 스포츠 문화센터를 만들기 위해 정부의 승인을 얻으려 한다. 환경주의자인 문법 선생은 이 계획을 반대한다. 파리의 저널리스트는 마을에 내려와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며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다. 시장의 딸과 선생의 딸이 친구가 되면서 이야기는 예견치 않은 결말로 향한다.

<나무, 시장, 메디아테크>는 7개의 우연에 관한 영화로 '만약... 하지 않는다면'으로 시작한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로메르적인 우연이 영화의 전체를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모두에 학교의 교사는 프랑스어 문법에서 상황을 나타낸 조건법의 용도를 가르치는데, 이런 내용에 입각해 르누아르의 영화를 연상케 하는 콩트가 전개된다. 우연을 동반한 조건법은 '만약 사회당의 지지율이 내리지 않는다면', '만약 초원의 버드나무가 긴 세월을 넘기지 못했다면' 등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이 우연이란 설정은 영화의 맥락에서 정확하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로메르의 우연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결정적인 사건처럼 기능하는 것도, 우연히 발생한 과실로 어떤 중요한 미래가 좌우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우연은 인과관계의 환상에서 풀어헤쳐진 현재를 제시하는 것에 가깝다. 과거에의 감상이나 미래에의 기대에 종속되기 쉬운 현재를 그 자체로 제시하는 것이 그의 우연인 것이다. 일상을 순수하게 기록하고, 자연의 순수한 운동을 표현하는 것으로서의 우연에 관한 이야기. 로메르는 이러한 현전성의 영화를 멜로드라마적으로 <겨울 이야기>에서 다시 선보인다.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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