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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1930년대 재즈음악에 대한 고증적인 부활 - 로버트 알트만의 ‘캔자스 시티’

사실 재즈와 캔사스 시티를 연결하여 생각한다는 것은 왠만한 재즈 팬이 아니고서는 조금은 생소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재즈를 평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상대적으로 뒤늦게 인식된 부분이기도 하다. 캔사스 시티와 미국 남서부 지역의 재즈에 관한 선구적인 연구를 남긴 바 있는 프랭크 S. 드릭스는 1959년에 발표한 글 <Kansas City & Southwest>의 첫 머리에서 “이 지역의 재즈는 재즈역사의 중요한 원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무시되어 왔다”고 말한 바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재즈의 중요성이 학자들과 평론가들 사이에서 널리 인식된 것은 1980년대에 와서나 가능했다.

로버트 알트만의 <캔사스 시티>에서 재즈가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는 주장에 선뜻 동의할 용기는 없지만 재즈가 너무도 큰 재미를 선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한마디로 이 영화에서 재즈는 1930년대 미국 음악에 대한 고증적인 부활이자 일찍이 없었던 1990년대 재즈의 가장 화려한 축제이다. 이 영화가 1996년 개봉되었던 당시에 외국의 언론들은 여기에 등장하는 현역 연주자 아무개가 1930년대 재즈맨 중 아무개 역을 맡았다는 등의 기사를 경쟁적으로 냈던 적이 있었다. 그것은 1930년대 거장의 이름들과 현역 연주자들의 연주상의 유사성을 고려할 때 꽤나 설득력 있으며 흥미로운 지적이었다. 그러나 정작 영화에서 테너 색소픈 주자 조슈아 레드먼이 그 역을 맡은 레스터 영 외에는 명시적으로 호명되는 인물은 단 한명도 없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을 상상에 맡기는 것이 영화의 재미인 것이다.

재즈 팬이라면 영화 전반부, ‘헤이헤이 클럽’ 창문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잠깐이지만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그곳에는 ‘재즈의 전쟁’이라는 제목 밑에 ‘레스터 영 v.s. 콜맨 호킨스’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실제로 1934년 콜맨 호킨스가 소속되어 있던 플레처 헨더슨 악단은 캔사스 시티에 투어를 왔었고 이미 뉴욕을 중심으로 테너 섹소폰의 일인자로 꼽히던 콜맨 호킨스는 서브웨이 클럽에서 캔사스 시티 주자들과 일대 격전을 벌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레스터 영 역을 맡은 조슈아가 한 이방인 테너맨과 일대 격전을 벌이는 장면은 바로 1934년 서브웨이 잼 세션을 묘사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역시 크레이그 핸디는 연주나 외모 모두에서 젊은 시절 콜맨 호킨스와 유사한 점이 많다.

캔사스 시티 재즈는 영화 속의 찰리 파커가 말해주듯 모던재즈의 씨앗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재즈의 본질을 전해준다. 그것은 재즈가 태어나고 자라났던 환경 속에서 얻어진 재즈의 깊은 속성에 대한 재확인이다. 재즈는 결코 18세기 유럽 귀족들이 누렸던 디베르티메토와 같은 우아한 실내악이 아니며 그렇다고 블루스처럼 고단한 노동현장 속에서 꽃 피울 수 있는 민중성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재즈는 뉴올리언스의 사창가 스토리빌을 자신의 고향으로 기억하고 있듯이 이후에도 도시의 어두운 환락 속에서 함께 자랐으며 그 환경을 음악 속에 내면화하였다. 그것은 결코 건강하지 않은 20세기 미국 도시문명의 한 단면이다. 그것의 가치가 무엇이냐는 다소 이념적인 질문은 잠시 유보하자. 그것은 어쩌면 음악을 듣기 전에 들여다봐야 하는 골치 아픈 꼼꼼한 악보일 수 있으니까. 그보다는 그저 편안하게 영화 속의 음악에 젖어보자. 그리고 윤리나 미학에 강박되지 않는, 그래서 때로는 우울한 범죄자의 화간 속에서 꽃을 피워야 했던 이 음악이 가끔은 인간적이라고 느껴진다는 사실에 은밀한 쾌감을 느껴보자. 제발 악보와 윤리를 벗어 던지자. 그것이 캔사스 시티 재즈다. 그것이 재즈다. (황덕호_재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