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 초중반, 유럽은 롤라 몽테스라는 예명의 아름다운 여성으로 떠들썩해진다. 이 무희는 피아노의 거장 프란츠 리스트를 포함한 수많은 고위층 인사들과 연애 사건을 일으켰으며, 심지어 바바리아 왕국의 루드비히 1세의 정부가 되어 혁명의 발단이 되었다. 그 결과 루드비히 1세는 결국 퇴위하고 만다.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프로덕션 디자인으로 비극적인 여성의 생애를 그려낸 막스 오퓔스가 그녀의 이야기에 매료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러티브의 대부분을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대신, 혁명 이후의 그녀의 삶을 각색한 오퓔스는 영화 <롤라 몽테스 Lola Montès>를 바바리아에서의 혁명 이후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의 일생과 연애사를 공연으로 선보이는 서커스 무대에 선 롤라 몽테스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이 영화는 화려함을 넘어서서 사치라는 단어와 더욱 가까워 보인다. 오퓔스의 필모그래피에서 유일하게 컬러로 만들어진 작품답게 영화 전체가 극도로 화려한 색채와 조명으로 치장되어있고, 서커스 무대에는 압도적인 인원과 무대 장치가 투입되었다. 장면 전환 기법, 앵글, 카메라 움직임 역시 대단히 화려하며 장식적이다. 이 모든 것들을 통해 구성된 아름답기 그지없는 미장센은 소품과 공간 활용을 이용해 더할 나위 없이 가득 채워져 있다. 그도 모자라 오퓔스는 끊임없이 프레임 속 근경에 은폐물들을 설정한다. 롤라와 리스트의 마지막 밤에 그들과 카메라 사이에 드리워진 철제 장식물처럼, 이 은폐물들은 미장센의 화려함을 극대화시켜주는 동시에 타인의 연애담을 엿본다는 것의 관음성을 부각한다. 그러나 영화의 후반으로 갈수록 이 은폐물들은 롤라를 가두는 철창의 뉘앙스를 띄게 되고, 에필로그에서 철창 안에 들어가 관객들을 맞는 롤라의 모습은 그를 증명한다. 결국 이는 화려함과 사치가 롤라를 옥죄고 가두어감을 은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롤라 몽테스>의 흐드러진 사치에는 죽음의 느낌이 배어있다. 영화의 도입부, 서커스 무대에서 롤라를 비추는 조명은 창백한 푸른색이며, 직설적이며 외설적인 질문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그녀의 얼굴에는 피로와 체념의 표정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또한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롤라가 병들었다는 사실이 끊임없이 환기되기도 한다. 이들이 자아내는 죽음의 뉘앙스는 정해진 공연 수순에 따라 이어지는 롤라의 삶에 대한 회고를 죽음을 앞둔 자의 삶의 반추로 여기게 한다. 영화가 끝날 무렵, 그녀는 서커스의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 엄청난 높이에서 뛰어내리는데, 안전망을 그대로 두라는 의사의 권고에도 그녀는 끝내 안전망 없이 뛰어 내리기를 선택한다. 그녀의 선택과 다이빙 직전에 롤라가 들이쉬는 가쁜 호흡은 이 영화 전체가 롤라 몽테스의 자살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오퓔스는 이러한 사치스러움이나 롤라 몽테스의 삶에 대해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리지는 않는다. 외려 그는 롤라가 매번의 연인들에게 가졌던 사랑을 믿고 관객들에게 전달하며, 이미 퇴락해버린 듯한 그녀의 삶을 처참한 것으로 그려내어 동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오퓔스는 롤라의 시녀 조세핀과 마부의 에피소드를 쉼표처럼 문득문득 영화에 삽입한다. 전혀 특별할 것도 없는 초동급부의 사랑이나, 롤라와 남자를 위해 마차에서 나온 조세핀에게 담요를 덮어주는 마부의 모습은 행복에 조금 더 가까워 보인다. 격정에서 비롯하는 처연한 슬픔으로 가득한 롤라 몽테스의 삶에 매료당하는 가운데, 이들은 오퓔스가 곁눈질했던 행복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박예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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