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알드리치는 반골기질로 똘똘 뭉친 할리우드의 이단아였다. 무엇보다 착상하는 소재부터 남달랐고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캐릭터들은 마치 감독의 디렉팅 바깥에 존재하는 것처럼 자유분방하게 행동했다. 그렇게 늘 흥행영화를 만들었음에도 영화에는 불균질한 요소들이 넘쳐났다. 2차 대전 중 무능한 상관을 사살하면서까지 미군 내부의 항명을 다뤘던 <어택!>(1956), 역시 2차 대전 중 12명의 서로 다른 죄수가 독일군 기지를 습격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더티 더즌>(1967), 일련의 집단이 핵미사일 기지를 점령하고는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저질렀던 비리와 잘못을 인정하도록 요구하는 <위기의 백악관>(1977) 등 그는 철저히 스튜디오에 종속된 상업영화 감독이었음에도 자기만의 확고하고 독특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어택!>처럼 비판적 묘사로 인해 상영이 금지되는 일도 있었고 악당을 공공연히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경우도 흔했다. <북극의 제왕>에도 개 짖는 소리로 경찰에게 모욕을 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1970년대 알드리치의 후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북극의 제왕> 역시 마찬가지다. 19번 열차에는 샤크(어네스트 보그나인)라는 악명 높은 차장이 상주하며 무임승차한 사람들을 발견하고 잔인하게 처리한다. 망치는 물론 각종 도구를 이용하여 잔인하게 죽이기까지 한다. 한편, A 넘버원(리 마빈)이라 불리는 한 부랑자는 무임승차에 관한 한 최고 실력자다. 그는 샤크에 의해 기차 칸에 갇혔다가 아예 불을 지르고 달아나버린다. 소식은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사람들은 두 사람의 대결에 돈내기를 하기에 이른다. 자존심이 상한 샤크는 다시 증기기관차를 달려 A 넘버원과의 재대결을 준비한다. 그리고 얼떨결에 A 넘버원과 여정을 함께 하게 된 시가렛(키스 캐러딘)이 그 대결의 관찰자가 된다.

<더티 더즌>과 <위기의 백악관>은 물론 <울자나의 습격>(1972)이 미국의 서부 개척기를 배경으로 한 것처럼 <북극의 제왕> 역시 명쾌한 시대 배경으로부터 출발한다. 대공황이 휩쓴 1930년대 미국, 집과 직장을 잃고 떠돌던 부랑자들은 기차에 무임승차를 하며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당시 이러한 차장과 부랑자의 실제 대결 사건으로부터 출발한 영화는 아니지만 알드리치의 관심사는 사실상 그를 통한 풍자다. 기차에 매달려야 사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무자비하게 끌어내려야 하는 차장의 모습은 얼핏 과장되고 농담처럼 느껴지지만 여느 알드리치의 영화가 그러하듯 세상에 대한 환상을 허용하지 않는 냉소가 담겨있다. 그렇게 <북극의 제왕>은 서로 모순된 요소들이 끝없이 충돌하면서 묘한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물론 열차의 좌우, 위아래, 내부와 외부를 오가며 펼쳐지는 하드보일드한 두 남자의 대결이라는 장르적 흥분도 빼어나다. 달리는 열차 위에서 그들을 저지하기란 불가능한데, 그 상황에서 뛰어다니며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의 에너지와 스턴트의 수준은 놀랍다. 게다가 열차 아래 몸을 의지해 이동하는 리 마빈을 처리하려고 기상천외한 도구를 사용하는 어네스트 보그나인의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알드리치의 영화다. 그의 영화에는 언제나 상상하지 못한 이야기 전개의 순간, 혹은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일탈의 디테일이 등장한다. 영화 도입부부터 어네스트 보그나인이 망치로 사람을 내려치고, 리 마빈이 닭으로 사람을 후려갈길 때 이미 영화의 야수적 성격은 규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자신의 입장에서 볼 때 쥐새끼처럼 들러붙는 부랑자들을 망치로 후려치는 어네스트 보그나인의 모습, 그 어떤 순간에도 여유를 잃지 않고 열차의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리 마빈의 모습은 그야말로 당시 할리우드 마초 스릴러 영화의 ‘진경’이다. (주성철 씨네21 기자)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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