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알드리치의 <북극의 제왕 The Emperor of the North Pole>(1973)은 에이 넘버원이라는 이름을 갖고 무임승차로 미 전역을 떠돌았던 레오 레이 리빙스턴의 「잭 런던과의 대륙횡단 From Coast to Coast with Jack London」과 잭 런던의 「길 The Road」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로버트 알드리치는 이 무임승차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명성과 자존심을 유지하는 데 사로잡힌 인물들의 초상을 강렬하게 그려낸다.

1933년, 몇 년째 지속되고 있는 대공황으로 인해 속출한 부랑자들은 달리는 기차에 무임승차하여 미국을 떠돌아다닌다. 무임승차 실력으로 명성을 얻은 에이 넘버원(리 마빈)은 악명 높은 차장 샤크(어네스트 보그나인)가 운행하는 19호 열차에 오르게 된다. 시가렛(케이스 캐러다인)은 그를 따라 열차에 오르다 샤크에게 발각되고, 임기응변으로 탈출한 에이 넘버원은 19호 열차에 무임승차하여 포틀랜드까지 가겠다는 선전포고를 한다.



이 영화에서 알드리치가 가장 공들여 표현한 인물은 샤크다. 그는 19호 열차에 올라탄 부랑자를 잔인하게 죽이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하여 시종일관 영화의 악역을 담당한다. 그러나 사실 그의 행동은 단순한 악의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누구도 샤크의 기차에 무임승차할 수 없다“는 명성을 얻으며 비대해진 자존심을 유지하려는 강박에 빠져버린 인물이다. 에이 넘버원이 무임승차하겠다고 예고한 당일, 차량이 망가질 정도의 무리한 속도로 짙은 안개 속을 폭주하는 19호 열차는 샤크의 불안을 그대로 보여준다. 혹시나 숨어들었을지 모를 에이 넘버원을 찾기 위해 기차의 지붕 위를 끊임없이 뛰어다니는 그의 모습은 처연함마저 불러일으킨다.



에이 넘버원 역시 이와 같은 종류의 자존심으로 작동하는 인물이다. 그가 샤크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은 순전히 우연히 얻게 된 ‘북극의 제왕’이라는 칭호와 미 전역에 자자해진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심지어 철없는 애송이로 그려지는 시가렛마저 지나친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앞선 두 인물과 달리 시가렛은 타인의 평판을 통해 명성을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자신의 타이틀을 스스로 자랑하며, 그것이 거짓인 경우도 많다. 다시 말해 시가렛이 가지고 있는 것은 자존심이라기보다는 허영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려는 강박에 빠질 이유도, 그것에 목숨까지 걸 이유도 없는 것이다.



영화의 종반에 위치한 샤크와 에이 넘버원 간의 격투 장면은 인물들이 작동해온 심리를 강렬하고 명확하게 압축한다. 비대하고 견고한 프라이드의 격돌은 뻥 뚫린 화물칸 너머로 보이는 광야와 대비되어 강조된 두 배우의 몸의 물성을 통해 표현된다. 서로 쫓고 쫓기는 사이에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을 힘겹게 끌고 다니며 싸움을 이어가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자존심, 자신의 타이틀에 대한 집착이다. 시가렛은 기차의 지붕에 매달려 스포츠 경기를 관전하듯 철없이 그 광경을 지켜본다. 자신이 내세우던 알량한 자존심과는 전혀 다른, 스스로의 생을 걸 수밖에 없는 육중한 강박은 시가렛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인 것이다. (박예하: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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