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임스 캐그니가 연기하는 놀라운 양면성 <화이트 히트>

2013. 4. 17. 14:12시네아스트의 초상/라울 월쉬 - 할리우드 매버릭의 모헙

상영작 리뷰

제임스 캐그니가 연기하는 놀라운 양면성 <화이트 히트> 



더글라스 페어뱅크스, 존 웨인, 험프리 보가트, 클라크 게이블, 에드워드 로빈슨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과 작업을 한 라울 월쉬의 필모그래피에서 제임스 캐그니의 이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The Roaring Twenties>(1939), <The Strawberry Blonde>(1941), <A Lion is in the Streets>(1953) 등 제임스 캐그니는 라울 월쉬의 영화에서 자신의 매력을 십분 살린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화이트 히트> 역시 제임스 캐그니의 높고 카랑카랑한 목소리, 찌를 듯 날카로운 눈빛, 하지만 그 뒤에 숨은 연약함과 우울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작 중 한 편이다.

<화이트 히트>의 코디 자렛은 누구보다 냉혈하고 폭력적인 악당으로서 범행의 성공을 위해서 무고한 시민까지 아무렇지 않게 죽여 버리는 인물이다. 미소 지을 때조차 광기를 드러내며 주위의 공기를 싸늘하게 만드는 그는, 하지만 두통이 찾아올 때마다 어머니의 품을 찾는 묘한 양면성을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제임스 캐그니는 이 코디 자렛이라는 복합적인 인물을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히스테리와 지친 표정, 그리고 아이와 같은 순진함으로 연기하며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완전히 지배한다. 특별히 두 가지 장면을 이야기하고 싶다. 하나는 교도소에 갇힌 코디가 비극적인 소식을 전해 듣고 분노와 슬픔으로 몸부림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제임스 캐그니는 비통의 감정을 온 몸으로 보여주며 무너져 내린다. 카메라는 그런 그의 모습을 롱숏으로 가만히 바라볼 뿐이지만 이 장면이 주는 정서적 울림은 거부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면은 물론 마지막 장면이다. 악행 끝에 결국 궁지에 몰린 그는 경찰의 총에 맞지만 끝내 쓰러지지 않는다. 경찰조차 눈앞의 장면을 믿을 수 없어 이렇게 외친다. “저 놈은 왜 쓰러지지 않는거야?” 그렇게 코디 자렛은 피를 흘리면서도 꿋꿋이 몸을 세운 채 자신이 지금 세상의 꼭대기에 서 있음을 외친다.

이처럼 제임스 캐그니가 연기하는 코디 자렛은 작은 귓속말에도 세상이 떠나갈 것처럼 목 놓아 우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총에 맞아도 다시 일어나 자신의 승리를 외치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런 모순적인 면을 제임스 캐그니는 자신의 연기로 생생하게 구체화시킨다. 이것이 영화사에 길이 남을 악당인 코디 자렛에게 어쩔 수 없이 끌리고야 마는, 아니 코디 자렛에게 압도당하고 마는 이유일 것이다.


김보년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