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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프랑스 영화의 황금기:1930-1960

[리뷰] 로베르 브레송 '무셰트 Mouchette'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에 이어 베르나노스의 소설 <무셰트의 새로운 이야기>를 영화로 옮기면서 브레송은 시네마에 대한 고유한 해찰에 이른다. <무셰트>는 종래의 영화들에서 거의 강박화되어 있던 어떤 종류의 목적성도 찾아낼 수 없는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중시되는 것은 사건이나 스토리 전개가 아니라 작중인물의 내면의식이다. 스토리를 통해 내면의 목소리가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의식에 의해서 스토리와 관계없는 새로운 이야기가 창출되는 것이다.

불행한 고아도, 그렇다고 사랑스러운 요정도 아닌 소녀 무셰트는 속내를 파악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시름시름 앓는 어머니와 주정뱅이 아버지의 학대로 존재를 부정하는 그녀는 결손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되는 대로 사는 것처럼 보인다. 삶의 의욕을 놓아버린 그녀에게 찾아온 충일한 순간(축제에서 한 남자와의 짧은 교감)마저 아버지에 의해 좌초당한다. 무셰트가 세계에 저항하는 유일한 방식은 침묵이다. 그녀의 반사회성은 곳곳에서 표출된다. 합창 시간에 노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우들 앞에서 멸시당한 무셰트는 비탈에 숨어 아이들에게 흙을 던지고, 진흙 묻힌 신발로 회당을 더럽혀 신을 능멸한다. 올가미에 걸린 산짐승처럼 사냥꾼에게 능욕당한 그녀는 어머니가 죽자 완전히 버려진다.


<무셰트>에서 브레송의 미니멀한 스타일은 절정에 달한다. 감각적으로 황량하고 신랄한 이미지의 잔혹함이 시종 시선을 압도한다. 단순하고 절제된 카메라워크는 심리 진술 이상을 겨냥하고 있다. 브레송의 전매특허처럼 알려진 파편화된 신체의 이미지는 <무셰트>에서 매우 엄격한 방식으로 구현된다. 스크린을 둥둥 떠다니는 머리 없고 손 잘린 이미지들은 파쇄된 영혼의 시각적 구현이라 할만하다. 면도칼처럼 날카로운 프레이밍에 의해 절단된 몸의 분절은 삶을 위한 투쟁, 갈가리 찢긴 세계와 자아의 분리, 운명에의 굴복을 묘사하고 있다.

<무셰트>는 우리들 누구라도 삶의 비의를 느끼는 무셰트와 진배없는 영혼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럴듯한 의미맥락을 꾸며내는 것은 영화의 이해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브레송의 작의를 완전히 드러내기에 어떤 설명도 미진함이 남기 때문이다. 고통스럽게 삶을 옥죄어 오는 악마들에게 무심한 표정으로 대응하던 소녀의 자살은 그래서 끝끝내 응답을 거절하는 미해결의 인상을 남긴다. 브레송의 혁신성은 바로 여기, 끈질기게 다가가려는 우리를 따돌리고 어떤 감정과 심리묘사도 제거한 이미지의 냉혹함을 이끌어내는 방식에 있다.

글/ 장병원(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