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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프랑스 영화의 황금기:1930-1960

[리뷰] 자크 타티 '축제일 Jour de fête'

1982년 11월 4일 자크 타티가 죽고 난 뒤, 미국의 저명한 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은 ‘사이트 앤 사운드’에 ‘윌로씨의 죽음 The Death of Hulot’이라는 글을 실었다. 그는 자크 타티의 마지막 작품이 될 뻔했던 미완의 영화 <혼란 Confusion>의 각본 작업에 참여한 바 있으며, 타티에게는 앙드레 바쟁 못지않은 신뢰를 얻은 평론가였다. 로젠봄의 기억 속에서 자크 타티는 천재적인 감각의 소유자이자 슬라브인 특유의 불같은 성질과 우울증이 교차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타티는 로젠봄에게 영화적 시선을 새롭게 정립해준 감독이었다. “<플레이타임>은 내가 도시 안의 사물들과 사람들을 보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그의 고백처럼 ‘새로운 시선’ 혹은 ‘낯설게 하기’ 방식들이란 자크 타티 영화 미학의 구조적이고 근원적인 핵심이었다.
자크 타티는 1932년 단편 영화, <오스카, 테니스 챔피언>으로 시작해, 1947년 첫 장편영화 <축제일>을 통해 배우이자 감독으로서의 자리매김을 시작한다. 이후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출세작 <윌로씨의 휴가>(1953)와 <나의 삼촌>(1958)을 비롯하여 그의 최대 걸작이자, 1960년대 프랑스 영화사를 대표하게 된 영화 <플레이 타임>(1967). 그리고 <플레이 타임>의 흥행 실패 이후, 재정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트래픽>(1971)과 <퍼레이드>(1973)까지 그는 40여년의 시간 동안 총 6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하였다. 결코 길지 않은 이 필모그래피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들은 그를 동시대 평론가와 감독에게 최고의 시네아스트이자, 프랑스의 채플린 혹은 버스터 키튼으로 기억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자크 타티의 첫 번째 장편영화 <축제일>은 프랑스의 작고 소박한 마을의 카니발을 담고 있다. 마을 광장은 축제를 위한 활기찬 공간으로 들썩이고 멀리서 찾아온 유랑극단과 브라스 밴드, 그리고 이동식 간이 영화시설로 사람들은 들뜨기 시작한다. 자크 타티는 여기서 마을사람들의 놀림을 받는 우편배달부 프랑소와로 출연하며 축제기간동안 소동을 벌이게 된다.
유성영화시기에 무성영화가 지닌 장점을 재해석하며, 개인과 집단, 개인과 상황이 부딪히며 자아내는 희극들을 펼쳐 보이는 이 영화의 형식은 이후 타티가 자산의 정점에서 보여주게 될 영화 예술 미학의 원형적 모습이자 실험적 형상들이다. 이 영화를 본 장 뤽 고다르는 한 평문에서 “자크 타티와 함께 프랑스의 네오리얼리즘은 태어났다. 이 영화는 <무방비 도시>가 지닌 영감과 닮아있다”고 찬사를 바쳤다. 이러한 찬사는 그가 지닌 희극에 대한 탁월한 감각 때문이었다. 타티는 종종 채플린과 키튼에 비견되지만, 그들처럼 육체 그 자체를 중심에 놓거나 주인공화 하지 않는다. 채플린이 연출 그 자체를 연기를 위한 배치로 봤다면, 타티는 연출 속에 인물과 공간 사물과 상황이 구조적으로 관계 맺고 반응하는 그 과정 자체를 탐구한다.
가령 <축제일>에서 우편배달부 프랑소와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 윙윙거리며 쫓아오는 벌을 피하기 위해 팔을 휘저으며 몸부림친다. 그의 이상한 몸짓이 벌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관객에겐 그 상황이 별로 우습지 않지만, 그러나 저 멀리 언덕 위에서 프랑소와를 바라보는 한 농부의 시선에 포착된 그 모습은 영문을 알 수 없는 희극적 행위가 된다. 그러나 관객의 웃음은 그 다음에 찾아온다. 롱쇼트를 통해 전경의 농부와 저 멀리 후경에 포착된 프랑소와의 모습이 한 프레임으로 담길 때, 프랑소와가 벌을 쫓아내고 다시금 자전거를 달리기 시작할 때면, 어느새 전경에 있던 농부 역시 프랑소와처럼 몸부림을 친다. 그리고 이내 프랑소와와 농부의 몸부림은 윙윙거리는 사운드와 함께 번갈아가며 교차한다. “코미디는 논리의 정점이다. 개그는 그것의 한계 외부로 나아간 상황이다. 웃음은 근본적인 부조리에서 비롯된다. 어떤 것들은 그 자체로는 웃기지 않지만, 그것들을 절개하면 웃겨진다.”(자크 타티) 이 절개된 상황 속에서 고다르는 타티의 천재적 재능을 읽었다. “자크 타티는 코미디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낯섦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낯섦의 감각은 특화된 사건이 아니라 아주 일상적인 생활공간들, 행위들 속에서 오랜 시간동안 관찰되어진 어떤 결과들이 재조합되고 보였을 때 빚어지는 웃음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 대중들에게 타티는 위대한 영화감독이기 보다는 구부정한 희극인 윌로씨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의 놀라운 영화적 재해석은 세르주 다네에게는 ‘조금 일찍’ 도착한 작가로, 그리고 로젠봄에게는 현대사회의 소외와 지배를 통찰한 ‘반세기를 앞선 위대한 예술가’로 평가되기에 이른다.

글/ 정지연(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