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행제로>는 프랑스 영화의 1930년대를 대표하는 장 비고 감독의 대표작이자 데뷔작으로, 억압적인 교육에 맞선 학생들의 모습을 영화화했다. 그런 이유로 상영 당시 격렬한 논쟁을 불러오기도 했지만 이 영화가 지금까지도 기억되는 이유는 현실을 판타지로 둔갑시킨 장 비고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에서 기인한다. 이를 일러 시적 리얼리즘이라고 부르지만 이에 상관없이 <품행제로>는 학교 교육의 위기로 일컬어지는 작금의 한국에서 보다 의미 있는 작품으로 다가온다. 이에 10월의 영화관 속 작은 학교의 프로그램으로 <품행제로>를 선택했는데 상영 이후 열린 이강옥 코디네이터의 강연 일부를 여기에 공개한다.

장 비고의 <품행제로>(1933)는 기숙학교의 권위적인 교육 제도와 규율에 맞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저항하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을, 어른들의 관점이 아닌 아이들의 관점에서 사실적이면서도 시적인 판타지로 그려낸 영화이다. 여기서 판타지는 단지 힘들고 갑갑한 현실을 잊기 위한 아이들의 상상력에서 나온 판타지일 뿐만 아니라 억압적인 현실을 이겨내고 삶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미의 판타지인데, 이는 바로 장 비고가 영화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사회의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현실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이를 환상적이고, 따뜻하며, 활력 넘치고, 때로는 코믹하게 표현함으로써, 관객들의 정서와 의식을 자극하여 궁극적으로 우리 삶과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1930년대 초반, 초기 유성 영화의 여러 가지 실험이 시도될 무렵 만들어진 이 영화는 여러 가지 기술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미지와 소리의 조화, 기발한 편집 등을 통해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들의 상상력이 가득한 판타지를 표현하는 방식이 놀랍도록 독특하고 아름답다.

<품행제로>에서 마술과 시적인 판타지는 현실에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온다. 우선 공간의 변화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방학이 끝나고 마치 지옥으로 끌려가듯 기숙학교로 돌아가는 기차 안은 슬랩스틱 코미디(과장되고 우스운 동작의 익살극)의 경연장이 된다. 엄지손가락을 마음대로 뺐다 끼었다 할 수도 있고, 코로 부는 나팔 소리가 제법이며, 풍선은 만지고 싶은 젖가슴이 되고, 별안간 엉덩이에 깃털을 꽂고 닭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또한 아이들이 내뿜는 담배 연기가 증기 기차의 연기와 어우러져 이 ‘지옥 행 열차’는 환상적인 공간으로 변화한다. 한편, 새로 부임한 위게 선생은 찰리 채플린 복장을 하고 유일하게 아이들과 교감하는 어른인데, 답답하던 교실이 때로 그와 함께 있을 땐 순수한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손에 있던 공이 갑자기 사라졌다 나타나는 마술도 가능하고,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서 물구나무도 서고, 심지어 물구나무를 선 채로 만화도 그리며, 또한 이 만화가 별안간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이 되어 숨 막히는 교실을 활기찬 동심의 공간으로 되돌려놓는다.

특히, 극 중 화면이 느려지는 곳에서는 시간과 공간에 동시에 변화가 일어난다. 아이들이 위게 선생과 마을로 산책을 나갔을 때, 한 아름다운 여성을 좇아 위게 선생이 뛰고, 아이들도 따라서 뛰어가는 장면에서는 마치 그들이 오랜만에 맛보는 자유와 해방감을 보여주듯, 공간은 넓어지고 시간은 느려진다. 이는 아이들이 좀 더 머물고 싶은 공간이며 좀 더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시간, 즉 새로운 자유와 해방의 시공간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교 축제일 전야에 아이들은 해골 깃발을 높이 들고 반란을 일으키는데, 사감과의 베개싸움으로 인해 기숙사 안은 온통 난장판이 되고 터진 베개에서 나온 깃털이 흩날리는 가운데, 화면이 느려지며 아이들은 기숙사 통로에서 마치 엄숙한 의식과도 같은 행진을 시작한다. 베개싸움 장면에서는 경쾌한 느낌의 관악기, 타악기 소리가 주를 이루는 반면, 깃털이 날리고 화면이 느려지는 부분에서는 잠시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가, 행진하는 장면에서는 마을로 산책을 나갔을 때 부르던 아이들의 합창 소리가 고음의 허밍으로 오묘하고 신비롭게 들려온다. 이때의 환상적인 음향 효과도 한밤중의 기숙사를 자유와 해방의 시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물들에게도 커다란 변화가 생긴다. 가장 소극적이고 유약하던 아이가 선생님의 부당한 처우에 당당하게 욕도 할 수 있으며, 반란의 깃발을 높이 들고 선언문을 낭독하는 주동자로 변모한다. 또한, 억압당하던 공간인 교실과 기숙사에 있던 아이들이 하늘을 향해 지붕 위로 올라가거나, 학교 앞마당을 당당하게 차지하는 반면, 권위적인 기존 사회 질서를 대변하는 학교 축제일의 초청 인사들은 답답한 기숙사 방으로 쫓겨 들어가 채광창으로 초라하게 밖을 내다보는 등 공간을 점유하는 주체가 완전히 뒤바뀐다.

<품행제로>에서 서서히 일상을 변화시키는 에너지, 즉 이러한 마술과 시적인 판타지의 기저에는 바로 비판적인 시각으로 부조리하고 위선적인 억압에 저항하는 아이들의 용기와 상상력이 있다. 특히, 어른들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이를 잘 보여준다. 타바르가 교장 선생님의 방에 불려가, 동급생인 브뤼엘과 가깝게 지낸다는 이유만으로 이런저런 훈계를 들을 때, 타바르의 눈에 비친 교장 선생님은 마치 상자에서 스프링을 달고 튀어나온 듯한 마귀 인형 같다. 또한 학교 축제일 아침, 지난 밤 폭동으로 깊은 잠에 빠진 기숙사에서 네 명의 악동들(코사, 콜랭, 브뤼엘, 타바르)은 사감 선생을 침대에 꽁꽁 묶어 일으켜 세우고 마치 예수의 십자가형과도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아이들에게 억압적인 사감 선생이란 잠시나마 ‘처형’시켜야 할 존재인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학교 축제를 위해 객석에는 기존 사회 질서를 대표하는 종교, 군대, 국가, 학교를 상징하는 인물들인 신부, 군인, 도지사, 교장 등과 함께 실제 사람 크기의 인형들이 앉아있다. 네 명의 악동들이 지붕에서 온갖 쓰레기들을 던지자 이 인형들은 힘없이 뒤로 나자빠지고 마는데, 바로 우스꽝스러운 어른들에 대한 아이들의 상상력과 조롱 섞인 시선이 잘 드러나 있는 부분이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배경을 이야기할 때 장 비고의 어린 시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의 아버지는 일체의 정치권력이나 공공적 강제의 필요성을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내세웠던 무정부주의자였고,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위험인물로 간주되어 수도 없이 감옥을 드나들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무정부주의, 반(反)권위주의, 자유주의를 체득하게 된 장 비고는 12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옥중에서 사망하자, 친척집과 기숙학교를 전전하며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는데, 이 때 감독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바로 <품행제로>다. 기성 사회의 위선적인 억압에 대한 아이들의 반항을 그림으로써 사회 질서를 교란시키는 위험한 영화로 낙인 찍혀 <품행제로>는 개봉한 지 얼마 안 되어 극장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해인 1945년까지 프랑스 내에서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장 비고는 사회적인 통념에 강한 저항 정신을 가지고 있던 활동가이자, 예술 전반에 걸친 탁월한 감각과 재능으로 영화적인 실험 면에서도 기성의 예술 관념이나 형식을 부정하고 시대에 앞서가는 변화를 추구하던 혁신적인 예술가였다. 그는 생애 동안 제작한, 총 러닝 타임이 3시간도 채 되지 않는 4편의 영화만으로도 사회적으로나 영화적으로 중요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건강이 악화되자 따뜻한 지방인 니스에 정착하여 만든 아름답고도 사회 풍자적인 다큐멘터리 <니스에 관하여>(1930), 실험적인 영상으로 특유의 스타일과 미학이 잘 드러난 <장 타리스, 물의 왕>(1931), 억압적인 교육에 대한 아이들의 저항을 다룬 <품행제로>(1933)와 마지막 명작이 된 매혹적인 영화 <라탈랑트>(1934) 등을 남기고 지병인 폐결핵을 앓다 1934년 29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치열한 예술혼은 오늘날까지 뜨거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영화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했던 장 비고의 유토피아적인 정신, 바로 <품행제로>의 시적인 판타지는 변화를 갈망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유산이다.

글/
이강옥(영화관 속 작은 학교 코디네이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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