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코르의 소설로도 유명한 <바다의 침묵>은 나치 점령기의 프랑스 작가들이 발행한 지하출판 한 권으로 프랑스 저항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소설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은 장 피에르 멜빌은 주저 없이 자신의 첫 영화로 만든 것을 결심하고 이는 1947년에 비로소 실현된다.
원작의 구성을 충실히 옮겨온 단순히 구성은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다. 이러한 구성은 이분법적 대립은 반복되는 행위들을 통해 이뤄지며 이는 충돌과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점령당한 프랑스와 점령한 독일, 문화와 무력, 노인/여자와 군인, 미녀와 야수, 침묵과 독백 식의 이분법적 대립은 등장인물의 관계를 대변해주고 있으며 극중 세 인물의 관계는 흑과 백의 강렬한 조명의 대비, 카메라의 움직임, 베르너가 걸어 다니는 소리 등을 통해서 디테일하게 연출된다.
영화에서는 노인이 파이프로 담배를 피우는 모습과 조카가 바느질하는 모습, 그리고 매일 서재에 찾아와 독백을 계속하는 베르너의 모습이 반복되는데, 이러한 반복은 비를 막고 들어온 베르너가 군복이 아닌 사복으로 서재를 찾으면서 전환을 맞는다. 이들의 일관된 침묵과 계속되는 독백은 변함없지만, 평상복의 베르너는 무력으로 점령한 독일과 점령당한 프랑스의 대립적인 관계가 적어도 이집에서 만큼은 유효하지 않게 됨을 보여준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침묵은 대화보다도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조카딸이 침묵을 깨며 던지는 한 마디 말은 깊은 감동을 준다.
침묵은 영화라는 매체의 더욱 가까이 다가가 있다. 이 영화에서는 인물과 그 인물들의 관계를 표현하는 방식은 말에 의한 설명이 아니라, 영화적인 영상과 주변의 소음이다. 정적이던 카메라는 세 인물이 한 자리에 모이는 서재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베르너의 등장은 그가 다리를 저는 소리나 노크 소리로 대신 된다. 또한 단호한 고집이 보이는 노인과 강인한 내면을 보여주는 조카딸과 이상의 좌절을 겪고 비통해 하는 독일장교 베르너의 섬세하게 연출된 모습은 제한된 장소의 실내극이 가질 수 있는 약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만들고 있다. 실제로 원작자인 베르코르의 고향 마을에서 촬영된 이 영화는 저예산으로 촬영되었지만, 점령 초기 독일의 프랑스에 대한 회유정책의 기만성, 전쟁의 부조리와 비인간성,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이 겪는 비극을 예리하게 고발하고 있다.
멜빌이 좋아했다던 니콜 스테판의 옆모습과 침착하지만 강인한 두 눈의 연기가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으며, 하워드 베르농의 온화하면서도 고뇌하는 연기 또한 인상적이다.

글/ 박경미(전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사무차장)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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