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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시네바캉스 서울

[리뷰]‘미친’ 안티고네 - 마르코 벨로키오의 <육체의 악마>

“2014 시네바캉스 서울”의 두 번째 섹션은 “섹스는 영화다”이다. 섹션명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섹스’를 그린 영화들을 모았다. 그러나 물론 단순한 섹스는 아니다. 이 다섯 편의 영화들이 그린 섹스는 관객에게 에로틱한 감정을 전달하기보다는 놀람과 불편함을 안겨준다. 표현의 강도 면에서 당시 사회의 기준을 넘어서는 것은 물론 기존의 가치관과 규율을 정면으로 어기는 것이다. 작품에 따라서는 마치 우리에게 싸움을 거는 것 같기도 한 이 영화들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할까. 어쩌면 단순한 호기심으로 보기 시작한 영화가 우리 사고의 굳은 부분을 깨뜨려 줄지도 모른다.



[리뷰]‘미친’ 안티고네

- 마르코 벨로키오의 <육체의 악마>


마르코 벨로키오의 젊은 시절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 같았다. 그는 베르톨루치와 더불어 소위 이탈리아 ‘68 세대’의 영화적 대변인이었다. 베르톨루치도 왼쪽이었지만, 벨로키오는 극좌파였다. 그는 프랑스의 고다르처럼 당시에는 마오주의자였다. 오직 ‘이성’의 이름으로 모든 구습을 혁파하려는 열망이 넘쳤다. 이들 세대의 감독들이 함께 만든 작품이 옴니버스 영화인 <사랑과 분노>(1969)이다. 지금 봐도 명성이 쟁쟁한 감독들인데, 파졸리니, 베르톨루치, 리차니, 고다르, 그리고 벨로키오가 연출을 맡았다. 이들 중 가장 어린 벨로키오와 베르톨루치는 당시에 30살 남짓한 청년이었다.


두 이탈리아 감독의 우정과 경쟁은 1970년대에도 이어졌다. 베르톨루치가 파리로, 할리우드로 이동하며 세계에 이름을 날릴 때, 벨로키오는 국내에서 더욱 정치적인 영화들을 만들며 자신의 급진성을 유지했다. 그런데 1970년대 후반 벨로키오에게 큰 변화가 왔는데, 바로 정신과 의사인 마시모 파지올리와의 만남이었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위선에 대해 그렇게 민감하던 벨로키오는 파지올리를 만난 뒤, 일종의 ‘푸코의 광기’와 맞닥뜨렸다. 말하자면 사회의 음지로, 불가해한 존재로 치부되던 광인들, 정신병자들에게서 지배 사회의 폭력을 목격했다. 푸코처럼 광기와 광인은 제도로 포섭되지 않는, 혹은 순응하지 못한 타자들을 손가락질할 때 쓰는 말로 봤다. 이런 고민에서 나온 첫 작품이 바로 <육체의 악마>(1986)이다(이 영화는 파지올리에게 헌정됐다).



프랑스의 클로드 오탕-라라가 1947년에 동명소설을 각색하여 제라르 필립을 주연으로 이미 영화로 발표한 적이 있는 작품이다. 10대 소년이 성숙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게 원작의 내용이다. 남자가 미성년이고, 여성이 유부녀라서 이야기 자체가 스캔들이었다. 벨로키오는 소설의 내용을 이탈리아의 현대를 배경으로 대폭 바꾸었다. 특히 여성의 정체성을 크게 손봤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그녀는 정신병을 앓는 환자다. 군인이었던 그녀의 부친은 1979년 이탈리아의 정치테러단인 ‘붉은 여단’에 의해 암살됐다. 그런데 테러단 가운데 한 명이 전향했는데, 바로 그가 여성의 약혼자다. 말하자면 그녀는 아버지를 죽인 테러단의 한 남자와 결혼을 약속했다.

그런데 문제는 10대 소년이 그녀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고, 여성은 그 사랑에도 미친 듯 열중하는 것이다(악명 높은 오랄 섹스 장면도 여기서 나온다). 소년은 고교 졸업 시험을 볼 때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당신은 왕 크레온과 안티고네의 싸움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간의 법을 강요하는 크레온과 인간의 양심을 따르려는 안티고네의 입장을 소년이 설명하는 사이, 여성은 시험장의 맨 뒤에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다. 크레온 왕의 명령, 곧 제도의 법을 거부한 안티고네는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고, 결국 죽고 마는데, 그런 운명과의 동일시일지도 모를 눈물이다.


여성은 왜 미쳤을까? 미친 여성과 사랑에 빠진 소년의 미래는 또 어떻게 전개될까? 이런 모든 질문에 대한 무한한 상상은 관객에게 맡겨 놓고 영화는 종결된다. 하지만 이 영화가 법을 거부한 안티고네의 운명에 동정심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 안티고네, 만약 현대에 살아 있다면 ‘미쳤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일 터다. 그렇다면 그 광기는 부르주아 가치관의 희생이지 않을까? 벨로키오가 정신병의 테마에 집중한 이유이다.



한창호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