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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시네바캉스 서울

[리뷰] 섹스와 권력의 관계에 대하여 - 카트린 브레이야의 <로망스>

“2014 시네바캉스 서울”의 두 번째 섹션은 “섹스는 영화다”이다. 섹션명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섹스’를 그린 영화들을 모았다. 그러나 물론 단순한 섹스는 아니다. 이 다섯 편의 영화들이 그린 섹스는 관객에게 에로틱한 감정을 전달하기보다는 놀람과 불편함을 안겨준다. 표현의 강도 면에서 당시 사회의 기준을 넘어서는 것은 물론 기존의 가치관과 규율을 정면으로 어기는 것이다. 작품에 따라서는 마치 우리에게 싸움을 거는 것 같기도 한 이 영화들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할까. 어쩌면 단순한 호기심으로 보기 시작한 영화가 우리 사고의 굳은 부분을 깨뜨려 줄지도 모른다.


[리뷰] 섹스와 권력의 관계에 대하여

- 카트린 브레이야의 <로망스>



카트린 브레이야의 <로망스>는 한 여자의 성적 오디세이를 따라간다. 초등학교 교사인 마리(카롤린 뒤세)는 격심한 절망과 고통에 빠져 있다. 방탕한 기질의 연인 폴(사가모르 스테브냉)이 그녀를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녀와의 섹스는 한사코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를 쉽사리 떠나지 못하는 그녀는 부정할 권리를 행사하겠다며 한밤중에 집을 나선다. 그리고 술집에서 만난 파울로(로코 시프레디)와 섹스만 하는 사이가 된다. 그녀의 모험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도구를 활용해 성 도착적 관계를 즐기는 교장 로베르(프랑수아 베를레앙)와도 관계를 맺고, 심지어는 길에서 마주친 불량배에게 몸을 팔려고도 한다. 그렇게 부정을 열심히 한 끝에 폴로부터 결혼과 섹스를 제안받게 되지만, 짧은 섹스와 임신과 다시 찾아온 폴의 무심함에 결국 극단적 선택을 내린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섹스와 권력의 관계에 대한 문제가 놓여 있다. 마리는 폴과 평등한 관계이고 싶어한다. 하지만 서로를 향한 성욕의 격차로 인해 힘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이다. 이에 욕망의 수동적인 객체에서 능동적인 주체로 이동하고자 하는 마리는, 폴이 다른 여자들과 그렇게 하는 것처럼, 다른 남자들과 무분별한 관계를 시도한다. 그것이 자신과 폴 사이의 지위를, 그리고 체위를 바꿔줄 수 있을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비로소 자리바꿈에 성공한 그녀는 폴에게 “넌 내 자세를 취하고 있어. 넌 여자고 난 남자야. 내가 널 먹는 거라고”라고 말한다. 그녀의 대사를 통해 이 영화는 이성애적 섹스가 ‘나’와 ‘너’, ‘남자’와 ‘여자’, ‘주어’와 ‘목적어’ 간의 권력 차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행위임을 명시한다. 파울로, 로베르, 불량배와의 섹스에도 권력이 작동하고 있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어떤 환상도 남겨둘 수 없다고 말하는 듯한 이 영화는, 축축하지도 않고 미끌미끌하지도 않다. 오로지 건조하기만 하다.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 중 다른 하나는 마리의 행위가 자신의 쾌락을 온전히 쟁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고도로 작위적인 몸부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성적 방종은 순수한 일탈과 방황이라기보다 반드시 폴이라는 한 남자에게 돌아오기 위해 고의적으로 설계된 여정이다. 파올로와 로베르와 불량배를 상대하는 그녀의 태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그녀에게 섹스는 유일무이한 현재에 충실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항상 폴과의 과거나 미래로 복귀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때때로 남자들의 성적 권력을 욕보이려 하다가 결국 자신이 그 권력 관계를 더욱 공고히 재생산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 점은 그녀가 쾌락을 추구함에 있어 여성적 논리를 펼쳐나가는 듯하면서 실은 남성적 논리를 훔쳐오고자 하는 이중적 욕망을 가진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한다. 마지막 장면의 전복적 시도에 내기를 걸어볼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모순성과 폐쇄성이 지배적으로 느껴지는 작품이다.


물론 이런 주제를 논함에 있어 카트린 브레이야라는 여성감독이 지닌 도발의 힘은 놀랄 만한 것이다. 남성적 원리에 입각한 시각적 폭력에 전면적 노출증으로 대항하는 그녀는 포르노그래피와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다 못해 무너뜨려 버린다. 수용 가능한 표현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이다. 누워 있는 여성을 찍을 때 카메라는 그녀의 머리 쪽이 아닌 질의 정면 쪽에 위치해 있다. 관객은 그것에의 응시를 요구당한다. 여기에는 낭만적 에로티시즘이 끼어들 자리가 없으며 적나라한 육체적 현실만이 있다. <로망스>는 그 지점에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만드는 영화다.



이후경│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