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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시네바캉스 서울

[리뷰] 엘렉트라의 소원 - 루키노 비스콘티의 <희미한 곰별자리>

[리뷰] 엘렉트라의 소원

- 루키노 비스콘티의 <희미한 곰별자리>



<희미한 곰별자리>(1965)는 그리스 비극 같은 멜로드라마다. 사랑의 이름으로 친족살해와 근친상간의 범죄가 공모되고 의심받는다. 모든 게 사랑의 상처 때문이다. 병든 사랑의 무모한 맹목성에 관한 탁월한 작가인 루키노 비스콘티의 표현력이 여기서도 빛난다. 가족은 핏줄로 엮여 있고, 그 질긴 인연 때문에 고통받는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그리스 비극의 엘렉트라 같은 여성 산드라(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놓여 있다.


산드라는 스위스에서 영국인 남편과 사는 이탈리아 여성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유산으로 물려받은 저택의 뒤뜰 정원을 시 당국에 기부할 예정으로, 오랜만에 ‘이탈리아 여행’에 오른다. 유대인 의사인 아버지는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다. 영화는 산드라 부부가 제네바에서 고향인 이탈리아의 볼테라까지 자동차로 이동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세자르 프랑크의 우울하고 동시에 화려한 피아노곡인 ‘전주곡 합창과 푸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자동차는 언덕 위에 세워진 중세도시 볼테라의 어둡고 큰 저택에 도착한다(볼테라는 트와일라잇 시리즈 <뉴문>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프랑크의 피아노곡은 산드라에게 과거의 비밀을 환기시키는 모티브다. 산드라는 지금의 계부인 변호사와 모친이 사랑을 위해 유대인 아버지를 파시스트들에게 고발했다고 의심한다. 아버지를 수용소로 보낸 뒤, 그들은 마음껏 사랑했고, 뻔뻔하게 결혼까지 했다는 것이다. 피아니스트 모친이 자주 연주하는 곡이 프랑크의 전주곡이다. 볼테라의 정원에는 며칠 뒤 있을 행사를 위해 아버지의 흉상이 준비돼 있다. 산드라는 흰색 헝겊으로 가려진 아버지의 흉상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끌어안고, 쓰다듬으며 울먹인다. 제대로 죽지 못한 자에 대한 애도인데, 부친에 대한 ‘특별한’ 사랑의 깊이는 이 동작 하나로 모두 설명될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죽음을 불러내고, 그 삶을 다시 기억시키는 기부 행사는 산드라에겐 부친의 죽음에 대한 복수에 다름 아니다. 산드라에게 모친과 계부는 아가멤논을 죽인 간통과 친족살해의 범죄자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다. 딸의 의도, 곧 엘렉트라의 복수를 짐작한 모친은 “너에게도 더러운(유대인을 의미) 피가 흐른다”며 저주를 퍼붓고, 변호사는 격렬하게 화를 내며 다른 비밀로 산드라를 반격한다. 반격의 내용은 산드라와 오빠 잔니(장 소렐) 사이의 ‘금지된’ 사랑이다.



변호사의 말대로 잔니는 아직도 어릴 때의 누이와의 관계를 지고의 사랑으로 기억하고 있다. 제목 <희미한 곰별자리>는 이탈리아의 낭만주의 시인 자코모 레오파르디의 시에서 따온 것인데, 정원에서 밤하늘의 곰별자리를 바라보며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사랑을 기억하는 연가다. 잔니는 그 시의 주인공이 자기라고 생각한다. 산드라는 그 사랑을 피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지금은 그 기억을 지웠다고 생각하는데, 프랑크의 피아노곡을 들으니 모든 게 다시 떠오른다. 말하자면 피아노곡은 산드라에게 아버지와 잔니에 대한 비밀을 모두 환기시킨다.


기부식 행사는 예정대로 열린다. 그 행사가 근친상간과 친족살해라는 어두운 과거의 극복이 될지, 영원한 구속이 될지 모를 일이다. 아침의 밝은 빛은 긍정적인 미래를, 심하게 몰아치는 바람은 어두운 운명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이중적인 분위기는 산드라의 운명은 물론이고 아마 파시즘의 과거를 가진 이탈리아의 운명까지 포함하는 표현일 테다.




한창호영화평론가